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와이퍼의 일방적 폐업과 해고에 맞선 한·일 노동자의 연대

한국와이퍼의 일방적 폐업과 해고에 맞선 한·일 노동자의 연대

일본 자동차부품사 덴소의 한국 법인 한국와이퍼의 노동자들이 협약마저 어긴 사측의 폐업 통보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2023년 3월 1일

[동아시아]일본해고, 외국자본, 일본, 자동차산업, 노동조합

토요타는 일본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토요타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연속으로 독일의 폭스바겐 그룹(포르쉐, 아우디 등 고급 자동차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을 제치고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를 지키고 있다.

현대차가 그러한 것처럼, 토요타 역시 무수히 많은 자회사와 벤더가 있는데, 부품회사 ‘덴소’는 그 중 하나다. 덴소 역시 자동차 부품사 매출 순위에서 오랫동안 세계 2위를 굳건하게 유지할 정도로 존재감 있는 기업이다. 한국에도 '한국와이퍼'라는 이름의 법인을 만들어 공장을 운영해왔다.

덴소는 프랑스의 ‘까르푸’나 ‘발레오’, 일본의 ‘AGC’(아사히글라스), 중국의 ‘상하이자동차’처럼, 외국인투자기업이라는 이유로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각종 면세 및 감세 혜택 등 지원을 받아왔다. 이러한 면세 혜택과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준수한 사업 성과를 거둬왔다. 한데 바로 이 덴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덴소와 한국와이퍼의 철수 계획

한국와이퍼는 2023년 현재 기준 덴소 본사가 지분 38.25%, 덴소의 자회사인 ‘덴소와이퍼시스템즈’가 나머지 61.7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이 회사가 처음부터 덴소의 자회사로 설립된 것은 아니었다. 1987년 경기도 안산의 시화국가산업단지에 설립됐다. 1990년에는 일본와이퍼블레이드(2019년부터 그룹 내 자회사와 합병해 ‘덴소와이퍼시스템즈’로 사명 변경)와 기술제휴를 통해 사세를 확장했다. 1993년 당시에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모두에게 '1등급 부품 납품업체'로 지정될 정도로 잘 나갔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던 2000년에는 유럽 시장으로 수출까지 하면서 그 힘을 키웠다.

그리고 그 즈음 한국와이퍼는 기술협력으로 인연을 맺은 덴소에 회사의 모든 지분을 매각했다. 이후 한국와이퍼는 현대차와 기아차에 꾸준히 와이퍼 장치를 납품하며 회사를 유지해왔다. 2012년엔 한국와이퍼 공장을 통해 일본 자동차 회사들에게 납품할 와이퍼를 전문적으로 생산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던 엔고 현상*으로 인해, 일본에 비해 생산단가가 더 저렴해진 한국 입지를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2공장을 세우는 것은 물론, 인력도 2배로 늘릴 정도였다.

  • 💴엔고 : 엔화와 원화의 교환비율에서 엔화의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을 의한다. 가령 100엔을 한국 돈으로 바꾸면 1천원을 주다가, 엔화 가치가 오르면 1100원을 받게 된다. 2007년경부터 장기간 지속된 엔고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 하 엔화가 안전통화로 인식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중반 엔저 시기에 설비를 확대했던 제조기업들의 경우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일본 공장들의 국외 이전을 추동했다.

한데 한국와이퍼가 생산을 확장하던 2012년 일본 본토에서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중의원 선거에서 3년간 집권 중이던 민주당이 참패하고,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새로운 자민당 정권의 1인자로 등극한 것이다.

뒤바뀐 상황에서 아베 신조는 중장기 경제 어젠다로 ‘아베노믹스’를 내세웠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적극적인 확장적 통화 정책으로 환율을 낮춰 수출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반대로 수입가나 해외 생산의 단가는 이전보다 훨씬 오를 수 밖에 없다. 이로 인해 엔고가 지속될 줄 알고 한국와이퍼를 통한 생산량을 확대하고자 했던 덴소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누구나 항상 올바른 결정만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회사 상층부가 내린 오판의 책임은 보통 경영진이 지지 않고 회사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진다. 한국와이퍼도 같은 길을 걸었다. 제2공장을 세운 결정적인 이유였던 일본 납품 계획이 갑작스레 취소됐다. 나아가 2017년 말에는 오랫동안 공급 관계를 맺어오던 현대차와 기아차가 새로 개발하는 신차종에 와이퍼를 납품하는 수주 계약을 따지 못했다. 원청과 계약을 맺어 하청 생산을 주된 수익 수단으로 삼는 기업이 영업을 등한시했고, 심지어 회사 스스로 밥줄을 내팽개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한국와이퍼의 폐업 계획은 이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노동자들은 새로운 일거리를 전혀 수주하지 않는 회사에 불안감을 느꼈다. 설상가상 모회사인 덴소가 2024년부터 와이퍼 사업에서 전면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들렸다. 그러나 한국와이퍼는 회사의 경영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생산물량이 줄어드는 상태를 방치했다. 초조함 속에서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2018년 6월 금속노조에 가입해 ‘한국와이퍼분회’를 결성했다.

노조 결성 이후에도 한국와이퍼 사측은 회사 유지를 위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노조 설립 직후인 2018년 7월, 덴소의 또다른 자회사였던 ‘덴소오토모티브코리아’ 홍성공장을 폐업했다. 곧바로 8월부터는 홍성공장에서 생산하던 부품을 신생 협력업체 EHE가 대신 제조하게 했다. EHE는 명목상으로만 덴소와 별개 기업이어서, 일련의 과정은 정규직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덴소가 생산구조를 하청-비정규직 위주로 바꾸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같은 그룹 내 계열사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자 더더욱 고용 안정을 위한 투쟁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노조는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하던 2020년 9월, 회사에게 책임 경영과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투쟁을 선포했다. 계속되는 노조의 요구에 결국 2021년 10월, 한국와이퍼 노사와 한국 내 법인들을 관리하는 '덴소코리아', 한국와이퍼 지분과 경영권을 보유한 덴소와이퍼시스템, 그리고 덴소 본사 5자가 고용안정 협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한국와이퍼의 고용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 싶었다. 해당 협약에는 한국와이퍼 사측과 모회사가 함께 고용 안정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 그리고 2022년 매출 목표액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었고, 회사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주사업인 와이퍼 외에도 다른 생산 물량을 확보해 안정적 고용을 달성하겠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회사가 경영을 등한시하고, 오히려 노동자들이 경영 전략에 나서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일방적 사업정리 덴소 자본 규탄, 한국와이퍼 고용안정을 위한 투쟁선포식 [출처: 금속노조 변백선]
일방적 사업정리 덴소 자본 규탄, 한국와이퍼 고용안정을 위한 투쟁선포식 [출처: 금속노조 변백선]

덴소의 먹튀 시도

자본의 욕망은 1년도 안 지나서 이러한 약속을 무위로 돌리고 말았다. 2022년 7월 덴소코리아는 와이퍼사업부의 매각을 선언하고, 이와 함께 한국와이퍼에 대한 청산, 다시 말해 전면적인 페업을 결정했다. 노동자들이 1년 넘게 책임 경영을 요구하며 싸웠고, 실제 협약까지 체결했지만, 덴소 자본은 이러한 약속을 지킬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사측과 덴소코리아, 덴소 본사가 함께 만든 협약을 최소한의 수준이라도 준수하리라 믿었지만 뒤통수를 맞았다. 사측은 협약 조항 상의 "회사는 청산, 매각, 공장 이전의 경우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한다”는 조항을 무시하고, 일방적이고 은밀하게 청산을 추진했다.

불행 중 다행일까, 법적 문제 때문일까. 지난 2월 16일, 사측은 노사 정기 보충교섭에서 2월 18일로 예정된 한국와이퍼 노동자 전원 해고를 철회하고, 유급휴업 시행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회사에 대한 청산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사측은 생산설비를 공장 밖으로 반출하고 처분을 진행하겠다고 노조에게 21일에 통보하고 다음날인 22일에 바로 설비 반출을 시도하다가 노조와 충돌을 발생시켰다.

노조는 법적 소송을 통해 사측의 막무가내 행보를 제지하려 했지만 그 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월 30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노조가 제기한 ‘단체협약위반금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한국와이퍼가 노조와 합의없이 조합원을 해고할 수 없도록 판결했다. 하지만 ‘자산처분양도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서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협약에 명시된 “회사의 청산은 노조와 협의를 거쳐 진행한다”는 문구가 상법의 규정을 위반하기 때문에, “해당 문구의 효력이 법적으로 무효하다”는 것이 기각 사유였다. 이처럼 엇갈린 판단으로 인해, 한국와이퍼의 전면적 해고 계획은 중단됐다. 하지만 실질적인 해고로 이뤄질 회사 폐업은 ‘가처분 신청 기각’이라는 이름으로 날개가 달렸다.

공장 내에서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는 한국와이퍼 노동자들
공장 내에서 투쟁 구호를 외치고 있는 한국와이퍼 노동자들

일본 노동자, 한국 노동자의 손을 잡다

한국와이퍼의 계획이 순탄하게 이뤄지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아사히글라스나 한국산연(산켄)의 노동자 탄압과 회사 폐쇄 계획에 맞선 일본 본사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뭉쳐 현지에서 사측을 압박했듯, 덴소 본사의 노동자들도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4일, ‘전(全)토요타노동조합’(全トヨタ労働組合, ATU)공식 블로그에 ‘한국 덴소 자회사에서 무슨 일이’(韓国 デンソー子会社で何が)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짧은 성명이지만 덴소가 2021년 협약을 어기며 회사 청산과 한국 철수를 일방적으로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 노조가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당국에게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밝혔다.

ATU는 토요타 본사와 계열사, 관계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직종이나 계약 형태,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노동조합으로, 2006년에 설립됐다.

사실 토요타에는 1972년 결성된 ‘전(全)토요타노동조합연합회’(全トヨタ労働組合連合会, 토요타노련)라는 노조가 있다. 조합원수가 32만 6천명에 달하는 거대 기업노조다. 토요타노련은 토요타의 영향력에 힘입어 일본의 제1노총인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日本労働組合総連合会) 산하의 대공장 노조다. 토요타노련은 하청과 비정규직, 청소나 식당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36만 여명에 달하는 조합원수를 활용해 토요타나 계열사의 본사가 위치한 아이치현에서 일정 영향력을 발휘할 뿐, 직장내 괴롭힘과 과로사, 성희롱 등과 같은 문제를 상당히 등한시했다. 2023년 현 시점에서 토요타노련이 후원하는 정당 ‘국민민주당’은 렌고 소속 조합원 다수가 가입된 정당이지만, 자민당의 오랜 연정 파트너 공명당의 다음으로 제2의 연정 파트너가 되려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

ATU는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됐다. 2007년 11월, 한 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는 사실이 최고재판소(일본의 대법원)에서 최종 인정되면서 처음으로 투쟁의 결실을 얻었다. 이후 토요타 및 계열사에서 발생하는 산재나 직장내 괴롭힘 문제에 대해 제1노조인 토요타노련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활동 중이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6년 10월 토요타 필리핀 공장이 233명의 노동자를 해고한 사건에 장기간 연대 중이기도 하다.

이처럼 토요타의 소수노조 ATU는 토요타과 관련된 다양한 노동 사안에 연대 중이다. 처음부터 토요타의 해외 법인에서 벌어지는 노동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국제연대를 펼쳐왔기 때문에 한국와이퍼 문제에도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일본 원정투쟁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일본 원정투쟁

노동운동단체 ‘레이버넷’(レイバーネット日本) 역시 2월 14일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일본 현지 덴소 본사 앞 원정 투쟁에 연대했다. 이처럼 한국와이퍼 사안에 대한 한·일 양국 노동자의 연대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 민중은 과거 제국주의 질서에서 36년 동안 식민지와 통치국으로 묶인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미국의 요구로 부랴부랴 맺은 1965년 한·일협정은 식민통치 시기의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기회를 놓치도록 만들었다. 오늘날까지 양국 간에는 감정의 골이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아픈 역사의 극복이 윤석열처럼 다짜고짜 망각을 종용하며 "협력파트너"라고 추켜세운다고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래로부터 연대의 궤적을 만드는 게 역사적 모순에 맞선 가장 의미있는 실천이다.

실제 양국 민중들에겐 역사 문제와 자본의 전횡에 맞서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해온 계보가 있다. 얼마 전까지 지속된 AGC와 한국산연에서도 그러했듯, 한국와이퍼 자본의 만행에도 한·일 양국 노동자들은 다시금 연대 투쟁의 깃발을 세우고 있다. 🤝

참고 자료

  • 권지용, 「현대모비스, 글로벌 부품사 6위 탈환…"톱5 목표!"」, 모터그래프, 2022. 6. 28.
  • 공계진, 「나와라 덴소! 응답하라 덴소!」,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2020. 8. 28.
  • 이지평·배민근, 「엔고 장기화로 수출경쟁전선 아시아로 확대」, LG경영연구원, 2011. 12. 13.
  • 정인환, 「자민당 올드보이들의 귀환」, 한겨레21, 2012. 12. 24.
  • 장보형, 「아베의 위험천만한 ‘돈장난’」, 한겨레21, 2013. 4. 30.
  • 박재영, 「일본 덴소, 출자부품사 한국와이퍼 폐업 순서 밟나?」, 노동과세계, 2020. 9. 14.
  • 김미영, 「한국와이퍼 노사 “모회사가 고용보장 연대책임” 합의」, 매일노동뉴스, 2021. 10. 12.
  • 유혜연, 「"또 기계 처분하러 올까"… 긴장감 흐르는 한국와이퍼 공장」, 경인일보, 2023. 2. 23.
  • 강예슬, 「한국와이퍼 설비 반출·매각 강행」, 매일노동뉴스, 2023. 2. 23.
  • 한예슬, 「법원 “노동조합과 합의 없이 노동자 해고 안 돼”」, KBS, 2023. 2. 1.
  • 「한국와이퍼」, 향토문화전자대전
  • 「韓国 デンソー子会社で何が」, 全トヨタ労働組合 BLOG, 2023. 1. 24.
  • 尾澤邦子, 「デンソーは約束を守れ!〜韓国ワイパー労組日本遠征闘争」, Labornet, 2023. 2. 14.
  • 全トヨタ労働組合 웹사이트
  • 「結成から現在まで」, 全トヨタ労働組合
  • 全トヨタ労働組合連合会 웹사이트

글 : 성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