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집단학살 문제의 양비론자들을 비판한다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문제의 양비론자들을 비판한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땅”이다.

2023년 10월 31일

[읽을거리]반전평화팔레스타인, 반전평화, 인종주의, 이스라엘, 언론

이 글은 10월 25일 n+1에 실린 사리 막디시의 글 「No Human Being Can Exist」를 번역한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는 집단학살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인류 문명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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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팔레스타인계 호주인인 내 친구가 호주의 국영 TV방송에 출연해 가자지구와 그 주변의 상황에 대해 토론했다. 그를 인터뷰한 백인 인터뷰어들은 늘 하던 “하마스 무장세력이 한 짓을 우리가 옹호할 수 있을까요?”, “이런 폭력이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어떤 도움이 되죠?”, “음악축제의 젊은 음악 애호가들을 학살한 것을 어떻게 옹호할 수 있나요?”, “하마스를 옹호하실 건가요?”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아마도 그들은 그로부터 ‘방어적인’ 리액션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친구는 침착하고 부드러운 말로 이 인터뷰를 뒤집어 놓았다.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제가 오늘 여기에 왜 왔는지, 그리고 지난 1년 동안은 왜 여기 오지 못했는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되물었다. 우선 그는 2023년 초부터 10월 7일 이전까지 이스라엘군이 이미 2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가자지구 포위와 공격은 이미 16년이 넘었고, 이스라엘은 75년 동안 국제법을 위반해왔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하루에 한 명씩 학살당하는 게 이미 ‘일상’이었지만, 수십년 동안 이어진 점령에서 그것은 뉴스가 되기 힘들었다. 텔레비전에서 생방송으로 인터뷰할 만한 사안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한데 이번 사태로 서방 언론이 갑작스레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비로소 발언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희생자 중에 이스라엘 민간인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10월 7일 이후 호주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의사당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이스라엘 국기로 조명을 밝혔고, 총리는 이스라엘 사망자를 기리기 위해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를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무부 장관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사망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비난받기도 했다. 내 친구는 되물었다. “그럼 우리의 목숨은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 건물에 불을 켜보시는 건 어떨까요? 정부가 모든 건물에 파란색과 흰색으로 불을 밝히면 우리(팔레스타인계 사람들)는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보셨나요? 우리는 호주인이 아닌가요? 아무도 우리를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서안지구(West Bank)에 사는 14세 소년이 이스라엘 정착민에 의해 불 타 죽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알긴 하나요?”

그러자 뉴스 앵커들은 당황했다. 이 인터뷰는 원래 이렇게 진행되어선 안 됐던 것이다.

내 친구처럼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난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의 관점을 보여주기 위해 서구 언론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발언할 수 있는 조건, 즉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목숨은 다른 사람들의 목숨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악묵적인 가정을 잘 알고 있다.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하마스의 초기 공격에 의해 질문의 프레임이 잡히고나면, 이를 보다 넓은 역사적 프레임 속에서 보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하마스 공격’(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군사 목표물, 가자지구를 봉쇄한 장벽, 감시탑, 감옥화된 문들을 공격했지만, 이런 사실들은 무시된다.) 그 자체로 무시된다.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습니까?”, “왜 비난하지 않고 설명하려고 하나요?”, “공격을 비난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같은 질문들이 쏟아지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해설자들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력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으려면, 우리는 오늘날의 가자지구를 만들어낸 인종 청소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역사,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폭력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야 한다. 농부들을 밭에서, 교사들을 교실에서, 의사들을 환자로부터, 어린이들을 부모로부터 단절시키는 수십 년간의 이스라엘 점령이 자행해온 구조적 폭력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질문들은 던져지지 않는다.

지난 2주 동안 다양한 미디어 기관의 많은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지난 몇 년 동안 그래왔듯 일관된 패턴이 있었다. 최근 미국의 한 주요 케이블 뉴스채널은 프로듀서의 사전 질문지에 대한 답변을 제출한 직후 바로 취소됐는데, 내가 하려고 한 답변이 프로듀서가 원하던 인터뷰의 요지가 아니었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수년 동안 나는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BBC 라디오나 텔레비전 인터뷰의 단골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당시 나는 인터뷰어가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으며, 중요한 질문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뿐 아니라, 역사적 맥락과 관련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BBC와 한 마지막 인터뷰가 됐다.

우리는 어떻게 70년 동안의 허위 진술과 의도적인 왜곡을 단 몇 분간의 적절한 반박을 통해 보충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점령당국이 (팔레스타인) 살상을 위해 폭발물이나 총알, 기관총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점령과 아파르트헤이트가 모든 팔레스타인 민중의 일상을 구조화하고 포화 상태로 만든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총을 쏘지 않아도 말 그대로 살인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가자지구의 암 환자들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해 산모의 가자지구 바깥으로의 통행을 거부당한 팔레스타인 아기들은 이스라엘군 검문소 길가의 진흙더미 위에서 태어난다.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의 도로 차단 및 검문소 시스템(현재는 다시 앙갚음 차원에서 부활했다)이 절정에 달했던 2000년부터 2004년 사이에 61명의 팔레스타인 여성이 이렇게 길바닥에서 아기를 낳았고, 그 중 36명의 아기가 사망했다. 하지만 이런 참사들은 서방 세계에서 결코 뉴스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엔) 애도할 만한 손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기것해야 통계수치에 불과하다.

검문소를 지나가지 못한 엄마와 아기
검문소를 지나가지 못한 엄마와 아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서구 언론에 말하고자 했던, 모든 생명이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것은 말하길 허락받지 못한 사실이다. 어떤 사건도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 (비극의) 역사는 2023년 10월 7일에 시작되지 않았다. 식민주의와 그것에 맞선 저항이라는 보다 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바라본다면, 2023년의 누구라도 절대적 폭력과 지배/질식/통제의 조건이 끔찍한 폭력을 낳는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19세기 초 아이티 혁명 당시 노예였던 사람들은 백인 정착민 남성과 여성, 어린이를 학살했다. 1831년 냇 터너(Nat Turner)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반란군 노예들은 백인 남성과 여성, 아이들을 학살했다. 1857년 인도에서 발생한 반란(세포이 항쟁) 당시 저항자들은 영국인 남성과 여성, 어린이를 학살했다. 1950년대 마우마우 봉기(the Mau Mau uprising) 당시 케냐의 반란자들은 식민지 정착민 남성과 여성, 어린이를 죽였다. 1962년 알제리 혁명가들은 오란(Oran)에서 프랑스인 남성과 여성, 어린이를 학살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다른 피식민지 반란자들과 다를 것이라고 기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 모든 죽음은 수십 년 또는 수백 년에 걸친 식민지 폭력과 억압의 결과이며, 이러한 폭력의 구조는 프랑스 파농이 수십 년 전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설명한 바 있다.

다시 말해, 폭력을 멈추게 하려면 그 폭력을 낳은 조건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1948년 이래 팔레스타인을 훼손하고 괴롭혀온 인종 분리와 강제 이주, 점령, 분리주의라는 끔찍한 시스템을 멈추어야 한다. 그 시스템은 다양한 문화와 신앙, 언어가 공존하던 팔레스타인 땅을 획일적인 정체성을 가진 (시오니즘) 국가로 바꾸기 위한 폭력적 프로젝트의 귀결이며, 그것에 적응하지 않은 사람들은 소외시키거나 노골적으로 제거해왔다.

현재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수십 년에 걸친 정착민-식민지 폭력의 결과이며, 이러한 폭력의 광범위한 역사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식민주의 전체 역사에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다.

점령으로 인해 임산부들은 검문소에서 출산을 강요당한다
점령으로 인해 임산부들은 검문소에서 출산을 강요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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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밀도가 높은 가자지구의 아파트 건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 예고없이 이스라엘군의 폭탄이나 미사일에 피격당할 수 있다. 피해를 입은 건물들 중 일부는 단순히 콘크리트 팬케이크처럼 무너져 내리고, 산자와 죽은자들은 모두 부서진 폐허에 묻힌다. 구조대원들은 종종 “하단 사미아나?”(거기 누구 있나요?)라고 외치고, 구조대원들은 잔해 깊은 곳에서 생존자들의 도움 요청을 듣지만, 중장비 없이는 지렛대나 맨손으로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힘겹게 긁어내면서 생존자나 부상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을 열 수 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일부 건물들은 폭탄이 너무 무거워 불덩어리가 신체 부위와 불에 탄 시체—대개 어린이들의 시신—를 주역 지역에 쏟아붓기도 한다. 백린탄(phosphorus munitions)은 이스라엘 포병이 도화선으로 폭발시켜 소이탄 조각들이 가능한 한 넓은 지역에 떨어지는데, 이는 가구와 의류, 인체를 포함한 가연성 물질에 불을 붙인다. 인(Phosphorus)은 인화성 물질로, 공기가 닿으면 연소하며, 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인체에 닿으면 메스로 그것을 파내야 하며, 인을 뽑아낼 때까지는 살 속으로 계속해서 연소된다.

알자지라의 한 특파원은 이스라엘군의 살상 드론들의 소음을 들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연기와 죽음의 냄새에 둘러싸인 채 살고 있습니다.” 한 번에 20명, 30명씩 한 가족 전체가 전멸하고 있다. 필사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려는 친구와 친척들은 한때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콘크리트 밑으로 사라지거나, 점점 더 알아볼 수 없게 된 잔해 속에 흩어져 있는 폐허를 발견하기도 한다. 생존자들은 무너진 통신과 불안정한 전력, 고장난 의료시스템, 점차 빈번해진 인터넷 중단, 불확실한 미래와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 살고 있다.

가자지구에 쏟아지는 백린탄
가자지구에 쏟아지는 백린탄

2018년 유엔은 수년간의 이스라엘 침공과 폭격으로 전기, 수도, 하수도의 기본 인프라가 파괴되어 인구의 95%가 깨끗한 식수를 이용할 수 없는 가자지구가 2020년까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2023년이 된 지금, 외부 세계와 단절된 팔레스타인 전 지역은 식량, 식수, 의료품, 연료, 전기를 전혀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육상, 해상, 공중에서 지속적인 폭격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민간 기반시설, 특히 전기에 대한 공격은 전쟁 범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서 그는 “겨울이 다가오는데 남성, 여성, 어린이들에게 물과 전기, 난방을 차단하는 것은 순수한 테러 행위”라고 말했다. 물론 폰 데어 라이엔의 말은 옳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언급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기반시설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다. 가자지구 기반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서도 폰 데어 라이엔은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900명, 1000명, 1500명, 1800명, 2600명, 3500명, 4600명, 5000명, 5900명, 6500명. [역주: 10월 31일 기준 최소 8,306명 사망]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사망자 수는 몇 시간마다 이 건물 저 건물이 불길과 연기, 잔해의 폭발로 무너져 내리면서 여기서 20명, 저기서 30명씩 추가되고 있다. 매일 300여 명의 사람들이 죽고 있다. 한때 가자지구 보건당국 소식통은 한 시간에 100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사망자 한 명당 두세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며, 그 중 상당수는 중상인 경우가 많다.

2008년부터 2023년 9월까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인의 사망자수
2008년부터 2023년 9월까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인의 사망자수

사망자와 부상자의 거의 절반은 어린이들이다. 현재 가자지구를 향한 폭격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이미지는 폭격에 맞아 잿더미가 된 채 그을음과 먼지로 뒤덮인 채 자신을 보호하려다 숨진 부모의 마지막 품에 안겨 있는 죽은 아이들의 모습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거의 3천 명의 어린이를 죽였다. 사망자와 부상자, 또는 다리, 몸통, 머리 등 신체 일부만 겨우 회복한 시신은 의료품과 비상 발전기 연료가 바닥난 사상자들로 넘쳐나는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병원 병상은 이미 꽉 찬 지 오래고, 가자 지구의 병원에 새로 도착한 사람들은 복도나 바깥 길바닥에 피를 흘리며 모여 있다. 의사들은 마취제 없이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수술하고, 그 수술대 위에서 쪽잠을 청한다. 모든 의료물품이 떨어져서 가정용 식초로 상처를 닦는다.

영안실이 가득 차고 묘지가 부족해지자,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아이스크림 트럭에 시신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브랜드의 밝은 색상이 칠해진 트럭 문에서 죽은 이들의 피가 천천히 떨어지고 있다. 골목과 마당, 임시 설치된 모스크에선 땅에 묻기 위해 피에 젖은 수의로 감싼 크고 작은 시체들이 놓여져 있고, 죽은 이들을 위해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시신이 마지막으로 옮겨질 때마다 죽은 이의 친척들은 흐느끼며 이마에 마지막 키스를 하고, 그 뒤로 울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자매, 삼촌과 이모, 사촌들이 서로를 품에 안으며 남겨진다. 자신들도 수의를 입을 차례가 머지 않았음을 직감하면서 말이다. 죽은 이들 중에는 때로 친족이 없는 경우도 있고, 가족 전원이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죽음과 파괴의 규모가 너무나도 방대하고 가차없이 이뤄지다 보니 애도할 겨를도 없이 이스라엘은 매일 매시간 가자지구에 더 많은 죽음을 쏟아 붓고 있다. 이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한 병원은 익명의 사망자를 공동묘지에 묻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트럭에 실리는 시신
아이스크림 트럭에 실리는 시신

이스라엘은 24시간 폭격이 시작된 첫 주에 가자지구에 6,000발의 폭탄을 투하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한창 침공할 때 약 한 달간 폭격을 가한 것과 맞먹는 수치다. 두 나라는 가자지구보다 몇 배나 더 큰 국가들로, 이라크의 영토는 가자지구의 천 배 이상이다. 또한 이스라엘군은 1,000톤이 넘는 고폭탄(high explosive)을 투하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첫번째 주간이 끝날 무렵 이미 핵무기 수준의 킬로톤 측량이 됐고, (이와 같은 수준의 폭격은) 2~3주차에도 계속됐다.

폭격이 시작된 첫 주에 가자지구의 건물 1,700채가 파괴됐고,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건물이 복구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피해를 입었다. 각 건물에는 7~9개 또는 그 이상의 개별 아파트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곳에 살던 가족들은 이제 집을 잃어 홈리스가 됐거나 죽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테러 시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잔해에서 실제로 발굴되거나 인근 거리에서 주워진 시신(또는 신체부위)은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로, 점령 세력이 초강대국 후원자의 축복과 축복을 받아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상 속의 ‘테러 시설’의 구성 성분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가자지구에서 촬영된 끔찍한 영상들을 보면, 이스라엘이 명확한 군사 목표를 찾지 못한 채 민간인 표적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고, 콘크리트 건물을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있다는 점, 한 번에 한 동네 전체를 몰살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반식민지 투쟁의 역사에서 어떠한 게릴라 전사들도 손을 흔들면서 스스로를 명백한 표적으로 여기게 한 적은 없었다. 유엔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이미 가자지구 전체 주택의 40%가 손상되거나 파괴됐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하마스에 대한 공격이 성공적이었다고 자랑스럽게 홍보하고 있지만, 그 증거는 대개 폐허가 된 도시를 촬영한 사진에 불과하며, 그 결과는 전체 인구에 대한 대규모 홈리스 발생이 신중하게 계산된 결과이기도 하다.

10월 12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북부에 거주하는 100만 명의 주민들에게 “살고 싶으면 피난을 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자지구에는 피난할 곳이 없다. 피난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위험에 위험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가자지구는 140제곱마일의 면적으로 이미 전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미국이 가자지구 수준의 인구밀도를 갖고 있다면, 미국 인구는 600억 명이 될 것이다. 한데 이스라엘은 그 작은 영토의 인구를 어떻게든 남은 지역의 절반으로 압축하겠다고 부르짖으며 가자지구의 남쪽은 물론 북쪽과 중부까지 폭격하고 있다. 가자지구 어디도 안전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피난을 떠나는 가족들
피난을 떠나는 가족들

이미 난민이 된 사람들(가자지구 인구의 80%가 난민이거나, 1948년 팔레스타인 남서부 인종청소 이후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이다)과 새로운 난민들이 또 다시 피난처를 찾아 떠나는 지금, 이스라엘은 앞으로 훨씬 더 많은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어둡게 경고하고 있다. 10월 14일, 가자시티의 살라 알 딘 거리(Salah al Din Street)—이스라엘군이 뿌린 전단지가 안전한 통로로 지목했던 곳이다—를 따라 남북으로 이동하던 겁에 질린 난민 행렬이 폭격을 당했고, 또 다른 폭격으로 70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가자 지구 북부의 진료소와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환자를 옮길 곳이 없어 이동이 불가능하다며 이동을 전면 거부했다. 가자 북부 시파 병원(Shifa Hospital)의 유세프 아부 알 리쉬(Yousef Abu al-Rish) 박사는 다른 병원들은 모두 만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문제는 대부분의 환자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것”이라며, “다른 병원에 여분의 병상이 있더라도 이송을 하려면 너무 불안정해서 이송할 수 없기 때문에 사망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환자실 환자, 인큐베이터의 신생아,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들은 모두 이송 과정에서 사망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가만히 있어도 죽을 수 있다. 특히 마지막 남은 연료 한 방울이 떨어지고 전기가 꺼지면, 더욱 그렇다. 혹은, 이스라엘군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병원과 구급차를 계속 폭격한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미 가자지구의 병원과 진료소 중 3분의1이 자원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마틴 그리피스(Martin Griffiths) 사무차장은 경고했다. “죽음의 유령이 가자지구를 뒤덮고 있다. 물도, 전력도, 식량도, 의약품도 없으면 수천 명이 죽게 될 것입니다. 분명하고 간단한 사실이다.”

며칠 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인구 200만 명(그중 절반이 어린이)이 이집트나 걸프만 지역으로 떠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애널리스트 지오라 에이란드(Giora Eiland)는 “가자지구의 삶이 지속 불가능해지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지금의 폭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가자지구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군의 가산 알리안(Ghassan Alian) 장군은 최근 국방부 장관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간 짐승”(human animals)이라고 언급한 것을 반복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 짐승들은 그렇게 대우받아야 한다. 가자지구에는 전기와 물도 없을 것이며 파괴만 있을 것이다. 지옥을 원했다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말 그대로 수백만 명에 대한 자신의 권력을 신처럼 여기며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사고방식이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이런 대량 학살을 선언하게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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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는 이 상황은 식민지 전쟁 역사상 전례가 없다. 불과 몇 주 전, 13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공교롭게도 이스라엘 무기로 무장한) 아제르바이잔에 의해 아르샤흐의 고향에서 공포에 떨며 쫓겨난 일이 있었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는 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에서 ‘잘못된’ 종교나 민족을 가졌다고 간주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회에서 추방됐다. 팔레스타인의 기독교인과 무슬림 인구 중 거의 90%가 1948년 시오니스트 세력에 의해 인종 청소됐다. 19세기, 18세기,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서구 문명이 세계 곳곳에서 자행한 대량 학살, 멸종, 노예제도의 지저분한 역사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이스라엘군이 최신형 미국 제트기를 몰고 다니며 사용하는 1톤 폭탄과 그보다 더 무거운 벙커버스터 폭탄을 포함한 초현대식 무기 시스템으로 대규모 폭격을 가해 인종 청소가 이루어진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일반적으로 이런 일은 소총이나 총검을 들고 직접 수행된다. 예를 들어 1948년 팔레스타인 인종 청소는 거의 대부분 소형 무기로 이루어졌으며, 데이르 야신(Deir Yassin), 탄투라(Tantura) 등에서 학살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은 10,000피트 상공에서 비행하는 F-35 전투기에서 투하된 수천 파운드 폭탄에 맞지 않고 근거리에서 권총, 소총 또는 기관총에 맞아 학살됐다.

다시 말해,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지금 상황은 아마도 구식 식민지 시대와 대량 학살 폭력이 첨단 중화기와 융합된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17세기와 21세기의 뒤틀린 융합은 원시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로 포장된 채, 여부스 족속(Jebusites), 아말렉 족속(Amelikites), 가나안 족속(Canaanites)은 물론 블레셋 족속(Philistines) 등 전 민족을 공격하는 성경 속 장면으로 포장되어 있다.

1948년 시오니스트 군대에 의해 학살되고 쫓겨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1948년 시오니스트 군대에 의해 학살되고 쫓겨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더 심각한 것은 서방 세계의 여러 정부들은 완전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언론인, 정치인, 정부, 대학 총장 등이 하마스의 이스라엘인 민간인 학살에 대한 충격과 분노를 표출한 것에 비하면 이스라엘의 손에 의해 희생된 팔레스타인 민중의 운명에 대한 거의 전면적인 침묵은 귀를 의심케 할 정도로 끔찍하다. 서방 국가에 사는 우리는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 민간인을 죽이는 것을 지원하거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지만, 미국이 제공한 항공기가 가자 지구에 떨어뜨린 모든 폭탄은 우리가 지불하는 청구서에 추가된다. 우리들의 정부 관료들은 폭격을 장려하고 새로운 폭탄을 서둘러 배달하는 데 동참하기 위해 스스로 추락하고 있다.

국무부 관료들은 대변인에게 “폭력/유혈사태의 종식”, “안정 회복”, “단계적 축소와 휴전”과 같은 문구를 사용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내부 문건을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실제로 폭격과 살상이 계속되기를 원한다. 카린 장 피에르(Karine Jean-Pierre) 백악관 대변인은 휴전과 적대 행위 중단을 요구하는 의회 내 소수의 목소리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그들이 틀렸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혐오스럽고 수치스럽습니다.” 장 피에르 대변인은 “여기엔 양측이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정부 대변인들은 계산적이고 성실하지 않으며, 궁극적인 허무주의자로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믿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말하는 것조차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주변 사람들은 그 공무원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고통에 대한 이미지와 이야기에 절실하게 공감하면서도 훨씬 더 큰 규모의 팔레스타인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무자비할 수 있을까? 나는 가자지구의 파괴와 팔레스타인인의 추방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평등과 인종간 평등을 옹호하고, 기후변화를 염려하며, 집 없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타인에 대한 인도적 배려로 마스크를 고집하고, 가장 진보적인 민주당의 유권자 등 정치에 관해서는 확고한 자유주의자인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무관심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거부(denial)의 문화적 표현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보지 않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신과 더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들, 자신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지나치게 집중한다.

물론 주류 상업 미디어들은 이러한 형태의 동일시를 장려하는 방법, 주인공을 구축하는 방법, 시청자가 주제에 공감하고 그 입장에서 자신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서구 언론들은 정보를 뒤틀면서 팔레스타인인과의 동일시 접근을 차단하고, 한쪽만 존재한다는 인식을 재확인한다. 다른 한편,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지에서 특파원을 파견해 가자지구의 참상을 생생하고 거침없이 보도하고 있는 알자지라 방송에서는 비극이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다. 10월 25일, 알자지라의 가자 지국장 와엘 다흐두(Wael Dahdouh)는 이스라엘 공습으로 아내와 아들, 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송에 출연했다. 그 영상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10대 아들의 가슴에 손을 얹는 모습이 담겨 있다. 다흐두는 말한다. “아이들을 죽여 우리에게 복수를 하는 건가요?” 방송을 통해 친숙해졌던 그의 상실이 나의 일처럼 느껴진다.

어떤 죽음은 슬픔에 잠겨 이름과 삶의 이야기가 주어지고, 그들의 이야기와 사진이 애도하는 부모의 사진과 함께 <뉴욕타임스>나 <가디언>에 실린다. 반면 또 다른 삶은 한 번에 20~30개씩 새롭게 숫자를 갱신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회계적 기계에서 나오는 통계, 숫자에 불과한 듯하다.

죽은 아들을 부둥켜안고 우는 와엘 다두 기자
죽은 아들을 부둥켜안고 우는 와엘 다두 기자


참고 자료

  • “Israel has ordered a ‘complete siege’ on Gaza. What does that mean for Palestinians?” Australian Broadcasting Company. ↩
  • “Gaza cancer patients face life-threatening treatment delays,” BBC. ↩
  • “The issue of Palestinian pregnant women giving birth at Israeli checkpoints: Report of the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United Nations. ↩
  • “Gaza “Unliveable”, UN Special Rapporteur for the Situation of Human Rights in the OPT Tells Third Committee,” United Nations. ↩
  • ”Study warns water sanitation crisis in Gaza may cause disease outbreak and possible epidemic,” OCHA. ↩
  • “Little light, no beds, not enough anesthesia: A view from the ‘nightmare’ of Gaza’s hospitals,” Associated Press. ↩
  • “As Gaza death toll rises, bodies are stored in ice cream trucks,” Reuters. ↩
  • “Mass graves, ice-cream truck mortuary as bodies pile up in Gaza,” France 24. ↩
  • “People in Gaza describe living through bombings with no way to escape,” PBS. ↩
  • “‘No place is safe’ in Gaza as Israel lays siege to Hamas-held enclave,” France 24. ↩
  • “Amid Increasingly Dire Humanitarian Situation in Gaza, Secretary-General Tells Security Council Hamas Attacks Cannot Justify Collective Punishment of Palestinian People,” United Nations. ↩
  • “Israel tells more than 1 million Gazans to flee south to avoid fighting, but is that even possible?” ABC News. ↩
  • “The West Bank and Gaza: A Population Profile,” Population Reference Bureau. ↩
  • “Gaza hospitals ceasing to function as water and fuel run out,” the Guardian. ↩
  • “The U.S. Should Think Twice About Israel’s Plans for Gaza,” the New York Times. ↩
  • “COGAT chief addresses Gazans: ‘You wanted hell, you will get hell’,” the Times of Israel. ↩
  • “State Dept. Reportedly Bans Officials from Publicly Using Terms ‘De-escalation,’ ‘Ceasefire,’” Democracy Now. ↩
  • “White House calls lawmakers not backing Israel ‘wrong,’ ‘disgraceful,’” the Hill. ↩
  • See Tolerance Is a Wasteland: Palestine and the Culture of Denial. ↩
  • “Family of Al Jazeera Gaza bureau head killed in Israeli air raid,” Al Jazeera. ↩
  • Video via Sameh Habeeb on X (formerly Twitter). ↩


글 : 사리 막디시(SAREE MAKDISI)

미국의 비교문학 연구자인 사리 막디시는 1964년 미국 워싱턴에서 팔레스타인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어머니 진 사이드 막디시는 팔레스타인 독립연구자로, 에드워드 사이드의 조카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8살 때 레바논으로 이주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베이루트의 무슬림 거주지역에서 자랐다.

번역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