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은 사회연대와 민주주의를 강화한다… 왜냐면 ꒰⍢꒱

노동조합은 사회연대와 민주주의를 강화한다… 왜냐면 ꒰⍢꒱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을 유지·강화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활력을 유지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2023년 11월 9일

[읽을거리]노동[활동]월례포럼노동조합, 노동연구, 월례포럼, 노동운동

이 글은 지난 10월 28일에 열린 플랫폼c 월례포럼 '신자유주의 시대, 민주노총의 조직화 성과와 사회운동적 의미' 강연 내용을 당시 사회자가 요약 및 정리한 것이다. 강연 당시 표기한 인용 각주는 모두 생략했다.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연구 결과는 곧 발간될 '전략조직화 20년 평가' 관련 민주노총 총서를 참고할 수 있다.

오는 11월 11일,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다.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노동자대회는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돌아가신 전태일 열사의 기일인 11월 13일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매년 기일 전후에 열린다. 5월 1일 열리는 노동절(메이데이) 집회와 더불어 11월에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는 한국 노동자들의 중요한 명절이자 투쟁의 날이다.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결정적 전기로 여겨지는 1987년으로부터 36년이나 지난 2023년, 민주노조운동은 왜 여전히 중요하고 사회운동은 노동조합의 활동에 주목하는가? 이 글에서는 지난 10월 28일 열린 월례포럼 <신자유주의 시대, 민주노총의 조직화 성과와 사회운동적 의미>의 내용 중, 오늘날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다룬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가치 전도를 겪은 민주노조운동

1987년 6월 항쟁에 이은 7·8·9월 대투쟁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을 회복한 한국노동운동은,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설립,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창립으로, 한국노총과 구별되는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을 마련했다. 1987년으로부터 10년 후인 1996년 말~1997년 초 노동법개악저지투쟁(‘노개투’) 총파업까지, 노동조합은 정치적 민주화를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심화시킬 주체로 여겨졌다. 이제는 소수만이 기억하지만 ‘민주주의의 전위투사 철의 노동자’라는 민중가요 아지테이션(선동구)이 이 위상을 잘 보여준다. 민주노총은 ‘사회운동 노조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국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이중노동시장(고임금, 고용안정의 1차 노동시장과 저임금, 고용불안의 2차 노동시장)이 고착되고,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을 통한 노동조건 격차 축소라는 기획이 실패하면서, ‘민주노총은 곧 귀족노조’라는 등식이 사회적 통념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사회적 통념의 지위에 올랐다는 것은, 조사와 논증 없이 주장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문적 장과 정치적 장에서도 이 통념은 유지되고 있어서, 2016~17년 촛불집회에서 촛불과 노동의 괴리감을 강조하거나, 노동조합이 불평등 완화가 아니라 강화에 기여한다는 논의가 별 논증 없이 글과 말로 발화되고 있다.

통념과 충돌하는 경험적 사실

노동조합, 혹은 노동운동은 옛것이며, 보통의 시민들과 괴리되어 있고,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이 불평등을 강화한다는 통념은 과연 사실일까?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한 가지 사실은, 2017년 이후 한국의 노동조합원 수와 조직률 모두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1987년~89년 사이 조합원 수 및 조직률이 급증(89만 6천 명, 16.8%에서 19.8%로 3% 상승)했으나, 90년대에는 조합원 수 및 조직률이 모두 급락했다. 그 이후로 조합원 수는 계속 늘었으나 조직률은 크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촛불 이후인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조합원 수는 71만 6천 명, 조직률은 10.3%에서 14.2%로 증가한 반등기를 맞았다. 이는 여전히 노동조합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어떤 기회가 왔을 때 노동조합에 가입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노조 조합원 수와 조직률 추이 (1980~2020)
한국 노조 조합원 수와 조직률 추이 (1980~2020)

이 반등이 독특한 이유는 이것이 노동조합의 쇠퇴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 2010년대 들어 OECD 36개국 중 노조 조직률이 상승한 나라는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칠레, 한국뿐이며, 2020년대에 미국이 약간의 반등을 기록했을 뿐이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한국은 워낙 기존 노조 조직률이 낮았기 때문에 쉽게 오를 수 있었다고 설명하지만, 잠재력이 크다는 것과 그것이 실현되어 실제 조직률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실제로 OECD 회원국 중 한국처럼 노조 조직률이 10% 내외였던 최하위권 나라들에서 조직률이 상승한 예는 찾기 어렵다. 탄핵 촛불 및 문재인 정부 집권으로 인한 소위 ‘유화국면’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민주노총의 조직률은 빠르게 상승한 데 비해, 한국노총은 상승세가 더뎠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한국노총은 일시적으로 제1 노총 지위를 빼앗기기도 했다. 이 차이를 발생시킨 데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 사업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이 전략조직화 사업을 통해 세간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정규직을 중심으로 조직해, 정규직의 임금과 노동조건만을 계속 향상 시켜왔을까? 그렇지 않다. 민주노총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신규조직 조합원 중 40% 이상이 여성이며, 평균 나이가 30대 이하인 노조가 60%에 이른다. 2022년 연말을 기준으로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약 112명) 중 비정규직은 최소 25%(28만여 명), 여성은 최소 31%(34만여 명)이다. 2022년 한국의 노동조합 조합원 중 비정규직 비율이 10%에 그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민주노총은 다른 노총보다 비정규직 조직화에 의식적으로 힘을 쏟았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총이 조직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수당 등이 빠르게 상승했음은 물론이다.

노동조합의 사회적, 정치적 효과

노동조합은 불평등 완화에 도움이 된다. OECD 국가들의 소득 불평등 연구들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과 (소득 상위 1%나 10% 등) 소득 상위집단의 소득 몫 사이에는 역의 상관관계가 유의하게 나타난다.

노동조합 조직율과 불평등 상관관계
노동조합 조직율과 불평등 상관관계

또한 노동조합은 통상 조합원들 사이에서 사회적 연대의 문화를 북돋는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와 고임금 노동자를 고루 조직하는 노조에 속한 고임금 노동자는, 한편으로 해당 노조의 동등한 구성원인 저임금 노동자를 접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 구성원들의 다원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려고 노력하는 노조의 정책 기조에 의해, 노조에 속하지 않았더라면 습득하기 어려웠을 재분배 선호 및 연대 문화를 습득하는 경향이 있다. 노조가 쇠퇴하고 노조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늘어날 때 노동자 전반, 특히 고임금 노동자들의 연대 문화가 약화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또한 민주주의의 강화에도 필수적이다. 작업장은 사람들이 하루 일과 대부분을 보내는 곳으로, 일상을 구성하는 습관이 형성되는 중요한 장소 중 하나다. 근무시간 중 상명하복의 습관을 익혔는데 퇴근을 한다고 해서 이 습관이 권력과 사회적 위세에 문제 제기하는 습관으로 탈바꿈할 리 만무하다. 일터를 민주적 습관 형성의 장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제도가 바로 노조이다. 통상 사용자에 의해 수직적·위계적으로 운영되는 작업조직과 비교할 때 노조는 보다 수평적이고 평등하게 운영된다. 따라서 노조 참여는 일터의 반민주적 파급효과를 상쇄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통해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때, 사용자에 맞선 이 단체행동은 일터에서의 노사 간 권력관계가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인 ‘지배관계’로 경화·고착되는 것을 방지한다.

이중 단체행동의 대표적 형식인 파업은 조합원들이 참여해야 위력을 발휘하므로, 노조 특히 자주적이고 전투적인 노조는 조합원들의 참여를 장려하는 경향이 있고, 이에 응한 노동자들은 자본에 대한 자율성,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의식, (단체행동이 성과를 낼 경우) 효능감을 경험하게 된다. 또 노조는 일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종 제도정치에 직접 개입하곤 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일터에만 머무를 때는 얻기 어려운 정치적 경험과 시야를 얻게 된다. 노조 조합원은 비조합원에 비해, 투표와 시위, 서명운동과 결사체 참여 등 다양한 유형의 정치적·시민적 참여 면에서 일관된 능동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함께 민주노조운동을

전략조직화 사업의 성과를 통해 유의미한 성장을 한 민주노총이 위에서 열거된 노동조합의 정치적·사회적 효과를 얼마나 낼 수 있을까? 사회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14% 남짓한 조직률은 여전히 낮지만, 그럼에도 노동조합은, 특히 민주노총은 사회변화의 중요한 변수다.

우리 앞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단 직고용 요구에 반대 목소리를 냈던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규직 노동조합과, 정규직 노동자들이 나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이뤄낸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의 사례가 동시에 존재한다. 2010년대 중반부터 능력주의와 공정성 이데올로기는 비정규직 투쟁의 결정적 국면에서 강력하게 작동해 투쟁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사회를 사로잡고 있는 능력주의와 공정성 이데올로기를 오로지 노동조합의 노력만으로 넘어설 수는 없다. 연대의 정신과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더 강화하는데 노동조합 안팎을 가로지르며 힘을 모아야 한다.

조합원 수와 조직률의 증가는 성과이면서 동시에 매우 큰 과제이기도 하다. 박근혜 탄핵 이후 민주노총으로 한정하면, 2017년부터 새롭게 조직된 조합원이 민주노총의 약 34%를 차지한다. 즉 조합원 중 1/3이 신규 조합원이다. 이들 중에는 유리한 정세적 조건 속에 초기 조직단계에서 파업 등 단체행동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도 많으며, 2020년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확산은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적 활동 양식을 크게 제약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민주노조운동의 정체성을 유지·강화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활력을 유지하는 것 역시 노동조합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길게 보면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적 성과이자, 짧게 보면 탄핵 촛불의 거의 유일한 조직적 성과를 남긴 조직으로 볼 수 있는 노동조합을, 더 민주적으로, 더 연대적으로, 더 투쟁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회운동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10월 28일 월례포럼 현장
10월 28일 월례포럼 현장
  • 강연 소개이므로 이 글에 대한 인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강연자가 표기한 인용각주는 모두 생략하였습니다.
  •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곧 발간될 전략조직화 20년 평가 관련 민주노총 총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강연: 장진범

정리: 박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