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 없는 진보대연합당도, 퇴행적인 제3의길도 지지할 수 없다

‘연합’ 없는 진보대연합당도, 퇴행적인 제3의길도 지지할 수 없다

위기의 시대에 좌파는 자신의 사회운동 기반을 강화하면서 기존의 문법을 뛰어넘는 시도를 펼쳐 정치 구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남한의 진보정당들은 그러한 도약을 감행하지 않았다.

2023년 4월 20일

[읽을거리]정치진보정당, 민주노총, 노동조합, 노동운동, 민주노동당, 정의당

분열과 침체

2000년 이후 한국 사회와 사회운동은 신자유주의 개혁의 후과를 도미노처럼 맞닥뜨렸다. 노동유연화가 심화되고 노조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면서 민주노조 운동의 성취가 제한됐고, 사회운동에 대한 국가권력의 통제와 포섭이 이뤄졌다. 지배계급 내에서는 부정부패와 정치에 대한 노골적인 무책임이 만성화됐는데, 이는 바야흐로 ‘정치의 위기’를 불러왔다.

위기의 시대에 좌파는 자신의 사회운동 기반을 강화하면서 기존의 문법을 뛰어넘는 시도를 펼쳐 정치 구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남한의 진보정당들은 그러한 도약을 감행하지 않았다. 자기 기반 없는 체제내화와 전망의 부재 속에서 2007년 민주노동당 분당과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등 갈등과 분열을 반복했다. 나아가 2008년 이후 시민사회운동 주류는 ‘반MB전선’에 함몰된 채 독자적 전망을 구상하는데 실패했다.

이처럼 파국적 상황이 잇따르면서 ‘진보’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는 이완됐다. 이는 사회운동의 정치노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정치적 공백 상태에 대한 시의적절한 대응을 놓치면서 열패감과 낙담은 가중됐다. 심지어 박근혜 정권 시기 야당이었던 신자유주의 개혁정당 민주당이 스스로를 ‘진보’로 칭하면서 ‘진보정당’ 고유의 자리마저 잃어버렸다.

2016년 촛불 항쟁에 참가한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기준에는 뜻을 모았지만, 그밖에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선 스펙트럼이 넓었고, 대안 사회에 대한 합의 역시 미약했다. 이는 대안 세력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고, 대중운동에 대한 장악력을 갖지 못했음을 가리킨다. 오히려 라디오 방송을 무기 삼은 포퓰리스트 선동가들이 대중의 여론을 장악했다. 따라서 박근혜 하야 ‘촛불’에 모였던 상당수 대중은 ‘대통령 퇴진’이라는 초유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개혁정당인 민주당-문재인 선택지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촛불 항쟁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완전히 실패한 운동”이라는 일각의 규정은 지나친 과소평가다. 촛불 항쟁을 경험한 여성-대중은 한편으로는 성폭력에 맞선 싸움을 지속했고, 노동자들은 가파른 노조 가입 물결을 보인 바 있다. ‘전무(全無) 아니면 전부(全部)’식의 평가는 지양해야 한다.

그럼에도 2022년 대선에서 진보정당들과 사회운동이 맞닥뜨린 혼돈은 일정한 패배감을 반영한다. 노동운동 일각에서 ‘민중 경선’이 제기됐으나 합의점 도출에 실패했고, 복수의 진보정당들은 미미한 득표수를 얻는데 그쳤다. 오늘 우리는 그 후과를 마주하고 있다.


‘연합 없는’ 진보대연합당 구상

최근 민주노총과 정의당 안팎에서 다양한 버전의 재편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중앙집행위원회 다수 성원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권으로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해 민주노총 정치방침(안)과 총선방침(안)을 안건으로 제출했다. 이는 밑에서 서술할 민주노총의 정치적 결정과 관련한 노조 운동 내부의 갈등을 낳고 있다. 둘, 재창당을 결의한 바 있는 정의당에서는 다양한 버전의 ‘재편론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어느 쪽도 또렷한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정의당 내의 재편론들은 제각각 다른 입장처럼 보이지만, 가장 적극적인 입장들은 사회운동과 더 멀어지는 길을 택하고 있다. 여기서는 민주노총발 진보대연합정당론에 대해서만 논하고자 한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안) 통과를 지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난 10여년 동안 민주노총은 정치방침을 결정하지 못한 채 복수의 진보정당들을 모두 지지하는 선거방침만 유지해왔다. 가급적 선거구별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고, 지역 내의 협의 등을 통해 뽑은 특정 진보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방식이었다. 한데 진보정당 당선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지역에서는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웠고, 이는 종종 갈등상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이는 2007년 분열 이후 맞이한 복수의 진보정당 시대가 해소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결과다.

현실적으로 이런 선거방침은 힘을 갖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현장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노조 간부가 이런저런 선거방침을 공유할 때 현실적 힘을 발휘하기 어려워보인다면 의문을 갖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지난 10년 민주노총의 제 현장에서는 진보정치나 정치세력화라는 이슈를 두고 제대로 된 조합원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 복수의 진보정당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산하 노조들은 각기 다른 진보정당의 가입서가 돌거나, 대부분 진보정치에 관한 아무 이야기도 나오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당장이라도 진보정당들을 우격다짐식으로라도 설득해 ‘진보대연합당’을 만들어야 할까? 불행히도 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 민주노총 내에서 더 큰 분열을 야기할 것이다.

왜 그런가? 첫째, 과거 진보정당운동의 분열과 실패에 대한 해법이 부재하다. 민주노동당 분열 전 정파 갈등이 심화된 이유는 당권교체 가능성에 대해 평등파가 좌절감을 겪으면서 당 활동 참여가 약화됐고, 정파연합당의 효용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대했으며, 이에 따라 통합적 리더십이 부재해 정파 갈등과 대립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당직‧공직 겸직 금지 규정으로 원내외 지도체계가 이원화되면서 유기적 소통이 이뤄지지 못해 중앙당-의원단 간 갈등도 심화됐다. 분열 원인이 “당 내부의 정파-패권구조, 지배 정파의 ‘종북-패권주의’에 있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지역 당권 장악을 위한 ‘위장전입, 당비 대납, 집단 주소 이전’ 등 ‘자주파’의 비민주적 행태와 권력 독점은 문제적이었다. 물론 자주파에 대한 이념 공세를 통해 대선 실패나 민노당 위기에 대한 공동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점은 원인을 지나치게 외부화한 시선이었다. 나아가 ‘종북주의’라는 딱지를 활용해 자주파를 비판하는 것은 이념과 노선에 대한 정당한 논쟁이 아닌 마녀사냥에 가깝다. 이런 논리는 기성 언론이나 지배 이데올로그가 신‧구 좌파 이념 전반을 공격하고 대안 사상을 봉쇄하게 만들었고, 진보정당의 우경화를 촉진했다. 이처럼 과거의 분열을 둘러싼 고민거리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숙제를 남기는데, 4.24 임시대의원대회는 이런 과제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둘째, 현장에서 꾸준하게 새로운 정치세력화 운동을 제기하고 이를 대중운동으로 조직하기 위한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정치세력화란 몇몇 노동자 출신 정치인이나 인플루언서의 국회의원 당선으로 제한될 수 없다. 그것은 노동 현장에서의 사회운동적 실천이고, 노동자 개개인의 삶을 주체적으로 재조직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모든 운동이 침체된 상태에서, 단순히 대의원대회 표결을 통해 대연합정당을 추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전까지 민주노총의 선거방침은 모두 중집에서 결정해왔다. 산별노조 위원장들의 반대를 거스르고 ‘안’을 상정해 다수를 차지하는 전국회의 경향 대의원들의 표로 밀어붙이겠다는 계산은 노동운동의 분열을 야기할 뿐이다.

셋째, 진보정당들 간의 꾸준한 협력과 논쟁, 공통 투쟁이 전제되어 있어야 상호 신뢰를 쌓고 함께 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 수 있는데 이러한 동력을 쌓았다고 하기에는 지난 과정이 너무 부족했다. 즉, 정치방침(안) 4항과 5항 사이에 필요한 수많은 과정을 생략한다. 기껏해야 두 개의 사례를 들 수 있는데, 2021년부터 약 반 년동안 민주노총이 진보정당들 간 협의테이블을 주도했다는 점, 그리고 일부 지역에 한해 진보정당들 간 협력이 있었다는 점 뿐이다. 이것 말곤 아무 노력도 전제되지 않았고, 심지어 정의당과 녹색당에서는 그러한 미미한 협력조차 기층 당원들로 거의 공유되지 않았다.

넷째, 그 결과 실제 녹색당과 정의당, 노동당 등은 이번 정치방침(안)에 부동의한다. 녹색당은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고 있고, 취재 결과 정의당 역시 모든 의견그룹들이 반대한다. 이번 정치방침(안) 통과를 밀어붙여온 활동가들이 억지스럽게 근거로 제시했던 정의당 내 ‘전환’ 그룹 역시 4월 17일 이 방침에 대한 명백한 반대 성명을 낸 바 있다. 노동당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당 당원들이 함께 하는 ‘좌파결집’이 정치방침(안)에 대해 비판적인 만큼 노동당이 진보대연합정당 건설론에 손을 들어줄 이유는 전혀 없다. 결과적으로 ‘정치방침(안)’을 찬성하는 정당은 진보당 뿐이다. “의지를 갖고 설득하면 된다”(이양수 부위원장)는 식의 주장은 현실과 완전히 어긋나있다.

다섯째, 결정적으로 내용상의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1기 정치세력화가 실패한 이후 사회운동의 담론은 여러 측면에서 변화했다. 정치방침(안)은 “농민, 빈민 등 진보 민중세력 및 진보정당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노동중심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자고 제시하고 있는데, 단순히 ‘노동중심성’을 공염불처럼 외는 것은 젠더 지배와 기후위기(생태계 파괴), 인종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 억압 등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위기에 맞서 응집해야 하는 주체들을 충분히 호명하지 못한다. 이는 노조 안팎의 사회운동 주체들로하여금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오랜 프로젝트가 진정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을 꾀하는 것인지 의심케 할 것이다.

치열한 논쟁과 공동실천부터

기회는 위기의 탈을 쓰고 찾아온다. 준비된 주체에게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혼란스러운 상황은 민주노총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니 이제는 제대로 된 준비부터 해야 한다. 만약 이번 정치방침(안)이 억지스럽게 통과된다면 그것은 지금보다 더 심한 악몽의 출발일 것이다. 정의당 내에서 민주노조운동과 정의당의 분리를 꾀해온 이들은 그것을 빌미 삼아 정의당을 더 오른쪽으로 흔들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민중운동 모두에게 불행이 될 것이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아무런 공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정의당 지도부 역시 문제다. 최근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재창당 전국대장정’을 표방하며 전국을 순회하고 있는데, 단순히 지역조직과 함께 지역 의제에 대해 언급하는 기자회견을 열 뿐, 사회운동적 기획이 부재하다. 이처럼 소극적인 순회를 ‘재창당’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비전없음’을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진정으로 ‘재창당’을 원한다면, 정의당의 오류와 한계부터 되짚고, 민주노총발 진보대연합당 건설론과 정의당 내에서 보수정당 소장파 정치인들과 함께 하려는 여러 시도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쟁해야 한다. (단, 조성주 전 정책위 부의장이 주도하는 ‘세번째 권력’이나 금태섭 전 의원이 이끄는 ‘성찰과 모색 포럼’류의 한국판 ‘제3의 길’은 좌파적 비전에 대한 전향 혹은 기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전자에는 노동운동과 스스로를 유리시키려는 정의당 내 자유주의적 정치엘리트들이 함께 하고 있고, 후자에는 과거 진보정당에 몸 담았던 50·60세대 인사들이 함께 한다. 이에 대해 추후 다시 논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회운동 전체가 합의할 수 있고, 함께 싸울 수 있는 요구안부터 분명히 수립해야 한다. 가령 지난겨울 난방비 인상으로부터 촉발된 전기세 인상, 공공 교통비 인상 등 시도에 맞서 공동의 요구안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경기침체의 고통을 민중에게 전가시키는 모든 시도에 맞서 싸울 연합된 전선체를 결성하고, 이렇게 함께 하는 경험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나가야 한다. 국제 정세에 대한 상이한 입장을 두고 있는 그대로 논쟁하고, 차이와 공통성을 확인해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실천이 부재한 채 단순히 ‘총선이 다가오니 무작정 합쳐야 한다’며 논의를 벼랑으로 내모는 것은 더 큰 파열음을 낳을 뿐이다.

‘반대’만으로 대안을 말할 순 없다. ‘안’이라도 내놓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니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둘러싼 논의가 이번 대의원대회 부결로 그쳐서는 안 된다.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체제변혁을 위한 사회운동 전반의 정치적 구상을 재생시키고, 다른 입장과 평가들이 솔직하고 진지하게 교차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 이를 밑거름 삼아 제대로 된 정치방침을 수립해 중장기적인 한국 사회 변혁의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그럴 책임과 힘이 오늘날 민주노총과 사회운동 모두에게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