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환경 재해와 산업재해를 위한 대응 사례로부터 배우자
2023년 2월 2일
지난 12월 7~8일, 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권리 네트워크(ANROEV; Asian Network for the Right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Victims)의 주최로 환경·보건·안전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Environmental Health and Safety Regional Conference)가 열렸다. 이번 컨퍼런스에는 AMRC(Asia Monitor Resource Centre, 아시아 다국적기업 모니터링센터)를 비롯해, 한국·필리핀·홍콩·인도네시아·네팔·인도·스리랑카 등 아시아 국가들의 활동가 및 연구자들이 함께 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지금껏 노동안전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해서는 노동운동과 각계의 활동으로 인해 자주 다뤄져 왔고, 그만큼 대응 전략 또한 활성화되어있는 데에 비해, 여러 산업 현장과 기업 활동으로 인한 주민 피해와 지역 환경 오염을 다루는 환경안전 및 보건(Environmental Health & Safety) 영역은 잘 비춰지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해 기획됐다. 그만큼 이런 문제들이 야기하는 대응전략도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이 주최측의 기획 취지였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대응했던 인도와 인도네시아, 네팔, 한국 등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에 대한 대응 전략을 논의하고자 진행됐다.
컨퍼런스 첫날 일정은 크게 둘로 나뉘어 시멘트, 살충제, 석면 피해 사례를 중심으로 한 발표가 있었고, 이어서 이에 맞선 캠페인 사례들이 공유됐다.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수카부미(Sukabumi)시에 위치한 시르나레스(Sirnaresmi) 마을의 피해자들은 시멘트 공장이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피해를 끼쳤는 지, 그리고 피해 대응을 위해 주민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이야기했다. 시멘트 생산 기업인 세멘자와(Semen Jawa)는 공장을 세우기 전, 주민들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사무용도의 건물을 건설한다고 허위 신고를 한 후 작업을 시작했고, 이후 분진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이 속출했다.
이에 주민들은 인도네시아 생활환경기구(WALHI)라는 NGO의 도움을 받아 대책위원회를 조직했다. 이곳에서 서로의 피해 상황을 공유하며 상기한 허위 신고 사실 등을 종합해 법적 대응과 정부에 맞선 항의 행동에 나섰다. 물론 수차례에 걸친 시위와 투쟁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대응은 실망스럽고 미진한 편이다.
삼척에서 시멘트공장의 공해에 맞서 주민 환경운동을 해온 곽창록씨는 시멘트산업에 의한 주민건강 피해에 대해 발표하여, 삼척 시민들의 투쟁 경험을 공유해주었다.
살충제 피해와 대응에 대한 사례를 공유한 섹션에서는 인도네시아의 노조연맹조직 중 하나인 세르북(Serbuk Indonesia) 활동가가 인도네시아의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 소개했다. 또, 스리랑카 환경정의센터(CEJ)의 활동가가 스리랑카 농민들이 화학비료 및 살충제를 도입하면서 겪게 된 질환 문제에 대해 소개했다.
세르북의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은, 자 신들이 다루는 살충제가 어떤 위험성이 있는 지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이처럼 피해자들의 경험은 이번 컨퍼런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더군다나 인도네시아 농촌으로부터 병원은 차로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농장 업체는 의료비 지원조차 제대로 해주지지 않았다. 현지에서는 피해 노동자들을 조직해 제대로 된 의료 지원을 요구하는 싸움이 진행 중이다.
세번째 토픽인 석면 피해 사례에서는 석면 피해자 이성진씨가 한국 석면추방운동 역사에 대해 발표했다. 그밖에 인도네시아 석면피해자 투니야씨와 시티 크리스티나씨가 석면 사용의 위험성에 대해 공유했다.
투니야씨는 55개국에서 금지된 유해 독성 물질인 석면을 사용하는 섬유공장 트리그라하 아스베스토스 주식회사(PT Trigraha Asbestos)에서 1991년부터 2014년까지 23년간 일했다. 사측은 노동자들에게 "너희들은 안전한 쿄오켄 마 스크를 쓸 것"이라고 말하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마스크가 비싼 일제 마스크라는 이유로 이내 저렴한 면마스크로 교체됐다. 결국 2010년, 투니야씨는 석면에 의해 유발된 불치병에 걸렸다. 몇 년 후 불가피하게 일을 그만 두게 된 그는 회사와 정부에 산재 피해 보상과 건강돌봄을 위한 의료검진을 요구했지만 모두 거부당한다. 이에 2018년부터 인도네시아 석면추방 네트워크(INA-BAN) 활동가들의 연대로 투쟁을 시작했고, 2020년에 이르러 정부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는다.
인도네시아 활동가들은 1990년부터 2016년 사이 3,950명의 노동자들이 석면 피해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번째 세션에서는 여러 피해 사례들에 따른 캠페인 대응 사례들이 공유됐됐다. 인도의 LG폴리머 공장 유해물질 누출 사건 대응 캠페인, 스리랑카 농장에서의 살충제 오염과 피해에 따른 대응 투쟁, 네팔의 용접공들이 겪는 용접 연기 노출 피해에 따른 캠페인 사례들이 공유다.
컨퍼런스 2일차에는 세 가지 토픽으로 나누어 투쟁 전략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① 어떻게 지속가능한 피해자 지원 그룹을 조직할 것인가?, ② 피해자 조직화 전략, ③ 시민 주체의 증거 수집 등이 그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산업 및 환경 안전보건 권리 쟁취 투쟁, 인도 지역사회에서의 폐질환 피해자 지원, 한국 가습기 살균제 참사 투쟁의 사례들이 각기 15분가량씩 소개됐다.
뒤이어 '피해자 조직화 전략' 토픽에서는 인도네시아 사례를 중심으로 환경피해를 입은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각기 어떻게 조직화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사례가 공유됐다.
마지막 토픽인 '시민 주체의 증거 수집'에서는 시민사회와 개별 시민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환경피해에 따른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명예교수가 "환경피해에 대한 증거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를 주제로 발표했다.
또, 구체적으로 네팔의 금도금 노동자들이 수은 노출 피해를 입었을 때 데이터를 어떻게 정리 및 생성하고, 정책 지원이 이뤄졌는지 구체적인 사례가 소개됐다.
시민 과학(civil science)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여러 웹사이트들은 시민 개개인이 화학 및 기상 데이터 등을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이 제공된다. 예를 들어, 대기오염물질 검출 키트(리트머스지와 같이 간단한 키트이다)를 일정 장소에 일정한 시간마다 붙여 데이터를 수집함으로써, 특정 물질이 얼마나 대기 속에 포함되어 있는지 일반인이 알아낼 수 있는 방법들이 제공된다. 수은 노출 피해를 입은 네팔 금도금 노동자들은 바로 이런 방법으로 대처했다. 비록 경험있는 NGO 공중보건환경개발센터(CEPHED)에 의해 진행되긴 했지만, 금도금 작업장 자체를 검사하지 않고도, 카트만두 시내 인접 지역에 대한 대기와 지상 수은 농도 측정을 통해, 금도금 작업장으로 인해 인근 지역에 수은 농도가 과다하게 많이 증가한다는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객관적인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은 이 투쟁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아시아는 자본주의 체제하 급속한 개발와 자연 수탈로 세계에서 오염이 가장 심한 지역이다. 매년 산업재해와 환경재해로 수백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산업재해는 LG폴리머공장 사례에서 보듯, 한 국가에서의 대응과 규제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외국 자본의 무분별한 노동자 착취, 자연 착취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국경을 넘어 연관된 문제들이 많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서로 안면을 트고 연대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컨퍼런스와 같은 행사가 매우 소중하다. 이런 자리를 통해 여러 지역에서 각기 다른 양태로 일어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들을 이해하고, 그 대응 사례들을 공유함으로써 투쟁의 지혜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권리 네트워크를 비롯해 직업환경 개선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글 : 이산
교열 : 보리,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