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서 만난 세계 각국 노동운동가들의 이야기
2023년 7월 6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이현석 조직국장이 지난 5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있었던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IndustriAll) 정보통신기술-전기전자업종 회의 참가 후기를 보내왔다. 동아시아와 반도체 및 배터리 등 전기전자산업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은 불가피하다. 이미 현실에서 그 국제적 긴장은 극렬하게 벌어지고 있고, 한국의 정치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민주노조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한 때이다.
지난 5월 9일(화)부터 10일(수)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세계 제조업 노동조합들의 국제 연맹인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인더스트리올)이 정보통신기술-전기전자업종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이번 하노이 회의에는 한국과 베트남,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의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4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한국 금속노조 참가단은 박경선 부위원장, 이현석 전략조직국장,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로 구성되었습니다. 회의 참가자들은 주로 세계적 차원 및 각 나라 전기전자산업의 변화와 노동조합 조직화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한국의 삼성 사례와 같은 노동조합 탄압과 그에 맞선 투쟁, 그리고 국제 연대도 함께 논의했습니다.
금속노조 참가단은 일정 중 3개 세션에서 발표 했습니다. 박경선 부위원장은 ‘노동조합 힘 구축 및 불안정노동에 맞서는 노동조합 조직화 전략 세션’에서 ‘금속노조의 삼성 조직화 방향과 사례’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삼성전자서비스, 삼성전자판매, 전기전자 사업장 조직화와 투쟁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이어서 이상수 상임활동가는 ‘산업안전보건 및 성평등 세션’에서 ‘반도체 전기전자 업종의 직업병: 한국의 경험과 과제’라는 제목으로 삼성의 직업병 피해자들과 반올림의 투쟁과 과제, 최근 베트남 삼성 하청업체의 산재 문제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현석 전략조직국장은 ‘반도체 소업종과 전기전자수탁제조서비스 소업종에 효과적 조직화 세션’에서 ‘금속노조의 삼성SDI 조직화 방향과 사례’라는 제목으로 삼성SDI와 삼성전자계열사노조연대 조직화 및 과제에 대해 공유했습니다.
참가단은 국제적인 전기전자업종에 대한 정보 공유와 조직화 네트워크 형성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이번 회의에 참가했습니다. 회의 기간 동안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그에 맞선 노동조합 확대 사례, 반올림의 활동과 삼성의 노동안전보건환경 문제에 대해 알려내고자 했고,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들에게 삼성에 맞선 국제 연대도 제안했습니다. 다른 나라 참가자들은 회의장 안팎에서 위에 소개한 한국 참가단의 발표와 사례에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한국 삼성 사례에 관심을 표명한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들과 나눈 교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미국, 네덜란드, 베트남 노동운동가들의 열정과 자부심
가장 먼저 소개할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는 미국노총(AFL-CIO)의 전기-통신노조(IUE-CWA)에서 활동하는 젊은 조직가입니다. 미국 전기-통신노조는 최근에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노동자들도 가입한 산별노조로, 통신, IT, 발전, 항공, 전기전자기업 등에 종사하는 40만 명의 조합원이 있습니다. 그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 전기-통신노조는 바이든 행정부의 국내 산업 부흥을 위한 입법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정부 산업 정책의 변화를 분석해서 에너지, 교통, 반도체 기업을 전략 조직화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최근에는 GE 미국 공장의 해외 이전을 막아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노동조합 차원의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였고, 현장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다양 한 직접 행동으로 GE 노조를 재활성화시켰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최근 전국적으로 GE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과 임금 인상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하노이 회의 첫 날 박경선 부위원장의 삼성 사례 발표가 끝나자마자, 그와 인더스트리올 전기전자업종 담당 국장이 바로 우리 자리로 와서 쉴 새 없이 여러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삼성 노동자들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노동조합을 결성한 핵심 불만과 계기는 무엇인지, 삼성에서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가입 사실을 공개하고 있는지, 현재 삼성에서 조합원들의 활동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미국의 노동조합 결성에 불리한 노동조합 결성 투표와 같이 한국에는 노동조합 결성에 불리한 제도가 없는지, 삼성의 노사협의회는 회사 노동조합으로 보면 되는지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다음 날이 회의 둘째날, 그는 우리 참가단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1시간이 넘게 그와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간담회 후에도 우리들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틀 동안 정신 없이 이어지던 회의들과 다르게 다소 편안한 분위기에서, 한국과 미국의 노동조합 활동 전반에 관련해서 서로 묻고 답했습니다. 자신이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조합원들이 가끔 ‘조합비를 냈으니 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세요’라고 말할 때마다 자신은 '연대 먼저’(Solidarity First)를 이야기하는데, 그게 마냥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노총은 ‘비즈니스 노조주의’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경제적 조합주의, 실리주의 경향이 강하고, 조합원들은 조합비를 내고 노동조합 간부들이 그 조합원들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의 활동이 중심적이라고 합니다. 그는 조합원들이 조합비만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업장들의 투쟁에 연대하면서 함께 연대 투쟁을 통해서 문제를 같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에서 노동조합의 연대와 투쟁이 상대적으로 자주 접하는 조건에서, 미국노총 활동가의 노동조합 내에서의 고충이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다. 한국은 어떠하냐는 질문에 우리도 ‘노동조합 간부가 조합원들을 대신해서 모두 해결해주며 조합원들이 수동화되는 노동조합, 소위 ‘자판기 노조’가 되면 안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우리 참가단은 미국의 노동절이 세계 노동절과 날짜가 다른데(미국은 9월 첫째 월요일이 노동절) 세계 노동자의 날인 5월 1일에 미국 노동자들은 무엇을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그 조직가는 ‘미국은 거의 대부분 노동조합이 5월 1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올해 5월 1일 자신과 GE 노동자들은 대규모 집회와 행진을 했다’며 직접 당시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과 미국의 높은 물가 문제, 각 나라 청년들의 주거 문제, 미국 스타벅스 노동조합의 현황 등을 서로 묻고 답했습니다. 30대 초반의 그 젊은 조직가가 혼자서 그 먼 길을 날아와서 하노이에서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출발해 텍사스주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일본 도쿄에서 다시 환승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하기까지 32시간이라는 긴 여정을 거쳤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사람들은 굿 일렉트로닉스(Good Electronics) 라는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2명의 네덜란드 연구자들입니다. 굿 일렉트로닉스는 전자산업 노동환경 개선, 노동권 촉진, 환경 보호를 목표로 하는 국제 단체입니다. 하노이 회의에서는 그 중 한 연구자가 세계 반도체 산업 변화와 반도체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최근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조립과 테스트, 패키징과 같은 노동집약적 공정이 중국, 말레이시아, 대만, 태국 등으로 더 많이 아웃소싱 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20세기 석유와 중동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었던 것처럼, 21세기는 반도체와 대만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고조되는 위기에서 미국과 유럽의 ‘반도체법’*만이 아니라, 중국, 인도, 일본, 대만, 한국도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경쟁적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발표 이후 노동은 반도체를 둘러싼 변화와 지정학적 긴장을 어떻게 볼 것이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어느 지점에 역량을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 미국 반도체법 (CHIPS and Science Act) : 미국 정부가 반도체 제조 및 시험, 연구개발 관련 시설 투자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지원하는 법이다. 이를 통해 미국 정부는 1970년대 이후 해외로 나간 제조업 생산시설을 다시 미국 내로 돌아오게 하고자 하고 있다.
유럽반도체법 (European Chips Act) : 유럽연합이 약 430억 유로(한화 약 62조원)을 투자하여 반도체 생산을 늘려, 세계 시장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 올리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내용이다.
앞서 소개한 미국 전기-통신노조의 열정적인 조직가처럼, 네덜란드의 두 연구자들도 둘째 날 이상수 반올림 상임 활동가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바로 우리 한국 참가단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이번 회의 이전부터 한국의 반올림과 소통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는데, 반올림 활동가가 이번 하노이 회의에 오는 줄 알았다면 간담회를 미리 요청했을 것이라며, 우리 참가단에게 시간이 되면 따로 간담회를 할 수 있냐고 문의했습니다. 아쉽게도 짧은 일정 동안 우리 참가단은 이미 영어로 열리는 7개의 회의 참여, 3번의 간담회 진행, 현지 공장 방문까지 참여하면서 다소 지쳐 있었기 떄문에, 네덜란드 연구자들과 따로 간담회를 진행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쉽지만 우리는 올해 10월에 열리는 국제 배터리 공급사슬 회의 혹은 12월 진행될 인더스트리올 회의 때 만나자고 이야기하며 헤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노동운동가들은 베트남노총(VGCL) 국제국에서 활동하는 젊은 노동조합 간부들입니다. 참고로 베트남노총 국제국은 국장을 포함해서 8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베트남노총의 국제 활동에 대한 역량 투여가 인상 깊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하노이 회의 마지막 일정으로 이 국제국 간부들과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2명의 젊은 노동조합 간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베트남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베트남은 언제나 제국(중국, 몽골, 프랑스, 미국)에 맞서 싸우며 독립을 지킬 수 있었고, 언제나 자신들이 전쟁에 이긴 뒤에 상대 국가에 친하게 지내자고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전쟁 이후 친하게 지내는 나라 중에는 한국도 있다’고 유머 섞인 이야기도 했고, 덕분에 서로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삼성, LG 등)의 명암에 대한 대화를 깊이있게 나누지 못해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민주노조의 ‘국제 연대 사업’ 강화 필요
이번 하노이 회의에서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들을 만나면서, 한국 민주노조의 역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들은 인더스트리 4.0, 공정한 전환, 전기전자산업, 배터리와 반도체 조직화에 대한 주목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의 민주노조는 해당 내용에 대한 선언을 넘어서 이미 구체적인 사업과 운동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의 삼성 사례 발표가 다른 나라 노동운동가들의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또한 한국의 민주노조가 다른 나라 노동조합들과 교류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국제 사업에 대한 역량 투여가 다소 부족했다는 생각도 들었 습니다. 앞으로 동아시아와 반도체 및 배터리 등 전기전자산업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은 불가피합니다. 그리고 이미 현실에서 그 국제적 긴장은 극렬하게 벌어지고 있고, 한국의 정치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노조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리고 민주노조는 지금보다 더 많은 역량을 국제 연대에 투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다른 나라 노동조합들과 투쟁과 승리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회의를 통해 국가탄압으로 노동조합 설립 자체도 어려운 활동가들도 만났습니다. 아시아에 진출한 독일, 일본 등의 거대 기업 경영진이 노동조합을 아예 무시하고 탄압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탄압에 맞서 정기적인 회의와 조직화 네트워크를 통해 국제 연대를 만들 수 있는 '아시아 노조 전략 조직화 네트워크' 건설을 모색해 볼 수 있습니다.
하노이 회의 둘째 날 삼성 사례 발표 이후, 인도네시아 금속노조 참가자가 우리 참가단에 “인도네시아의 삼성 공장에서 노동조합 설립은 사실상 불가능한데 한국은 어떻게 가능했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우리 참가단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습니다.
“그동안 수천 명의 삼성 노동자들의 투쟁, 수십만 명에 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연대, 반올림과 같은 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진보적인 정치인들, 지식인들, 활동가들의 헌신,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부정부패로 인한 구속과 촛불 집회까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삼성에서 노동조합이 가능했습니다. 만약 인도네시아에서 삼성에 맞선 투쟁이 벌어진다면 우리 한국의 민주노조도 언제나 여러분과 연대하고 돕겠습니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우리 참가단의 사례 발표와 회의장 안팎에서의 대화와 간담회는 서로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이러한 국제 연대의 자리가 다시 마련된다면, 한국 기업이 진출한 다른 나라의 노동조합들과 우리 노동조합 간부들이 더 깊이 있는 대화와 더 너른 연대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 이현석 (금속노조 전략조직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