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을, 서울을 퀴어링하기 - '노출'이 불쾌하다면 자신의 편견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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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퀴어문화축제는 그동안 개최했던 서울광장에서 진행하는 것을 방해받았지만 을지로에서 차별에 맞서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로 결정했다.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이들과 그를 묵인하는 정권으로부터 전방위적으로 공격 받고 있는 성소수자운동에 연대해야 한다.

2023년 6월 28일

[읽을거리]페미니즘퀴어, 퀴어문화축제, 성소수자

“서울시민의 광장이라는 게,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공성이 되게 강해야 된다는 거죠...그런 부분에 있어서 논란이 있고 서로 문제가 있다고 그러면, 퀴어축제라던지 문제가 있는 축제들은 저희 위원회에서 걸러내야 될 것 같고요.”

지난 5월 3일에 열린 서울시 ‘열린광장 운영시민위원회’(이하 ‘광장운영위’) 에서 한 위원이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 불허를 주장하며 한 말이다. 결국 당일 ‘광장운영위’에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하고, 대신 ‘청소년·청년 회복콘서트’(이하 ‘회복콘서트’)가 서울광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공공기관이 소수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일은 빈번했지만, 이번처럼 대놓고 소수자가 아닌 혐오세력에게 자리를 내어준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90일 전인 4월 3일에 서울광장 사용을 신고했다. 하지만 같은 날 기독교계 단체인 CTS 문화재단의 ‘회복 콘서트’가 같은 장소에 중복 신고 되었다. 이에 기독교계 단체들이 모여서 만든 ‘거룩한 방파제 통합국민대회 준비위원회’는 4월 17일 “서울광장에서 음란한 동성애 축제는 불허되어야 한다”며 ‘회복콘서트’ 광장 사용 승인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4월 26일, 조직위는 서울퀴어퍼레이드 서울광장 사용 신고 관련 진행 상황을 공유하면서 서울광장 사용 신고 절차에 있었던 비민주적 의사 결정을 폭로했다. 조례에 따르면 동시 신고된 단위들 간 조정 절차가 먼저 진행되고 ‘광장운영위’에 안건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번엔 조정 절차가 없었다. 조직위는 종교계 일부, 주류 언론, 광장운영위에 참석하는 서울시 의원까지 다 같이 말을 맞춘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일주일 뒤인 5월 3일, 갑작스럽게 열린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에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서울시 측은 ‘어린이 및 청소년 관련 행사’가 우선이기 때문에 이렇게 결정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성명서를 통해 아래와 같이 서울시의 입장에 반박했다.

....조례에 따른 것이라는 서울시의 이 같은 입장은 단지 핑계일뿐 그 근저에는 결국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깔려 있다. ‘회복콘서트’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그 목적 자체가 퀴어문화축제를 방해하고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국교회언론회는 지난 4월 “서울광장에서 음란한 동성애 축제는 불허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제는 서울시가 과감하게 청소년, 청년들의 회복을 위한 콘서트에 자리를 할애해야 한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교회언론은 최근 퀴어문화축제를 막기 위한 국토순례 출정식을 보도하며 ‘회복콘서트’가 같은 날 신고되어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행사를 주최하는 CTS는 2020년 차별금지법 대담을 하며 성소수자 혐오를 전파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의 법정제재를 받는 등 성소수자 혐오 선동을 해온 방송사이다.
이러한 정황들에 비추어보면 ‘회복콘서트’는 서울시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어린이 및 청소년 관련 행사라기 보다는 문화행사의 외피를 띄고 있지만 성소수자 혐오 선동과 비과학적인 전환치료 홍보의 장이 될 것이 명백히 예상된다. 결국 해당 행사는 성소수자 혐오에 기반하여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방해할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차별없이 광장 사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례의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고 형식적인 우선순위를 내세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광장사용을 불허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15년 성소수자 행진이 반대 단체의 방해로 가로막힌 사안에 대해 “민주주의에서 반대시위의 권리는 시위의 권리행사를 가로막는데 까지 확장될 수 없다”며, “차별적 의도를 가진 폭력행위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기본권침해에 눈을 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이번 조치는 성소수자 혐오에 기반한 집회 방해에 눈을 감고 오히려 혐오와 차별에 동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가오는 2023년 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이다. 올해는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시작한지 3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성소수자 운동의 오래된 투쟁을 통해 이룬 여러 진전을 또 다시 가로막는 서울시의 행태에 수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서울광장에 혐오가 전시될 공간은 없다. 서울시는 즉시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광장사용신청을 수리하라.

5월 28일, 조직위는 퀴어문화축제를 안전하게 개최하고 혐오세력의 방해를 막기 위해 집회신고 줄을 서는, 일명 ‘줄서기 투쟁’을 제안했다. 혐오세력의 방해를 막기 위한 줄서기투쟁은 2015년과 2019년에도 있었는데, 투쟁에 참여한 시민들의 활약으로 집회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 5월 28일에서 31일까지, 3개의 경찰서에서 89시간에 걸쳐 이어진 2023년의 ‘무지개 줄서기’는 64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투쟁의 노고 끝에,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을지로 일대에서 열리게 되었다.

퀴어문화축제 불허 사유가 ‘공공성’?

서울퀴어문화축제 서울광장 사용 불허 조치를 내린 7기 ‘광장운영위’는 2021년 보궐선거로 당선된 오세훈 시장이 임명한 위원들로 서울시의회 의원 4명(국민의 힘-송경택, 박상혁, 허훈 / 더불어민주당-박유진)과, 국민의 힘 주변 인사들 3명(윤기찬, 김영윤, 함인경)이 포함되어 있다. 5월 11일 공개된 ‘광장운영위’ 회의 속기록을 보면, 위원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성적 보수주의, 공공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 등이 서울퀴어문화축제 서울광장 불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걸 알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불허 사유는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공성에 안 맞는다. 왜?

  • 반대 집회 등의 ‘논란’이 있다. 대규모 시위 충돌은 시민 안전과 직결되니까 위험하다.
  • 유해음란물 판매와 과다노출 등 ‘건전한’ 성문화가 아니다. 청소년법에 위배된다.
  • 기독교 측의 청소년청년을 위한 회복콘서트가 더 공공성이 강하고 갈등 유발 여지가 적다.
  • 소수자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기엔 다수의 보지 않을 권리도 있다.

서울광장은 시민 모두가 이용하는 공공의 성격을 띠고 있으니 공공성에 부합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공공성은 뭘까? 공공성(公共性)의 기본 개념은 한자 그대로 풀어쓰면 사회와 연관된 공(公)적인, 공동적으로(共) 합의해야 할 가치나 성질(性)을 뜻한다. 『공공성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조현상은 “인민, 민주주의, 공공복리(사회 정의와 평등)를 공공성의 3요소”로 말하며 “헌법상의 공공성이란 주체인 인민이 민주적 과정을 통해 모두를 위한 공공복리를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양한 인민으로 이뤄진 정치공동체는 의사결정에 있어 다양성의 조화를 추구하며, 사회적 부담과 혜택을 분배하는 데 있어 정의롭고 평등한 기준을 세우려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공성은 민주주의, 사회정의, 평등에 대한 성취를 기본 목표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주장하는 공공성은 이러한 상식적 개념에 어긋난다. 조직위가 지적했듯이 이번 서울광장 사용 불허는 조례에 따른 조직위와의 조정 절차도 생략하고 ‘광장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불허를 통보했다. 소수자를 은폐하고 다수에게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공간을 쓰는 것은 다양성과 사회평등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절차적 측면에서도, 가치의 측면에서도 공공성에 부합하는 것이라고는 한 구석도 찾아볼 수가 없는데 대체 어디가 공공성을 띤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음란하고 노출 심한’ 퀴어가 어떻게 ‘양지’로 나올 수 있냐며 ‘공적’ 공간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유구한 레파토리다. 이들은 성소수자 = ‘음란행위’라는 도식과 ‘성에 대한 건전한 사회적 통념’을 내세우며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는 성폭력과 성소수자들의 자기표현 간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범죄화한다. 모순적으로 이성애는 성폭력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섹슈얼리티 실천임에도 범죄와 가장 무관하게 여겨지며 이성애의 ‘음란함’은 특히 이성애자 남성 위주로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음란행위’를 문제 삼아 성소수자를 배제하며 ‘건전한 성관념’이 보호하려는 것은 가부장제의 성별이분법 이성애 중심주의 지배 규범이다. 성소수자의 ‘노출’은 지배 규범이 은폐해왔던 걸 드러내고 비퀴어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간을 전유하려는 시도이다.

서울시는 반대 집회와의 충돌 및 갈등 가능성을 퀴어문화축제의 탓으로 돌리고 ‘다수의 보지 않을 권리’를 내세우며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퀴어문화축제에 사사건건 반대하며 성소수자 차별 선동을 퍼뜨리는 혐오세력들에게 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이성애자들과 달리 한번 자신을 드러내려면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성소수자들이 똑같은 위치에 있지 않다. 공공성이니 노출이니 여러 핑계를 대지만, 노출이 없다고 해서 혐오세력들이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반대를 철회할 리도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새로 임명한 ‘광장운영위’ 7기는, 2022년 3월 임기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서울광장 사용 불허’ 결정을 세 번 내렸다. ‘코로나19 백신 희생자 추모 합동분향소 설치’, ‘10·29 이태원 참사 시민추모문화제 분향소 설치’, ‘서울퀴어문화축제’. 이 불허 결정들은, 문제는 ‘노출’이 아니라 서울시의 편향된 기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성소수자 탄압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성소수자에 대한 탄압이 전면화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퀴어가 항상 약자는 아니다’라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서울광장 불허가 정당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2023년 6월 17일에 열린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행정대집행을 맞닥뜨렸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집회 중 도로 행진은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대구시장이 공무원들을 동원해 강제 집행을 시도해 공무원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강제집행하려는 공무원과 경찰의 대치
강제집행하려는 공무원과 경찰의 대치

혐오세력들은 2018년 인천퀴어문화축제에 천여 명이 몰려가 퀴어축제 참가자들에게 폭행, 폭언, 불법촬영, 성희롱 등의 범죄행위를 가해 사회적 비난을 받은 후에는 가시적인 폭력은 가급적 삼가고 있다. 하지만, 다른 방식의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맞불집회이자 ‘건전한 성관념’을 설파하기 위한 ‘회복콘서트’도 같은 맥락이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와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는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 및 손해배상 1억원 청구의 민사소송을 대구퀴어문화축제에 걸었다. 인천여성영화제에게 ‘퀴어 등 의견이 분분한 소재는 제외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던 인천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는 투쟁의 길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불허에 굴하지 않고 집회 신고 ‘무지개 줄서기’ 투쟁 끝에 장소를 확보해 을지로에서 개최한다. 대구퀴어문화축제는 5천여 명 참여해 성황리에 치러졌고 기독교 혐오세력들의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과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되었다. 비록 서울광장에는 기독교 혐오세력의 콘서트가 열리겠지만, 혐오의 목소리가 과대표 되지 않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연대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물론 서울퀴어문화축제에는 아쉬운 점들도 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보와 차별에 저항하는 목소리에 대한 공권력의 억압 속에서 매년 미국 대사관의 지지 및 후원을 받고 있다는 점은 달갑지 않다. 남반구에서 노동 착취를 행하며 핑크워싱으로 이윤을 내는 초국적 기업들의 후원을 여과 없이 받는 것도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작년 퀴어문화축제에서는 의약품 독점과 비싼 약가로 성소수자와 HIV감염인을 비롯한 시민들의 의약품접근권을 저해하는 초국적 제약회사 길리어드를 스폰서십 파트너 부스와 행진차량으로 참여시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정상성’ 내부에 들어가려는 제도적 전략 등은 가시화될 수 있는 퀴어가 자본과 ‘선진국’ 국적 혜택을 받은 소수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이러한 아쉬운 점들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민주적 소통을 통해 함께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오는 토요일인 7월 1일, 플랫폼씨도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다.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장소는 을지로입구역 4번 출구 앞~을지로2가 사거리~청계천 삼일교 앞이다. 행진할 때 서울시가 ‘잘’ 볼 수 있게 서울광장 주변도 지나갈 예정이다. 동시에 혐오세력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서울시의 차별행정을 비판하는 규탄 행동 “그래도 무지개는 뜬다”를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하며, 플랫폼씨도 공동주최 단위로 연명한다. “모든 곳에 우리가 있다”는 걸 선언하는 이 자리에 함께하자. 우리의 선언은 혐오세력과 서울시뿐만 아니라 숨어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서울 전역에 퍼져 서울이라는 공간을 퀴어링할 것이다. 반드시 퀴어나라를 피워내기 위해, 함께하자!

글 : 김현빈

교열 : 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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