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국인 기능실습생제도의 이주노동자 차별에 맞선 운동
2022년 5월 29일
2015년부터 일본의 인구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인구 감소는 일본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래 일본은 한국보다 영주권 취득이나 귀화가 쉽지 않아 이민이 어려운 국가로 손꼽히곤 했다.
인구 감소 현상에 직면하게 되고, 그 영향이 이전부터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던 농촌 지역이나 중소기업의 구인난으로 이어지게 되자, 일본 정부의 이주 정책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2018년 ‘출입국관리 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자유주의 성향의 야당인 입헌민주당이나 일본공산당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2018년 12월 이 법안 통과를 강행했다. 이 개정안에는 농업, 어업, 항공업, 숙박업 등 14개 업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에게 ‘특정기능 1호, 2호’라는 체류 자격으로 영주권을 부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야당은 해당 개정안이 이주노동자 인권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고 ,이주민을 ‘단순 노동력’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했다. 반면, 극우 성향의 미디어나 사회단체에서는 “왜 일본인의 일자리를 뺐어 외국인에게 나눠주느냐”고 비판했다. 이처럼 여러 반대 의견들에도 불구하고, 해당 개정안은 의석 과반수를 가진 여당 측의 찬성으로 통과되어 2019년부터 시행 중이다.
과연 여당의 주장대로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일본 내 이주노동자 사정은 나아졌을까. 아니면 극우적 입장을 가진 이들의 주장대로 이 법은 일본인을 위한 일자리를 외국인들에게 나눠주는 효과를 냈을까. 청년의 노동이나 빈곤 문제를 비롯하여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함께 아우르는 시민단체 ‘POSSE’ 활동가이자 ‘기능실습제도폐지 프로젝트’ 공동대표 타도코로 마리 코(田所真理子)는 지난 5월 4일 <허프포스트 재팬>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그는 이 개정안이 일본의 이주민의 실태와 관련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980년대에는 ‘외국인 연수생제’, 그리고 2000년대부터 ‘외국인 기능실습생’(이하 기능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기술도상국’(베트남, 태국 등 일본 정부가 지정한 국가) 출신의 이주노동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능실습생’ 제도는 2004년까지 한국의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했던 제도와도 유사하다. 애당초 ‘산업연수생’ 제도는 일본의 기능실습생 제도에서 벤치마킹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러기에 일본 기능실습생 제도의 문제는 과거 한국의 산업연수생 제도가 가진 문제를 공유한다. 기능실습생으로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기능실습’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어디까지나 이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일본의 문물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온 ‘학생’으로만 취급받기 때문이다.
기능실습생를 다루는 법률인 「외국인 기능실습의 적정한 실시 및 기능실습생의 보호에 관한 법률」(外国人の技能実習の適正な実施及び技能実習生の保護に関する法律) 역시 기능실습생 제도의 목적에 대해 “인재 육성을 통해 개발도상국 등에게 기능, 기술 또는 지식의 이전을 통해 국제협력을 추진하는 것”에 있으며 “노동력의 수급 조정을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산업연수생 제도가 그러하였듯, 일본의 기능실습생 제도도 현실은 ‘인재 육성’이나 ‘지식 이전’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법에서 목적에 어긋나다고 강조했던 “노동력의 수급 조정을 위한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아무리 기능실습생이 ‘노동자’가 아니라고해도, 기능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온 이주민들이 일손부족 농촌이나 중소기업 공장에서 일하는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기에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아무리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원칙적으로 직장 변경은 허용되지 않는다.
설상가상 이주노동자 상당수는 일본으로 오기 위해 자국의 파견업체에 무수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부담이 된다. POSSE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주노동자들은 1인당 50만엔(한화 약 500만원)의 중개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 심하게는 1백만엔(한화 약 1000만원)의 빚을 진 온 이주 노동자들도 있다.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해도 직장에서 해고되어 빚만 잔뜩 진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고충을 호소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제도의 목적과 활용 실태가 따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노동자로 일하 고 있지만 ‘기능실습생’이라는 미명 하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너무나 손쉽게 일본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특히 타도코로 마리코가 <허프포스트 재팬>과의 인터뷰를 통해 언급한 사례들은 여러모로 심각하다.
식품 공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는 어느 날 아침 강제로 공항으로 끌려가 추방당했다. 또, 임신한 어느 한 스리랑카 여성 노동자는 감독기관으로부터 “낙태를 하거나 귀국하라”는 말을 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숙소를 청소하던 어느 이주노동자의 경우 일을 시작하고 나서 2주 만에 코로나에 감염되고 말았다. 그가 감독기관에 일자리를 바꾸고 싶다고 전했지만 “귀국하거나, 무급으로 일하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
플랫폼C 동아시아 뉴스레터가 소개한 다음 사례도 참고할만 하다. 👉 일본 | 스리랑카인 이주노동자, 직장내 괴롭힘에 맞서 싸워 복직
심지어 스스로 ‘불법 체류’ 상태가 된 이도 있었다. 상사로부터 성폭력을 겪었지만 감독기관 담당자로부터 “참으라”는 말만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주노동자는 노동권뿐만 아니라 신체를 보호받을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한채 방치되고 있다.
POSSE는 그동안 노동 상담을 통해 이주노동자를 지원하고, 필요한 경우에 사용자나 관리자를 직접 압박하여 근무환경 개선이나 직장 변경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건별로 대응하는 것만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타도코로 활동가를 비롯한 POSSE의 활동가 등은 지난 3월 26일부터 ‘기능실습제도 프로젝트’를 결성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구시대적인 일본의 기능실습생 제도를 폐지하는 목표를 두고 기능실습생 이외에도 전반적인 일본 노동자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활동을 해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 프로젝트에는 주로 10대, 20대의 젊은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타도코로 활동가는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만든 사회를 바꾸고 싶다”며 이주노동자 활동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또,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면 결과적으로는 같은 상황에 놓인 일본의 다른 노동자들도 지킬 수 있게 된다”며 프로젝트가 일본의 노동 환경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밝혔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일본의 좌파 사회운동 전반이 심각한 수준으로 고령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청년들을 중심으로 구축된 ‘기능실습제도 프로젝트’의 모습은 일본 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바꾸면 일본의 다른 노동자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서는 적극적인 연대 활동의 의지가 느껴진다. 한국 역시 이주노동자의 권리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편, 2004년부터 도입된 고용허가제 역시도 무수한 한계가 도사리고 있다. IMF 이후 고착화된 청년 실업 문제로 인해 일자리를 찾아 일본에서 취업한 한국인 노동자의 수도 2020년 기준 약 7만명으로 결코 적지 않다. 중국, 싱가포르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로 취업을 택한 이들의 수도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다.
한국은 적극적으로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국가이자, 다른 동아시아 국가로 많은 이들이 이주하는 국가다. 일본의 이주노동 문제는 단순한 일본만의 사안에 그치지 않고,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동아시아의 다양한 국가를 돌아다니는 노동자 전반의 문제가 된지 오래다. 우리가 이주노동자 문제를 동아시아 차원의 공동행동으로 인식하고, 나아가 적극적인 국제연대의 움직임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万国の労働者よ、団結せよ!(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참고 자료
- NPO法人POSSE
- 「現代の奴隷」技能実習制度の廃止、私が求める理由。 「この社会は他人を犠牲にして成り立っている」 | ハフポスト NEWS
- 技能実習制度は「現代版の奴隷」…2年以内の廃止目指す 支援ボランティアがプロジェクト:東京新聞 TOKYO Web
글 : 성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