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은 가능하다 | 인도네시아 그랩(Grab) 노동자들의 투쟁
2023년 6월 16일
이 글은 「아시아 노동 비평(Asian Labour Review)」 지의 특별 기획을 번역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임시직 노동자들이 착취에 저항할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글은 그들이 불안정성에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플랫폼 기반 긱경제* 에 대해 일부 분석가들은 알고리즘 관리와 노동과정의 개별화로 긱 노동자들이 착취에 저항할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코로나 기간동안, 그랩 노동자들은 총 34번의 시위를 벌였고 그 중 7번은 요구를 관철시켰다. 불안정성에 저항하는 운전자들을 조직하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미 일어나고 있다.
*긱 경제: 기업들이 정규직보다 필요에 따라 계약직 혹은 임시직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경향이 커지는 경제상황을 일컫는 용어. 긱(gig)은 일시적인 일을 뜻하며,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서 단기적으로 섭외한 연주자를 '긱'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플랫폼 기업이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단거리 일자리를 중개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긱경제와 플랫폼경제를 혼용해서 쓰기도 한다.
그랩이 인도네시아에 상륙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플랫폼 기업 중 하나인 그랩(싱가포르에 기반한 차량 공유 및 배송, 전자상거래, 전자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2014년 6월부터 인도네시아에서 확장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랩카(GrabCar) 서비스를 제공했다. 2015년 5월 20일, 그랩은 그랩바이크 서비스를 시작해 8주만에 2000명의 운전자를 등록시켰으며 다른 실시간 서비스까지 확장했다. ‘슈퍼앱' 지위를 이용하여 그랩푸드, 그랩마트, 그랩익스프레스, 그랩헬스, 그랩호텔을 비롯하여 10 여개의 서비스에 진출했다.
이후 그랩은 빠르게 확장하여 인도네시아의 차량 호출 및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기업인 고젝(Gojek)을 비롯한 여러 경쟁자들을 제치고, 인도네시아의 플랫폼 기반 교통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그랩 운전자 수 역시 빠르게 증가하여 2020년에 200만명이 되었다. 그랩은 2018년 우버(미국의 차량중개플랫폼)와 동남아시아의 차량호출 및 음식배달 사업을 통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합병을 통해 그랩은 인도네시아 차량호출 산업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
그랩의 성공은 수백 만 운전자들의 불안정 노동조건을 대가로 이루어졌다. 인도네시아에서 그랩을 비롯한 플랫폼 기업들은 운전자들을 독립 계약자, 혹은 인도네시아어로 미트라(동업자)* 라고 분류한다. 이 분류에 따르면 그랩은 운전자에게 최저임금, 휴가, 차량 및 보호 장비 제공 등과 같은 고용 권리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에서 '공세적 투자기간(money-burning period)’**이 끝난 후 운전자들의 직업취약성은 증가했다.
* 미트라: 택배노동자, 건설레미콘운전자, 화물운전자, 학습지노동자 등 한국의 특수고용노동자와 비슷한 지위라고 이해할 수 있다.
**공세적 투자기간: money-burning period:온라인 플랫폼들이 인터넷 상에 상품을 소개하고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취하는 마케팅전략. 가격인하로 이용자와 서비스제공자 수를 증가시킨 후 다시 가격인상과 서비스제공자의 악화된 노동조건으로 돈을 버는 약탈적 방식.
그랩 운전자들은 얼마나 불안정한 조건에 놓여있으며 이에 대항하기 위해 어떻게 조직되었는가? 필자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인도네시아 가자마다대학(Universitas Gadjah Mada)의 거버넌스와 공공문제연구소(IGPA: Institute of Governance and Public Affairs)와 함께 수행한 연구의 데이터를 활용했다. 이 연구는 2020년 6월부터 10월까지 인도네시아 3개 주에 거주하는 그랩 운전자 130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또한 2020년 8월부터 2022년 3월까지 44개의 플랫폼 운전자들의 소셜 미디어 그룹(페이스북Facebook 및 와츠앱WhatsApp)에 가입하고, 온라인상에서 운전자 시위를 추적해 코로나19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 운전자들의 시위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위장 동업과 노골적인 착취
그랩은 운전자를 유치하기 위해 ‘유연한 근무, 안정적인 수입, 그리고 운전자 생계 지원’을 약속한다. 그랩은 운전자가 되면 "스스로 자신의 상사가 되어" "언제, 어디서, 얼마나 자주 운전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드라이버가 한 달에 최대 1,400만 루피아, 즉 인도네시아 최저임금의 약 5배를 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노동자들은 유연한 근무 시간, 높은 수입, 간편한 등록 방법 등을 고려하여 그랩 운전자가 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그랩이 만들어낸 지배적 서사는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줄을 서서라도 운전자가 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인도네시아의 ‘영세,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관련 법률 제20호(2008년)’에 따르면 동업 관계는 의사 결정에 있어 동업 당사자가 동등한 지위를 갖는 관계, 즉 어느 한쪽이 지배하거나 지배당하지 않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 기준은 동업 관계를 고용주-노동자 관계로부터 구별해준다. 그러나 실제 그랩의 동업 관계에서는 그랩과 운전자가 서로 동등한 지위에 있지 않다. 그랩은 모든 업무 배치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운전자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위장 동업 관행(위장 임금노동)'을 만들었다. 플랫폼 운전자는 ‘동업자’로 분류되지만 실제 그들은 ‘동업자’의 권리를 가지지 못하며, 이들의 노동과정은 고용된 노동자와 같다. 이렇게 그랩은 운전자를 독립 계약자 또는 ‘동업자’로 분류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요소를 제공하지 않는다. ‘동업자로서’ 운전자는 완료한 주문 수에 따라 노동에 대한 보수를 받는다. 회사는 일정 기간 동안 그랩 운전자의 계정을 비활성화하거나, 해고(운전자가 어플 접속 금지)하거나, 운전자에게 주문을 후순위로 배정해주는 등 규율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는 운전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업무를 통제하는 쪽은 오직 회사이다.
운전자 업무 통제 덕분에 그랩은 운전자 수수료(인센티브와 요금 모두)를 지속적으로 인하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운전자의 수입이 감소했다. 그랩이 운전자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공세적 투자' 전략을 펼쳤던 기간(2015~2019년) 중 2018년, 그랩 운전자는 하루 평균 총 458,093루피아(약 4만원)를 벌어들였다.* '공세적 투자' 기간이 끝나면서 운전자의 수입은 크게 감소했다. 가장 급격한 감소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에 일어났다. 2020년 2월 하루 평균 총 수입이 273,746루피아(약 2만5천원)에서 2020년 4월 85,085루피아(약 7500원)로 감소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가 공표된 후에도 그랩 운전자의 수입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그랩 운전자의 89.23%는 회사가 정책을 변경하여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며 76.92%는 유연성, 고소득, 더 나은 생계에 대한 기대가 현실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 CEIC(글로벌 거시경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경제학자, 애널리스트 그룹)에 따르면 2018년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185달러(약 24만원), 반면 한 달 동안 최저임금을 받았을 때 225달러(약 29만원)벌어들였다.
수입 감소와 함께 그랩 운전자의 노동시간은 증가했다. 그랩 운전자가 노동시간을 늘린 것은 요금과 인센티브가 줄어든 만큼 충분한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2018년부터 2020년 7월까지 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12.21시간에서 13.24시간으로 1.03시간 증가했다. 인도네시아 그랩 운전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인도네시아 표준 노동시간을 상회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규정에 따르면 표준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다. 그랩 운전자는 노동자가 아닌 ‘동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표준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에 대해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운전자는 그랩에서 사실상 낮은 임금으로 장시간 노동하는 전업노동자가 된다.
소득 감소와 근무 시간 증가로 운전자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게 되었다. 교통사고, 과로로 인한 상해를 경험한 운전자의 비율은 73.85%이며, 고용불안정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운전자의 비율도 79.23%이다. 그랩 운전자들의 49.23%는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고, 나머지 50.77%는 자비로 보험을 들었거나 인도네시아 정부가 빈곤층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낮은 소득으로 인해 ‘사업 운영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운전자도 많다. 그랩카 및 고카(GoCar: 인도네시아 오토바이 호출서비스플랫폼이었던 고젝이 출시한 승용차 호출서비스.) 한 플랫폼 운전자 단체에 따르면 회원의 87.38%가 수입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자동차 할부금(차량을 이용하는 대부분의 플랫폼 드라이버는 차량을 신용으로 구매한다)을 지불할 수 없어 더 이상 운전자로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랩카 운전자의 77%는 자동차 할부금 때문에 은행에 빚을 지고 있다. 플랫폼 회사는 운전자에게 생산수단 구매마저 전가해 운전자의 취약성을 더욱 증가시켰다.
저항을 조직하다
운전자들은 그랩이 불안정성을 고착화하는 것에 다양한 형태로 저항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시위 건수가 증가하여 2020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총 71건의 앱 기반 운전자 시위가 벌어졌으며, 그랩 운전자들은 이 중 34건(47.9%)의 시위에 참여했다. 그랩 운전자들은 대규모 거리 행진(26건), 파업(22건), 그랩 사무실 봉쇄(2건), 정부와의 청문회(1건) 등 다양한 전술을 활용했다. 주로 정부 청사 및 그랩 사무실 앞에서 집단 행동을 벌이면서 파업, 즉 어플로부터 로그아웃하는 방법을 택했다.
운전자들은 적절한 임금, 운전자 어플 접속의 비활성화 및 일방적 제재 중단, 근무 조건 개선, 플랫폼 기반 운송 수단의 합법화, 운전자 요금 인하, 운전자 법적 지위 명확화 등을 요구했다. 현재 인도네시아 도로교통법[Law on Road Traffic and Transportation]에 따르면 운송용 차량은 노란색 번호판과 정부에서 발급한 차량 적격성 검사증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며 대중교통 수단으로써의 오토바이 사용은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일어났던 시위 34건 중 대부분은(24건, 70.6%) 자생적 행동들이었다. 이 중 70.8%는 비공인 파업 전략을 사용했다. 플랫폼 기반 운송의 맥락에서 비공인 파업은 집단적으로 그랩 운전자 계정에 접속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는 주로 페이스북과 왓츠앱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조직되었다.
그랩이 요금을 낮추는 등 운전자에게 불리한 정책을 내 면, 운전자들은 소셜 미디어 그룹에서 서로 소통한다. 서로 불만을 공유하고, 종종 비공인 파업과 같이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운전자들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불만을 제기하거나 그랩 경영진과 직접 만나는 등 공식 절차를 밟는 방법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운전자들의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거나 듣지도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살쾡이 파업(자생적파업)과 조직
위에서 언급된 34건의 시위 중 자생적 시위를 제외한 10건(29.4%)의 시위는 공식[formal] 조직이나 노조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랩 운전자가 소속된 공식 조직 또는 노조는 모두 독립적인 조직으로, 제조업과 같은 대규모 부문의 기존 노조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조직은 공식화되기 전에 살쾡이 파업, 즉 주요 리더가 없고 오랫동안 공식적인 조직 구조가 없으며 대규모 노조와 연결되지 않은 자생적인 경향의 행동을 조직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살쾡이 파업 전략의 약점으로 인해 공정한 요금, 명확한 분류, 더 나은 근무 조건 등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요구를 쟁취하지 못하자 공식적인 노조를 결성했다. 2021년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살쾡이 파업을 벌인 광역 자카르타(자보데타벡Jabodetabek)의 그랩 운전자들은 이후 운동을 조직하고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장기적 전망을 갖추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그랩익스프레스 동일同一 세자보데타벡 협회(GrabExpress Sameday Sejabodetabek Association)를 결성했다.
물론 단기적, 근시안적일지라도, 살쾡이 파업 행동은 공식 조직이나 노조가 조정하는 파업 행동과 비교해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살쾡이 파업은 공식 조직의 관료적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고, 단일한 리더가 없기 때문에 회사에 회유되기 까다로우며, 민주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공식 조직을 통한 시위는 소수의 리더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쉽게 회유당하는 경향이 있으며,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등의 약점이 있다.
그랩과 정부는 인도네시아 그랩 운전자들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하지 않았다. 그랩은 임금 인상 및 고용 보장과 관련된 요구에 대개 응하지 않는데, 임금을 인상하고 고용을 제대로 보장하면 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랩은 경쟁력 감소로 소비자들이 다른 플랫폼을 선택하고 운전자에게 들어가는 주문이 감소하기 때문에 결국 운전자에게 손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랩은 이처럼 운전자를 통제하고 규율하며 시장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많은 요구사항이 관철되지는 않았지만, 운전자의 투쟁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이 쟁취한 요구사항도 있다. 첫째, 그랩의 경쟁사인 맥심(Maxim)*과 인드라이버(InDriver)**가 상대적 우위에 있는 그랩과의 경쟁 관계에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자 정부가 정한 요금 규정을 따른 것이다. 둘째, (비록 인상폭이 운전자들의 요구에 미치지 못했지만) 차량 호출비를 인상시켰고 (플랫폼회사에 내는)요금을 인하(기존 20% 이상에서 15%로 인하, 운전자들의 요구는 10%)시켰다. 유가 상승의 국면 속에서 인도네시아 전역 수십 개 도시에서 수만 명의 드라이버가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적 시위로 이뤄낸 승리였다.
* 맥심(Maxim) :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남미를 비롯하여 18개 국가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택시, 배달, 택배 등 서비스업체.
** 인드라이브(InDrive) : 47개 국가에서 운영되는 차량공유 플랫폼.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많지만, 그랩과 같은 플랫폼의 모순은 운전자들의 저항과 성장을 낳았다. 앞으로 새로운 노동자 조직 형태를 모색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글 : 아리프 노비안토
번역 : 보리
교열 : 김지혜
원글 주소 : https://labourreview.org/grab-in-indone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