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이대로 좋은가 – 정의당 재창당안을 중심으로

진보정당 이대로 좋은가 – 정의당 재창당안을 중심으로

지난 6월 24일 정의당은 전국 위원회를 열어 <혁신 재창당 추진방안>을 확정하였다. 이 결정이 진보정당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2023년 6월 30일

[읽을거리]정치선거, 진보정당, 정의당, 민주노동당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은 1997년 총파업이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총파업 후 세력화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뜻을 대변할 정당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런 열망으로 1997년 권영길 후보를 세워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였고, 이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 민주노동당이 등장하기 전에도 1956년 진보당, 1990년 민중당과 같은 정당들이 있었지만, 이 글에서는 민주노동당의 등장으로부터 서술하고자 한다

2002년 진보적 열망에 기대어 당선된 노무현 정부가 그러한 열망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곳곳에서 저항하는 사회운동이 성장했고, 동시에 민주노동당도 부상했다.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슬로건을 앞세운 민주노동당은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주장하고, 부패한 기득권인 재벌과 검찰을 선명하게 공격하며 인기를 모았다.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등의 인기는 바로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속 시원한 발언과 실천’속에서 만들어 졌다. 선명함과 급진성을 보이며 진보정당이 성장하고 대표적인 정치인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일부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없어서 진보정당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반대로 선명성과 투쟁성의 상실이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대표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진단이다.

그러나 2005~2006년 사회운동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민주노동당의 급진적인 성격도 급격하게 퇴색되었다. 진보정당의 역사가 사회운동의 부침과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시작이었다. 당 지도부는 ‘데모하는 정당’, ‘반대만 하는 정당’, ‘운동권 사회단체’ 이미지에서 벗어나 ‘준비된 수권 정당’, ‘번듯한 의회정당’이 되는 것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자를 위해서 전자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고, 민주당 세력과의 차이를 약화시키는 일이었다. 당 정책은 부유세 같은 급진적 재분배 정책에서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적 대립 전선을 약화시키고, 한국사회 모순을 악화시키는 기득권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든 '사회연대전략'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대중 투쟁보다 의회 활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내달을수록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더욱 심화했다.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 것은 현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이하 열우당)에 대해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지 못한 태도였다. 당시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열우당과의 공조를 통해 기성 정치 체제에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싶어 했지만, 이는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위상을 약화시켰다.

2007년 권영길 후보가 받은 3.1%라는 초라한 대선 결과를 계기로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부터 심화된 갈등*이 폭발하게 된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대선 성적에 책임지고 사퇴한 뒤 심상정 비대위가 등장했다. 심상정 비대위는 “민주노총당, 친북당, 운동권당” 에서 벗어나자는 혁신안을 제출했지만 대의원 대회에서 부결되었다. 결국 노회찬ㆍ조승수 국회의원과 심상정 비대위를 지지하던 이들이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분당은 단순히 좌우 분열로 설명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 내 좌파 세력 중 하나였던 다함께는 탈당에 반대했고, 탈당 후 진보신당에 참여하지 않은 세력과 당원도 있었다. 잔류파의 다수였던 진보당 계열은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했지만, ‘민주노총 당’ 극복 안에 대해서는 모호하거나 찬성했다. 반면, 좌파 일부가 진보신당으로 갔지만, 진보신당 주류는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했다. 이후 몇 번의 이합집산을 거쳐 현재의 진보 4당 체제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한국의 진보정당은 당시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로 오히려 이 약점을 강화하는 방식의 대안을 내놓고 있는 형국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 당시 민주노동당 내 경선 결과는 1위 권영길 52.74%, 2위 심상정 47.26%로 매우 간발의 차이였다. 당내 갈등은 현 진보당 계열의 패권주의, 북한에 대한 입장 등 다양했다. 당시 갈등이 양쪽 어느 한편에만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논쟁이 많으므로, 갈등을 원인을 특정한 정파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일각의 태도는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 관련 글 읽기 : 2000년 이후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의 선거 대응

민주노총 정치방침

민주노총은 올해 4월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진보통합정당방안에 대한 표결을 하지 않고 정치방침TF를 만들어서 원점에서 재검토하되 새로운 안을 만들어 8월 대대를 통해 확정하기로 했다. 진보당계라고 할 수 있는 현 민주노총 다수파가 지난 4월 바로 결정하지 않고 토론을 위한 유예기간을 둔 것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지만, 이후에도 다수파의 의지를 관철하는 방식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의당계열과 진보당계열은 이미 2008년 초, 2012년 여름 두 차례나 분열하였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동북아시아에서의 미중 간 제국주의적 긴장 고조와 북한 사회 성격문제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쟁점은 해소되기는커녕 최근 동북아정세의 불안과 윤석열 정권의 국가보안법 남용 속에서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지속적인 정세 토론과 공동 활동이 부족한 상태로 다수파의 의지로 합당을 밀어붙이는 것은 단결이 아니라 분열을 낳을 가능성이 더 크다. 여전히 존재하는 정치적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노총이 주도해 단일한 정당을 건설하겠다고 밀어붙인다면 엄청난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지적한 바 있다. *

* 관련 글 읽기 : '연합'없는 진보대연합당도, 퇴행적인 제3의 길도 지지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들 사이 연대 가능성의 문제에 선행해서 따져야 하는 것은 진보정당들이(이 글에서 2023년 현재 진보정당은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으로 한정한다.) 협동할 필요를 인정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보수양당들의 지리멸렬한 무능과 부패 경쟁 속에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매우 높은 지금, 진보 정당이 주요 야당으로 성장해 의회에서 사회운동을 대변해 개혁의 임무를 수행해 주기를 바라는 기대치는 여전히 적지 않다. 현재 조건에서는 억지로 만들어내는 합당보다는 서로에 대한 신뢰 속에서 형성되는 ‘선거연합’ 형태가 좀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효과적이지 않고 불안정한 합당 추구보다는 윤석열 정부가 곳곳에서 자행하고 있는 당면 투쟁들에 더욱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사회운동이 강화되고 그것의 성과가 누적된다면 그 결과로써 이후 적절한 결집체가 가능한 때가 올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안별 공동전선에서 함께, 더 자주 사회운동을 건설하는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야 말로 지금 현재 진보정당들이 시급히 나서야 하는 방향이다. 이러한 방향성에 비추어 볼 때 현재 의회에 여섯 석을 가지고 있는 ‘최대’ 진보정당, 정의당의 최근 재창당 논의 속에서 여러 가지 논란들은 우려스럽다.

정의당 재창당

진보 정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강과 이념, 그것을 구체화한 정책과 사회 운동 속에서의 조직력이다. 그러나 근래 정의당의 우선순위는 이러한 중요한 가치보다는 언론 중심적 의원 활동과 정치 공학적인 구도 속에서 의석수를 늘리기 위한 민주당과의 ‘협상’에 있었다. 진보적인 가치를 세우고 그것에 걸맞은 사회운동을 조직하겠다는 관점은 당내에서 계속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그 결과 선거 정책에 있어서도 진보정당의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해왔다.

정강과 이념이 없는 것이 그동안 정의당이 보여준 가장 뼈아픈 약점이라는 점에서 이번 재창당 안에서 그런 점이 강화되어야 한다. 정의당의 혁신재창당안은 정강이라 할 수 있는 사회 비전 논의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내용은 20년 동안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사회연대’ 전략, 탄소세, 시민최저소득 등의 일관성 없는 “복지정책”수준에서 더 나아갔다고 보기 어렵다.

‘정예출마’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의당 “지도부 관계자는 과거 선거에서는 최대한 많은 후보자가 출마해 당 득표율을 높여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다수 출마 전략’을 썼다면, 내년 총선에서는 ‘정예 후보 전략’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지역이 서울 노원병(이은주 원내대표)·마포을(장혜영 의원), 경기 성남 분당갑(류호정 의원), 광주 서구을(강은미 의원), 인천 남동 지역(배진교 의원)과 경남 창원 성산구(여영국 전 대표), 인천 연수을(이정미 대표) 등이다.” 이 ‘정예 후보 전략’은 예전만큼 지역에서 출마할 후보군이 없는 당의 악화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당내 조건에서 기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민주당과의 모종의 연대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기도 하다.

* 관련 기사 보기 : 정의당 ‘지역구 8석+α’ 목표…5%대 박스권 지지율 탈출 관건

지난 6월 1일 정의당 전국위원 지역위원장단 연석회의에 제출된 <재창당 기본계획 토론>안에는 “민주당과 정의당은 근본 사명이 다르고, 민주당과의 정치연합이 상수가 되고 전략이 될 수는 없음. 정의당의 독자노선을 분명히 하고, 공존과 협력의 정치를 통해 적대적 대결정치를 극복해야 함” 라고 표현되어 있다. ‘독자노선’은 그저 수사이고 ‘(민주당과의)공존과 협력의 정치’는 지향이 아니냐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거 연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같은 보수정당과 연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최근에 신당 창당을 천명하고 있는 민주당 출신의 금태섭이나 양향자 등이 주도하고 있는 당들과의 연합에도 해당된다. 보수야당과의 연합이 득표율 그 자체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기본 이해관계가 반대인 당과의 야합은 결국 사회운동의 힘을 약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러한 약화를 유시민과의 연합에서 확인한 바 있다.

한편, 위 안은 “노동정치 대안을 추진하는 세력, 녹색을 포함한 제3정치 세력과의 연대와 통합을 포함한 세력 규합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하지만 해당 간담회에서 <재창당 기본계획 토론> 안은 다수에게 지지받지 못했다. 애초에 재창당이 필요한 지조차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완전히 새로운 신당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논란이 분분한 상태에서 다섯 시간의 간담회는 성과 없이 끝났다.

이후 당내 의견 그룹 간 간담회를 거쳐 수정된 <혁신 재창당 추진방안 승인의 건>이 지난 6월 24일 정의당 전국위원회에 제출되었다. 세력재편 추진 방안 ①번은 “당의 사회 비전과 가치에 동의하며 기득권 양당체제를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가진 <노동정치세력>, <기후·녹색 정치세력>, <제3의 정치세력>과 합당 및 통합의 방식으로 신당을 추진”하는 것을 제안했다. 기존의 ‘재창당’안을 ‘신당창당’으로 바꾼 수정안은 조성주를 위시한 당내 의견 그룹인 <세 번째 권력> 이 과감하게 주장하는 우경화 제안을 수용하는 데 무리가 없는 문장이다.

당일 전국위원회에서 김세규 전국위원은 “재창당 과정 속에서... 무분별한 세력 규합에만 치중한 나머지 우리 진보 정당이 지향해야 될 가치를 버리는 어떤 기계적인 결합들을 추진하는 부분들이 보이”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박수정 전국위원은 “(당내)모 그룹에서 ‘신당은 정의당 중심의 신설합당이 아니라 정의당 해체를 전제로 한 신당이다. 신당창당을 위해 어떤 정파의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이 대표님의 입장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라고 질문하였지만, 이정미 대표는 “확인해보고 나중에 답변드리겠습니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박 전국위원은 “제3의 정치세력에 대한 해석이 다 분분”하므로 현장에서 답변할 것을 재차 요구하였지만, 이 대표는 끝까지 답변하지 않았다.

한민정 전국위원은 “세력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고, 제시도 할 수 없는 대상을 두고 신당을 창당한다고 하는 것은 우려가 된다”며 “(대구시당 운영위위에서는 )제3의 정치세력이 누구인가, 혹자는 지금 나오고 있는... 금태섭, 양향자 더 나아가서는 천아람 등등의 국힘에서 나와서 신당을 창당하고자 하는 이런 세력들까지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이냐라고 이해가 되어져서 신당을 추진하다는 것에 대해서 정의당의 가치를 져버리는 방향이라고 우려하고 걱정하고 심하게 비판하셨다” 고 지적했다.

한민정 전국위원의 지적에 박종현 사무총장은 “사회비전과 가치에 동의한다라고 하는 전제를 달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한민정 위원께서 몇몇 언급하신 분들은 지금 그들이 어떤 걸 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다만 그들의 정치의 궤적들을 보면 누구나 다 그분들과는 우리의 계획과 무관하다, 같이 할 수는 없다 라고 판단이 들 것이고, 그것은 여기계신 분들 중에 이 문구를 그대로 해석할 경우에 그렇게 해석하실 분들은 없다고 생각이”든다는 장황하고 다소 모호한 답변을 남겼다.

이런 우려 속에서 박수정 전국위원은 “제 3의 정치세력은 진보입니까? 국민들과 언론은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당의 핵심적인 정체성과 미래에 관한 문제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그리고 그것이 다양한 해석을 낳게 해서는 안됩니다...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서는 안 되고 그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국민들이 알고 있는 제3의 정치세력은 언론에서 거론하고 있는 (금태섭 등의) 신당입니다...따라서 실체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당 내외 지속적인 논란을 일으켜 원심력으로 작동하게 될 ‘제3의 정치세력’을 삭제해야 합니다“ 라며 원안의 <제3의 정치세력>을 삭제하는 수정안을 제출하였지만 23%(83명 재석 중 19명 찬성)의 지지 밖에 받지 못하고 부결되었다.

결과적으로, 세력재편 추진방안 ①번은 원안이 통과 되었고 논란이 된 ‘제 3의 세력’과의 합당안은 당의 오른쪽 문을 활짝 열어 제3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안이라는 의심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지난 15일 장혜영 의원은 ‘YTN뉴스LIVE’에 출연해 “정의당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끝났”고 “안타깝지만 이제 정의당이 아닌 제3당이 필요하다”며 ”내가 만난 많은 책임 있는 정치인들 그리고 당원들께서도 이제는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정의당의 재창당이다, 이런 의견에 공감해 주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장의원이 말하는 제3당이 20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한 사회자유주의*인 ‘제3의 길’ 를 일컫는 지는 정확치 않다. 하지만, 최근에 그가 몸담고 있는 정의당내 의견그룹 ‘세번째 권력’이 금태섭 등과 자리를 같이하며 보이는 모습은 위험해 보인다.

* 사회자유주의 : 1990년대 이후 사회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것

얼마 전 정의당내 좌파적 의견그룹인 ‘전환’을 탈퇴한 청년정의당 대표 김창인도 “제3지대 연대연합으로 대안정당을 창당해야” 한다며 “좌우합작 신당 창당을 통해, 87년 체제라는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정쟁의 정치가 아닌 우리의 삶을 바꾸는 대안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자며 중도파들과의 합당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렇듯 당의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대한 당내 논란은 ‘현실적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당의 우경화를 주장하는 내용이 꽤 많다. 이런 주장들은 지난 대선 심상정 후보가 했던 ‘민주당과의 국민연정’ 구성, 안철수 후보와의 ‘제3지대 연대’제안 행보와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정의당이 처한 위기는 ‘제 3의 세력’과의 ‘현실적인 연대’라는 방식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방식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 2020년 6월 플랫폼C는 “정의당의 ‘정의로운 복지국가’ 재검토해야”(이효성)* 글을 통해 정의당이 나아갈 바에 대한 글을 실은 바 있다.

이 글의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증세와 보편 복지는 더 이상 정의당만 외칠 수 있는 구호도 아니다. 이념에서부터 민주당과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지 않으면 민주당의 하위파트너 취급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당의 이념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민주당 및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선의’로 대하는 제 정치세력과 완전히 구별되는 이념을 채택해야 한다. 심화된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이념을 채택함으로써 민주당과 정의당은 전혀 다른 세력임을 천명해야 한다. 그 이념의 이름이 민주적 사회주의인지, 생태 사회주의인지, 보다 분명한 사회민주주의인지, 혹은 또 다른 무엇인지 논의해야 한다. 분명한 건 ‘~주의’로든, 아니면 새로 개발한 문장이든 상관없이 ‘평등’이라는 가치를 최대한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당의 이념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와 복지 프레임을 뛰어넘는 이념으로서 분배만이 아니라, 소비와 생산으로 파고드는 급진적 평등주의가 필요하다. 진보정당 존재의 의의는 하층계급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생산에서부터 불평등이 발생한다. 시민들에게 생산과 분배의 사회적통제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의 이동이 필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건물주와 재벌 총수가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등 자산, 기업의 소유권에 이의제기 할 것이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주택소유 상한, 건물주 임대소득 제한, 물·전기·교통 등 공공재의 전면적인 사회화, 노동자의 기업통제 및 운영에 대한 개입이 필요하다. 초국적 자본의 활동을 그 출발선에서부터 개입해야 한다. 진보적인 정치권력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평등의 가치를 최대한 밀어붙여야 한다.”

수년 동안 정의당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는가에 매몰되어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라는 자신의 이념을 형성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많아진다는 것은 당연히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보정당의 역할을 다한 것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기존 보수 정당과의 거래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글의 서두에 소개했던 짧은 기간의 민주노동당의 양적 성장은 해당시기 급진적인 주장과 사회운동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결과로서 얻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작년 924 기후정의행진과 올해 414 기후정의파업이 보여주는 체제전환적 사회운동이 성장의 첫발을 내딛고 있는 지금,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적 체제를 상상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진보 정당은 이윤이 아니라 필요를 중심으로 계획되고 움직이는 사회를 꿈꾸는 “체제전환” 정당이다. “정의당은 정부여당 개혁의 견인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불평등의 불을 끄는 소방차가 되어야 한다. 정의당의 정책이 십여 년 후에나 타 정치세력의 손에 의해 빛을 보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등대정당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지금 판을 뒤집고자 하는 진보주의자들이 모여드는 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