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시진핑 3연임 규탄 시위
2022년 10월 28일
베이징 도심 한복판, 고가도로 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확성기로 구호 소리가 들렸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웅성거리며 몰려들고, 영상이나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 경찰들이 고가도로 위로 뛰어올라갔고, 얼마 후 고가 위에 내걸린 현수막은 철거됐다.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을 사흘 앞둔 10월 13일의 일이다.
흰색 바탕에 붉은 색의 선명한 글씨가 적힌 4장의 현수막에는 중국 정부의 코로나 방역 정책과 통치, 시진핑 주석을 비판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不要核酸要吃饭,不要封控要自由,不要谎言要尊严,
不要文革要改革,不要领袖要选票,不做奴才做公民
罢课罢工罢免独裁国贼习近平
PCR 검사가 아닌, 밥먹고 살길 원한다.
봉쇄와 통제가 아닌, 자유를 원한다.
거짓이 아닌 존엄을 원한다.
문혁이 아닌 개혁을 원한다.
영수(지도자)가 아닌 선거를 원한다.
노예가 아니라, 공민이 되자.
수업 거부! 파업! 독재자 매국노 시진핑 파면!
바로 베이징 4환 북서쪽 중국인민대학 캠퍼스 인근 쓰통차오(四通桥) 고가 위에서 벌어진 일이다. 12차선 대로 위를 지나가던 수많은 시민들이 현수막에 적힌 문구를 쳐다보았다. 차 안에 있다가 영상을 찍는 시민들도 있었고, 횡단보도 앞에 서서 기다리다가 수차례 사진을 찍는 시민들도 많았다.
연기의 정체는 불타는 타이어였다. 동시에 앰프가 장착된 확성기에서 인공지능 음성으로 “수업거부! 파업! 시진핑 퇴진! 罢课罢工罢免习近平“ 구호가 흘러나왔다. 고가에서 200미터 이상 떨어진 위치에서도 들릴 수 있을 정도로 볼륨이 컸다.
제로 코로나에 대한 불만
현수막에 적힌 구호는 제로 코로나(动态清零) 통제, 경제 위기와 중국 내수 시장의 위축, 실업난 등을 둘러싼 대중들의 불만을 반영한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 확진자수가 어느 정도 늘어나면 도시 전체를 봉쇄해버리는 강력한 수준의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3월 초 시진핑 주석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예방과 통제 효과를 달성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오미크론 변종이 유행하자, 연초 급증세 이후 줄곧 안정세를 보이던 확진자 추세도 2월부터 다시 증가했다. 이로 인해 팬데믹 3년차인 올해에도 중국의 몇몇 대도시들은 봉쇄로 몸살을 앓았다. 3월 14일부터는 광둥성 선전(深圳)과 동북부 지린성(吉林省) 전역이 봉쇄됐고, 열흘 후인 3월 24일엔 랴오닝성(辽宁省) 선양(沈阳)이 봉쇄됐다. 선전시 인구는 1300만 명, 지린성 인구는 2400만 명, 션양시 인구는 830만 명에 달한다. 수도 베이징도 4월 말부터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부분적인 지역 봉쇄 조치가 시행됐다.
팬데믹 시기 베이징 배달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 알고 싶다면 다음 글 확인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대중의 불만도 곳곳에서 폭발해왔다.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여 간 상하이와 베이징의 대학들에서는 캠퍼스 봉쇄에 대한 규탄 시위가 연이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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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국의 코로나 상황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 10월 23일 기준 중국내지(홍콩·마카오 제외)의 누적확진자는 약 26만 명으로, 인구 대비 수준으로도 순위(106~107위)로도 높지 않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코로나 방역 통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제로 코로나가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실물 경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네이선 레빈(Nathan Levine), 대니 리(Danny Li)는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할 경우, 연 GDP의 0.6%에서 1.5%가량 추가 손실이 발생하여 중국의 2022년 목표인 5.5% GDP 성장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부작용 없이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통제하라는 명령을 이행하기란 불가능하다. 한데 기층으로 내려갈수록 당국의 관료들은 이 명령을 어떻게든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이에 따라 시민들의 불만을 억압적으로 대처하는 일들이 빈발했다. 지도부로부터의 책임을 추궁받지 않기 위한 몸부림 속에, 민중들의 불만에 대한 억압만이 답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시 봉쇄로 생계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접어들자, 여러 사구(거주 공동체)에서는 시위가 빈발했다.
다시 소환된 ‘문혁’
“문혁이 아닌 개혁을 원한다”는 구호는 최근 심화되고 있는 중국 정부의 시민 통제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문화혁명은 관료주의 심화에 대한 대중의 계급투쟁으로서의 성격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문혁 = 독재’로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화혁 명의 성격을 보다 깊이 있기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책을 참고할 수 있다. 백승욱, 『문화대혁명. : 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 살림출판사 백승욱,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 그린비 차오정루, 『민주 수업』, 나름북스 손승회, 『문화대혁명과 극좌파 마오쩌둥을 비판한 홍위병』, 한울아카데미 천이난, 『문화 대혁명, 또 다른 기억 어느 조반파 노동자의 문혁 10년』, 그린비 첸리췬, 『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 1949-2009 상 다르게 쓴 역사』, 한울아카데미
중국공산당은 문혁을 선동한 마오쩌둥에 대해 “공칠과삼”으로 요약되는 역사결의를 통해 평가하였고, 문혁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화하는 것은 매우 문제적으로 여겨진다. 이는 중국공산당 내부에서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해 망각을 강요한 것이었다. 이런 단순한 평가나 ‘잊으라’는 강요는 끊임없이 문혁의 복잡성과 트라우마를 다른 방식으로 환기할 뿐이다.
호응과 통제
현수막이 걸린 방향은 북쪽으로, 중국인민대학 캠퍼스를 향해 있다. 시위자는 이곳이 지하철 4호선 인민대학역이 위치한 한복판이고, 유동인구도 많은데다 대학생들이 많이 오고가기 때문에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노란색 안전모를 쓰고, 주황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는데, 이는 경찰의 시선을 피해 고가대로 위까지 진입하기 위한 위장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