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은 철도민영화의 수순 … 열차와 철로는 통합되어야 한다

SR은 철도민영화의 수순 … 열차와 철로는 통합되어야 한다

철도는 특성상 분리와 경쟁이 기능 저하와 사고 위험을 유발한다. 그러므로 열차와 선로를 하나로 통합한 공공의 교통수단으로서 운영되어야 한다.

2023년 9월 4일

[읽을거리]노동민영화, 신자유주의, 박근혜, 윤석열, 철도

이 글은 2023년 8월 6일 플랫폼씨 사무실에서 열린 작당모의 회의에 참가한 대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철도노조 간담회를 요약한 것이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이근조 정책기획실장이 발제를 맡고 질의응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철도는 모두의 이동권에 있어 중요한 공공교통 중 하나다. 이 글이 철도를 포함한 공공교통의 중요성에 대해 상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철도의 역사: 상하분리와 상하통합

철로 위에 증기기관을 올리면 어떨까? 이 획기적 발상은 곧 근대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확장으로 이어졌다. 대량생산에 걸맞는 운송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철도는 근대 자본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발명품으로, 기차를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운송할 수 있었다. 특히 상품과 물류뿐만 아니라 사람도 한 번에 많이 이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철도의 등장으로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개념이 정착되고, 국경이 그어졌으며, 여러 산업의 흥망성쇠를 볼 수 있었다.

한편 철도는 피로 얼룩진 기반시설이기도 했다. 각국에서 일어나는 민중들의 반란을 진압하거나,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 전쟁 물자나 병력을 운송하는 데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철도 건설 과정에서죽어간 식민지 민중과 노동자들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철도는 싼값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라는 양면성도 가지고 있었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근대 국가들은 철도의 중요성을 확실히 깨닫고, 국가가 나서서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1948년에 노동당이 처음으로 철도 국유화를 이행했으나, 1993년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빠르게 민영화의 절차를 밟았다. 철도 민영화의 첫 시작은 스웨덴이었으며, 1996년을 넘어가면서 신자유주의와 함께 민영화의 물결이 각국에서 일어났다.

철도산업 모델에는 상하통합과 상하분리가 있다. 여기서 '상'은 열차(철도 운송서비스·운영)를, '하'는 철로(철도 기반시설 관리)를 말한다. 그러니까 상하통합은 열차와 철로를 관리하는 주체를 통합하는 것이고, 상하분리는 열차와 철로를 분리해 따로 관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상하분리는 철도민영화와 뗄 수 없는데, 민영화를 주장하는 자들은 기반시설과 운영을 분리하고 운영부문에 경쟁을 도입함으로써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경쟁과 효율이 철도 정책에 반영된 결과가 철도 상하분리 정책이다.

철도 민영화를 실시한 국가들의 철도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만족도는 낮다. 스웨덴에서 실시한 어느 설문조사의 경우, 약 70%의 국민들이 "재국유화를 실시해야 한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도 철도 민영화 이후 시설의 유지 및 보수에 대한 투자가 사라지면서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가령 2000년 10월 하트필드에선 열차 탈선으로 승객 4명이 죽고 70여 명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철도 일부를 재국유화했지만 여전히 문제점이 많은 시스템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이 따라가려는 철도 ‘경쟁체제’다.

2000년 10월 영국 하트필드 열차 탈선사고
2000년 10월 영국 하트필드 열차 탈선사고

한국의 철도산업구조와 상하분리의 시작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 당시 철도 민영화로 철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됐다. 대학가에서는 ‘안녕들하십니까’라고 화두를 던지는 대자보 운동이 일어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철도 민영화라는 유령이 우리 앞에 등장했다. 철도 민영화가 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는지를 알기 위해선 한국 철도산업구조 정책의 변화를 돌아봐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들이닥친 1990년대를 돌아보자.

우리나라 철도는 원래 철도청이 건설과 시설 운영 및 관리를 모두 전담하는 체계였다. 한데 노태우 정부의 철도청 구조개혁을 시작으로 상하분리를 추진하게 된다.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기반시설(하)과 철도운영(상)을 분리하는 방안을 냈는데, 철도운영부문은 정부가 지분 100%인 주식회사가 담당하되 단계적으로 주식을 민간에 매각해 서서히 민영화를 진행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2001년 12월 철도산업발전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 한국철도시설공단법, 한국철도주식회사법이 국회에 상정되어 철도산업의 상하분리에 대한 기본 틀이 마련됐다.

하지만 2002년 당시 철도노동자들의 파업과 거센 반대 여론으로 주식회사 설립은 무산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는 철도산업구조개혁 조정방안을 발표해 철도운영부문이 민영화가 아닌 공사·공단 형태의 상하분리로 변경되었으며, 민간 매각·위탁 등의 조항은 삭제됐다. 이 과정에서 철도노조는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제38조의 ‘시설유지보수업무를 철도공사에 위탁하고 재위탁은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법령에 남김으로써 철도민영화를 막고 안전과 최소한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제38조(권한의 위임 및 위탁) : 국토교통부장관은 이 법에 따른 권한의 일부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특별시장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지방교통관서의 장에 위임하거나 관계 행정기관·국가철도공단·철도공사·정부출연연구기관에게 위탁할 수 있다. 다만, 철도시설유지보수 시행업무는 철도공사에 위탁한다.

2003년 12월, 한국철도공사법이 입법되면서 한국의 철도산업구조는 철도청의 관리에서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국가철도공단(한국철도시설공단의 후신, 이하 철도공단), 한국철도공사(KORAIL, 이하 철도공사)의 관리 하에 놓이게 된다. 국토부는 시설을 소유하고 정책을 적용시키며, 철도공단이 철도 건설을 대행하고, 철도공사는 철도사업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갖는다. 철도공단은 철도 건설 및 관리 기능을, 철도공사는 철도 운영 및 유지·보수·관제 기능을 수행한다. 철도공사는 철도공단과의 시설유지보수계약을 통해 철도 운영 및 유지 업무를 수행하고, 철도공단은 철도공사와의 시설사용계약을 통해 시설사용료를 받는다. 즉 상하분리 체제에서 철도공단은 철로(하)를, 철도공사는 열차(상)를 맡는다고 말할 수 있다.

SR과 민영화

노무현 정부 때 철회된 철도 민영화 정책은 이명박 정부 들어 재추진됐다. 반대가 거세지자 박근혜 정부는 기존 계획을 조금 변형해 2013년에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SR)을 설립한다. 즉, 기존에 철도공사가 전담했던 철도 운영을 SR과 분담하는 철도 분할 정책을 시행한 것인데, 국토부는 이를 "적자 해결과 더 싼 승차권을 위한 ‘경쟁체제’로 가는 길"이라고 정당화했다. 그러나 실상은 철도공사가 자회사인 SR에 주요 수익부문과 열차 등을 일방적으로 내어주는 구조였다. 경쟁체제라고 할 수도 없었고, 부채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

SR은 초기 자본 41%는 철도공사에서, 나머지 59%는 공적 자금에서 채워 출범했다. 그후로 지금까지 차량정비·유지보수·사고복구·객실설비 등 많은 업무를 철도공사에 위탁하고 있다.

2013년 철도노조는 고속철도 분할에 반대하는 23일간의 파업투쟁을 진행하면서 철도사업 면허에 2가지 조건을 남긴 바 있다. 첫 번째로는 SR 지분을 민간 투자자들에게 매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는 SR 부채 비율을 150% 이하로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이것들은 민영화를 막기 위한 조건이자 투쟁의 성과였다.

그러나 SR의 부채 비율이 150%를 초과해도 사업면허가 유지됐고, 근거 법령이 없음에도 정부출자기관(정부가 자본금을 내고 일정 지분을 소유하는 기업)에 지정됐다. 이처럼 정부는 SR에 대한 특혜 제공을 지속해왔다. SR이 투자 유치를 위해 체결한 풋옵션*을 투자자들이 회수하겠다고 할 때, 그 비용을 철도공사가 지불하는 대신 인수하는 주식을 상환우선주**로 전환하면서 SR의 부채비율은 1600%선마저 넘어버린다.

  • *풋옵션 : 풋옵션(put option)이란 거래당사자들이 미리 정한 가격(행사가격, strike price)으로 만기일 또는 그 이전에 일정자산(기초자산)을 팔 수 있는 권리를 매매하는 계약이다. 거래대상이 되는 자산은 특정 주식, 주가지수, 통화, 금리 등 매우 다양하다. 풋옵션 매입자에게는 동 자산을 매도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는 대신 풋옵션 매입자는 풋옵션 매도자에게 그 대가인 프리미엄을 지급한다. 그러나 옵션은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권리도 있기 때문에 풋옵션 매입자는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권리를 행사하고 불리하면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다만 풋옵션 매도자는 일정한 대가(프리미엄)를 받기 때문에 상대방의 권리 행사에 반드시 응하여야 한다.
  • **상환우선주 : 주식을 발행하는 회사가 미래의 특정시점에 미리 약정된 가격으로 상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주식

이후 국토부가 도로공사 주식을 현물 출자해* SR 지분을 59% 확보하고 부채비율을 150% 이하로 줄여 겨우 상황을 모면했다. SR이 정부의 온갖 특혜를 받아가면서 고속철도의 고수익노선만을 운행함에도 불구하고 재무적 부실을 면치 못했다는 건 국토부가 말한 ‘경쟁체제’가 실패했다는 걸 의미한다.

  • 현물출자 : 법인 설립 시 현물(자본금을 금전 이외의 재산인 부동산(토지·건물), 동산(유가증권·상품), 무형자산(특허권·지상권) 등)로 출자(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자금을 내는 행위나 그 자금 자체)를 뜻한다.

SR은 철도공사와 중복되는 기능, 그리고 부채비율 폭증이라는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특히 SR의 이익은 공공을 위한 철도산업에 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의 주머니 속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실제 SR 사업 자금 기반의 많은 부분은 공적 자금이나 철도공사, 국토부에서 나왔다. 즉 공공교통을 위해 쓰여야 할 재원이 실패한 SR의 부채를 갚아주는 데 쓰이는 것이다. 철도분할체제로 여러 문제점이 야기되는데, 공급좌석 감소, SRT 개통으로 인한 수익 감소로 일반열차 운행 축소, 사고위험 증가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철도 상하통합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나 이행되지 못하고, 윤석열 정부로 바뀌면서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철도경쟁체제’를 선언한다. 철도경쟁체제란, 철도 산업을 잘게 쪼개서 서로 경쟁시키면 수익도 올리고 효율화된다는 논리로 이는 철도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민영화 찬성론자들의 유구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경쟁이 무조건 효율을 불러오지도 않을뿐더러, 상하분리로 오히려 중복투자 및 운영 문제가 야기됨으로써 비효율적 행정절차와 협의비용이 증가했음은 이상에서 살펴본 바이다. 철도는 하나의 철로라는 시스템 특성상 다수의 운영자가 서로 경쟁할 경우 수익과 효율이 줄어들고, 누군가 독점하면 요금이 멋대로 올라간다. 공공의 교통수단(공영제)으로 운영하면 두 경우 모두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정부는 이해관계로 얽힌 철도산업의 투자자들을 대변할 뿐,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교통은 안중에도 없다.

현재 국토부는 경쟁체제 확대와 상하분리 민영화를 다시 추진하려고 한다.철도공사와 ‘경쟁’할 SR은 이러한 국토부의 정책기조에 힘입어 노선확대와 수서역 중심의 고속철도망 구축 등 공격적 확장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SR이 철도공사의 열차를 일방적으로 빌리거나 많은 업무를 위탁하는 모습을 보면, 경쟁이 아니라 한쪽이 의존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SR의 현재 보유 열차 32개 중 22개는 철도공사에서 빌린 것이다. 또한 새로 14개 열차를 들여오면서 정비 업무도 민간 자본에 위탁했는데,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은 민간에 고용된 저임금의 낮은 숙련도를 가진 노동자들이다. 게다가 SRT의 노선을 확대하려면 부산행 SRT 열차를 줄이고 나머지 노선으로 배치해야 해서 추석 때 예매대란이 발생할 확률이 크다.

최근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철도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철도노조 투쟁의 결실이자 가장 중요한 조항인 제38조 ‘시설유지보수 시행업무는 철도공사에 위탁한다’는 조문을 삭제했다.이 조문은민간의 이윤 추구에 승객의 목숨을 내맡기는 것을 방지하는 최후의 보루였는데, 만약 삭제되면 민간에 시설유지보수를 재위탁함으로써외주화로 인한 위험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토부는 철도 안전체계를 심층진단하는 전문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는데, 국토부 관료들이 직접 총괄하며 기능조정,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국토부가 SR이 철도공사에 위탁 중인 업무를 민간에 이관하는 방식으로 ‘은밀한’ 민영화를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3년 국토부가 철도를 6개로 쪼개서 민영화하려고 했던 정책과 비슷하다. 또한 우리는 거대양당 세력이 둘 다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려 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철도는 매우 긴밀한 연결 상태를 유지 해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기술적·경영적으로 통일성이 요구된다. 열차운행과 선로유지보수기능이 분리되면 시행 주체 간 유기적 운영을 하기 어려워 사고 확률도 높아진다.* 반대로 말해서 철도통합이 되면, 서로 다른 주체 간 멀리서 소통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줄고 쓸데없는 업무가 없어지기 때문에, 좌석도 늘어나고 지출도 줄어들며 적시·적소에 빠지는 노선 없이 열차를 배치할 수 있다. 재정적으로도, 안전의 측면에서도 철도통합이 훨씬 이점이 많은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자동차가 많은 도로 중심의 교통량을 줄이고 철도를 포함한 공공교통 확대가 기후위기에 대한 해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철도노조는 이러한 내용을꾸준히 알려왔으며, 올해 철도민영화에 맞서는 파업 투쟁을 9월부터 집중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들은 주요 요구로 철도민영화 저지, SR 노선확대 대응, 철도통합, 공공교통 확대 등을 내걸고 있다. 궁극적으로, 철도는 모두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핵심 열쇠다. 사회 공공성의 확보는 철도통합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 *특히 단일 노선에 다수 운영사가 운행하면 기관 간(기관사-관제/기관사-역) 소통이 제한되어 열차 운행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일본 시가라키코겐열차 정면충돌 사고 참고.

우리가 만드는 공공교통

발제 이후, 간담회에서 여러 질문과 감상이 나왔다. SR과 민영화의 자세한 연관성에 대한 질문, 과거 투쟁의 성과, 어떻게 철도노조 파업에 연대할 수 있을지 등이 얘기되었다. 특히 곧 있을 9[·]23 기후정의행진과 철도파업을 연결 짓는 의견도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이 끝난 이후, 사진을 찍고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당일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토론했다. 철도는 우리의 삶에과 사회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식민지 착취의 도구였지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먼 거리를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수단이자,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민영화, 정확히 사유화(privatization)를 위해 사람들의 삶에 필수적인 것들을 소수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짓은 그만둬야 한다.

철도는 통합되어야 한다.

글 : 김현빈
교열 : 박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