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0일,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누온 속헹(NUON Sokkheng)씨가 숨졌다. 그는 경기도 포천시의 난방이 되지 않는 농장 비닐 하우스 숙소에서 영하 18도의 한파를 견디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속헹 씨가 목숨을 잃은지 17일 후 고용노동부는 「농어업분야 외국인노동자 주거환경 개선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 개선은 요원하다. 여전히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청하고 겨울 한파를 견뎌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비닐하우스 옆에 샌드위치 패널로 얼기설기 조립한 가건물 숙소에 사는 농업 이주노동자들은 수도권으로 보낼 시금치·열무·상추 등을 1년 내내 재배하고 있다.
2021년 1월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이주노동자 주거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농어업 이주노동자 99%가 사업주가 제공한 숙소에 거주한다. 이 가운데 69.6%가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 부실한 가설 건축물에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근로자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지침’을 만들어 사업주들이 열악한 가건물에 이주노동자를 살게 하는 것을 용인하고, 심지어 임시주거시설(패널,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은 월급의 8%(156,000원), 상시 주거 시설(아파트, 단독, 주택, 다세대 등)은 월급의 20%(292,000원)까지 숙박비로 받을 수 있게 했다. 고용노동부가 한국의 사업주를 도와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할 수 있도록 도운 셈이다. 여기에 공과금까지 더하면 고용주는 화장실도 없는 열 평 남짓한 공간에 노동자 다섯명으로부터 20만원씩, 월세 100만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단독주택이나 빈집을 개조하면 5명 기준으로 월세 200만원 까지도 받을 수 있다. 집값이 비싸지도, 보온이 잘 되지도 않는 농촌 폐가를 고쳐 터무니 없이 많은 돈을 받는 것이다.
현행 고용허가제와 근로기준법의 문제점
한국의 이주노동자 수용은 1987년 이후 경제성장과 임금인상, 3D 업종 인력 부족으로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면서 시작됐다. 1994년 ‘연수’라는 명목으로 저임금, 산업재해로 악명 높았던 ‘산업연수생제’를 도입했고, 2004년에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이 인정되긴 했지만 차별과 부당한 대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거주 기간을 기본 3년으로 하고, 재고용될 경우 4년 10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국적법에 따라 5년 이상 한국에 머물면, 영주권 신청과 귀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에게 영주권 취득 자격을 주지 않기 위해 5년에서 두 달이 부족한 4년 10개월을 최대 체류 기간으로 정한 것이다.
한데 막상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퍼지고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자, 농가와 공장들은 인력난에 허덕였다. 여전히 미등록 노동자를 단속하고, 강도 높은 처벌과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지만, 한국 노동시장은 이미 이주노동자 없이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제63조는 업종에 따른 탄력 근로를 위해 농업, 축산업, 어업 등을 근로기준법상 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해당 업종의 사업주들은 합법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을 저임금·고강도 노동으로 착취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 체불 규모는 2020년 1200억을 넘어섰고, 해마다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현행 고용허가제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사업주가 임금을 체불해도 맞서기 어렵다.
법과 제도가 이주노동자를 옭아매니 오히려 미등록 노동자로 지내려는 노동자들도 많다. 그러나 미등록 노동자 역시 ‘불법’이라는 신분을 트집잡아 초과 근무를 시키거나 퇴직금을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앞서 언급한 숙식비 강제 징수 지침에서는 퇴직금을 출국 후 받게 한 ‘출국만기보험’, 사업장 변경 금지, 임금 체불 등 현재의 이주노동자 제도는 여전히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성폭력 피해에도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제대로 된 신고나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설문조사 결과, 조사 대상 202명 가운데 25명(12.4%)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성폭력 가해자의 80%는 한국인이었는데, 고용주를 비롯해 고용주 가족, 관리자, 직장 동료, 이웃 순이었다.
피해 여성은 많지만 실제 신고 건수는 극히 드물었다. 한국말을 잘 못하거나(68.4%),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르거나(52.6%), 내 말을 안 믿어줄 것 같았기 때문(42.1%)이었다. (중복 응답 허용)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고용허가제 업무 편람>에 따르면, 이주노동자가 성폭행 피해를 이유로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경우 당국은 사실 관계를 조사한다. 피해가 인정될 경우, ‘긴급 사업장 변경’이 허용된다. 그러나 수사 결과가 허위나 거짓으로 판정나면, 해당 이주노 동자에게 ‘불이익’을 부과한다. 새로운 사업장 알선을 중단하거나 고용 관계 해지 후 출국 조치를 단행하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 진술 외에 물적 증거가 확실치 않아 법적 입증이 어렵다. 하물며 한국말도 서툴고 한국 문화도 낯선 이주노동자가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혐의없음’을 근거로 출국 조치를 한다면 사실상 성폭력 피해 신고 자체를 막는 효과를 가져온다.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에는 “누구든지 피해자를 고용하고 있는 자는 성폭력과 관련해 피해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적혀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이러한 법의 보호 바깥에 놓여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오해와 차별
많은 이들이 이주노동자가 불법으로 한국으로 들어와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인력이 부족한 한국의 사업장에 단기적으로 와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선은 내국인 구인 노력이 의무이고, 7~14일 정도의 공고 후에도 지원자가 없을 경우, 그 자리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한다. 즉, 고용허가제는 한국의 필요로 외국에서 노동자를 불러오는 제도이지, 저개발국 노동자에게 시혜를 베풀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따라서 ‘불법’, ‘미등록’이라는 용어도 이들의 통제를 위해 정부가 붙인 딱지일 뿐이다.
이주노동자가 많은 제조업, 건설업은 재벌 중심의 수직적 하청구조가 공고히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하도급과 중간착취로 이윤이 적어지고, 하청업체는 착취를 극대화하기 위해 최저시급 혹은 그 이하를 줘도 되는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선호한다. 결국 제조업, 건설업 분야에서 인력 문제의 원인은 ‘정주 노동자냐 이주 노동자’냐, ‘비정규직 노동자냐 정규직 노동자냐’가 아니라 직접고용을 하지 않는 수직적 하청구조와 정부의 방관에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사람보다 이윤이 우선인 체제 자체에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의 차등적용은 일자리를 구하는 국내 노동자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사업주는 더 적은 임금을 지불하고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고 할 뿐, 내국인 채용은 꺼릴 것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은 한국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국적,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에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받아야 생활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저’ 기준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지급은 ‘차등’이 아니라 ‘차별’이다.
2016년 기준 국내이민자의 경제활동과 기여효과(이주노동자 생산 유발 효과와 부가가치 유발 효과 합산)는 생산효과 54조 6천억, 소비효과 19조 5천억으로 총 74조1천억에 이른다. 2019년 93.7조원, 2020년에는 101.4조원으로 추정되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한 제약때문에 입국한 노동자가 감소했지만, 2019년에는 이주노동자 수는 200만 명이었고, 코로나 이후는 약 120만 명 규모다.
이주민(외국인)은 선주민(내국인)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자리를 메우고 있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식품, 음식점에서 사는 반찬들은 밭에서,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민의 손을 거쳐 온다. 한국인의 식탁에 꼭 올라오는 김치는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손에서 만들어진지 오래고, 코로나 시기의 필수품인 마스크도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주노동자의 노동 덕분에 양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사용해 온 것이다. 이제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현재 이주노동자 운동의 요구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 고용허가제 폐지와 노동허가제 도입, 노동기본권 보장,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단속 중단과 합법화, 농축산어업 노동자 차별 철폐,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중단, 이주민 혐오와 인종차별 철폐 등이다.
이와 함께 저출생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생산가능 인구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기술/기능 훈련 참여, 가족의 동반, 정주화(정착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것) 등에 대한 정책도 필요하다.
이주노동자 투쟁과 연대
한국 사회의 구성원인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 신분과 강제 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집단 행동에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계속해서 부당한 노동조건과 제도에 맞서 싸워왔으며, 이에 연대하는 노동자,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이어져왔다.
94년 미등록 이주 노동자 경실련 투쟁에서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들이 배상을 쟁취해, 3월 미등록이주노동자 산재 적용이 이루어졌고, 95년 연수제도 폐지를 위한 네팔노동자 13명의 명동 성당 천막농성으로, 산업연수생에 대한 근로기준법 일부 적용을 이루어 냈다.
이후에도 이주노동자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2000년에는 이주노동자 연대조직인 외노협이 탄생했고, 노동권 완전쟁취와 이주, 취업의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2001년에는 서울경인 평등노조 이주지부가 결성되고 대구 성서노조가 결성되어 ‘강제추방저지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내걸고 민주노총농성단으로 명동성당 농성 투쟁을 전개했다. 2005년에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고, 10년 여의 탄압을 이겨내고 2015년 이주노조 합법화를 쟁취해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운동을 하다가 돌아간 네팔과 방글라데시의 활동가들이 2008년 6월 한국의 이주노조 활동가들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본국 노동자와 한국 이주노동자운동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를 열었다. 국제연대를 통해 본국과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운동을 더 발전시키자는 취지였다. 네팔 활동가들은 한국으로 갈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현실과 노동법 등을 교육해 이들이 한국에 왔을 때 이주노조에 가입할 가능성을 높이고, 어려움을 겪는 이주노동자를 도왔으며, 노동절과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에 직접 행동을 했다.
2011년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했다는 이유로 구속·체포됐을 때에도, 당시 민주노총 건설연맹이 기자회견, 집회에 조합원을 조직하고, 사건의 전말을 파악해 탄원서를 받아내는 등 중추적인 역할로 연대하기도 했다.
2013년 현대자동차 부품 납품업체인 엠에스오토텍 노동자들은 회사가 하도급 계약을 맺으려 했을 때 어용노조의 방관을 보고 민주노조와 함께 하기로 했다. 노조는 38명의 이주노동자들에게 함께 할 것을 제안했고, 이들은 고용허가제 기간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받을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공통의 적’인 회사에 맞서 노조와 뜻을 같이하고, 생산라인을 멈추는데 동참했다. 결국 엠에스오토텍에 민주노조가 세워졌고, 25명의 이주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이후 노조는 이주노동자와 사내 하도급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민주노총 화섬노조 폴리피아지회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하며 단체 협상을 통해 상여금 및 명절비를 지급받는 등, 이주노동자 권리 쟁취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관련 기사: [월간 노동법률] 이주노동자와 함께 세운 노동조합, 그들이 말하는 차별은?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경우, 단체협상에서 불법, 합법 상관없이 이주노동자에게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상의 모든 규정을 동등하게 적용하고 조합 가입을 보장해야 하며, 국적, 인종 고용형태 등을 이유로 어떠한 차별도 하지 말 것, 그리고 고용 종료 3개월 전 새로운 근로계약 요구시 정규직으로 재고용해야 하며, 경력 급여 등을 승계하고 보장할 것을 명시하기도 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최근 이주노동119사업단을 만들어 최근 열악한 조건에 놓여있는 캄보디아 농업 노동자에 대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성서공단노조 이주노동자 사업에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실현,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가 함께하는 단결과 연대의 실현을 목표로 노조활동과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를 차별하여 분열시킨다. 특히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차별의 잣대를 더 용이하게 들이댄다. 이주노동자가 열등하다는 시선, 무시의 시선이 이들을 사회적 하위집단으로 위치시킨다. 이는 저임금의 노동력을 용이하게 동원하기 위해 여성노동자, 고령노동자, 장애노동자 등 소수자 집단에 가해지는 차별적 논리와 맥락이 동일하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이주노동자 투쟁에서 참조할 사례는 매우 많다. 1970년대 독일로 이주한 한국 출신 여성 간호노동자들은 서명운동, 공동 집회, 공청회를 열어 체류권을 쟁취했다. 유럽 출신의 외국인에게만 부여하던 의료요양 분야의 무기한 체류권과 영주권 규정이 한국, 인도, 필리핀, 대만 등 비유럽 출신 외국인에게 확대된 것이다.
2006-2007년 미국 전역에서는 수백만 명의 미등록 이주민들이 수개월에 걸쳐 이민법 개정 운동을 펼쳤다. 아시아인, 라틴계 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인 자신이 범죄자가 아니라, 성실한 노동자임을 외치며 합법화를 요구했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 한 국가의 영토를 떠나는 순간 누구나 ‘불법’과 ‘범죄’의 영역으로 들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노동자는 유럽과 미국에서, 동남아시아 노동자는 한국에서 차별의 굴레에 갇힌다. 이를 가로지르고 균열내는 것은 바로 그곳에 불합리한 차별과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이자 여성, 장애인, 소수민족이다. 이들의 싸움은 서로 다르다고 여겨왔던 존재들을 연결할 것이다. 💡
📚참고 자료
- 한예섭, 거리로 나온 이주노동자들 … “견딜 수가 없어서, 해고해달라고 애원했다”, 프레시안
- 박수지·고병찬·박강수, 속헹 목숨 앗아간 비닐하우스…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이 산다, 한겨레
- <찾아가는 민주노총 이주노동교육> 안내서, 민주노총
- 우춘희, <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교양인
- 김희정,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주노동자운동”, 질라라비
- 한재영, 인종차별과 공권력 남용으로 인한 파업 베트남 이주노동자 10인 구속사건, 사회진보연대
- 정영섭, 네팔로 돌아간 이주노조 활동가들의 근황, 오늘보다
- 박장준, “이주노동자 아니었다면 민주노조 못 만들었다”, 미디어오늘
- 이희영, <경계를 횡단하는 여성들>, 푸른길
- 김정훈, 미국, ’이민법 개정’ 촉구 시위, KBS
글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