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과 사회운동의 과제

국민연금 개혁과 사회운동의 과제

플랫폼C 4월 월례포럼에서는 국민연금에 덧씌워진 오해와 왜곡을 밝히고, 사회보장제도기능 강화운동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2023년 5월 20일

[활동]월례포럼민주주의, 반빈곤운동

고령화와 저출생 때문에 국민연금을 대대적으로 개혁(또는 개악)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연금을 내기만 하고 전혀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사회운동세력은 이 문제에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이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4월 29일 플랫폼씨 사무실에 모여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의 발제를 듣고 토론했다.

지난 3월 16일 프랑스 의회에서 정년을 연장한다는 연금 개혁안이 가결되면서 파리는 이 개악안에 분노해 거리로 뛰쳐나온 백만명의 시민들로 도심이 꽉 차고 곳곳에선 방화가 일어났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는 노동조합를 중심으로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는데 그 수가 주최측 추산으로 200만명이 넘었다. 비록 프랑스의 연금 개혁안이 취소되지는 않았으나, 앞으로도 당분간 프랑스 노동계와 정부의 대립은 지속될 전망이다.

그런데 한국은 프랑스보다 출생률은 낮고, 노인빈곤율은 높다. 올해 1월 윤석열 정부는 연금 개혁을 3대 개혁 중 하나로 꼽으며 개혁 의지를 드러냈지만 정작 구체적 개혁(개악)은 총선 이후로 미루려는 태세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개혁이 시작되면 ‘표’가 모이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힘들지만 가야하는 길”이라며 예고만 반복하고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는 한국 외에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의 고령화와 저출생 진행 속도가 유독 빠르긴 하지만 고령화와 저출생 때문에 국민연금을 대대적으로 개혁(또는 개악)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연금을 내기만 하고 전혀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사회운동세력은 이 문제에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이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4월 29일 플랫폼씨 사무실에 모여 이제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의 발제를 듣고 토론했다.

1988년 한국에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되고 10년 후 1998년에는 국민연금이 모든 계층으로 확대되었다. 동시에 1차 국민연금 개혁이 시행되면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연금 가입기간 40년 기준으로로 전체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 대비 급여로 받는 비율)은 70%에서 60%로 삭감되고 수급연령을 현재 60세에서 향후 조금씩 향상시킬 것과 국민연금 재정계산제도를 5년마다 실시할 것을 결정하였다. 즉 이때부터 이미 국민연금의 재정문제가 불거지면서 이후 국민연금 축소를 예고했다고 볼 수 있다.

2007년 국민연금 개혁으로 2008년 가입자의 소득대체율은 45%, 2028년 가입자의 예상 소득대체율은 40%까지 급격히 떨어졌으며 5년마다 실시한 재정계산에서 국민연금 기금의 소진시점은 계속해서 빨라졌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내고 또 받는 주체인 국민이, 자신의 삶과 깊이 관련있는 국민연금 문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 배제되어 온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회보장확충

반면에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는 국민연금 기금에 관심있는 금융 자본, 기업가의 목소리가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연금 제도의 개혁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2023년 8월 공청회 후 10월에 정부가 국민연금종합계획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총선 이후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전에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에 대해 국민 스스로가 판단하고 해법을 내려야 한다.

1. 먼저 ‘연금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살펴보자. – 윤석열 정부를 비롯한 보수 언론 (민주당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에서는 연금 문제의 원인이 ‘현재 세대’에 있으므로 이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세대’에 속하는 연령대는 대개 현재 직장에서 연금을 내고 있는 20대 후반,30대 초반~65세 미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65세 이후에 이미 연금을 받기 시작한 노인 세대는 어쩔 수 없지만 아직 직장을 다니는 다음 세대가 ‘희생(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해야 그 자녀 세대의 연금이 고갈되는 것을 늦출 수 있다는 논리다. 단적으로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지워서는 안된다”는 것이 주요 논지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연금 문제’의 원인이 저출생과 노령화이기에 저출생과 노령화를 막지 못한 현재 세대가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계적으로 연금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 할 수 있지만, ‘현재 세대’가 전적으로 ‘연금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은 아니다. 즉 고령화+저출생=연금 고갈=사회적 부담이라는 등식은 당연하지 않다. 노인 세대는 ‘국가의 공적 지출이 필요한 짐’이 아니라 ‘연금 수입으로 소비 경제의 일부를 담당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정부가 국민 연금에 공적 지출을 늘리는 것은 ‘사회적 부담 증가’가 아니라 ‘사회보장 확충’의 시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며 사회보장을 튼튼히 하는 것이야말로 수십 년 후 자신도 노인이 될 ‘미래 세대’ 를 위하게 된다는 것이 진보사회운동 세력의 입장이다.


2. 그러면 ‘연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 정부와 보수세력은 연금의 수익률을 극대화하여 기금 고갈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연금기금의 소진은 곧 국민연금제도의 파산이기에 국민연금 적립규모를 최대한 늘려 재정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한다. 보수언론은 국민연금이 어디에 투자해서 얼마의 이익을 냈는가에 관심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고수익을 내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음모

그러나 기금 고갈이 곧 연금제도의 파산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국민연금’을 약화시키고 ‘사적연금’을 부각하려는 금융권의 음모에 가깝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도 “미국 국민연금제도의 위협은 연금제도가 취약하다고 주장하는 자칭 연금 개혁론자들이다”라고 논평한 바 있다. 나라별로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한국처럼 몇 십년후(2040년 정점)에 쓸 기금까지 적립해놓은 국가는 없으며 오히려 적립금이 너무 많은 탓에 일부 기업에 과도하게 위탁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이나 인권,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나쁜 기업에까지 투자하는 것이 진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운동 내에서도 ‘국민연금’에 대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작은 국민연금이 ‘세대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내가 만드는 복지 국가’ 등의 단체들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승대신 기초 연금을 강화하고 사적 연금을 도입하는 다층연금체계 강화론’을 주장한 것이다. 발제에서는 ‘다층연금체계’가 국민연금의 재분배 기능을 왜곡하거나 무시하여 국민연금의 역할을 과하게 축소한 점에 대해 비판했다. 또한 ‘다층연금체계’의 논리가 보편적 복지 대신 저소득층을 두텁게 보장해야한다는 오래된 ‘보수’의 주장(저소득층 생계보장을 내세우지만 실은 보편적 복지에 제동을 걸기 위한)과 차별성이 적다는 이유로 ‘다층연금체계’에 부정적인 참가자들과 그럼에도 참고해 볼만하다는 참가자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체제변환

토론은 점차 어느 쪽 안이 더 옳은가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이 중요한가로 옮겨갔다. “국민 연금 문제에서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연금 기금을 지금의 노인 세대가 다 써버린다’는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결국 현재 세대 내의 불평등 문제를 가리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위기 운동과 마찬가지로 국민 연금도 체제변환의 관점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다”

“성장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끝나고 있는데 여전히 성장 중심적 자본주의를 전제로 연금문제를 풀려고 하면 안 된다” “노인 빈곤율 40%는 곧 내가 빈곤 노인이 될 확률이다. = 당장 바꿔야 내 미래도 바뀐다.”

일방적인 국가 주도나 경제 단체의 사적 이익에 좌지우지되는 국민연금 개악을 막아야 하지만 국민연금 전문가들의 토론만으로는 ‘국민연금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 문제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풀어가겠다는 결정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근심하며 노인과 젊은이가 서로의 세대를 이기적이라고 탓할 것인가 아니면 가난한 세대들이 연대하고 투기 자본에 맞서 체제 전환을 요구할 것인가. 사회운동은 우리사회가 가야할 길을 정확히, 힘있게 제시할 의무가 있다.

글 : 박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