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죽지 않는 일터를 위해 대학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2022년 12월 1일
🧹이 글은 2022년 10월 13일 서울대학교에서 진행된 “서울대, 노동, 그리고 우리” 행사의 발제문 중 일부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무더운 여름철은 이따금 우리에게 아픈 기억을 상기시킨다. 2019년 8월 9일과 2021년 6월 26일, 2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서울대학교에서 두 분의 청소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열악한 휴게공간, 과중한 노동강 도와 강압적인 노무 관리 통제가 낳은 두 번의 사망 사건이 그것이다. 청소노동자들의 죽음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 서울대학교는 무엇이 바뀌었을까? 그리고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두 사망 사건을 되돌아보며, 향후 과제를 고민해보려 한다.
2019년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 휴게공간
2019년 8월 9일은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한 주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날 67세의 청소노동자가 공과대학 302동 건물의 휴게실에 머무르다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공간은 ‘휴게실’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계단 아래에 위치한 휴게실은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마련된 공간이 아닌, 사실상의 가건물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음 때문에 청소노동자들은 평소 휴게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휴게실이 청소도구 창고에 덧붙여 급조된 터라, 창고의 약품과 기름 냄새가 휴게실에도 새어 들어왔다.
한 평 남짓한 비좁은 휴게실에는 오래된 선풍기가 하나 있었을 뿐이다. 여름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에어컨도, 겨울의 추위에 대비하기 위한 난방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창문이 없어 환기에도 문제가 컸음은 물론이다. 여름철 장맛비가 내리면 습기가 차 곰팡이가 생기는 비좁은 지하 휴게실이 302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숨 돌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던 셈이다.
사건 이후 서울대 오세정 총장은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왔다. 하지만 이 노동자의 사망에 대해서는 "지병 때문일 뿐 대학의 책임은 없다"는 것이 학교의 입장이었다. 그 해 가을 국정감사에서 오 총장이 “청소노동자가 돌아가신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을 제외하면, 공식적인 사과도 부재했다. 그러나 고인이 속해 있던 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대시설분회에서는 이전부터 에어컨 설치 등 휴게공간 개선을 요구해왔다. 이런 절박한 요구를 무시하고 미루어온 것은 바로 대학본부였다.
학교의 미진한 태도 앞에 학생들이 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학생들은 “사소하지 않은 죽음은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학내 노동자 휴게실 및 노동환경 개선,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서명운동이 시작된 지 1주일 만에 참여자 수가 7,700명을 넘을 정도로 많은 학내 구성원들과 시민들이 참여했다. 대학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는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휴게공간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그만큼 뜨거웠다.
결국 학교는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전수조사하고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응답했다. 이에 따라 2019년 12월 가이드라인이 제정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휴게공간 개선이 이루어진 것은 고인의 1주기가 지난 2020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다. 302동 건물의 휴게공간은 뒤늦게 폐쇄됐고, 동료 노동자들에게는 위층의 개선된 공간이 제공될 수 있었다.
3년이 넘게 지난 지금,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엔 여러 문제가 산재하고 있다. 서울대의 대표적 건물 중 하나인 중앙도서관 휴게실만 해도 명목상 지상층이지만 사실상 지하나 마찬가지다. 그 때문에 심한 습기와 낮은 공기 질 문제를 안고 있다. 아울러 일터와 휴게공간 사이의 거리가 지나치게 멀기 때문에 현장 근무자들의 접근성이 무척 낮다. 휴게실을 아무리 개선된 환경으로 이전했다고 하더라도, 근무지와의 접근성이 낮으면 노동자들은 창고나 탕비실, 화장실 등에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밖에도 창문이 없거나 공간 자체가 매우 좁은 경우, 샤워실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 등 문제점이 캠퍼스 곳곳에 남아 있다.
강압적 노동통제와 노동강도가 낳은 죽음
다시 2년이 흐른 2021년 여름, 관악 학생생활관 925동에서 또 한 명의 청소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60세의 고인은 당시 196명에 육박하는 학생들이 거주하던 기숙사 925동 건물을 혼자 청소해야 했다. 6월 26일은 토요일이었지만, 주말에도 학생들이 머무르는 기숙사의 특성상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은 주말 중 하루를 선택해 4시간 정도 근무해야 했다. 의무는 아니었으나 주초 노동강도를 줄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생활임금이 보장되지 않는 저임금 청소노동자에게 휴일근무수당은 생계에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했다.
고인의 남편은 서울대 규장각에서 기계·전기 업무를 담당하던 시설관리 노동자였다.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유족과 동료 노동자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으로 다가왔다. 고인이 소속된 민주일반노동조합이 작업량과 갑질 문제에 대한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건물 내부만이 아니라 외곽까지 청소해야 했을 만큼 노동강도가 과중했고, 옷차림 지적이나 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 통제적 청소 검열 등 노무관리 문제들이 드러났다. 유가족은 노동조합에 산재 인정을 받겠노라 의사를 밝혔고, 이에 따라 노조는 과중한 노동강도와 강압적 인사관리 실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했다.
사건 초기에는 ‘갑질’로 일컬어지는 노무관리 행태가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관악학생생활관은 한자와 영어 명칭을 쓰도록 하는 등 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을 강제했다. 시험 점수가 “근무성적평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됐고, 이는 생활관 관장을 포함한 상급 관리자들에게도 보고됐다. 결국 고용노동부 조사를 통해 “①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 실시 및 시험성적의 근무평정 반영 관련 의사표시, ② 복장에 대한 점 검과 품평이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 강도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 이후 배달 음식이 급증하면서 쓰레기의 양이 급격히 증가했다. 낙후된 기숙사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 탓에 노동자들은 계단으로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옮겨야 했다. 2019년에는 하루 평균 605리터였던 쓰레기 양이 2021년 상반기에는 평균 1,013리터로 증가했을 정도다. 당시 기숙사에서는 지자체가 노동자 인권 차원에서 사용하지 않고 있던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 봉투당 8~10kg에 달하는 쓰레기를 엘리베이터도 아닌 계단으로 옮기는 일은 무척이나 고될 수밖에 없다.
노후 건물의 샤워실은 여름철 고온다습했기 때문에 곰팡이가 많았다. 낡은 기숙사에 거주해 본 학생들은 앞다투어 샤워실의 낙후성을 이야기한다. 고인을 비롯한 노동자들은 환기가 미비한 공간에서 샤워실 곰팡이를 천장까지 일일이 제거해야 했다. 2021년 12월 22일, 근로복지공단 서울관악지사는 고인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판정했다. 청소업무로 인한 과중한 노동강도가 사망을 유발한 주요 원인이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 역시 일부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샤워실 곰팡이를 치우는 업무가 사망의 주원인이었다는 산재 담당 노무사의 규명도 산재 판정에 인용되었다.
불평등한 이중적 고용구조
많은 학생과 노동자, 시민들이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며 학교당국의 책임 있는 태도를 요구했다. 7월 8일, 고인이 소속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대시설분회, 그리고 학생 모임인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더는 한 사람의 노동자도 떠나보낼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대학본부의 책임 인정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성명에는 “청소노동자 사망에 대한 학교의 책임 인정과 사과, 노사가 함께 구성한 산업재해 공동 조사단을 통한 진상규명, 책임 있는 관리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징계,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협의체 구성과 노동조합과의 적극적 대화, 강압적인 인사관리 방식 개선 및 인간다운 처우 보장을 위한 인력 충원” 등 요구가 담겼다. 학생과 노동자들은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올바른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연서명”을 진행하고 추모공간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의 대응은 미진했고, 관계자들은 부적절한 발언을 일삼았다. 구민교 당시 학생처장은 공개적으로 소셜미디어 계정에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 “외부 정치세력의 간섭” 등 표현을 게시했다. 남성현 당시 관악학생생활관 부관장은 기숙사 사생들에게 공지한 담화문에서 “노조 측의 허위 주장이 일방적으로 보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숙사에 거주했던 많은 학생들은 부적절한 공지가 담긴 문자 발송에 충격받았다. 기숙사 노동조건에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의 2차 가해성 발언은 사회적인 공분을 야기했다. 그럼에도 대학본부는 노동조합이 사측과 함께 참여하는 공동 조사단 구성을 거부했고, 부적절한 발언으로 비판받은 학생처장 등이 운영위원으로 있던 인권센터를 통한 조사 방식을 고집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존재했다는 고용노동부의 조사결과가 발표된 이후 오세정 총장은 사과 의사가 포함된 입장문을 발표했다. 향후 노동조합의 의견을 청취하고,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현장 노동자들과 소통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실질적 개선 방안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은 입장문이 진정성 있는 사과로 간주되기는 어렵다. 입장 발표 이후 진행된 총장과 유족·동료 노동자 간담회에서 학생과 노동조합이 배제되었다는 점도 대학본부의 소통과 개선 의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사망 사건 이후, 기숙사 측은 노동강도를 완화하겠다는 명목으로 기존의 주말 청소업무를 외주화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주초 노동강도를 높였을 뿐 아니라, 저임금을 겪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휴일근무수당마저 삭감해버 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기숙사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이전부터 건물 외부를 청소하는 인력을 안정적 직고용으로 충원함으로써 노동강도를 낮추고 학생 생활공간 청소의 질을 높일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인력 충원 없이 건강과 안전이 보장되는 노동환경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2018년 직고용 전환의 취지마저 거스르며 용역업체를 통한 주말업무 외주화로 미봉책만을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데에는 서울대 학교당국의 고질적인 이중적·차별적 고용구조가 있다. 실제 학내의 여러 기관이나 단과대의 노동자들은 총장 발령이 아닌 기관장 및 학장 발령으로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학으로의 직고용 전환은 이루어졌으나, 사실상 대학본부가 직접적으로 인사발령과 처우를 책임지지 않는다. 간접고용과 유사한 관계가 대학 내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관악학생생활관의 경우에도 총장이 아닌 관장이 청소노동자를 발령하는 형태다. 이를 빌미로 대학본부는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기숙사 쪽에 책임을 미루고,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에 소극적 태도를 취 해 왔다. 이와 같은 책임 회피에 대해 관악학생생활관은 "대학본부가 인력 충원 등에 필요한 재정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할 뿐이다.
서울대학교는 2017~18년 정규직 전환을 이루었다며 대대적으로 언론에 홍보했다. 그러나 서울대 당국은 2019년과 2021년에 연이어 발생한 청소노동자들의 죽음을 예방하지도, 재발 방지 대책을 책임있게 시행하지도 못했다. 용역업체 기간제 고용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 직고용으로 전환했지만, 실질적인 차별 시정과 처우 개선, 인력 충원을 위한 대학본부의 재정적 책임의 부재가 빚은 결과였다. 대학본부 총장의 발령 고용이 아닌, 각 단과대와 기관으로 파편화된 차별적 고용형태도 무책임한 태도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다.
사망 사건이 재발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선, 이중적 고용구조를 극복하고 대학본부가 고용과 처우를 제대로 책임지는 ‘진짜 정규직화’가 중요하다. 공공부문의 무기계약직 전환에 대한 무책임한 차별 처우와 인력 감축이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사용자가 책임지는 ‘진짜 정규직화’는 더 시급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글 :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