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북쪽 변방에 위치한 몽골은 넓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적은 인구와 국가간 역관계에서의 왜소한 영향력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 연말, 몽골 울란바토르에서는 유례 없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2022년 12월 4일, 울란바토르 시내 수흐바타르 광장(Сүхбаатарын талбай)에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모여 이크텐거로 행진을 시도했다. 시민들은 이른바 '석탄 스캔들'에 항의하면서 거세게 정부를 규탄했다. 하지만 경찰이 쳐놓은 바리케이드에 의해 저지됐다. 시민들은 "내일 다시 모여 시위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3대 도시인 다칸에서도 시민들이 "도둑들에 맞서 싸우자"고 외치며 시위했다.
이튿날인 5일, 영하 21도의 날씨를 뚫고 더 많은 시민들이 모였다. 대부분 대학생들로 이뤄진 시위대는 대통령 집무실이 위치한 정부종합청사(Засгийн газрын ордон) 점거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크게 충돌했다. 시민들은 "관료들이 부패를 저지르고 있다"며, "정부가 사라진 석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소리쳤다.
8개월 전인 2022년 4월에도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4월 7~8일 수천 명의 청년들은 수흐바타르 광장에 모여 일자리 확충, 불평등 개선, 물가 인상 반대, 공정한 재판 등 다양한 요구를 제기했다. 7일에 발생한 평화적인 시위 이후 약 스무 명의 청년들이 경찰로부터 구타를 당했다. 경찰이 시민들을 구타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더 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튿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동참했고, 경찰 폭력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어용에르덴 롭산남스랴 총리는 광장에 나타나 시민들의 요구들 중 일 부에 대한 노력을 약속했다.
2022년 8월 몽골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몽골 경제는 마이너스 9% 역성장을 기록했고, 이후 다소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코로나 이전의 수준에 미달한다. 또 2022년 7월 기준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15.7%나 올라 국민들의 불만이 크게 누적됐다. 특히, 식품분야에서 21.5%, 물류·운송분야에서 18.7%, 의약품·의료서비스분야에서 17.9%가 상승해 생활고가 극심해지고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석탄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시민들은 석탄 산업과 관련되어 있던 '석탄 마피아' 정치인들이 수십억 달러 상당의 중국 수출용 석탄을 가로채 사익을 취했다며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11월 이래 몽골의 감찰 당국은 국영 석탄기업인 에르데네스 타반톨고이(Erdenes Tavan Tolgoi) 회장 등 30여 명의 고위 경영자 및 공무원들을 부패 혐의로 조사하고 있었다.
당일 인터넷상에는 정부청사로 몰려들어가는 시민들의 모습, 수흐바타르 광장에 세워진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불타는 사진과 영상이 올라왔다. 시위는 밤늦게까지 이어졌으며, 정부청사의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매우 격렬하게 전개됐다.
그날 저녁 몽골 의회는 비상사태 선포에 관해 논의했지만, 비상사태 선포까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시위대와의 대화를 위해 '워킹그룹'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틀 후인 12월 7일, 루브산남스레인 오윤-에르덴 몽골 총리는 시민 대표들과 만나 대화를 가졌고, "석탄 스캔들은 공공의 문제이며, 시기적절하게 해결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위는 이후로도 지속됐다. 이날 수백여 명의 시민들은 다시 수흐바타르 광장에 모여 정부 개혁을 촉구했다. 주된 요구는 석탄 스캔들과 연루되어 있는 훨씬 더 많은 관료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이들을 모두 처벌하라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정부가 철저한 수사를 벌이지 않고 있다고 의심했고, 점증하는 불평등과 경제난, 그리고 관료들의 부패에 분노했다.
이번 시위는 "중국 수출용 석탄 650만톤(우리 돈 2조5천억원에 상당)이 사라졌다"는 소문으로 촉발됐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몽골의 수사기관은 부패 관료들이 빼돌린 석탄량이 약 38만5천톤일 것으로 보고 있다.
석탄 채굴 등 광산업은 몽골 수출품목의 87%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2022년 들어 몽골의 대중국 석탄 수출은 크게 증가했는데, 이는 중국의 에너지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소련 해체 이후 몽골은 다당제를 중심으로 한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정치적 민주화를 이행해왔다. 이후 여러 차례의 총선과 대선을 치르며 평화적 정권교체를 반복적으로 이뤘고, 자유주의 정치 체제로의 이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는 서구식 민주화의 사례이기보다는, 특수한 정세 속에서 정부내 개혁파와 반정부 민주적 온건파가 타협한 결과였으며,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아닌 공산당 간부들의 자녀 세대에 의한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나 동유럽 국가의 구 공산당 세력이 완전히 주변화된 것과 달리, 몽골인민혁명당(MPRP)은 기존 노선을 포기하고 서구식민주화를 평받아드렸기 때문에, 계속 강력한 여당으로 다시 등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영기업들의 사영화와 개혁 과정에서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심화됐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몽골의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몽골의 정치인과 공직자의 부패 수준은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1992년도 이후 정치체제나 서구식 선거제도를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뇌물과 부패 문제는 훨씬 심화되고 있다. 즉, 우리는 서구식의 민주주의 제도를 민주주의의 지표로 인식하는 것이 오류라는 점을 몽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몽골 국민들은 부정부패에 대해 높은 불만을 갖고 있고, 빈부격차나 부자들의 과시적인 소비 생활에 대해서도 크게 분노하고 있다. 특히 몽골의 고위 관료나 부자들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몽골의 광물탐사권을 외국인기업에 넘겨줌으로써 개인 이익을 챙기는 정치인과 관료인들에 대한 분노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이번 석탄 스캔들과 대규모 시위는 이토록 누적된 모순과 분노가 폭발한 결과이다.
이번 대중시위가 국가권력의 부패를 견제하고 대항할 힘을 구축해나가는 사회운동 흐름으로 나아간다면, 몽골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동력 역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