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기초체력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정의당, 기초체력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기득권 양당 구조가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 양당과의 정치협상만으로는 결코 의회 권력을 쟁취할 다당제 구조를 만들 수 없다.

2023년 10월 25일

[읽을거리]정치진보정당, 정치, 정의당, 지역운동, 사회운동

정의당의 당내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이후(득표율 1.83%, 4451표) 청년정의당 김창인 대표는 이정미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며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대안신당 당원모임’ 역시 이정미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면서 전국 지역위원장 비상회의를 제안했다. 한차례 미뤄졌던 당대회는 또 다시 미뤄졌다. 정의당 내 여러 세력은 어떤 혁신을 할 것인 지에 대해 제각기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각각의 의견은 당내에서 절충되어 하나로 모이지도, 무언가 뾰족한 한 가지의 방향이 채택되지도 못한 채 떠다니고 있다.

동상이몽

이정미 대표가 속한 그룹 ‘비상’은 자강을 통한 세력확장을 혁신의 과제로 삼는다. 정의당 중심성 없이는 타 세력과의 연대연합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견해다. 그에 반해 류호정·장혜영 의원이 속한 ‘세 번째 권력’은 정의당의 시간이 이미 끝났다고 규정하면서 진보정당이라는 정체성마저 내려놓을 자세를 가지고 양당 기득권타파를 위해 과감하게 제삼지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복주 전 부대표·박원석 전 의원 등이 속한 ‘대안신당 당원모임’은 새로운 정치질서가 정의당만으로도 안되지만, 정의당 없이도 안된다면서 정의당이라는 틀을 포기하지 않은 채 연대연합의 틀을 최대치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내 좌파세력을 자임하는 ‘전환’은 정의당이 진보정당 중심성을 더 강화하면서 진보정치세력을 다시 결집하고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신의 방향이 제각각인 이유는 당연하게도 정의당의 실패를 진단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더 선명하지 못해서 어려워졌다는 의견부터 더 확장된 생각을 하지 못해 어려워졌다는 의견까지, 거대 정파의 구태의연한 리더십이 가장 큰 문제라는 의견부터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몇몇 국회의원들이 제멋대로 행동해서 그렇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물론 그간 정의당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2020년 총선 이후부터 시작해 혁신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쳐 지난 당대회까지 혁신을 위한 몸부림을 쳐 왔다. 이정미 대표 선출 이후 재창당추진위원회와 신당추진사업단을 운영해오고 있으며 주요국면마다 전국위원회를 통해 크고 작은 사항들을 결정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정의당 내부의 주요 그룹들은 이를 통해 결정한 사항을 쉬이 존중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공적 절차가 중요하나 그렇게 정한 결정이 당의 본질적 위기를 드러내기보다는 서툴게 봉합하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당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희망이 보이는 비전을 그 누구도 명쾌하게 제시해주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 각 세력은 자신들이 제시한 길로 한번 가보자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실은 외치는 자신들도 자신들이 외치는 길이 진보의 길을 밝게 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진단도, 대안도 그 어떤 실천적 노선도 합의하지 못하는 상황, 어찌어찌 합의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더는 힘을 보태지는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 팽배하다.

정의당 실패의 원인

정의당은 당의 핵심가치인 불평등타파, 기후위기대응, 차별철폐로 명확히 나아가지 못하고, 주요 정치국면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민주당과의 연대에 우선순위를 두는 '민주·진보 대연합 노선'과 이를 통해 수확한 중앙중심의 국회 활동에만 몰두했고, 당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지역적 계급적 지지기반을 세우지 못했다. 정의당은 민주당과의 변별력이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뒤늦게 민주당과 선을 긋긴 했지만, 국민에게 정의당의 존재 이유는 이미 희미해졌다.

시민들 입장에선 정의당이라는 당을 텔레비전에서나 가끔 볼 뿐, 동네에서는 잘 볼 수 없었으므로 몇몇 국회의원들의 언론 인터뷰 내용만으로 정의당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기득권 양당과 차별화되는 '진보정당'을 직접 일궈간다는 보람으로 활동해 온 당원들의 열정과 헌신은 역설적으로 당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했다. 최소한의 지지기반도 형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의당은, 현실적이고 단계적인 내부 전략 없이, 후일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빚을 내 선거를 치르다가 결국 재정적 파산 위기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현실은 선거 나가면 무조건 이름 알리고 선거비용도 보전받는 국민의힘, 더불민주당과 대조적이다.

물론 지금까지 정의당의 노력도 어느 정도는 지지기반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 운영의 우선순위에 지역에서의 계급적 지지기반 형성을 향한 전략이 최우선으로 배치되진 않았다.

이제 더는 기초체력도 없이 국힘과 민주당만이 번갈아 승리하는 판에 쉽사리 끼어들고 빈털터리로 내쫓기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준비하고 개입해야 한다. 기득권 양당과 승부를 가리기 위해 지금 정의당은 무엇을 해야 할까?

기초체력 다지기부터

정의당은 기득권 양당과 잘 싸우기 위한 체력을 만드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여기고, 아래로부터 파고드는 ‘지역 우선전략’, '기초의회 우선'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의 '국회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선회해야 한다. (심상정 의원의 지역구 당선사례는 그의 지역구 공들이기와는 별개로, 지지기반에 있어 2012년 민주당 지지층이 만들어 준 특수한 것이기에 지역구 돌파의 모범사례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지역의 민생현안을 챙기면서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에 지역위원회만이 아니라, 시도당, 중앙당, 의원단 등이 모두 나서야 한다.

최소 향후 10년 간 의석확보의 현실적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는 기초의회 3인 이상 선거구에서 당선되는 데에 힘을 집중한다면, 최소한의 지지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 기초의회는 2인, 3인 선거구가 있으므로 정권이 바뀌어도 한 당으로의 쏠림이 적기 때문이다. 기초의회 정원이 20명이라면 이 중 4~5명만 되어도 상임위에 1~2명씩 들어가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2026년 지방선거에 3명, 30년에 5명의 의원을 만드는 방식으로 현실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을 고민해볼 수 있다. 이렇게 10년의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이 와중에 생기는 총선과 대선, 광역단체장 선거 역시 기초의회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지역위원회 활성화를 위한 정당법 개정과 지역상근자 배치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반 없는 정당은 모래성일뿐

중앙당이나 국회의원이 잘 되면 지역도 잘 될 것이라는 낙수효과 전략은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중앙과 지역이 균형점을 잘 찾으면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다는 전략도 정의당에 팽배한 국회와 중앙당 중심적 관성 탓에 성공하지 못했다. 기초 우선 전략을 채택하고, 지역사회운동에 복무해야 그나마 남은 지역운동 자원을 잃지 않고 실질적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 기득권 양당과 차별화되는 명확한 진보의 정체성을 가지고 조금 더 멀리 내다보면서 지역사회운동을 강화하는 길에 나서야 한다. 이는 자연히 진보정당의 지역기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기초체력을 만들어야 한국 사회에 실질적으로 개입할 힘을 가질 수 있다.

기반이 없는 정당은 어느 길로 가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국적 사안에 대해 입장을 내지 말자는 것도, 개입하지 말자는 말도 아니다. 전국적 활동의 성과를 공중에 흩뿌리고 마는 게 아니라, 지역에서 사회운동 강화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힘을 집중하자는 말이다. 양당이 벌이는 판에서의 고위험 배팅을 중단하고 지역사회와 노동현장에서 한땀 한땀 노력해야 한다. 양당과 제대로 맞붙기 위한 독자적 기반 쌓기를 차곡차곡 진행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벌이는 사회운동을, 지역 현안을, 생활과 연결된 정책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렵더라도 그 힘으로 지지기반을 형성해야 한다.

최소한의 지지기반 없이 정당은 당으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이는 정의당만이 아니라 모든 진보정당에도 해당한다. 지금까지 사회운동은 급변하는 정세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 한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싸워왔다. 이런 움직임이 흩어지지 않고 적립되어 이후 운동의 힘이 될 수 있도록 진보정당이 함께 해야 한다. 진보정당은 사회운동과 교감하면서 사회변혁을 제도화·구조화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 책무를 다 할때 제도정치에서 진보정당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

기득권 양당 구조가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 양당과의 정치협상만으로는 결코 의회 권력을 쟁취할 다당제 구조를 만들 수 없다. 설혹 만든다고 하더라도 독자적 기반 없이는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무너질 뿐이다. 하층부를 잃은 상층부 논의, 기반 없는 무대 세우기는 결국 무너져 버린다는 현실을 정의당은 직시해야 한다.

글 : 찰옥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