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 '더 내고 늦게 받는' 개악말고, 안정적 노후소득 보장해야

국민연금 | '더 내고 늦게 받는' 개악말고, 안정적 노후소득 보장해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연금개혁은 국민들이 빈곤에 처하지 않도록 안심하고 노후를 맡길 수 있는 개혁이어야 한다.

2023년 10월 13일

[읽을거리]사회운동한국, 불평등, 경제위기, 실업, 반빈곤운동, 사회복지정책

90년생 지인에게 국민연금을 내고 있느냐 물어봤다. 그는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국민연금을 내고 있지 않다고 했다. 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와 그의 노후를 생각해봤다.

만33세인 그가 지금부터 만60세까지 한 달도 쉬지않고 귀한 소득의 일부를 꼬박꼬박 국민연금 보험료로 납부하면 최대 27년을 낼 수 있다. 만일 국민연금 보험료 월 25만원(평균소득월액 286만원)을 25년간 한 달도 쉬지 않고 낸다면, 그는 만65세가 되는 2055년부터 72만원의 연금을 받게 될 것이다. 통계청 생명표에 따른 기대여명은 84.2세로 만 65세부터 19.2년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은 수급개시 시점까지는 소득상승률에 따라 상승하기에 2055년에 받을 국민연금은 수백만원이 될지도 모르지만, 구매력 자체는 지금 기준으로 72만원 수준일 수 밖에 없다. 몇 년 사이에 그의 심경이 변하지 않아 납부가 늦춰진다면 짧은 가입 기간으로 더 적은 연금이 예상된다.

기초연금이 그때도 지금처럼 지급된다면 그는 국민연금 72만원에 국민연금-기초연금 연계감액된 기초연금 27만원을 더 해, 총 99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보통 50대의 지역가입자는 납부를 열심히 하지만, 30대의 지역가입자는 납부를 잘 하지 않는다. 만일 40대 중후반부터 그가 노후준비를 위해 월 25만원씩 15년간 한 달도 쉬지 않고 국민연금을 꼬박꼬박 내면, 예상연금은 43만원이다. 연계감액없이 기초연금 32만원을 다 받아 총 75만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2021년 소득 기준 빈곤선은 132만원이다. 이보다 적은 월소득을 가지고 있으면 빈곤층으로 분류한다. 고물가 시대에 132만원의 소득으로 한 달을 살기는 빠듯할 것이다. 만일 그가 희박한 확률의 사업적 성공을 거둔다면 다행이겠지만, 저축 여력이 없는 지금, 불안정하게 일하며 15~25년간 국민연금을 낸다면 75~99만원의 연금이 예상된다. 다소 팍팍한 노후의 시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은 국민과 국가의 계약이야. 따라서 기금이 소진되어도 국가가 존재하는 한 연금을 받을 수 있어. 독일도 보험료만으로는 충족이 안 돼 세금을 더해 연금을 주고 있으니, 받을 수 있을 거야.

물론 이렇게 말해 줬더라도 그가 사업소득 때문에 강제로 가입돼 날아오는 국민연금 보험료 고지서를 가져다 낼 것 같지는 않다.

이 친구가 국민연금 납부를 저어하게 만든 장본인은 누구일까? 작년 초 「1990년생 연금 한푼도 못받아」라는 보도자료를 낸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 산하 한경연(한국경제연구원) 때문일까? 그로부터 한 달 뒤 ‘90년생이 묻는다 우리 연금 받을 수 있나요?’라는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 연금공약 발표회 제목 때문일까? 아니면 이 친구의 연금 수급 시기인 2055년에 기금이 소진될 거라고 발표한 '5차 재정계산' 결과 때문일까?

지금의 국민연금 논의는 국민들이 국민연금을 회피하게 만들고 있다. 재정안정론자와 언론은 국민연금을 못 받을 수 있다고 협박하며 지금 당장 보험료를 더 내고, 늦게 받고, 더 위험한 기금운용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윽박지르고 있다. 물론 악화되는 인구 구조로 인해 현 세대의 부담을 더 확대할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재정적 지속가능성 재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충분한 국민연금이 준비된 노인을 미래로 얼마나 보낼 수 있느냐에 있다.

지난 9월 1일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공청회 보고서」는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가 빠진 반쪽짜리 보고서였다. 5년 전 제도 논의기구는 제도발전위원회였지만, 이번에는 이름조차 재정계산위원회로 재정에 대한 이야기로만 점철되어 지금부터 70년이 지난 2093년까지 기금을 보유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정안정화 조치가 주요 내용으로 담겨있었다. 재정을 이유로 국민연금을 저연금에 매몰시킨채 부족한 보장성은 재분배 요소 없이 더욱 역진적인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으로 보충하려고도 했다. 정부가 진정 국민의 노후를 걱정했더라면 필요한 노후소득과 부족한 연금수준에 대한 진단 및 그에 따른 소득대체율 상향과 가입기간 확충의 내용을 담아야 했다.

보고서는 노후소득보장 강화의 관점없이 더 내고(매년 0.6% 보험료율을 5년간 인상하여 12%, 10년간 인상하여 15%, 15년간 인상하여 18%까지 인상), 늦게 받고(수급개시연령을 66세[1973년생부터 2039년 이후 수급], 67세[1977년생부터 2044년 이후 수급], 68세[1981년생부터 2049년 이후 수급]) 더 위험한 기금운용(위험자산 확대를 통한 기금수익률 전기간에 걸쳐 0.5%p, 1.0%p 제고)의 재정안정화 방안만을 중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기금의 확대가 필요한 금융시장과 국민연금 저연금 및 불안을 매개로 확장을 꾀하는 사적연금 시장의 생각을 반영한다.

지금 우리의 연금급여 수준은 연금제도만으로는 빈곤을 탈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 달에 132만원을 국민연금만으로 받으려면 국민연금 소득 상한액인 최고소득 590만원(보험료 53만원) 기준으로 30년간 납부해야 한다. 30년을 내려면 만 30세부터 만 60세까지 한 달도 쉬지 않고 내야 한다.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2060년이 되면 노인 1명을 근로세대 1명이 부양해야 한다. 그때 노인 1명이 어느 정도 소득을 가진 노인이 될 것이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모든 노인이 소득이 0인 사회와 다수 노인이 그래도 한 달에 70만 원의 연금을 가진 사회에서 빈곤 완화를 위해 후세대가 추가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수준이 된다. 소득대체율 상향으로 적정한 소득이 준비된 노인을 미래로 보내야 한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인상해서 국민연금액을 늘린다고 한들 저소득층은 혜택이 별로 없다면서, "역진적 분배" 운운하며 국민연금을 매도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국민연금액을 늘리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는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낮은 비정규직의 가입률도 2011년 56.2%에서 2022년 72.4%로 증가했다. "가입기간 차이에서 비롯되는 연금 격차는 역진적"이라고 매도할 게 아니라, 불안정 노동계층이 충분한 가입기간을 가질 수 있도록 크레딧 및 보험료 지원을 확대하여 충분한 가입기간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충실히 국민연금에 가입·납부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국민연금에 열심히 가입한 분들을 약탈자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낸 것보다 더 많이 받는다고 미래세대를 약탈한다고 말하고, 많은 연금을 받는 사람은 역진적 분배로 적게 받는 사람 것을 빼앗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국민연금은 재분배 산식이 강력한 제도이다. 역진성은 제도 성숙에 따른 소폭의 보험료 인상만으로도 해결될 사안이다. 그리고 이들의 관점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국민연금 안에서만 봐서 그렇다. 우리는 국민연금 바깥의 제도를 생각해봐야 한다. 국민연금을 받아서 기초연금을 받지 않는다면 연금제도 전체로 보면 기여하는 것이다. 한달에 32만원, 1년에 384만원을 안받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려 1년에 300만원을 더 받더라도 심각한 문제라 볼 수 없다.

소득대체율 높이고 가입기간을 확충하여 국민연금이 몇 만원 늘어난다고 한들 개인관점에서 빈곤탈출을 못한다 말할 수 있지만 사회관점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국민연금을 가지도록 해야 이후 빈곤 완화를 위해 돈을 투입할 때 사회가 감당가능한 수준이 된다. 미래의 노인이 60만원의 연금을 가지고 있는지 80만원의 연금을 가지고 있는지 100만원의 연금을 가지고 있는지를 지금 우리가 결정해서 미래로 물려줘야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으로 한달에 70만원을 받도록 준비한 분과 50만원을 받도록 준비한 분이 있고, 빈곤 완화를 위해 80만원을 기준으로 공공부조를 지급한다고 할때 70만원을 준비한 분은 10만원을, 50만원을 준비한 분은 30만원을 더 지급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70만원을 준비한 분들에게 당신이 과도한 혜택을 받았고 후세대 부담을 주었다고 말하기보다는, 최소한 그동안 일하시면서 소득도 적은데 연금보험료 내느라 고생이 많으셨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연금은 수급권을, 사적연금은 적립금을 받는 제도다. 더 이상 보험계리적 수지균형론에 매몰된 사적연금 관점으로 국민연금을 바라보지 말자. 국민연금 수급권은 노후에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다. 국민연금으로 적정한 노후를 보장할 수 있도록 소득대체율을 상향하고 가입기간을 확충해야 한다. 평균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했다면 노후빈곤에 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소득 확보는 사회구성원의 권리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의무다. 국민이 국민연금으로 기꺼이 노후준비를 할 수 있도록 제도의 신뢰를 높이고 국민연금 내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할 경우 70년 후에 GDP 11% 수준의 연금지출이 예상된다.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악화로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노인세대를 위해 GDP 11% 이상 지출하는 국가가 많다. 우리도 적정연금을 전제로 보험료 부과 기반을 확장하고 보험료를 높여야 한다. 다만 미래 가입자에게만 재정부담을 독박시키지 말고 가입자, 국가, 기금의 분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에만 보험료 부과를 한정하지 말고 자본소득, 금융소득, 법인소득과 소득상한 초과분에 대한 기업부담분 등 보험재정기반을 확대하고, 매우 소극적인 국고 부담도 확대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연금개혁은 재정에 편중된 연금개혁이 아니라 포괄성, 급여적절성, 지속가능성을 높여 국민들이 안심하고 노후를 맡길 수 있는 연금개혁이어야 한다.

재정문제를 구실삼아 국민연금을 저연금에 매몰시키고 역진적인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으로 부족한 보장성을 확충하려는 ‘국민연금 축소 및 사적연금 활성화’의 연금개혁이 아니라, 사회연대 원리에 입각한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중심축을 담당하여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래 가입하도록 해야 한다. 성별과 고용형태에 따른 국민연금 가입기간 격차를 최소화하고 적정한 연금을 확충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글 :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