권리 없는 노동자를 늘리려는 윤석열 정부
2023년 12월 20일
12월 1일 정부종합청사 앞, 노조법 2‧3조 즉각 공포를 요구하던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30분 동안 들고 있던 플래카드를 옆으로 치우고 새로운 플래카드를 들었다. “개정 노조법 2‧3조, 방송3법 공포를 거부한 윤석열 대통령 규탄 기자회견”이 바뀐 플래카드의 제목이었다. 간접고용노동자들과 손해배상의 고통에 시달리던 노동자 들이 20년간 요구해 만들어낸 법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었다. 2023년 말, 윤석열 정부는 노동자 권리를 확장하려는 법 개정안을 폐기하고, 약속되었던 법 적용을 미루고, 노조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의 수를 확대하면서 다양한 측면에서 권리 없는 노동자들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
노조할 권리는 계속 제자리걸음
11월 9일 노조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월 환노위 통과, 5월 본회의 회부 이후 6개월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간 경제지를 포함한 보수언론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통과되면 ‘산업생태계를 망친다’며 이 법안을 집요하게 공격해왔다. 국민의힘은 본래 필리버스터를 해서라도 노조법 개정안 통과를 막으려 했으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한 탄핵안 표결을 막기 위해 이 전술을 포기했다. 국민의힘이 본회의에서 적극적으로 노조법 개정안 통과를 막지 않은 이유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조법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노동3권의 행사 조건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법이다. 노조법 2조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정의하고 있는데, 현재 정의로는 하청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원청이 사용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에 간접고용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하청에서는 결정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원청에서는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해 실제로는 노동3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노조법 3조는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을 규정하고 있는 조항인데, 실제 제한되는 범위가 너무 좁아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을 압박하고 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11월 9일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2조는 진짜 사장인 원청과의 교섭권을 인정하고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혔으며, 노조법 3조는 조합원 개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개별 불법행위의 정도를 따지도록 바꾸었다. 개정 노조법은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가 원래 요구한 법안보다는 상당 부분 후퇴한 것이긴 했지만 노조할 권리를 한걸음 진전시킨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법이었다.
대통령 거부권을 규정한 본래 의도는 국회에서 위헌적이거나 집행이 불가능한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최후의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법안을 무력화하려는 수단으로 거부권을 남발하고 있다. 특히 개정 노조법은 현행 노조법이 노동3권을 제한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었고, 진짜 사장과 교섭할 권리를 지지하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부당하다는 여론이 지속적으로 확인되었는데도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었다.
“킬러규제”로 치부된 중대재해처벌법
2022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은 현재 50인(억)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이 되고 있지 않다. 2021년 1월 법이 통과될 때, 50인(억) 미만 사업장에는 2년간 법 적용을 유예하고,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법 통과 당시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는 50인(억) 미만 사업장이 사망 재해의 80%를 차지하기 때문에 당장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민주당과 한국노총조차 50인(억) 미만 사업장이 산업안전 관련 시스템을 구비할 태세가 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2년 유예 조항이 들어가게 되었다. 현행법상 50인(억) 미만 사업장은 2024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게 된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은 일찌감치 예고되어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신년 업무보고에서 중대재해법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TF를 운영해 6월까지 정부안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었고, 전문가들의 의견 대립으로 위 일정이 늦춰지자 7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에서 “‘킬러규제’를 팍팍 걷어내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지시 하루만에 ‘킬러규제 개선 태스크포스’가 꾸려졌다. 적용 유예 시한 만료가 가까워진 11월 23일,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조 건부 수용이 가능하다며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 지난 2년 동안의 조치 미흡에 대한 정부의 공식 사과, 둘째, 유예기간 동안 산업안전계획과 재정지원 방안 수립, 셋째, 앞으로 모든 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반드시 적용한다는 경제단체의 약속이 민주당이 내건 조건이다. 기업 측의 반대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계속해서 물밑협상을 하고 있다.
이처럼 특정 사유로 법이나 규칙의 적용에서 제외되는 것을 ‘예외인정’이라고 하는데, 학자들은 이 역시 규제완화의 한 형태로 본다. 예외인정은 한국 노동법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고, 산업안전보건법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의 선임 의무가 없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예외인정은 순환논리로 서로를 정당화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상 의무가 없으니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수 없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으니 안전관리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에 대해 노동운동·사회운동은 예외인정없이 규제를 확산하되, 규제준수능력이 부족한 경우 국가의 지원을 통해 안전의무를 달성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은 2천~6천만원 정도의 예산과 3개월 정도의 시간이면 달성될 수 있다고 한다.
규모만 확대하는 이주노동자 도입
11월 27일 정부는 내년 고용허가제 외국인력 도입규모와 신규허용 업종 확대를 결정했다. 내년에 고용허가제(E-9) 비자로 한국에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는 16만 5천명으로 지금까지 중 최대다. 증가폭도 매우 가파르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5만명대였던 고용허가제 비자 규모는 2022년 6만 9천 명, 2023년 12만 명으로 증가했고, 내년에도 37.5%(4만 5천명) 증가한다. 또한 기존의 제조업‧건설업‧서비스업‧농축산업‧어업에 더해 음식점업, 임업, 광업에도 이주노동자를 도입하기로 했다.
도입규모는 확대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권한은 더 제약되고 있다. 이미 지난 9월부터 신규 입국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이 일정 권역 안에서만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 기존 사업장 변경 제도도 사용자의 동의를 얻거나 사용자 귀책이 있을 때만, 동일 업종 내에서, 최대 3회까지만 가능했기 때문에 강제노동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지방소멸 우려를 이유로 신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더 제약한 것이다.
또한 고용허가제는 사용자의 동의를 얻었을 경우 출국 후 한 번 더 비자를 얻어 재입국해 일할 수 있게 되어 있다(4년 10개월+4년 10개월). 즉 비자를 연장해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모범노동자’로서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 이러한 고용허가제 구조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어렵게 만든다. 40만 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민들 역시 권리의 사각지대에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유행 시기에는 중단되었던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올해에만 세 차례의 정부합동단속을 진행한 바 있고 이때마다 수만 명의 미등록 이주민이 추방되거나 자진출국했다. 강제출국의 위험은 이주노동자들을 위축시켜 노동3권은 물론이고 기본권조차 요구하기 어렵게 만든다.
목소리를 높이자, 서로를 조직하자
대통령 거부권으로 인해 폐기되긴 했지만 노조법 2‧3조를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은 사회운동의 중요한 성과다. 또한 국회 통과 후 거부권 행사 전후 각계 기자회견 및 국회 앞 1인시위, 문화제 및 집회 등을 통해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대한 반대 의지를 보여주는 활동은 여론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거부권 저지 투쟁이 민주노총 등이 ‘총력투쟁’을 예고하고, 간호법 거부권 행사 시 간호사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면서 분노를 보여준 데 비해 규모있고 위력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내년 총선에서 다시 유리한 지형이 형성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대중행동을 통해 목소리를 높일 때 국회에서의 재논의도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를 위한 목소리도 더 높이자. 사회운동은 산재사망과 직업병 발생에 대한 처벌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처벌법을 통해 그동안 방치되어왔던 50인(억) 미만 사업장도 안전보 건관리체계를 갖추기를 희망한다. 지난 7월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공동행동)이 출범해 활동 중이다. 공동행동에서 제안하는 활동에 주목하고 동참하면서, 노동자 참여를 포함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를 위한 국가의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증가는 한국의 노동운동‧사회운동의 시급한 과제가 이주노동자 조직화임을 시사한다. 단기이주만을 허가하는 고용허가제라는 제도, 한국인과 이주노동자 사이는 물론 이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 간에도 놓여 있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 등은 이주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고서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다. 각자가 서 있는 곳에서 환대와 연대의 정신으로 이주노동자와 함께하자. 윤석열 정부의 다방면의 공격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를 조직하는 것만이 우리가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열 방도다.
글 : 박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