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와 튀르키예 지진에 고통받는 쿠르드인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2023년 2월 19일
쿠르드족과 로자바
쿠르드족은 쿠르드어를 사용하며, 시리아 동북부와 튀르키예 동부, 이란 서부, 이라크 북부 일대에 거주하는 산악 민족이다. 근대 국민국가가 아닌 민족으로는 인구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약 3,700~4,600만 명). 쿠르드는 ‘산(山)’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유목 생활과 연관이 있다. 중세 페르 시아 문헌에서 '쿠르드'는 유목민 혹은 움막 거주자를 뜻한다.
과거 쿠르드인들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투르크가 서유럽 열강에 패배하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자의적인 영토 분할을 겪었고, 오늘날의 튀르키예(이하 '터키'), 이란, 시리아, 이라크의 국경으로 분할되어 통치받게 됐다.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서구 열강이 자의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은 20세기 이후 무수히 많은 불행을 낳은 근본적 원인이다.
1923년 당시 튀르키예는 쿠르드족 사람들과는 아무 상의없이 연합국들과 로잔 조약을 체결했는데, 이 조약에 따라 쿠르드인들은 근대국가를 성립할 기회를 상실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열강은 쿠르드족에게 독립국가를 세워주기로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2차대전 이후 각국이 서구로부터 독립했으나, 이후에도 독립과 자치를 쉽게 누리지 못한 채로 억압받아 왔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해체 이후 성립된 튀르키예 공화국은 와해되던 당시 튀르키예를 강한 국가로 통일시키기 위해 쿠르드어를 완전히 금지하고, 강하게 억압했다. 튀르키예 정부는 쿠르드족을 "산악 튀르키예인"이라고 칭하면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수십만 명의 쿠르드인을 서부 아나톨리아와 중부로 강제 이주시키기도 했다.
오늘날 쿠르드인은 크게 4개국에 걸쳐 분포해 있다. 쿠르드족 민중이 살아가는 영역을 기준으로 할 때, 튀르키예는 '북쪽'을 의미하는 바쿠르(Bakur), 시리아 북부는 서쪽을 의미하는 로자바(Rożawa=서쪽), 이란 서부는 동쪽을 의미하는 로힐라타(Rojhilatê), 이라크 북부는 남쪽을 뜻하는 바스라(Başûrê)로 불리고 있다. 전체 쿠르드인의 55% 정도는 튀르키예 동부 바쿠르에 살고 있는데(튀르키예 인구의 20%), 튀르키예 정부로부터 심각하게 억압받고 있다. 이에 반해, 바스라의 쿠르드족은 이라크 정부로부터 자치를 인정받고 있다.
압둘라 외잘란과 로자바 혁명
로자바 땅의 쿠르드인들은 오랜 기간 독립을 위해 싸워왔다.
1970년대 중반, 압둘라 오잘란을 중심으로 쿠르드 노동자당(PKK)이 결성된다. PKK는 1984년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내전을 일으키지만 당시 튀르키예 정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4천 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기록한 채로 1999년 진압된다. 이후에도 튀르키예 정부는 분할과 지배의 전략을 통해 로자바 쿠르드인과 바스라 쿠르드인의 연대를 효과적으로 방해했다.
20세기 말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혁명가 압둘라 외잘란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오랜 시간동안 투옥되었지만, 그곳에서 창안되고 갱신된 그의 사상은 로 자바 쿠르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외잘란은 '민족'이란 "공통의 사고방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정의하고, 다원주의적이고 개방적으로 방법으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제기했다. 그는 아나키즘, 페미니즘, 생태학, 직접민주주의 등 개념을 혼합해 국가, 자본주의, 가부장제를 부정하는 정치로서의 '민주연합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국민국가 혹은 민족국가라는 틀을 벗어나, 급진 민주주의를 전제로 한 연합주의 공통체로 국가를 대체하자는 것이다.
2011년, 우리가 아는 시리아 내전이 시작됐다. 당시 시리아 정부군은 수도 방어를 위해 병력을 북부지역에서 뺐는데, 2013년경부터 이라크를 넘어 시리아까지 세력 범위를 확장시킨 이슬람국가(ISIS)가 침략해왔다. 그러자 로자바 쿠르드인들은 인민수비대(YPG)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시리아 북부까지 ISIS의 손에 넘어갈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쿠르드인들은 로자바 도시 중 하나인 코바니에서 항쟁을 전개했다. 당시 서방의 군수물자가 지원되면서 코바니를 사수하는데 성공했고, 이후 ISIS를 격퇴하면서 로자바의 관할 범위를 확대했다.
2014년, 쿠르드인들은 로자바에서 다시 '자치지구'를 공식 선포하고 선거를 실시했다. 이렇게 해서 구축한 쿠르드인들의 질서 '북시리아 민주연방'(Autonomous Administration of North and East Syria)을 이른바 "로자바 혁명"이라고 지칭한다.
2015년 10월, 쿠르드인들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아랍인, 아시리아인, 아르메니아인, 체첸인, 체르케스인 등 다른 민족과 연합해 시리아민주군(SDF)을 결성했다. 계속되는 전투의 승리로 덩치가 커진 로자바는 2016년 3월, 북시리아 민주연방을 선포하면서 시리아 내 자치연방을 표방했다.
러시아는 로자바의 자치조직을 인정하였으며, 2017년 9월에는 시리아 외무장관이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말을 하면서 태도를 바꾸었다. 그리고 얼마 후인 10월, 시리아민주군은 ISIS의 거점이었던 락까를 탈환했다. 이로 인해 ISIS와의 전쟁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로자바의 정치실험
전쟁 후 로자바 지역은 빠르게 안정화됐다. 쿠르드인들은 외잘란의 사상을 실천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로자바 사회협약을 통해 나타냈다. 여성을 억압하는 악습과 제도를 폐지하고, 기초단위의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을 갖춰나갔다. 모든 지역의회의 성별 비중을 남녀 모두 40%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맞추고 있으며, 군사학교와 일반학교에서 성평등과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여성 조직인 YPJ는 자신들의 강령으로 전 세계 여성해방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그들은 ISIS로부터 해방된 지역에서 여성억압적 악습들을 계속 제거해 나가고 있으며, 직접민주주의 원칙으로 지역 주민 들이 자발적으로 참여·운영하도록 북돋고 있다.
또, 생산수단을 각 지역의 협동조합이나 주민, 노동조합이 공적으로 소유하고, 공동생산 시스템을 갖춰나가고 있다. 로자바에서는 현재 142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는데, 농업과 상업, 식품·요식업, 교육, 의약품 등을 지역별 협동조합을 통해 상부상조 및 공동소유 자급자족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쿠르드인들의 협동조합조직으로는 시리아 북부 카미실리(Qamishlo)의 식품제조협동조합인 예크분(Yekbûn; 일치 또는 단일성), 티르베스피(Tirbespî) 지역의 농업협동조합인 셰하드 하모(Shehîd Hamo) 등이 있다. 카미실리와 티르베스피 두 도시가 속한 자지라(Jazira)주에서 운영되고 있는 협동조합은 87개 이상이며, 그 중 농업협동조합은 21개이다. 협동조합들은 각 주의 경제부처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로자바 사회협약에 따르면, 천연자원와 토지, 건물들을 공공의 재산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고, 법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물론 로자바 혁명은 전시의 경험을 거치면서 로자바의 쿠르드 사람들이 서로를 평등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실험이기 때문에,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안착될 것인지의 여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직접민주주의와 성평등, 협동경제 등 세 가지 지향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연대와 침략
코바니 항쟁 때부터 지금까지 로자바의 가장 큰 지지세력은 유럽과 튀르키예에서 활동하는 반파시즘 활동가들, 소위 ‘안티파’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튀르키예의 맑스주의-레닌주의 공산당(Marksist-Leninist Komünist Partisi)이 1930년대 스페인 내전 시기의 국제여단(Brigadas Internacionales)의 이름을 따라 지은 국제자유여단이 안티파 활동가들이 의용군으로서 로자바 지역에 들어왔다.
처음 로자바에 올 때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인 ISIS(다에쉬)를 격퇴하는 것을 돕는 목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로자바 혁명과 외잘란의 사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성격이 커졌다. 실제 전투에도 참여하고, 최근에는 외잘란의 여성해방 사상을 지지하던 영국 출신 활동가가 아프린(Efrînê)주에서 튀르키예군과 전투하다가 전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유럽 내부에서도 로자바에 대한 연대가 이뤄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안티파와 로자바 지지자들이 5월 1일 메이데이에 튀르키예의 아프린 침략을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했고, 4월에는 일부 활동가들이 외잘란의 석방을 외치면서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다.
역대 튀르키예 정부는 쿠르드족의 자치권 운동 특히 외잘란과 연결된 모든 운동을 지속적으로 탄압해왔다. 시리아 민주군과 북시리아 민주연방 이래로 튀르키예 정부를 장기 수권하고 있는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은 이들이 ‘테러리스트 외잘란’과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의 하위조직이라는 명분을 들이밀면서, 언제든 침공할 것이라고 노골적인 협박을 가해왔다. 그러면서 미국과 러시아에게 로자바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할 것을 주장해왔다.
시리아 북부도시 락까(Raqqa)의 탈환 이후, 에르도안 정권은 로자바의 성장을 더욱 민감하게 의식했다. 그는 튀르키예에서는 '테러집단'이라고 낙인찍힌 쿠르디스탄노동자당과 로자바가 연결되어 있다는 명분으로, 로자바를 계속 비난했고, 급기야 2018년 1월에는 로자바 쿠르드인들이 살고 있던 시리아 북부 아프린주를 침략한다.
그동안 간접적으로 로자바를 지원하던 미국과 러시아는 튀르키예와의 우호관계를 고려하면서, 이 침략을 사실상 묵인·방관했다. 2018년 1월부터 시작된 튀르키예군의 침략은 아프린 지역을 모두 함락한 3월에야 끝났다. 그 결과, 현재 아프린 지역은 로자바 혁명의 흔적이 점점 지워지고 있다. 여성들은 다시 부르카를 입어야 하고, 로자바 혁명의 모든 효과들이 반동적인 모습으로 후퇴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정부가 지역 패권국가 튀르키예의 침략 행위를 방관하고 있기 때문에, 로자바의 쿠르드인들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자랑하는 튀르키예군으로부터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이처럼 오늘날 로자바는 꾸준하게 침략과 위협에 노출되어 왔다.
심지어 튀르키예군은 시리아 정부군과의 충돌도 아랑곳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아프린과 이들리브(Idlib) 등이 튀르키예군과 그들이 지원하는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민병대의 손에 넘어갔고, 이렇게 함락된 지역에서 쿠르드족 말살 정책은 지속됐다.
쿠르드 대지진 참사,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지난 2023년 2월 6일, 엄청난 규모의 지진이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 북부를 강타했다. 튀르키예 남동부는 그나마 사회인프라가 갖추어져 있고, 그밖에도 국제 구호물자와 의료진, 구호대원들이 연달아 도착해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리아 북부에 대한 지원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10년 간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간의 내전, 이슬람 근본주의 ISIS의 발흥과 진압 과정, 튀르 키예군의 무자비한 침공 등 수많은 전화를 겪은 시리아 북부 주민들이 다시 크나큰 시련을 맞딱뜨린 것이다. 유엔의 구호물자조차 트럭 14대 분량에 그치고, 국제적인 의료지원은 스페인 의사 몇 명 뿐인 상황에서, 시리아 북부의 주민들은 절망하고 있다. 튀르키예와의 국경선에 있는 여러 시리아인 난민 캠프도 큰 피해를 입었다.
끔찍한 재난 앞에서 공감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에서도 '화이트 헬멧' 지원의 흐름이 나오고 있다. 한데 화이트 헬멧은 의심쩍은 부분이 많은 단체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특히 2018년 튀르키예의 침공 이후로 튀르키예군이나 그와 연관된 지하디스트 민병대와 협조해왔고, 지하디스트 단체와의 연계성도 짙어졌다. 안타깝지만 완전한 신뢰를 갖고 지원하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로자바의 정치기구인 '시리아 민주평의회(Syrian Democratic Council)'의 워싱턴 대표 시남 모하메드(Sinam Sherkany Mohamad)는 이라크 아르빌에 본사를 두고 있는 방송국 '쿠르디스탄24'와의 인터뷰에서,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대한 화이트헬멧의 지원을 거절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화이트헬멧에 지원한 돈이 오히려 지하디 스트 민병대로 흘러가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 억압에 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순수한 선의에 따른 화이트헬멧이 온전히 인도주의적인 용도로 수렴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또 있다. 2월 13일,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튀르키예군은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와중에도 공습을 재개했다. 2월 12일 알레포 인근 도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튀르키예군의 드론 공격을 받아 시리아 민주군 소속 쿠르드인 1명이 사망한 것이다. 튀르키예 정부는 학살을 중단할 의사가 없어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4만여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을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몬 이 참사 앞에서 누구를 지원해야 할까? 어떻게 연대의 끈을 만들 수 있을까?
쿠르드족 구호단체인 쿠르디스탄 적신월사(Heyva Sor a Kurdistanê)이 그 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쿠르디스탄 적신월사는 2012년 쿠르드 자치지역 창설 때부터 시리아 북부에서 보건의료서비스, 구급차, 응급실, 심리 치료, 쉼터 제공, 식수 제공, 보건교육 등을 제공해온 명실상부한 구호기관이다. 이들의 후원 페이지에 접속해 페이팔 후원을 하거나, 해당 페이지에 적힌 각 국가별 계좌로 해외 송금을 할 수 있다. 큰 위기에 맞딱뜨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쿠르드인에게 작은 연대의 손길을 보낼 수 있다. ⛑️
글 : 이산·안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