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찾아온 오래된 위기
15년 만에 등록금이 인상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대학가를 감돌고 있다. 교육부는 등록금 인상을 결정한 일부 대학에 ‘유감’을 표하며, 논란을 진화하려는 모양새다. 그러나 국가장학금 재정 지원을 통해 불안정하게 지속해온 등록금 동결 정책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선 누구도 쉽게 확답하기 어렵다.
학령 인구의 급속한 감소와 수도권 집중 속에서 고등교육이 비수도권에서부터 ‘구조적 위기’를 마주해온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에 더해 윤석열 정부는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는 시장주의적 구조조정을 전면화하고 있다. 대학이 시장화되면, 구조조정의 비용은 누군가 치러야 한다. 구조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구조조정이 이뤄진다면, 그 비용과 부담을 누가 분담할지의 문제가 정치적 의제로 부상한다. 일련의 정책들에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다수의 약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보다 심각한 것은 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학생들과 대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역량이 현저히 약화된 상태라는 사실이다. 학생운동이 완전히 침체기에 접어든 2010년대 초에는 이런 위기가 대중동원의 수준으로 체감됐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의 문제는 단지 항의 집회에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처럼 도드라지는 지표에서만 체감되는 문제가 아니다.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대학의 조건에서, 이를 돌파할 수 있는 담론 역량마저 빈곤해졌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위기를 가리킨다.
2009~11년, 높은 학자금 부채로 상징되는 대학생의 사회경제적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전개된 반값등록금 투쟁은 한때 5천여 명 규모의 대중집회를 열 정도로 높은 호응을 불러왔다. 2006년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자신의 공약에서 비롯된 구호였기 때문에 여론지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고, 꽤 공세적으로 투쟁을 펼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는 어쩌면 이 투쟁이 학생운동의 새로운 부흥기를 불러오리라 기대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주 의적인 요구에 머무른다는 비판도 있었고, 학생운동의 질적 역량을 끌어올리는 담론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인식도 존재했다. 2011년 5~6월 뜨겁게 불타올랐던 시위는 이명박 정부가 '국가장학금 제도 확대'로 등록금 절감 효과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음에 따라 급격히 용해됐다.
코로나19 시기 등록금 반환 운동 역시 소비자주의적인 한계를 드러낸 바 있고, 2010년대 후반까지 대학 캠퍼스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대학기업화 저지' 담론은 오늘날 그 논리적 근거마저 의심받고 있다.
이는 비단 '학생'운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 사업장에서 인력 감축 등을 통해 구조조정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대학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대학 공공성의 대안을 제시하고 운동으로 만드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오늘 대학의 현실은 대학에 ‘구조적 위기’와 ‘정치적 위기’가 중첩되는 가운데, 이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주체들의 역량마저 소진된 ‘운동적 위기’마저 겹쳐진 상황이다. 점차 극심해지는 대학 위기의 현황은 어떤 상황에 다다랐나? 그리고 이를 돌파하려면 어떤 담론과 운동이 필요할까?
고등교육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월 5일 정부는 ‘2023년 교육부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고등교육정책의 얼개를 드러냈다. ‘윤석열표 교육개혁’을 향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속내가 드러나는 이번 정책은 대학 위기의 비용을 일방적이고 불평등하게 약자들에게 전가하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4년 동안 학부 등록금 동결의 주요한 동인은 국가장학금에 대한 재정 지원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OECD 국가 중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그동안 대부분의 사립대학들은 대학원생이나 외국인 유학생 등 대학 사회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학부생들과 공동 대응이 어려우며,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등록금을 높여왔다. 학생 등록금에 재정을 의존하는 사립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의 고등교육 구조가 극복되지 않는 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재정위기는 등록금 인상이라는 형태로 학생들에게 전가될 수밖에는 없었던 셈이다.
윤석열 정부의 이번 고등교육 정책에는 등록금 인상을 막기 위해 필수적인 고등교육 재정지원 정책이나, ‘공영형 사립대’ 등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 개입 정책이 부재하다. 대신 현 정부는 사립대학들의 위기 극복 방편으로 "전면적인 규제 철폐"를 내걸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16일 「대학의 자율적인 운영을 대폭 확대하기 위한 규제개혁 및 평가체제 개편 본격화」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규제 완화를 예고하고 나섰다. 학교 소유의 토지, 부동산, 교원, 수익용재산 등에 대한 규제 완화는 교원수와 시설 감축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다른 한편으론 대학들이 규제 기준을 초과한 시설을 무분별하게 상업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동안 불평등한 대학 서열화와 이에 따른 획일적 구조조정에 악용되어온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이 폐지된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대학 사용자단체(대교협과 전문대교협으로 구성)의 ‘자율평가체제’가 이것의 대체제라는 점은 문제적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경영위기대학’ 등을 지정할 때 사용자의 입장만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구조조정의 비용을 분담하게 될 학생과 대학 노동자의 의견은 의사결정에 반영되기 어려워진다.
아울러 교육부는 ‘자율평가’를 통해 결정될 ‘한계대학’에 사회복지법인 전환 등으로 퇴로를 마련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입학 인원이 줄어드는 만큼 대학 감축이 필요할 순 있지만, 대학 구성원 및 지역사회의 의사결정 참여 없는 경쟁적 평가와 전환은 결국 비수도권 지방대학을 시장 경쟁으로 떠민다. 이는 지방대학들의 고사로 이어지며, 비수도권지역 '소멸'의 충격을 더 크게 야기할 것이다.
이에 더 해 교육부는 2023년 새해 첫날부터 '직제개편안'을 시행하기도 했다. 이번 개편에 따라 ‘고등교육정책실’을 폐지하고, 광역지자체로 대학 정책의 권한을 이관했다. 이는 대학 관 리체계에 대한 중앙정부의 책임을 사실상 방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름 없다. 이러한 방기에 대한 ‘타협책’으로 제시된 ‘고등·평생교육 특별회계’는 초중고교에 대한 지방교부금을 삭감한 재정으로 대학을 지원하겠다는 안이다. 아무리 학령인구가 줄었다고 해도 초·중·고교는 여전히 인력 부족으로 인해 열악한 교육환경과 노동조건에 놓여 있다. 이를테면 초·중·고 학교급식 노동자들은 일하다가 발생한 조리흄으로 폐암 등의 산업 질환에 시달리며 시설 현대화를 위한 재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그간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조건을 보장하라는 요구마저 묵살당해온 학교비정규직·교육공무직 주체들은 지방교부금 삭감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고등·평생교육 특별회계’는 정부의 재정적 책임을 방기하면서 대학과 초중고교 주체를 ‘갈라치기’하는 무책임의 소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고등교육 정책이 지속된다면, 향후 인문계·자연계·예술계 등 ‘순수학문’ 학과들의 입학정원과 교원 구조조정, 통폐합은 더 심각해지고, 지방대학 소멸은 가속화될 수 있다. 비정규 교원 사용비율의 증대는 교육조건과 노동조건 모두를 악화시키고, ‘산·학·연 협력’을 명분으로 한 대학 유휴재산의 수익성 투자와 부동산 투기는 심화될 우려가 제기된다. 교육과 연구의 기관으로서 대학의 기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우려도 있다. 최근 교대와 사범대의 교사 양성 기능을 교육전문대학원(교전원)에 넘기겠다는 교육부 안이 뜨거운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로스쿨’처럼 교전원을 설립해 전문대학원을 통해 교 사를 양성하고, 장기적으로 교대와 사범대학 학부를 구조조정하겠다는 정책이었는데, 이는 학생과 교육 당사자들로부터 "현장과 괴리된 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2010년대에 여러 사범대 및 교대 학생 주체들이 비정규 교사 증가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적인 교사 일자리를 '권리'로 인정받기 위해 '임용고시 폐지 운동'을 제기해온 점을 생각해볼 때, 교전원 정책은 분명한 개악이다.
이처럼 노동시장의 불안정화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대학 구조조정은, 대학 간 시장주의적 경쟁과 서열화는 물론, 취업을 향한 대학 내 경쟁 역시 배가할 것이다.
학생과 대학노동자가 주도하는 대학공공성
2024년이 되면 정원 대비 입학자수가 약 12만 명이나 부족해질 것이라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구조조정 자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등록금 수입에 재정을 의존해온 사립대 중심의 한국 대학체제가 학령인구 감소 국면에서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장주의적인 교육부 안은 이런 모순을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킬 뿐, 진정한 개혁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후퇴라 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조조정 국면에서 학생과 대학 노동자가 유의미한 개입을 못할 경우, 대학의 ‘거버넌스’와 국가 내 고등교육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비민주적으로 배제되어 온 이들에게 구조조정의 비용이 전가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2021년 부산의 신라대학교에서는 청소노동자 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과 비민주적 학과 통폐합을 저지하기 위한 학생들의 투쟁이 나란히 벌어졌다. 이 사례는 노동자와 학생들에 대한 구조조정 비용의 일방적 전가가 비수도권 지역에서부터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대학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일정한 정원 감축이 이뤄지더라도, 이해관계자들의 권리와 지역사회에서 대학이 담당해온 역할이 보장되는 방향 아래에서, 학생 및 대학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참여 아래 조정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조정은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대학 공공성’의 상이 확립될 때 가능하다. 사립대학의 비민주성과 부정부패가 끊임없이 지적되어온 지난 시간의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고등교육 시장에서 빠져나가려는 사립대 자본가들에게 손쉬운 퇴로를 열어주는 이번 정책은 약자에게 비용 전가를 초래할 뿐이다.
더구나 대학이 지역사회에서 갖고 있는 역할을 소멸시키고, 사립대학 재단에게만 사회복지법인 등으로의 전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학령인구는 줄어들고 있지만, 평생교육에 대한 수요와 이에 부합하는 시장이 커지고 있는 새로운 조건에서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비수도권에서 대학의 역할 변화를 위해 공적인 재정과 정책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사립대학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증진하면서도, 재정적으로는 정부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공성’이 모색되어야 한다. 정부의 재정 책임과 평의원회·이사회 등 대학 거버넌스의 제도화도 마찬가지다.
전국대학노동조합(대학노조) 등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고등교육재정 교부금법’ 제정을 통해 재정적 책임 확립도 필요하다. 대학교육연구소 등이 제안한 바 있는 ‘공영형 사립대’와 ‘정부책임형 사립대’ 정책 역시 사립대학 중심체제에 사회공공성의 원리를 도입하면서, 민주적 참여와 감시를 증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 공공성을 위한 정책적 대안으로 논의할 수 있다.
물론 일련의 정책 대안들은 학생과 대학 노동자 등 당사자들의 조직화와 불평등에 맞선 대중운동이 동반될 때만 현실적 힘을 갖는다. 교육권과 생활권의 후퇴, 대학 노동자의 고용과 복지의 후퇴에 맞서 싸워온 투쟁들이 고립분산되지 않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함께 대학 공공성을 위한 정책에 대해 공감대를 갖고 나아갈 수 있도록 각 주체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과거 신자유주의 대학 구조조정 반대 투쟁과 교육권·생활권 보장을 위한 '대학 기업화 저지 운동'은, 일정한 수익성을 지녔던 ‘대학 시장’에서 상업화되어선 안 될 주체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었다. 한데 지금의 조건은 다르다. 이제 대학은 수익성은커녕 이해관계자 모두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더욱 각박한 조건에 놓여 있다. 이제 시장주의적 구조조정은 고등교육 내 알짜배기 영역들을 사유화하는 방식을 넘어, 고등교육 자 체의 존속을 위협하고 대학의 역할을 고사시키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대학 공공성 담론과 이를 현실화하는 운동이 급박하게 요구된다. 🥳
글 :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