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개의 기후정의선언 | 동아시아 민중의 기후정의 목소리를 연결하자
2023년 12월 14일
이 글은 오는 12월 16일(토) 오후 2시 서울 아현동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리는 "선언하라! 모두의 기후정의를 「N개의 기후정의선언대회」"에서 발표할 여러 개의 선언문 중 하나로 작성됐다. 이번 선언대회는 1부에서 '선언대회를 열어라' 토크와 낭독, 2부에서 '체제전환을 위한 공동의 전망을 선언하 자' 토론 및 공동선언 채택으로 구성되며, 마지막 3부에서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과 디너쇼가 이어질 예정이다.
자본주의적 착취와 생산관계가 도입된 이래 아시아 민중은 언제나 선진국 자본의 이윤지상주의가 낳은 온갖 산업 폐수와 오염 물질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였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래 동아시아는 세계의 공장이 됐다. 동아시아 산업 발전의 핵심적 동인은 저렴한 인건비였고, 자본은 언제나 그 고통의 댓가를 민중에게 전가시켜왔다. 태국의 공단 노동자 중 74%는 공장 폐수로 인한 독성 화학물질에 대해 우려하고, 강물의 악취로 고통받는다. 1990년부터 2019년까지 전 세계에서 진폐증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60퍼센트는 중국 노동자들이다. 중국에선 여전히 매년 13만7천 명이 진폐증에 걸리며, 1만 명 이상이 죽는다.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면화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자본가들은 항상 저렴한 노동력을 구해 착취를 확대 재생산했다. 흑인 노예, 60~70년대 청계천의 여공들, 1990년대 중국 남부의 여성 농민공들, 21세기 이래 동남아시아의 여성 노동자들은 먼지 가득하고 습한 방직공장에서 1년 내내 하루 12시간 주 6일 이상 일해야 했다. 오늘날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의류 하청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19세기 맨체스터의 공장에서 벌어진 초과착취에 대해 소개한다면 아마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라고 답할 것이다. 이처럼 제국주의 시대의 생산양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위치만 달리한 채 반복되고 있다. 기후위기라는 더욱 거대하고 파국적인 환경 아래서 말이다.
2018년 7월 23일 라오스의 메콩강 유역에서는 SK건설이 짓던 댐이 하청 단가 후려치기와 설계 결함에 의한 내부 침식으로 붕괴했다. 이 참사로 인해 200여명이 죽거나 실종됐고, 7천여명이 집을 잃었다. 댐 건설 전 고향을 떠난 2300명과 생계를 잃은 5400여명을 포함하면 적어도 1만5천여명의 생존을 파괴했다. 기업과 금융자본만 배 불리는 “녹색 자본주의”가 벌인 이윤놀음에 라오스의 가난한 민중만 목숨을 잃은 것이다.
2023년 4월, 동남아시아의 평범한 민중들은 살인적인 더위를 맞닥뜨려야 했다. 5월 6일 프롬펜 기온은 44.2도를 기록했고, 비슷한 시기 태국 방콕은 41도를 가리켰다. 2050년경 체감온도 39.4도를 초과하는 경우가 한해에 20~50번까지 나타날 가능성이 예측되고 있다. 이처럼 기온이 오르고 빙하마저 녹고 있다보니 해수면 상승은 임박한 현실이 됐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경까지 해수면은 0.6~1.1미터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최대 105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저지대가 물에 잠기는 것을 뜻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암스테르담처럼 부유한 도시들은 제방을 높게 쌓아 도시를 지킬 것이고, 남반구의 민중들은 피난의 행렬을 떠나야 한다. 실제 캄보디아의 유명 브랜드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대다수는 폭염과 대기오염으로부터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고, 이것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느끼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동아시아에서는 기후파괴 아웃소싱이 일어나 고 있다. 선진국들이 강제하는 규칙들이 남반구 국가들의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을 매우 저렴한 인건비로 착취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공급망 확대를 통한 생산외주화로 자국 내의 1인당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있지만, 선진국 시민들의 소비는 개발도상국에서의 착취를 밑거름 삼아 만들어지고 있다. 유럽의 순배출량은 1990년 56억 톤에서 2018년 42억 톤으로 감소했는데, 유럽의 늘어난 소비는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공급망으로 연결된 세계 자본주의에서 국경을 기준으로 나눈 탄소회계시스템의 허구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진국 자본은 개발도상국들에 기후변화에 따른 비용을 구조적으로 전가하고 있다. 규제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탄소집약적 생산과 환경파괴가 동아시아 전역을 지배하고 있다. 캄보디아 노동자 1명의 연간 탄소배출량이 400킬로그램인데 반해, 한국인 1명의 배출량은 그것의 38배인 15.5톤에 달한다. 그러나 오늘날 기후위기의 혹독한 대가를 맞닥뜨리고 있는 쪽은 가난한 캄보디아 노동자들이며, 이는 다시 우리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이를 ‘탄소 식민주의’라고 말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탄소 식민주의는 기후위기 최전선에 선 민중을 고통으로 밀어넣고, 극소수 자본가들에겐 막대한 부를 안겨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기후위기에 맞선 비상한 행동이 왜 일국적 한계가 머물러선 안 되는지 증명한다. 우리의 기후정의운동이 왜 보다 계급적으로, 보다 국제적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말해준다.
2022년 기후정의행진을 기점으로 한국의 기후정의운동은 기후위기에 맞서 체제전환을 위한 새로운 걸음을 내딛었다. 체제전환은 결코 일국적 목소리로는 이룰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동아시아 민중 공동의 기후정의운동으로 도약해야 한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벌어지는 기후위기의 온상을 탐색하고, 동시대의 저항들을 연결해야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초국적 자본의 공급망에 따른 기후파괴, 생태파괴에 맞선 국제적 연대를 구축하자! 크고 작은 공동행동과 연대를 통해 기후정의운동을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동력으로 만들자! 폭염과 대기오염, 진폐증, 석탄발전소, 무분별한 댐 건설, 메콩강 오염 등으로 고통받는 동아시아 민중의 저항들을 연결하는 끈을 만들자! 기후정의운동이 우리 시대의 절망과 파괴에 맞선 희망의 네트워크를 만들 매개자가 되자!
"선언하라! 모두의 기후정의를 <N개의 기후정의선언대회>"에초대합니다
일시 | 2023년 12월 16일 (토) 오후 2시-6시
장소 | 강북노동자복지관 (서울시 마포구 환일길 13, 5층)
공동주최 | 공공교통네트워크, 문화연대, 보건의료단체연합, 빈곤사회연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인권불씨,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장애여성공감,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모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 플랫폼C,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홈리스행동, 행동하는성소 수자인권연대
참고 자료
- 「Thailand's Rivers Polluted by Factory and Residential Waste」, 中华人民共和国生态环境部 Ministry of Ecology and Environment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11. 9.
- Jie Li, Peng Yin, Haidong Wang, Lijun Wang, Jinling You, Jiangmei Liu, Yunning Liu, Wei Wang, Xiao Zhang, Piye Niu, 「The burden of pneumoconiosis in China: an analysis from the Global Burden of Disease Study 2019」, BMC Public Health, 2022.
- Laurie Parsons, 『Carbon colonialism: How rich countries export climate breakdown』, 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23. 5.
- Ishaan Tharoor, 「Asia’s heat waves are a grim sign of the times」, The Washington Post, 2023. 5. 9.
- Lucas R. Vargas Zeppetello, 「Probabilistic projections of increased heat stress driven by climate change」,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 2022. 8.
- 「Global Warming of 1.5 ºC SPECIAL REPORT (SR15)」, IPCC, 20
- A. Hooijer, 「Global LiDAR land elevation data reveal greatest sea-level rise vulnerability in the tropics」, Nature Communications, 2021. 6.
- climateactiontracker.org 웹사이트 데이터
- 「The net-zero transition: What it would cost, what it could bring」, McKinsey Global Institute, 2022. 1.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