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병상은 줄이고, 교수 임금은 올린다고?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이 정당한 이유
2023년 10월 14일
지난 10월 11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노동자들이 의료 공공성 강화와 병원 인력충원, 직무성과급제 저지, 노동개악 중단을 내걸고 파업 투쟁에 돌입했다.
10월 13일에는 의료연대본부 소속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파업 출정식과 2023년 임단협 승리 투쟁 문화제를 진행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9월 22일~26일 진행한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투표율 89.4%, 조합원 중 3,182명이 파업 에 찬성(찬성률 95.9%)해 압도적인 지지로 파업에 들어갔다. 조합원들은 코로나시기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많은 노력과 희생을 했지만, 7월 11일부터 이뤄진 40차례의 교섭에서 정부와 병원 사측은 그간의 임금·단체협상을 통해 합의한 인력증원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김영태 원장은 파업 사태를 해결하기 노력하기는커녕 정당한 파업과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에 여념이 없다. 노동조합 일부 조합원에게 업무복귀 명령서를 보내 정당한 파업행위를 ‘무단 이탈’로 규정하고 징계를 예고했다. 그러나 업무복귀 명령을 받은 조합원들은 필수유지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조합원들이다. 의료연대본부는 환자안전을 고려해 서울대병원과 필수유지협정을 맺은대로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장, 신생아실 등 부서 인력을 유지한 채, 지극히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파업을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의 총파업 요구와 주장 또한 매우 정당하다. 노동자들은 환자를 한 명이라도 제대로 보고 싶지만, 현장의 열악함이 개선되지 않으면 의료의 질 역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현장을 바꾸기 위해 파업에 나섰다.
의료공공성 강화
그렇다면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주요한 요구사항은 무엇일까? 첫째는 '의료공공성 강화'이다. 구체적으로 의사 성과급제 폐지, 공공의료 수당 신설, 어린이병원 병상 수 축소 금지 및 무상의료 시행, 환자 정보 보호, 영리 자회사 축소, 기후위기 대응책 마련 등이다. 두번째는 '필수인력 충원', 세번째는 '실질임금 인상 및 노동조건 향상'이다. 유급 휴일, 야간근무자 노동시간 단축, 직원식당 직접운영, 장애인 일자리 개선을 내걸고 있다.
한데 김영태 원장은 근무조건을 개선하고,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라는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분회의 요구는 묵과하고, 도리어 "의사직 임금이 낮다"는 억지 주장을 한다. 현재 공공병원 의사의 평균 임금은 1억 6,600만원 정도다. 노동조합의 공공의료수당 신설 요구는 거절하면서 100억 원이 넘는 의사 진료수당 인상안은 통과시키고, 469명의 의사들에게 ‘진료수당’ 추가 인상분을 포함해 271억원 (1인당 평균 5,770만원), ‘진료기여수당’명목으로 성과급 435억원이 추가 지출된다. 의사직에게만 총 706억 원이 지급되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대병원 8,000명의 임금 상승액 총액이 70억이었던 것에 비해 엄청난 격차다. 윤석열 정부가 국립대병원의 공공기관 해제를 하는 가운데 사측은 노동자들의 요구는 쏙 뺀 채 의사직만 인건비 규제에서 풀어달라는 억지 요구를 하고 있다. 이는 예산 부족으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못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병원측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 가능한 셈이다.
어린이병원
더 욱 심각한 것은 김영태 병원장이 건물의 한 층을 통째로 교수 휴게실로 만들고, 어린이병원 병상수는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는 점이다. 어린이병원 운영은 서울대병원이 공공병원으로 맡은 대표적인 역할이다. 지난 수년동안 노동조합측은 "어린이 무상의료"의 실시를 요구했고, 작년 임단협을 통해 국립대학병원협회가 나서서 '어린이 환자 의료비 상한'을 낮추는 입법 청원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어린이병원 리모델링 계획안」에 따르면 1500명 중 3층 전체를 교수휴게실로 만들고, 어린이병원 병상 14개는 축소할 예정이다. 과밀한 병동 구조를 개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병원 주장처럼 1일실, 2일실, 4인실로 바꾸면, 병상수는 축소된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비싼 병실만 늘어나, 이는 고스란히 환자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서울대병원의 공공적 역할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은 서울대병원 64명, 보라매병원 53명 등 총 117명의 인력충원과 병가/휴가 등 상시 결원에 대한 660명 대체인력 투입도 요구하고 있다. 병원은 환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상시결원 충원조차 기재부 인력통제를 핑계로 회피하고 있다. 이는 환자 증가와 중증도가 높아지는 현재 서울대병원 상황에서 환자 안전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조합은 환자 안전을 위해 중환자실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1:2, 주야간 간호사수의 동일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중환자실에서는 간호사 한 명당 3명의 환자를 보고, 신생아실에선 5명을 담당한다. 지난 10개월 사이 보라매병원 내과중환자실에서 간호사 16명이 퇴직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감당 할 수 없는 업무에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연장근무가 일상이고, 휴가와 점심시간조차 온전히 누릴 수 없으며, 밥을 굶기 일쑤다. 위험한 야간노동을 여전히 1인이 하고 있으며, 시설관리 노동자, 응급환자 이송 노동자 역시 위험하고 과도한 연장근무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의 뒤에는 의료민영화가 있다. 의료를 필수적인 공공재로 보지 않고,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삼는 윤석열 정부와 서울대병원 사측은 지금 당장 노동조합과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의료공공성을 확장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들의 싸움이 외롭지 않도록 지지와 연대의 마음과 실천을 보내야 한다.
글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