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이 인도네시아와 중국 노동자들에게 낳은 비극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이 인도네시아와 중국 노동자들에게 낳은 비극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니켈이 매장된 인도네시아 술레웨시섬에서 벌어지는 현지 노동자들과 중국에서 온 숙련 노동자들을 향한 경쟁과 착취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2023년 9월 16일

[동아시아]인도네시아일대일로, 농민공, 자동차산업, 노동안전, 파업, 인도네시아, 중국, 배터리산업
: “일론 머스크가 곧 이 나라에 투자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는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와 많은 인구를 보유한 자원 부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니켈 매장량을 갖고 있고, 생산량도 전체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내무부 산하 연구기관인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21년 인도네시아의 니켈 생산량은 약 100만 톤으로 세계 니켈 생산량의 37%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술라웨시섬에 위치한 모로왈리 산업단지(PT Indonesia Morowali Industrial Park)는 인도네시아 니켈 산업 전체 가치의 약 6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전기차 시장은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만큼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라 할 수 있는 배터리 시장이 차지하는 위상 역시 중요할 것이다. 2009년부터 일련의 인도네시아 정치 지도자들은 니켈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대신 니켈 광석의 가공을 국내에서 하도록 유도하고, 제련공정에 대한 외국자본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통해 현지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도네시아의 취약한 제조업 기반을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2014년 10월부터 현재까지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조코 위도도의 원대한 비전은 인도네시아의 천연자산을 활용해 글로벌 전기 자동차 허브로 만드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PT 건버스터 니켈 제련공장
PT 건버스터 니켈 제련공장

배터리-전기차 공급망을 향한 경쟁

2015년부터 인도네시아는 단순한 원료 생산지에서 벗어나 전방산업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니켈 제련소 건설에 외국자본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그러자 당시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의 우위 확보를 위해 니켈합금 공급이 절실했던 중국은 적극적으로 인도네시아 모로왈리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서 운영되는 니켈 제련업체 대부분은 중국 기업이다. 페로니켈이나 스테인리스강 등 파생 제품도 주로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에너지광물자원부는 2020년부터 니켈 광석 수출을 금지하고, 제련소를 건설하지 않은 광산업체에 대한 수출 허가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을 비롯해, 현대차나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기업들, 폭스콘 등 글로벌 제조업체들과 배터리 소재 및 전기차 생산을 위해 150억 달러가 넘는 12개 이상의 계약을 체결했다. 실제 제련 공정들이 생긴 후 니켈 가공 제품 수출로 인한 인도네시아의 수출 이익은 2021년 209억 달러로 급증했다.

중국 정부는 세계 최대 니켈 매장지인 술라웨시섬의 광산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고, 팬데믹 시기에는 중국산 백신을 신속하게 지원하는 등 인도네시아에서 우호적 여론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2022년 술라웨시섬과 할마헤라섬에만 32억 달러를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예산 초과 문제로 연기되긴 했지만 고속철도 건설 등 국가기반시설 구축에 있어서도 핵심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2022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중국의 대인도네시아 투자액 규모는 50억 달러 이상인데 반해, 경쟁자인 미국은 20억 달러에 그친다.

중국의 대인도네시아 투자가 심화되고 있는 가장 핵심영역은 니켈 채굴과 제련공정이다. 칭산그룹(青山控股集團有限公司) 등 중국 기업들은 인도네시아 니켈 채굴의 3분의2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니켈 채굴시장에서 압도적 지위를 자랑하는데, 컨설팅 기업 벤치마크미네랄(Benchmark Minerals)의 추정치에 따르면 2030년까지 중국은 다른 모든 국가를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희귀광물의 저렴하고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장기전략을 추구해왔다. 중국 자본은 오대양 육대주에서 희귀광물 광산 지분을 인수했는데, 가령 아프리카 콩고의 코발트 광산 대부분을 소유함으로써 세계 코발트 채굴의 41%를 점유하게 됐다. 니켈도 마찬가지다. 중국 영토엔 전 세계 니켈 매장량의 6%만 있지만, 인도네시아로의 투자를 통해 니켈 가공 공정의 63%를 장악하게 됐다. 이처럼 중국은 효율적이고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망을 장악함으로써 세계 최대의 배터리 생산국이 됐다.

중국 자본이 통제하는 필수 희귀광물 (출처: CRU Group)
중국 자본이 통제하는 필수 희귀광물 (출처: CRU Group)
인도네시아의 니켈 산업에 투자한 각국 자본 비율 추이
인도네시아의 니켈 산업에 투자한 각국 자본 비율 추이

바닥을 향한 경주

한데 중국 자본의 니켈 투자가 그리 순탄해 보이진 않는다. 특히 인도네시아 현지의 채굴과 제련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매우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고, 이로 인한 갈등이 드러나고 있다. 2020년 6월, 중국인 노동자 156명을 태운 광저우발 비행기가 술라웨시섬의 켄다리 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 노동자들이 저지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는 실업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으로부터 이주노동자를 들이면 니켈산업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며 원성을 터뜨렸다. 시위에 나선 노동자들이 돌을 던지며 강렬하게 시위하자,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대응했다.

무슬림 운동조직들의 강한 영향력도 이런 여론에 불을 붙이고 있다. 2022년 10월 말 인도네시아 정부는 외국인들의 주거 기간을 확대하는 새로운 비자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한 반발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현지 노동자들이 중국인 노동자들의 입국이나 정부의 방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실업률이 높은 술라웨시섬에서 중국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여기엔 인도네시아에서 화인들의 경제 활동에 대한 역사적 갈등과 공포도 반영돼 있다.

하지만 현지 노동자와 중국인 노동자들 모두 자본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비인간적으로 착취받는다는 점을 보면, 양자의 처지는 다르지 않다. 지난해 기준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는 중국인은 4만2천여 명으로,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중국인 이주노동자의 44%에 달한다. 한데 해외에 나간 중국인 노동자들은 국내 브로커들로부터 강제노동이나 인신매매에 준하는 속임수로 이주노동을 해온 경우가 많다. 현지에 와서 속았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이미 늦었다. 이들은 현장 관리자들의 강요와 폭력, 외출 제한, 임금 체불과 원천징수, 사기성 채용, 과도한 초과 근무와 신체적 학대 등 다양한 형태의 착취를 겪는다.

니켈 제련소의 중국인 노동자들
니켈 제련소의 중국인 노동자들

모로왈리에서 가장 큰 제련소 PT건버스터 니켈제련소는 2021년 12월 약 27억 달러의 투자로 설립됐다. 이 공장의 25개 라인에서 일하는 1만2천여 명(중국 출신 숙련 노동자 1,300명 포함)의 노동자들이 매년 190만 톤의 니켈선철(Nickel Pig Iron)을 생산하고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모기업 장쑤더롱은 중국에서 광물 채광과 정제를 통해 성장해온 기업인데, 제련소 규모를 3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문제는 이들이 일하는 일터의 조건이다. 오랫동안 중국 노동자계급의 상황을 탐색하고 노동자들의 저항을 연구해온 NGO 중국노공관찰(China Labor Watch)은 장쑤더롱 제련소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 124명을 인터뷰했다. 그 중 절반 이상에게는 실제 유효한 취업비자가 없었고, 3분의1은 근로계약서에 서명조차 하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또한 일부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에게 여권을 압수당하고 최대 4개월 동안 임금이 원천 징수당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사측과 브로커는 중국 농민공들이 함부로 귀환하지 않도록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노예제도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것의 가장 첨예한 예는 2021년 4월 허난성 출신의 노동자들이 라오스의 건설현장에 갇혀 수개월 동안 강제노동을 했던 일, 2021년 9월 인도네시아 모로왈리 니켈 광산단지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수개월 간의 노력 끝에 밀입국선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건 등이다. 당시 중국인 노동자들은 현지 경비원에게 구타당하고 억류되거나,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현지 노동자들을 향해 가해지는 착취도 만만치 않다. 술라웨시섬 동부 모로왈리산업단지에 위치한 모로왈리 우타라 노동조합의 아미룰라 위원장은 건버스터 니켈단지에서 13개월 일했다. 그는 창고로 운반된 광석과 석탄을 추적하는 업무를 했는데, 어느날 사측은 그가 노동운동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7월, 아미룰라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해고됐다. 아미룰라에 따르면, 회사는 헬멧 하나만 주었을 뿐 다른 노동안전 장비는 미지급했고, 오히려 자기 돈으로 보호장비를 사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공장 안에서 일어난 무수히 많은 산재 사고들은 언론에 보도되지도 않는 게 실정이다. 인도네시아의 광산노동자 옹호 네트워크 JATAM은 “건버스터 산업단지와 석탄화력발전소들로 인한 오염과 산업재해가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덮어지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1월 16일, 인도네시아 노동자들과 중국인 노동자들의 충돌
1월 16일, 인도네시아 노동자들과 중국인 노동자들의 충돌

모로왈리 니켈 제련소 노동자들의 저항

사측의 탄압과 정부의 일관된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모로왈리 니켈 광산과 제련소의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노동자들의 최우선 요구는 작업 도중 발생하는 산재사고에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술라웨시 사무소의 책임자 데디 아스카리(Dedi Askary)는 GNI 니켈 제련소 현장에서 2022년에만 2명의 자살을 포함해 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말했다. 2022년 6월, 야간근무 중 불도저를 작동하던 41세 노동자가 파도에 휩쓸려 익사했고, 그 다음 달에는 입사한 지 불과 2주 밖에 안 된 21살의 노동자가 용광로 슬래그에 빠져 사망했다. 그리고 8월에는 2명의 중국인 노동자가 현장에서 자살로 사망했다. 올해 4월 28일에도 니켈 폐기물 처리장 붕괴 사고로 덤프트럭에 타고 있던 노동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6월 26일에도 1명의 노동자가 죽고 6명이 다치는 화재 사고가 일어났다. 이처럼 “반복되는 작업 사고는 경영진이 시설의 안전 기준을 지키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던 2022년 12월 22일, PT 건버스터 니켈 산업(GNI)에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GNI의 용해로가 폭발해 공장 내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인 노동자 마데 데뜨리 하리 조나단(Made Detri Hari Jonathan)과 여성노동자 니르와나 셀레(Nirwana Selle)가 섭씨 1400도의 불에 타 사망했다. 사측은 노동자들이 안전밸브를 밀봉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몰고 있는데, 분명한 사고 원인은 여전히 파악되지 않았다. 이 참사는 이 공장을 벗어나 주변의 다른 공장들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러왔다. 이번에도 노동자들은 ‘노동안전’과 ‘사고예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안전모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현장에서 당연한 요구다.

보름이 지난 1월 8일, 노동자들은 사측을 향해 여덞 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1) 관련 법률 및 규정에 따른 산업안전 및 보건 절차 이행, 2) 표준화된 작업 유형 또는 작업 위험에 대한 개인보호장비 제공, 3) 즉각적인 사내 안전 규정 제정, 4) 불분명한 임금 공제 중단, 5) 정규직에 대한 PKWT(Perjanjian Kerja Waktu Tertentu, 임시직·계약직화) 중단, 6) 파업으로 인해 해고된 조합원의 복직, 7) 분진 방지를 위해 모든 창고와 제련소에 공기 순환 장치 설치, 8) 관련 법률 및 규정에 따라 산재사망 노동자의 가족에게 보상 등.

하지만 지리멸렬한 협상 후, 사측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사측은 해고자들이 인도네시아 전국노동조합 (SPN)과 연루되어 있다는 이유로 복직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1월 11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인도네시아 전국노동조합(Serikat Pekerja Nasional; SPN) 조합원 수백 명은 즉각적인 파업에 돌입하였고, 파업의 실질적인 효과가 발휘되는 듯했다. 한데 GNI 사측은 회사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공장 문을 봉쇄하고, 중국인 노동자들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 파업에 나선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향해 용역깡패를 동원하고 대체인력을 투입한 사측의 시도와 유사한 모습이다.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파업에 함께 하자고 제안했지만, 농민공들 입장에서 그건 너무나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다.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어떤 처벌을 받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짜 전선

설상가상 제련소 사측은 중국인 농민공들을 동원해 강제로 쇠파이프를 들고 공장 진입 시도를 저지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공장 앞에선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국적을 경계로 물리적 충돌 상황을 마주하고 말았다. SPN에 따르면, 한 중국인 노동자가 쇠막대기로 인도네시아 노동자를 공격하면서 평화적이었던 파업이 충돌로 변했다. 기숙사 건물과 회사 차량에 불이 붙을 정도로 격화됐고, 사측이 동원한 용역깡패 수백 명도 한데 뒤섞였다. 폭력적으로 확산된 이 분쟁은 결국 2명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를 낳고 말았다.

이처럼 GNI 사측은 노동재해에 대한 근본적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중국인 노동자와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대립을 유도해 “우리 VS. 그들”이라는 구도를 형성했다. 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반중 정서의 희생자가 될까봐 우려하고 있는데, 이런 영향으로 노동자들은 자신과 일터를 지키기 위해 경영진이 준 헬멧과 쇠파이프를 착용하고 자발적으로 최전방에 나서기도 했다.

여기엔 몇 가지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중국인 노동자들 내에 현지 노동자들이 왜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큰 문제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여덞 가지 요구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무엇보다 노동안전에 대한 요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대신 노동자들은 사측이 고의 유포한 ‘임금 인상’ 요구만 인식했다. 이는 언어와 생활양식, 조건이 다른 두 그룹의 차별화된 공간을 고려할 때, 오해를 낳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런 비극은 사측이 위챗이나 큐큐, 웨이보 등 중국어권 소셜미디어에서 회사 이미지에 대한 부정적 정보가 확산되는 걸 차단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회사가 만든 단톡방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은 ‘실명 사용’을 강요받았으며, 관리자들은 채팅방을 온종일 모니터링했다. 이따금 회사에 대해 부정적 발언을 하는 중국인 노동자가 나타나면, 견책과 경고, 벌금까지 부과했다.

항의 시위 중인 인도네시아 노동자들
항의 시위 중인 인도네시아 노동자들

예를 들어 2022년 5월 25일, GNI 내의 한 사내하청업체는 한 노동자가 다른 동료 직원이 작업 도중 쓰러져 사망한 사진을 여러 채팅방에 업로드했다는 이유로 10만 위안(약 19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회사는 직원들의 발언과 유포를 막기 위해 휴대폰을 수차례 확인했다. 이와 같은 통제 매커니즘은 언어·문화 장벽과 결합되어 중국인 노동자들이 고용주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도록 유도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GNI에 고용된 수천 명의 중국인 노동자 대부분은 구사대 대열에 가담하지 않았다.

북모로왈리(North Morowali) 경찰서는 500명 이상의 경찰 병력을 배치하고, 노동자 71명을 체포해 조사했다. 이후 노사간 갈등을 해결하고자 중재를 시도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이 사건 직후 조코위 대통령은 경찰청장에게 “제련소가 곧 다시 가동될 수 있도록 하라”고 하나마나한 지시를 내렸다. 북모로왈리 주지사 델리스 줄카르손 헤히는 이 혼란을 "다른 의도를 가진 외부의 도발자들"의 탓으로 돌렸다.

모순이 있는 곳에 반역이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도네시아 정부와 GNI 및 장쑤더롱 사측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비슷한 저항들은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들에서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강요된 바닥을 향한 경주는 노동자들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자본을 향해 겨눠질 수 있다.

기실 인도네시아의 사회적 위기는 예사롭지만은 않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물가가 치솟고 있고(지난해에는 약 4.3%로, 7년 만에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했다), 이는 소비지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도네시아 화폐인 루피아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것이 외환보유고와 채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중국대륙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왔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2020년 팬데믹이 한창일 때 인도네시아 정부는 기업들을 위해 수십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했고, 조코 위도도 정권 시기 내내 친기업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정책을 펼쳤다. 현 상황은 이것의 결과일 따름이다. 따라서 당국은 노동조합을 비난할 게 아니라, 이번 사태를 촉발하고 민족주의적 열광을 부추긴 원인을 살펴야 한다. 자본 측을 ‘폭동의 희생자’로 간주하는 대신, 책임있게 노동권 요구를 받아들이고, 노동안전과 건강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다룰 주체로 지목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도 과제는 있다. 중국인 농민공들에게는 인도네시아 현지 노동자들의 고통과 차이를 인식할 더 많은 노력과 기회가 필요하다. 인도네시아인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겐 국적을 사이에 둔 적대와 증오 대신, 상호간의 문화·사회적 차이를 극복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한국의 산업현장에 비추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고 조직해야 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비극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백인 노동자계급의 절망감을 악용해 극우포퓰리즘을 준동한 트럼프와 같은 정치적 시도의 싹을 잘라야 한다.

지난 3월 초, 중국인 노동자 세 명은 술라웨시섬의 니켈 제련공정에서 일하다가 호흡 장애와 기억 상실을 경험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등 건강의 위협을 받았다며, 사측을 향해 고소장을 접수했다. 노동자들이 고통받았던 이유는 적절한 안전 장비 없이 매일같이 먼지와 짙은 연기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세 노동자는 휴식이나 휴일 없이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해야 했고, 연장근로에 대한 임금을 받지 못했으며,여권을 빼앗긴 채 귀국 요청마저 거부돼 사실상 노예 상태로 일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중국노공관찰은 이 사태의 원인을 크게 세 개로 분석한다. 인종적이고 문화적인 차이, 중국인 이주 노동자와 현지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거버넌스와 불평등한 대우, 니켈 산업 발전에 대한 조코위 대통령의 야망을 약화시키려는 외부 행위자들. 이런 지적은 타당해보인다.

모로왈리 노동자협회는 중국인 노동자가 오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중국인 회사 경영진이 안전 및 복지 문제와 관련하여 노동자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산업안전 보건규정(Kesehatan dan Keselamatan Kerja)을 준수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파업 진압에 나선 인도네시아 경찰
파업 진압에 나선 인도네시아 경찰

한편 인도네시아 무슬림노동형제 PPMI(페르사우다란 페케르자 무슬림 인도네시아)의 뎅 와히딘 대변인은 GNI 경영진이 현지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동일노동에 대해 현지 노동자들은 월 500만 루피아(40만원)을 받는 반면, 중국인 노동자들은 세 배 이상의 임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격차는 중국 대륙의 인건비와 인도네시아 인건비의 차이, 숙련급 등에 기인할 것이다. 따라서 일대일로(BRI) 맥락에서 인종화된 노동 정치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를 시급하게 구축해야 할 것이다.

언어 장벽과 애국주의적 감정은 노동착취 하 공동의 곤경을 바탕으로 한 노동자들의 국제연대를 향한 잠재력을 약화시킨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엘리트 화인 집단이 자본가로 등극해온 역사로 인해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네덜란드 식민지 말기 엘리트 화인들이 화인 정체성 자체를 독점하게 되면서, 하층 중국인 노동자들까지 적대하는 우를 범하기 쉬워진 것이다. 노동운동은 마땅히 초국적 자본과 결합한 국민국가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 일대일로 흐름에서 생계를 위해 인도네시아로 온 중국인 농민공들을 중국 국가권력의 대리인으로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양국 노동자들의 처지는 다르지 않다. 자본의 조작대로 파업대오와 구사대로 대립할 게 아니라, 함께 싸워야 한다. 저널리스트이자 활동가 페르마타 아딘다는 일부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중국인 노동자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차이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술라웨시주에는 인도네시아인과 중국인들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하는 데 앞장 서고 있는 노동조합들이 활동하고 있다. 가령 이들은 인도네시아어-보통화 강좌를 기획해 두 언어 간의 언어 장벽을 없애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페르마타 아딘다는 이것이 “장기적인 과정이며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반드시 시작해야 할 단계”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니켈 채굴과 제련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궁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후정의의 관점으로 이 문제를 봐야 할 필요성을 알려준다. ‘친환경’을 내세우는 전기차의 개발은 니켈 제련공정에서 이뤄지는 끔찍한 노동착취의 관행과 분리될 수 없다. 환경적으로 직접적 영향을 받는 지역주민들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는 '친환경'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물어야 한다. 산업 안팎의 사람들이 호흡기 질환과 피로, 산재 사고, 임금 삭감 등 문제를 제기할 때 해고나 형사 처벌, 죽음까지 감수해야 한다면, 이를 ‘친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난해 일론 머스크가 뱉은 말이 니켈 광산 노동자들의 시체 위를 맴도는 듯하다.

“제발 니켈을 더 많이 채굴하라고요!”
- 일론 머스크

  • 11. 「The Arrogance of PT GNI and the Network of Vested Interests of the Political Elite behind the Clashes in North Morowali」, JATAM, 2023. 1. 18.
  • 12. Amy Chew, 「Indonesia’s electric battery hub bid clouded by mining deaths」, Al Jazeera, 2023. 7. 11.
  • 13. MOHAMMAD TAUFAN, 「2 dead in collapsed dump site at Indonesia nickel plant」, AP, 2023. 4. 28.
  • 14. 「Indonesia: Deaths from labour accidents spur protests at nickel factory」, Business & Human Rights Resource Centre, 2023. 2. 7.
  • 15. https://asiatoday.id/read/ledakan-tungku-smelter-nikel-perusahaan-china-pt-gni-2-pekerja-tewas
  • 16. https://asiatoday.id/read/karyawan-tewas-terbakar-perusahaan-nikel-china-pt-gni-dikepung-ribuan-massa
  • 17. Muhamad Syahrial, 「Fakta Kasus Bentrokan Dua Kelompok Buruh PT GNI: 2 Pekerja Lokal dan 1 TKA Tewas, Aset Perusahaan Dibakar Massa」, 2023. 1. 15.
  • 18. Adi Mirsan, 「Kasus Kebakaran hingga Bentrok Antar Pekerja, Izin Operasional PT GNI Terancam Dicabut」, Fajar, 2023. 1. 16.
  • 19. 「"BOM WAKTU" AKHIRNYA MELEDAK DI MOROWALI UTARA!!」,
    Indonesia Lawyers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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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Bupati Tuding Ada Provokator dari Luar di Balik Bentrok TKA China dengan Pekerja Lokal di Morowali Utara」, ERA,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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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