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포럼 |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 – 동아시아 국제연대의 어제와 오늘
2023년 4월 21일
지난 2023년 3월 30일(목) 저녁, 플랫폼c 동아시아 공부모임.에서 발행한 팸플릿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 – 동아시아 국제연대의 어제와 오늘』을 다룬 월례포럼이 열렸다. 동아시아라는 범주와 국제주의의 의미,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 국제연대의 역사적이고 현재적인 사례들과 고민을 검토해보는 자리였다. 30여 명이 참여하여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포럼에서는 우선 팸플릿 집필에 참여한 필진이 공부모임을 통해 학습·연구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발제를 진행했다. 먼저 현재 사회운동 내에서도 희미해져 가고 있는 ‘국제주의’의 의미, 그리고 국제연대가 실천되는 구체적 공간이자 다양한 담론을 통해 생산된 범주이기도 한 ‘동아시아’의 의미가 검토되었다.
‘국제주의’와 ‘동아시아’의 의미 다시 묻기
국제주의는 스스로의 혁명을 국민적/민족적인 과제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이념으로 간주했던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자코뱅의 이념으로부터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대혁명 이후 유럽 여러 국가 사이에서 보편적 해방을 모색한 급진주의적 전통은 이후 다양한 조직체들을 통해 국제노동자협회, 이른바 제1인터내셔널로 결집하였고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이념을 체화해나갔다. 국제주의적 운동과 이념이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거치며 세계적인 차원에서 전쟁 반대와 식민주의/제국주의 반대를 위한 투쟁을 진행하고, 20세기 후반 냉전기에는 비동맹운동과 트리컨티넨탈리즘을 통해 이른바 ‘제3세계’를 정치적으로 주체화하려는 움직임으로까지 나아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한편 포럼은 여전히 모호하게 남아있는 ‘동아시아’의 의미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계보를 통해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즉 유럽이라는 타자를 통해 타율적으로 구성되었던 동아시아라는 개념이, 20세기의 복잡한 역사적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때로는 지역의 연대로, 때로는 팽창주의의 정당화 기제로, 때로는 각국의 지배나 자본의 축적에 대한 설명방식으로 변용되어간 과정을 검토해볼 수 있었다. 이는 결국 ‘동아시아’라는 범주는 고정불변의 장소가 아니라 다양한 실천 속에서 재구성되는 유동적인 이념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에서의 ‘국제주의’를 현재화하기 위한 지금 우리의 고민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지속적 교류의 연결망 만들기
이후에는 침략과 전쟁에 반대하여 평등을 구성하고자 국경을 넘어온 동아시아 국제연대의 다채로운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까지 곳곳에서 이어진 동아시아 연대형성을 위한 반제국주의적 연대의 사례를 공유하고, 끊임없이 저임금 지역으로 착취의 공간을 옮겨나가는 자본의 세계화와 금융화 속에서 ‘바닥을 향한 경주’에 제동을 걸기 위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운동들에 대한 발제도 이어졌다. 역사적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과제에 대해 참가자들의 토론과 질문은 더욱 뜨거웠다.
이를테면 국제연대에 있어서 타국에서 억압받고 투쟁하는 당사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마땅한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의 반전평화운동을 살펴보면 일본에선 베트남 전쟁의 폭격 피해자였던 현지 민중과의 연대를 위한 전투적인 운동들이 이어졌고,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그룹 등의 활동가들은 때로는 자국 독점자본 및 국가기구에 대한 폭파 등의 직접행동으로 한국 및 동남아시아에 대해 군사적·경제적 착취를 가하는 일본을 멈추고자 노력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미얀마 군사쿠데타를 지원하거나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선주민 수탈 및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등을 진행하고 있는 자국 독점자본에 문제를 제기하는 직접행동이 유의미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운동이 현지 당사자들과 더 교류하고 공감대를 만들어나갈 필요성에 대한 고민도 존재했다. 당사자의 투쟁 없이 해방을 ‘연대’하는 타자가 대리할 수 없으며, 그러한 원칙에서 벗어날 경우 역사적으로도 안타까운 오류들이 발생해왔다. 이를테면 1885년 오사카에서는 자유당 좌파들이 조선의 ‘해방’과 민권운동을 촉진하기 위해 민비를 암살하고자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폭탄을 제조하고 자금조달을 위한 무장 강도 등의 행동을 준비했다. ‘다행히도’(?) 주요 구성원이 배반·밀고하여 139명이 구속되었다. 이는 주관적 의도로는 ‘의거’일지 모르나 결국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산출하고 말았다. 아울러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과 일정한 사상적 공감대가 있었던 재일교포 문세광의 박정희 저격은 육영수 사망으로 이어지며 한국의 민주적 해방에 이바지하기는커녕 대중운동과 결합하지 못한 채 재앙적 결과로 이어졌다.
국제연대에서 대중운동을 촉발할 수 있는 유의미한 ‘선도투쟁’과 현지와 괴리될 경우 생겨날 수 있는 대리주의적 오류 사이에서 올바른 길을 찾아나가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결국 장기적인 연대의 전망을 모색해나가기 위해서는 현지와의 지속적인 교류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어졌다. 사실 그러한 교류는 당장 언어를 비롯한 일상적 장벽은 물론이거니와, 국가보안법 하에서 외국과의 교류를 엄격히 차단하고 있는 홍콩이나 군부의 철권통치 하에 놓인 미얀마의 실정처럼 엄혹한 조건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방식으로 현지 활동가들과의 네트워크를 단단하게 형성해나가고, 한국에 찾아온 각국 난민 및 이주노동자들과의 연대 활동이나 남반구노조연대회의(SIGTUR), 민주노총 아시아 노조활동가 초청교육, 대안세계화를 향한 서울 동아시아 회의 등 대중운동의 조직적 교류를 지속해나가는 것만이 해답이라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진영론’과 혐오를 넘어
최근 ‘신냉전’ 담론이 등장하고 있을 만큼 미·중 진영의 대립이 표면화되고 있는 조건에서, 겉으론 적대적이지만 오히려 이를 토대로 ‘공존’하는 양대 진영의 국가와 자본을 극복하고 ‘진영론’에 빠지지 않는 국제연대를 모색할 방법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이는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하여 제3세계에서 사회운동 및 진보정치세력이 집권한 후 ‘지정학’의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중국 및 러시아에 친화적 인 입장을 보이게 되는 모순을 살펴볼 때, 동아시아에서도 더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쟁점이다. 한국과 일본·오키나와·대만 등에서 미군기지가 초래하는 생태학살 및 전쟁위기 고조를 비판하면서 중국의 군비증강과 전쟁위협도 일관되게 비판하는 원칙적 입장을 세우고, 이에 공감하는 ‘상대 진영’ 내의 활동가들과 국경을 넘는 교류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고민을 모았다. 한 참가자는 북한 민중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배층의 군비증강을 비판하면서도, 평화체제 확립을 오히려 저해하는 서방의 대북 압박도 비판해나가기 위해 현지에 대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최근 동아시아에서는 각국 지배자들이 주변국에 대한 혐오를 지속적으로 부추기고, 이주노동자 유입이나 타국으로의 공장 이전을 사회경제적 문제의 원인으로 제시하는 극우 포퓰리즘적 선동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 국제주의는 단순히 하나의 ‘부문’이 아니라, 사회운동 전반이 각자의 부문과 현장에서 견지해야 할 ‘방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에서 이주노동자의 연대는 건설업 및 제조업 분야의 현장에서 당면 의제가 되어가고 있으며, 농민운동에 있어서도 식량주권이나 종자주권 등을 위해 다국적자본에 대한 국제적 공조가 절실해지고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 내에서 누군가는 실업으로 누군가는 죽음에 이르는 초과착취로 내모는 자본주의 중심부의 원청을 타격하기 위해선 노동자와 소비자의 국제적 연결망이 강화되어야 한다.
결국 당장 우리의 일터와 삶터 자체가 세계적 급변에 휘말려가는 조건에서, 우리의 ‘동아시아’는 특정한 문화 나 경제 혹은 안보공동체로서 위로부터 타율적으로 주어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여러 현장 간에 이어지는 실천의 교류망을 통해 아래로부터 구성되어야 할 개방적인 대안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연대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이어온 활동가들과 관련 공부를 이어온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고자 하는 유학생까지 참가한 월례포럼은, 그런 의미에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어떤 연결망이 필요할지 그 단초를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실천의 주춧돌을 놓는 데 필요한 풍부한 역사적 및 현재적 실례, 그리고 치열한 쟁점들을 담은 팸플릿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 – 동아시아 국제연대의 어제와 오늘』이 더 많은 이들의 고민을 엮어나가는 데 작게나마 이바지하길 희망한다. 🔥🔥🔥
글 : 이재현
동아시아 공부모임이 기획하고 집필한 이번 책은 국제연대의 이론적·실천적 입론을 지향합니다. 각 챕터는 다양한 이론과 사례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 100년 사이 동아시아 내에서 존재했던 유의미한 국제연대 실천 사례들을 담고 있습니다. 또, '21세기 자본주의에 맞선 동아시아의 대중운동'에서는 오늘날 동아시아 민중이 자본주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 투쟁한 사례들을 돌아봅니다. 이를 통해 국제주의 실천의 의의와 지향을 다시 규명합니다.
01 | 동아시아의 오늘
02 | 동아시아 담론과 동아시아
03 | 국제주의의 이념과 실천
04 | 동아시아 국제연대의 계보
05 | 21세기 자본주의에 맞선 동아시아 의 대중운동
결론 |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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