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동자들이 고속철도 통합을 외치는 이유

철도노동자들이 고속철도 통합을 외치는 이유

민간투자사업을 확대하고 철도 민영화의 불씨를 살리려고 하는 사이에 코레일의 공적 역량은 그만큼 낮아지게 되고, 그만큼 기후위기 대응과 이동권 강화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2023년 8월 28일

[읽을거리]노동철도, 공공운수노조, 공공성, 파업

완전히 실패로 끝난 SR분할 민영화

2011년 이명박 정부는 애초에 노선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됐던 현재의 수서~평택 간 SR노선(수서역에서 출발하여 평택시 근처 평택지제역 남단에 연결된 경부고속선과 합류하는 고속철도 노선)을 갑자기 민영화하여 민간사업자에게 운영권을 부여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철도노조의 투쟁과 국민들의 반대 여론으로 민영화 정책은 유보됐다.

이후 박근혜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전에 약속한대로 철도 민영화는 추진하지는 않되, 현재의 SRT(수서고속철도) 노선을 운영하는 SR을 설립하여 코레일과 경쟁을 시키는 철도경쟁체제를 출범시켰다. 민영화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철도 민영화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었다.

한편, 주식회사SR의 설립은 철도의 발전역량을 저해한다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컸다. SR노선은 수서역을 포함한 3개역을 제외하고 모든 역을 코레일과 공용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80% 정도의 노선을 코레일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운영기관이 분할되면 중복투자와 중복운영으로 역량이 분산되고 소모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일반열차를 유지하는 교차보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코레일은 운행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일반철도도 같이 운영하고 있는데, 고속선 분할로 코레일의 수익이 떨어지면 그만큼 고속철도 수입으로 운영되는 일반철도도 자연히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식회사SR은 운행차량을 경쟁업체라고 하는 코레일로부터 임대를 받는다. 역 업무와 예·발매업무뿐만 아니라 열차정비를 비롯해서 고속구간의 선로 및 전기, 신호 등 시설물에 대한 유지보수 업무도 코레일에게 위탁하고 있다. 심지어 코레일은 SR의 전체 지분 중 41%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이기도 했다. 이처럼 기형적 형태에서 탄생한 주식회사SR은 애초부터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는 우려가 컸다.

그 우려는 개통 6년 만에 현실화되고 말았다. SR 주주였던 사학연금·기업은행·산업은행 등이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하면서 1,500억대 SR 투자금을 회수키로 했다. 부채비율이 무려 1,400%대가 됐기 때문에 철도 사업자 면허를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부랴부랴 지난 7월 11일 국무회의에서 SR에 대한 3,590억 원 규모의 출자를 확정했고, 이후 국토교통부는 보유하고 있던 한국도로공사의 지분 중 일부를 SR에 출자하고 지분 59%를 확보하며 최대 주주에 오르게 됐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급한 불을 끈 것이다.

이렇게까지 되면 철도경쟁체제는 완전히 실패한 것이며, 즉각 KTX와 SR을 통합하는 게 상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와 국토교통부는 민영화의 유산을 끝끝내 잃고 싶지 않은지 현 상태를 무리하게 연명하고 있다. 코레일이 없으면 애초에 운영도 못하고 존립하기조차 어려운 SR 자회사를 무리하게 분할한 이유는 결국 이명박 정부의 고속철도 분할 민영화의 불씨를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은 의도가 아니면 이해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의 철도 민자사업 확대

윤석열 정부는 SR분할 정책을 유지하면서 철도 민자사업 또한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이 또한 공공철도의 확장을 억제하고 철도 공공성을 훼손하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2022년 6월 28일 기획재정부는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를 개최해 「민간투자사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으레 기획재정부가 '때 되면 발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민자사업이 더 나쁜 방식으로 진화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 💾민자사업: 정부가 건설해야 하는 도로, 항만, 철도, 학교, 환경시설 등 시설물에 대해,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따라 민간자본(펀드나 기업 혹은 컨소시엄)의 투자를 받아 건립 비용의 부담을 줄이는 대신 운영권 보장 등을 통해 민간자본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형태로 추진하는 사업.

해당 방안의 내용을 살펴보자. 무엇보다 “노후 인프라 대상의 개량 운영형 민자방식을 신규 도입하고, 혼합형(BTO+BTL) 방식을 확대하는 등 사업방식을 다변화한다”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철도에서 신규노선 건설만을 통해서 수행할 수 있었던 기존 민자사업이 노후철도 인프라 등 기존 사회기반시설을 개량·증설하고 운영권을 설정 받는 방식으로도 확대된다고 밝힌 것이다.

또한 정부는 재정사업의 민자전환 가능성을 적극·검토한다고도 밝히고 있다. 교통계획 수립시 아예 민자 물량 배정을 통해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기획재정부는 민자사업의 영역을 운영을 넘어 인프라 개량과 투자까지 확대시키려 하고 있으며, 민자사업의 총량 또한 대폭 늘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민자사업의 질적·양적 팽창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우려가 매우 크다.

실제 이렇게 기획재정부가 정책을 내놓자, 2023년 4월 23일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민자철도 업계 간담회를 열고, 해당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국토부는 철도노선 신설에 한해 허용했던 철도 민자사업을 지방 폐노선, 노후 철도시설 등 기존 철도시설을 개량하는 방식으로도 허용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또한 공공 소유부지에 철도역과 역세권을 함께 개발하고, 개발이익을 철도에 재투자하는 모델을 마련하여 향후 사업에 본격 적용할 계획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에게 약속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를 "민자사업의 규제를 혁파하는 혁신"이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이는 국가가 당연히 수행해야 할 인프라 개량 및 투자의 책임뿐만 아니라 공공자산의 소유권 또한 민간사업자에 넘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철도 민자사업은 국가의 공공적 책임까지도 민간으로 넘기겠다는 측면에서 공공성을 아예 포기 선언하는 것과 다름 없다.

철도노조 파업은 철도 공공성 회복을 위한 싸움

기후위기와 이동권 강화를 위해서 어느 때보다 철도와 지하철, 버스 등의 공공교통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상에 올라서고 있다. 운영을 담당하는 공공교통 운송기관 또한 마찬가지다. 이 중 코레일은 수도권 광역은 물론, 전국의 고속철도 및 일반열차의 운영을 책임지는 핵심적인 철도 공공기관이다. 정부는 철도 공공기관이 기후위기와 이동권 강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장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코레일은 코로나19의 여파로 적자가 누적되면서 경영이 많이 악화된 상황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여전히 이명박근혜 정부의 SR 분할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민자철도사업을 대폭적으로 확대하면서 규제를 철폐하려고 하고 있다. 민자사업을 확대하고 철도 민영화의 불씨를 살리려고 하는 사이에 코레일의 공적 역량은 그만큼 낮아지게 되고, 중장기적으로 기후위기 대응과 이동권 강화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야말로 여전히 경도된 이념에 갇혀 있으며 과거의 이명박근혜 정부와 단절하지 못하면서 철도공공성을 포기하고 있다.

오는 9월, 고속철도 통합과 민자사업 반대를 외치는 철도노조의 투쟁은 기후위기와 이동권 강화를 위한 철도공공성 회복 파업이다. 이 파업에 연대하는 것은 매우 정당하고 필요하다.

글 : 이영수 |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