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하게, 더 넓게 성장하고 있는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을 만나다
2023년 1월 29일
2022년 11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는 과반 노조*가 됐다. 과반 노조가 된 후 파업 투쟁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61명의 인력 충원, 장애인차별 시정, 직종간 임금격차 해소, 어린이 의료비 상한제 입법청원, 간호간병통합 서비스 병동 확대, 기후위기 대응 등 공공성 강화를 위한 성과를 쟁취했다.
지난 1월 10일, 플랫폼C와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하 '비서공')이 함께 주관하여, 서울대병원 노동자들과의 간담회를 진행했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운동의 방향을 고민하고, 학생-사회운동-노동조합 사이의 연대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이번 간단회는 주관단체 활동가들만이 아니라, 이 투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했다. 아래는 이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 👉과반 노조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르면, 사업 또는 사업장 내 노조가 2개 이상인 곳은 교섭대표노조를 정해 교섭을 해야 한다. 교섭대표노조를 자율적으로 정하지 못했을 때는 조합원 중 과반을 확보한 노조가 교섭대표권을 가진다. 사용자가 동의하면 개별교섭을 해도 된다. 이는 2010년 교섭창구 단일화를 도입하면서 생긴 제도로, 사용자측에서는 법을 이용해 민주노조를 소수노조로 만들어 교섭권을 무력화하는 전략을 많이 쓴다.
해마다 파업할 수밖에 없던 이유
질문 :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대병원분회는 의료부문 성과연봉제를 비롯해 의료민영화에 대항하는 투쟁을 벌였습니다. 또, 2019년에는 정규직 전환 투쟁을 통해 무기계약직 전환을 쟁취하셨는데요. 2022년 11월에 전개한 이번 파업은 이전 투쟁의 맥락과 어떻게 이어지나요? 그리고 어떤 배경에서 시작한 싸움인가요?
서울대병원분회 : 2013년부터 2019년까지 6년동안 매년 파업 투쟁을 했는데요. 2013년 노사 교섭에서 의사 성과급제 폐지, 적정진료시간 확보,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인력 충원 등의 요구안들을 제출했지만, 사측은 ‘비상경영’을 선포하고는 적자를 핑계로 논의를 거부했어요. 그러면서도 규모 확장을 위한 건물 신설투자는 계속해서 진행하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비상경영 체계 하에서 질 낮은 치료제 등의 의료서비스 저하가 발생했고, 병원이 교섭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갔던 겁니다. 이후 합의안에서 의료민영화 정책과 성과연봉제의 많은 부분을 막아낼 수 있었죠.
이윤 추구에 따른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와 노동조건 악화는 의료민영화와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했던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많은 병원에서 발생했던 문제였습니다. 의료공공성과 노동권 확보가 당시 투쟁의 중요한 의제였죠.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경우, 내부의 직접고용 쟁취와 하청의 간접고용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주된 목표였습니다. 특히 2018년에 서울대병원과 보라매병원의 하청 비정규직 노조인 민들레분회(청소미화분회)와 원⋅하청 공동 파업을 하는 역사적 투쟁이 벌어졌죠. 결론적으로 파업 이후 무기계약직은 모두 전일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고, 2019년에 파견용역노동자 전원 직접고용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경우, 2022년에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국립대병원에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주요 의제인 공공부문 노동자의 노동권과 의료공공성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격받았어요.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공격과 의료민영화 시도가 다시 시작되었고, 특히 사측이 이 틈을 타 “서울대병원 노조가 과반 노조가 아니다!”라는 명목으로 단체교섭권을 무력화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저희는 2021년도부터 파업을 준비하면서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했고,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상반기부터 투쟁을 준비했습니다. 6월 정도에 사측이 “서울대병원 노조가 과반 노조가 아니라서 안 된다”고 공격했을 때부터는 '과반 노조'라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했죠.
- 👉임금협약과 단체협약 : 임금협상은 올해 또는 향후에 기본급이나 각종 수당을 얼마나 올릴 것인지를 정하는 약속이며, 단체협상은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임금, 근로시간 기타의 사항에 대하여 단체교섭 과정을 거쳐 합의한 사항을 말한다. 둘을 합해서 임금단체협약이라고 부른다. 임단협은 근로조건 등에 대하여 노사간에 합의한 사항으로 노조법에 따라 규범적 효력이 인정된다.
2022년 11월 파업의 과정과 결과
질문 : 파업 진행 과정과 자세한 합의 사항이 궁금합니다.
서울대병원분회 : 3~5개월 동안의 조직화 사업 끝에 서울대병원분회는 과반 노조의 목표를 달성했어요. 그후 2022년 11월 23일에 파업을 진행했는데요. 윤석열 정부 혁신안 저지, 의료공공성 쟁취, 필수 인력 충원, 노동조건 향상 등이 핵심 요구였습니다. 4일 동안 파업을 진행해서 잠정합의를 했죠. 이번 투쟁의 주요한 성과는 간호부 인력 61명 충원, 1.4% 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전환 확대 및 임금 격차 완화, 기후위기 관련 직원 교육,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어린이 의료비 상한제, 그리고 간호부 리커버리 휴가* 등의 노동조건 개선이 있었어요. 사실 이 승리는 서울대병원 혼자만의 투쟁이 아니에요. 국립대병원 연대체에서 같이 공동 조정을 신청한 후에 의료연대본부 산하의 국립대병원들이 공동 파업을 진행한 결과였습니다.
- 👉리커버리 휴가 : 회복 휴가, 슬리핑오프(sleeping off)라고도 한다. 야간근무 누적 개수에 따른 휴가를 말한다.
질문 : 사측이 노사협의회로 노조를 우회하려고 꼼수를 부렸다고 들었는데요. 이걸 노동조합이 공격적인 조직화 사업으로 맞대응했고, 결국 과반 노조를 만들어내면서 더 강하게 압박할 수 있었다고 들었어요. 특히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직종들을 신속히 모아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요?
서울대병원분회 : 서울대병원분회는 가장 어린 조합원이 21살이고, 가장 나이 많은 조합원은 65살이에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었던 건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악으로 우리의 결속력을 더 강하게 해준 면도 있지만(웃음), 무엇보다 조직화를 위한 간부들의 헌신이 컸던 것 같아요. 2022년에 1년 내내 현장에서 전임자들이 환자, 그리고 노동자들과 같이 살다시피 했거든요. 6월부터 시작해서 서울대병원과 보라매병원 두 병원의 조직화를 위해 애썼죠. 그렇게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까 "넌 어제 밤에도 있던 애가 왜 또 왔냐"는 소리까지 들었죠.
질문 : 사측이 으레 그렇지만, 서울대병원 사측도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근래에는 서울대병원장 인선문제로 여러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공공의료를 담당해야 할 서울대병원에서 왜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고 생각하시나요?
서울대병원분회 : 서울대병원장의 경우 3년 임기로 연임이 가능한 시스템인데, 모든 국립대병원장 중 서울대병원장만 대통령이 임명을 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2017년 정부가 바뀐 후에 병원장 임기가 끝나게 되면서 2022년 새 병원장 인선이 계속 늦춰졌어요.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결정이 안 되는 거예요. 가장 큰 국립대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 결정해야 하는데, 현 병원장도 자신이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정권 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노사 교섭에서도 병원이 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결정권을 가진 병원장이 그 결정을 계속 유보했던 거죠. 물론 공공의료를 서울대병원이 모두 담당할 수는 없지만, 서울대병원이 가지는 역할이 있는데 그걸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20년이 지나니 사측도 교섭에서 공공의료라는 단어를 언급하더군요. 그러나 사측이 말하는 공공의료는 노조가 말하는 것과 다릅니다.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것들 중에 공공으로 할 수 있지만 영리로 운영해야하는 부분들도 많거든요. 물론 정부가 충분한 지원 없이 서울대병원에 공공의료 역할을 배정한 것이 이들로 하여금 수익을 신경 쓰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측은 노동조합의 요구 내용들에 원론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실행이 어렵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런 부분들을 정책에 반영해서 바꿔야 하는데, 이는 일정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이죠.
질문 : 합의 이후에도 보라매병원 서울시 시범사업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보호자 없는 병동)**의 간호 인력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시의회에 예산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합의가 유의미하게 남기 위해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요, 향후에 남은 과제 및 계 획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 👉보호자 없는 병동 : 보호자나 개인 간병인이 없이도 병원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
서울대병원분회 : 우선 서울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투쟁의 배경을 간략히 설명해드릴게요. 보라매병원은 시립병원으로서 종합병원이긴 하지만, 실제 입원하시는 분들의 중증도는 거의 상급 종합병원***과 비슷한 수준이거든요. 그런데 간호관리료 차등제****가 있어서, 일반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의 인력 기준이 다르게 적용돼요. 같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이라 해도, 서울대병원에서는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담당하는데 비해 보라매병원에서는 간호사 1명이 환자 8명을 담당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부분을 맞추기 위해 투쟁했었는데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시범 병동이라도 운영하자고 합의를 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간호관리료 차등제 기준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하고요. 이를 위해 건강보험공단에게 차등제 기준을 빨리 바꿔야 한다는 투쟁을 하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투쟁해야 하는 거죠. 현장에 있는 간호사들과 함께 관련 교육을 계속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상급 종합병원 : 대한민국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중증질환에 대한 질 높은 의료서비스 제공,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을 통한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목적으로 하는 병원.
- 👉간호등급제(간호관리료 차등제) : 간호인력 확보 수준에 따라 기본진료료 중 입원료를 차등 지급하는 제도. 적정수준의 간호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환자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토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9년 11월 15일 도입·시행됐다. 기준은 환자수와 간호사 수의 비율.
연대를 넓혀 우리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도록
질문 : 이번 합의 사항 중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절감과 폐기물 절감 대책이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기후 문제가 노조의 요구안으로 나왔다는 게 인상 깊습니다. 기후 재난에 대한 대응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지금, 병원은 기후위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구체적으로 병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요? 그리고 노동조합이 이를 위해 투쟁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서울대병원분회 : 사실 병원 건물은 탄소 배출이 아주 많아요. 서울대병원 같은 경우도 서울 시내에서 (탄소 배출) 3등이고, 서울 내 탄소배출량 1위부터 10위까지 랭킹을 매겨보면 6개가 병원입니다. 그런 만큼, 기후위기 관련해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죠. 그래서 이번에 의료 폐기물과 에너지 절감, 그리고 건물을 신설할 때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다거나, 직원 교육에 기후위기 교육을 포함하는 것 등의 조치를 요구했어요.
이처럼 서울대병원분회가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고 합의한 후에, 의료연대본부 산하의 국립대병원 노조들이 우리의 요구를 공동 요구안으로 채택했어요. 그러면서 본부 산하의 국립대병원들은 대부분 비슷한 합의를 했어요. 이는 이례적인 경우라서 저희도 중요한 성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조합운동 내부의 기후위기 대응 움직임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를 포함한 사회의 취약계층들이 기후위기의 피해를 제일 먼저, 그리고 많이 입거든요. 기업들이나 공공기관들을 바꾸기 위해서는 단순히 캠페인을 넘어 기후위기 대응을 투쟁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저희(서울대병원분회)를 포함한 모두의 장기적 과제겠죠.
질문 : 향후에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데에 있어서 학생과 노동자, 혹은 시민과 노동자 간의 연대가 어떤 방식으로 더 굳건하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서울대병원은 특히 대학병원 사업장인데, 대학과 대학생과의 관계를 어떻게 쌓아가야 할까요?
서울대병원분회 : 노조가 아무리 잘 싸우고 민주적으로 운영한다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들과 같이 연대하지 않으면 투쟁에서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학생운동이 줄어들면서 대학생과의 연대를 찾아보기 힘들어졌죠. 학생도 노동자도 현 상황에서 서로의 얘기를 나누는 것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안타깝습니다. 대학병원으로서 학생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쌓아야할지 고민되기도 하고요.
서울대병원의 최고 의 결 기구인 이사회 멤버들끼리는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했을 때, 진단서에 물대포로 인한 진압 때문이 아닌 병사 때문이라고 기재했던 사람이 의대학장이 되고, 당시 부원장으로 함께했던 사람이 대학장으로 갔거든요. 이익 추구로 똘똘 뭉친 기득권들의 끈끈한 ‘연대’에 비해, 사회적 약자들의 연결은 느슨하죠. 그들에게는 바로 눈앞에 이익이 보이지만, 우리는 바로 성과가 안 보이고 먼 길을 봐야하니까 힘들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걸 견뎌내지 못하면 소수만 혜택 받는 이 구조가 계속됩니다. 운동의 연결에 대한 회복이 없으면 한두 협상은 잘할 수 있어도 전체 운동의 승기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우선 학생, 시민 등의 공동체 구성원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야 할 것 같아요. 저들이 기득권 혈맹이라면, 우리는 더 크고 넓은 연대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사회에 의견을 내고 소통하고자 하는 분위기와 공론장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의 연대를 강화하고 넓혀서 우리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도록 만들어야죠. 그러려면 이런 자리가 많아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 파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에 대해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의료부문에서 파업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의료노동자들이 환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꿈꾸는 의료공공성의 상은 어떤 것인가요?
서울대병원분회 : 작년에 간호사들이 약 200명 정도가 파업에 나왔어요. 그런데 이 분들은 한 번도 파업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노동조합이 처음인 분들이세요. 가입 이후 파업에 나오라고 했을 때 많은 간호사 분들이 “간호사가 어떻게 환자를 버리고 파업장에 나가나요?”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간호사들이 계속 환자 옆에만 있다고 해서 환자를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파업에 나가서 인력 확충과 노동권 존중, 공공의료를 요구해야 환자를 정말로 지킬 수 있다는 걸 그 분들이 알아차리신 거죠. 이걸 느낀 이후 많은 분들이 파업에 나오게 된 것 같아요.
의료 공공성의 상에 대해서는, 노조가 계속해서 어린이병원 무상 이용에 대해 요구해왔었어요. 어린이들은 돈이 없고, 돈을 벌수도 없는데 부모의 능력에 의해 치료 여부나 정도가 달라지는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요구였죠. 더 나아가 어린이가 아닌 사람들도 소득에 따라서 의료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게 공공의료가 가야 하는 길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게 당연한 게 아니구나
질문 : 최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과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노동개혁’을 가장 먼저 꼽으며 ‘귀족노조’를 언급했던 것을 보면, 앞으로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투쟁에서 정부와 많은 마찰이 있을 것으로 예 상됩니다. 노동탄압을 대대적으로 예고한 정부를 상대로 노동자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서울대병원분회 : 민주노총 내부에서 사업 목표와 계획을 계속 토론하고 있어요. 저희 전임자 몇 명이서 말하기엔 크고 어려운 주제긴 하지만, 윤석열 정부 역시 이명박 정부와 비슷한 프레임으로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개별 사업장에서 자신들의 투쟁을 이끄는 파편화된 힘만으로는 부족하고, 노동시민사회 전체가 결합하고 연대해서 목소리를 내야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더 ‘헌신’하며 사람들을 모으고 설득하고 조직해야 하지 않을까요. 노동자 정치세력화도 방법 중에 하나일 수 있겠죠.
특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에서 볼 수 있듯이, 기득권은 항상 노조를 소수화하고 타자화, 악마화하는 식으로 공격 전술을 펼쳐왔어요. ‘노동조합과 파업하는 노동자는 경제에 피해를 주니까 국민 개개인에게도 피해를 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프레임으로 주류 언론과 합작해 반노조 여론을 형성하는데 힘쓰고 있죠.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안전운임제 시행에 70%의 국민이 동의하는데도 말이에요. 노동자가 대부분인데도 ‘저항하는 노동자’와 ‘일반 국민’을 구별 짓고 있습니다. 국가가 선도하는 이러한 배제에 대항하려면, 투쟁의 주체를 많이 만들고 전선을 넓히는 수밖에 없어요. 민주노총만 싸우는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운동이 분할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 연결되어 있거든요. 학생운동이 교육을 상품으로 만드는 대학 자본에 저항하는 투쟁이라고 한다면, 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상품 시장이 된 의료 시장에서 노동자와 진료를 받는 환자들이 평등과 권리를 찾아가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다른 노동자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상품으로 내가 삶을 지속하는 것인데, 노동권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누구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겠죠.
질문 : 운동이 너무 파편화되고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기도 하고, 최근 페이스북에서 ‘전장연 시위에서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했다면 훨씬 더 빠르고 쉽게 투쟁이 끝나지 않았을까?’ 라는 얘기를 하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하나의 작은 시민단체인 전장연을 공격하는 건 비교적 쉬운 반면 많은 노동자들이 결합했을 때는 그렇게 탄압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혹시 민주노총이나 노조에서 다른 부문의 운동에 연대하려는 시도나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서울대병원분회 : 적절한 지적입니다. 사회적 의제와 관련해 공공의료와 기후위기 대응을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이끌어가려고 한다는 얘기는 아까 말해드렸었죠. 올해 요구안 중에 장애인 채용 및 정규직 전환 차별 시정에 대한 요구안도 있었고요. 하지만 전장연 투쟁 결합은 노조 내부에서도 저항이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이전에 사회에서 배웠던 편견들이 너무 강고해서 아직 그 사람들을 누르고 있어요. 그래서 한 번에 연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사회적 연대를 하는 노조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 필요해요. 사회적 의제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 투쟁에 이익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조합원들이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운동과 운동의 만남에서 오는 시너지가 나옵니다. 특히 연대의 힘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방식은 파업인 것 같아요. 사회적 연대*를 조합원들에게 얘기하는 데 있어 저희도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만나는 이런 자리도 연대를 확산한다고 볼 수 있겠죠. 서로가 만나면서 신뢰를 지속적으로 쌓아가야 합니다.
- 👉서울대병원 분회가 속해 있는 의료연대 서울지부는 간담회 이틀 후인 1월 12일 혜화역에서 전장연의 아침선전전을 지지하는 활동에 함께 했다.
질문 : 마지막으로 함께 투쟁해준 조합원들, 투쟁에 연대한 학생과 시민분들, 그리고 앞으로도 스스로의 권리와 우리 사회를 위해 투쟁할 노동자들을 향해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서울대병원분회 : 활동하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당연한 게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정말로 누군가의 투쟁과 희생이 있어서 누리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정말 치열하게, 함께 싸워야 모두가 행복할 권리를 누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글 : 이은세(비서공), 김현빈 (플랫폼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