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1위 차량호출 플랫폼 ‘그랩’의 초국적성, 지배력, 그리고 저항
2023년 3월 2일
동남아시아 플랫폼 기업 그랩(Grab)에 관한 『아시아 노동 비평』의 연재 기획을 소개한다. 동남아에서 가장 지배적인 앱기반 플랫폼 그랩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라이더들이 어떤 노동조건에서 일하는지, 어떻게 조직되고 저항하는지 분석한다. 이 연재가 국가 간 비교의 초석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되어, 조직화 논의로 이어지기 바란다. 연재의 포문을 여는 이번 글에서는 연구자 조 버클리(Joe Buckley)가 그랩의 맥락과 역사 등을 설명한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와 아시아에서 일과 노동의 주요 추세 중 하나는 "기업, 노동자, 소비자 등 다양한 사용자 간의 노동력 교류를 중개하고 촉진"하는 디지털 노동 플랫폼의 부상이다. 여기에는 어디서든 원격으로 작업할 수 있는 크라우드워크(cloudwork)*와 특정 위치에서 수행해야 하므로 지리적으로 묶여 있는 긱(gig) 노동이 모두 포함된다.
- 📑크라우드 워크/크라우스소싱 : 크라우드 소스 제공 사업자(자본)가 불특정 다수에게 특정한 업무를 위탁/양도하는 노동 형태. 업무는 인터넷 플랫폼에 게시되고, 개별적인 업무 수임자들(크라우드 워커)은 분산된 공간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동남아시아에서 긱 노동의 가장 상징적인 형태는 앱 기반 운전, 특히 차량 호출과 음식 배달이다. 그리고 가장 상징적인 플랫폼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이 지역의 거대 기업인 그랩(Grab)이다. 그랩의 녹색 로고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각국 정부와 소비자들로부터 디지털 개발, 현대화, '스마트시티'의 상징으로 찬사받고 있다.
그랩은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설립됐다. 서비스 시작 후 싱가포르로 본사를 이전하였고, 이후 다른 국가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그랩과 더불어 동남아시아 전체에서 앱기반 차량호출 서비스의 부상은 2013년 싱가포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후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서비스를 확장한 글로벌 대기업 우버(Uber)와의 차량호출 서비스 전쟁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우버는 현금 결제가 지배적인 나라에서 현금 결제를 늦게 도입했고, 오토바이가 지배적인 나라에서 오토바이 호출을 늦게 도입하는 등 몇 가지 사업적 실수를 범했다. 결국 2018년 동남아시아에서 철수하는 대신 그랩의 지분 27.5%를 인수했다. 이 거래로 그랩은 차량호출 서비스 시장을 거의 독점적으로 장악했으며, 이후 여러 동남아 정부들로부터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앱기반 공유차량의 부상은 전통적인 차량호출 업종에서 차를 몰던 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했다.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길모퉁이에서 대기하며 고객과 직접 가격을 협상해 일을 얻던 비공식 오토바이 운전수(driver)와 앱기반 운전수들 사이의 갈등이 벌어졌고, 심지어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폭력적인 충돌이 있었다.
비공식 오토바이 운전수들은 앱으로 차량호출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객 기반이 줄어들었다고 본다. 또, 앱에서 설정한 가격이 차량호출 서비스의 비용을 낮추었고, 결과적으로 기존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이 협상할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들어 건당 소득을 감소시켰다고 파악한다.
전통적인 자동차 택시 회사들과 운전수들도 큰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불공정한 경쟁으로 인해 매우 빠르게 손해를 입었다. 예를 들어, 베트남의 한 택시회사는 자사 차량에 그랩과 우버에 법준수를 촉구하는 스티커를 부착했는데, 당국이 불만을 표명하자 곧바로 스티커를 떼어내고 운전수들에게 책임을 돌리려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랩의 시장 지배력은 다른 플랫폼의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차량호출 서비스 분야에서 그랩의 라이벌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인도네시아의 플랫폼 고젝(Gojek)이다. 고젝은 2021년 전자상거래 업체 토코피디아(Tokopedia)와 합병하여 고투(GoTo)가 되었으며,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그랩과 경쟁하게 되었다. 음식배달 분야에서도 독일의 거대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가 소유한 푸드판다**가 공격적으로 시장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 📑딜리버리 히어로(Delivery Hero) : 2011년 창업한 독일의 음식배달 플랫폼 기업. 푸드판다를 비롯해 조마토, 푸도라, 헝거스테이션, 배달의민족 등 여러 플랫폼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세계 40여 개국의 음식배달 플랫폼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네덜란드계 아프리칸 자본 Naspers이 22%의 지분을 가진 1대 주주이며, Naspers는 동시에 텐센트의 1대 주주인 Prosus의 지분 절반을 갖고 있다.
- 📑푸드판다(Foodpanda) : 딜리버리히어로가 아시아 시장에서 주력으로 전개하고 있는 음식배달앱. 싱가포르,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대만, 필리핀, 방글라데시,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일본 등 아시아 전역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그랩은 여전히 동남아시아에서 차량호출과 음식배달 두 영역에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8개국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핵심 서비스인 차량 호출 및 배달 서비스 외에도 식료품 쇼핑, 호텔 예약, 금융 서비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슈퍼앱'이 되고자 한다. 그랩은 2021년 12월, 나스닥에서 기업가치 400억 달러로 상장했으며, (거래 첫날 주가가 21% 하락했음에도) 이 수치는 동남아시아 기업으로는 사상 최대의 미국 상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랩은 수익을 내지 못한다. 오히려 2021년에는 36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적자를 보았다. 그랩은 2022년 수 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운전수 인센티브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손실이 크게 줄어들었고 배송 사업 부문에서 3분기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2023년에는 더 많은 비용 절감 조치가 계획되어 있다.
그랩을 통해 차량 호출과 음식 배달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랩이 운전수들에게 너무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는 주장에 조소를 금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랩은 노동법이나 사회적 보호 장치가 거의 없는 위험하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운전사들에게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
그랩은 동남아시아에서 일부 공식부문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 복리후생 및 기타 기본 노동권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 운전수를 노동자나 종업원이 아닌 ‘파트너(partner)’로 분류한다.
그러나 운전수들도 당하기만 하지 않았다. 연구자 포드와 호난(Ford and Honan)에 따르 산업에서의 '반(半)공식화'***라는 기제에 의해, 특히 오토바이 운전수에게 있어서 그랩은 ‘유사 고용주’가 되는데, 노동자들은 그러한 그랩을 상대로 투쟁을 조직할 수 있었다. 그랩 이전에는 산업이 완전히 비공식적인데다 규제되지 않아 그러한 투쟁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 📑반공식화(semi-formalisation) : 포드와 호난은 다음 논문에서 제안한 개념이다. 인도네시아의 오토바이택시산업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부터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왔기 때문에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여전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랩이 운전사들에게 공통의 요금정책과 노동통제를 부과함으로써 유사-고용관계를 형성했다. 이를 두고 산업이 ‘반공식화’되었다고 지칭하는 것이다. Ford, M., & Honan, V. (2017). 15 The Go-Jek effect. In E. Jurriens & R. Tapsell (Eds.), Digital Indonesia: Connectivity and Divergence (pp. 275-288). Singapore: ISEAS - Yusof Ishak Institute
운전수들은 변화된 상황을 최대한 활용했다.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요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동료들을 조직하고, 회사를 상대로 항의하고, 파업을 벌였다. 라이더들은 그랩의 건당수수료 비율, 보너스 정책, 세율, 연료 가격, 사회보장 정책 등 다양한 요구 사항을 중심으로 조직했다.
운전수들은 서로를 도우면서 함께 전략을 세우기 위해 상호지원 단체들을 결성했다. 기존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도 했고, 권익 보호와 발전을 위해 새로운 조합과 노동자협의 체를 설립하기도 했다. 혹은 공식적인 조직 없이 비공식적인 형태로 조직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각국 정부는 이 부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규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아시아 노동 비평(Asian Labour Review)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의 앱기반 운전수 조직화에 대한 언론 보도와 심층 연구가 상당수 있었지만, 아직까지 동남아 전역에서 단일 플랫폼의 조직화에 초점을 맞춘 종합적인 연구는 없었다.
이번 연재는 그랩이 진출한 여러 국가의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해당 국가의 그랩 내 노동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랩 운전수들은 어떤 이들인지, 그들이 직면한 노동 조건은 어떠한지, 그리고 스스로를 어떻게 조직하고 저항하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모든 글들이 발행되고나면, 마지막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그랩 운전수들이 벌인 활동 유형의 유사성과 차이점, 그리고 이것이 기존의 급진적 투쟁 전통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평가할 예정이다. 🛵
글 : 조 버클리 (아시아 노동연구자, Solidarity Center 코디네이터)
번역 : 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