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해 힘을 모으자
2023년 5월 31일
지난 5월 25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을 비롯한 30개 경영자단체가 노조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사용자 개념이 확대되어 “원청을 상대로 끊임없는 쟁의행위가 발생한다면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는 붕괴”한다며 반대의견을 밝혔다. 경총은 22일에도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의 문제점’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해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경제신문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산업생태계가 붕괴하고 노사관계가 파탄날 것이라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경총 등이 토론회와 기자회견 등으로 연이어 노조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나선 것은, 5월 24일 오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전체회의에서 노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하기로 의결했기 때문이다. ‘본회의 직회부’라고 하는 이 절차는, 상임위원회(상임위)를 통과한 법률안이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60일 동안 계류하면, 소관 상임위가 본회의에 이를 직접 상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다. 왜 노조법 개정안은 환노위, 법사위, 본회의로 가는 통상적인 법 제정 절차에서 벗어나 직회부를 하게 되었을까? 국민의 힘이 노조법 개정 반대를 당론으로 삼아 법사위에서 아무 이유 없이 60일 넘게 노조법 개정안을 논의하지 않아서다.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로 구성된 노조법 개정안은 더디고 힘들게 논의되고 있다. [참고: 노동자의 절박한 외침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노조법 2·3조 개정 목소리 ]
21대 국회에 법안이 상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잠시 돌아보자. 지난 20여 년간 하청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간접적으로 원청과 협상을 하거나, 회사의 손배가압류 소송을 철회시키는 등의 성과를 냈다. 또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결성권도 2010년대 후반에 점차 인정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권리가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청과 원청이 책임을 떠넘기고, 오랜 법정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노조 할 권리를 포기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 과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의 파업 과정에서,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노조법 2조)과 노동조합에 대한 손배가압류 문제(노조법 3조)가 다시 이슈화되었다. 원청 기업의 교섭 회피, 손배가압류 문제를 이제는 정말 해결해보자는 의지가 모였고,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가 2022년 9월 14일 출범했다. 연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등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국회에 조속한 노조법 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겨우내 진행된 투쟁에 국회의 절반만이 응답했다. 노조법 개정안은 국민의 힘 의원들이 표결을 보이콧한 가운데 2023년 2월 21일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많은 법이 그렇듯, 사회운동이 요구한 법은 정치적 협상과 타협을 거치며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가진 법이 된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노조법 개정안 역시 두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먼저 성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원청이 하청노동자들의 ‘사용자’라는 점을 명확히 규정했다는 점이다. 이제 원청이 하청업체에 책임을 다 떠넘길 수 없다. 경총 등이 이 조항에 반발하고 있는 이유다. 둘째, ‘권리분쟁’도 노동쟁의에 포함하여 쟁의행위 범위를 넓혔다는 점이다. 한국은 노동쟁의 범위를 매우 좁게 설정해,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갱신 체결 등의 ‘이익 분쟁’만 노동쟁의로 보고, 체불임금 청산이나 해고자 복직, 단체협약 이행, 부당노동행위 구제 등은 ‘권리 분쟁’이라 하여 정당한 노동쟁의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 분쟁’이 정당한 노동쟁의가 아니라고 하며 손해배상소송을 남발해 왔는데, 이번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런 행위가 제약된다. 셋째, 손해배상 연대책임을 극복하고 개별 책임을 명확히 했다. 지금까지는 수십억,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액을 다 같이 책임지도록 해 조합원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했으나, 현 개정안이 통과되면 조합원 개개인마다 손해배상의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 즉 개인이 전체 손해배상액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조합원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어느 정도는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주도해 수정한 현행 노조법 개정안에는 한계도 있다. 우선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 사용자가 노동자성을 부정하면, 소송을 거쳐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현행 체계가 유지된다. 물론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은 현 노조법으로도 인정받는 추세이긴 하지만, 사용자가 다투려고 할 경우 오랜 법적 다툼을 거쳐야 할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았다. 둘째로는 단순 파업에 대한 손해를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요구, 노동조합이 아니라 조합원 개인에게까지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정당한 쟁의행위의 범위가 넓어지고, 조합원 개인 책임을 묻는 게 일정 정도 제한되기는 하지만 기존의 요구안에 못 미치는 여러 한계가 여전히 있다.
본회의에 상정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노사관계에서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일거에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실질적인 교섭은 하지 못하고, 원청에 찾아가면 책임이 없다고 내동댕이쳐지는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이번 노조법 개정안은 유의미한 진전이다. 장기적으로는 노조 할 권리의 확대로 노동조합이 성장하면, 이번 개정안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적‧제도적 진전을 이루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소관 상임위에서 본회의로 직회부가 될 경우, 30일 이내 합의가 되지 않으면 30일이 지난 후 처음 개의되는 본회의에서 부의 여부가 결정된다. 국민의 힘은 합의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대통령실은 벌써부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4일에는 양곡관리법, 5월 16일에는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법안 의결을 위해서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결국 양곡관리법은 4월 13일 국회에 재상정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6월, 노조법 에도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오랜 투쟁의 성과가 다시 무(無)로 돌아간다.
본회의 통과까지 한 달, 국민의 힘과 대통령에 시민의 여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정권과 정치인들이 나서서 매일매일 노조 혐오를 퍼뜨리고 있는 상황에서, 평범한 노동자들에게는 노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 많이 말해야 한다. 하청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법이 보장해야 한다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쟁의행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자. 노조법 개정안마저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철회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더 큰 저항에 직면하리라는 것을 알려주자.
글: 박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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