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 이주노동자 400여 명, 일터 선택의 자유를 요구하며 거리 행진
2022년 1월 28일
대부분 동남아 출신인 이들 이주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대만의 현행 취업서비스법(Employment Service Act, 就業服務法) 53조 4항은 특별한 사정(고용주의 학대, 직장 폐쇄, 고용주 사망, 어선 침몰 등)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주노동자의 이직을 제한하고 있다. 이런 제한 조치는 가사 노동과 제조업, 어업, 농업, 임업 쪽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한정되는데, 이들 대다수는 동남아시아 출신이다. 반면 영어 교사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은 서구 출신으로 사업장 이전의 자유를 갖고 있다.
이로 인해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은 가혹한 노동 조건에도 불구하고 일터를 바꿀 수 없다. 가령 가사돌봄 노동자들은 노인들을 돌보기 위해 24시간 내내 일해야 한다. 고기잡이배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24시간 내내 자신의 노동을 통제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은 잠재적인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처럼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면, 고용주와 알선 브로커의 권력은 막강해진다. 노동자들의 일터가 그들에 의해 선택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대만의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알선제도의 폐지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최근 주대만 필리핀 대표부가 브로커제도의 폐지를 요구하고, 인도네시아 정부 역시 이런 요구에 나서면서 약간의 상황 변화가 있기도 했다. 중개수수료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차이잉원 정부는 여전히도 이를 지연하고 있다.
최근 대만 노동부 조사 결과, 이주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일하고, 월 20,209대만위안(약 87만원)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만의 법정 최저임금 2만5,250대만위안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다. 이 통계가 이주노동자들이 아닌 고용주들의 정보에 의해 집계된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훨씬 심각할 것이다.
1월 16일 집회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현행법을 상징하는 대나무 울타리를 세우고,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허하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다 같이 울타리를 무너뜨 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날 행진에 참가한 필리핀 출신 돌봄노동자 메이스는 대만에 와서 일한 지 12년 동안 단 한 번도 고용주를 바꾸지 못 했다고 발언했다. 메이스는 95세 여성의 돌봄을 맡고 있는데, 24시간 내내 신경쓰며 일하지만, 시간외근무수당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일터를 옮기고 싶다고 호소했다. 인도네시아 이주민공동체와 인도네시아 노동자조직의 대표 파자르에 따르면, 대만에서 이주 돌봄노동자들이 이처럼 하루 온종일 일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대만국제노공협회(台灣國際勞工協會)의 회원이자 이주노동자권리네트워크(MENT: Migrant Empowerment Network in Taiwan) 대변인인 천슈롄(陳秀蓮)은 “대만이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인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업장변경 자유가 제한받고 있다”고 규탄했다. 행진 후 노동부의 노동개발과는 성명을 통해, 공식적으로 등록된 고용서비스기관을 거치거나 기존 고용주의 허락을 받으면 이주노동자들도 충분히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이주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되면 노동에 대한 비용이 상승하거나 특정 직업군에 노동수급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적절치 않다”면서, “법 개정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만의 노동운동가들은 노동부가 밝힌 제도는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이뤄지며, 오히려 차이잉원 정부 아래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더욱 제한받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2021년 11월 말 기준 대만에서는 총 67만5,672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