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국가 싱가포르는 인민행동당 일당독재의 정치 체제 하에서 사회운동과 언론자유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바탕으로 국가권력 주도로 독특한 정치 형태와 경제 정책을 유지해왔다. 그러다보니 싱가포르의 노동자운동 역사는 매우 짧고, 비슷한 규모의 도시인 홍콩보다도 열세하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노동자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조직하는 흐름은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Southeast Asia Globe의 인터뷰 기사를 바탕으로, 싱가포르의 한 노동운동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추아퀑멍(Chua Qwong Meng)은 일종의 자생적인 노동운동가다. 버스 운전기사였던 그는 동료 운전기사들과 함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그는 스스로 활동가라고 생각하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웃으면서 부정한다. “이 일을 풀타임 기반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요”라는 게 그가 밝히는 이유다. 그러나 반드시 풀타임 활동가이어야 ‘활동가’라고 불릴 이유는 없다. 오히려 풀타임 상근 활동가임에도 기존의 체제에 균열을 내지 못하는 활동가가 있고, 반대로 풀타임 상근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활동가들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저게 도움을 청하며 찾아오거나, 제가 어떤 일을 목격하면, 저는 도울 거예요. 잘 모르겠지만, 이건 제 성격인 것 같아요. 저는 권력을 남용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보고 싶지 않거든요.”
추아퀑멍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스케쥴 버스 사업자인 SBS운수(SBS Transit)에서 운전기사로 일했었다. 2021년 현재 63살인 그는 다른 열두 명의 동료 운전기사들과 함께 무급 야근과 불충분한 휴일과 같은 불공정한 관행에 대해 회사를 상대로 벌인 소송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권 문제를 끈질기게 밀어붙인 첫 번째 사람으로서 추아퀑멍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이해하고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동료 노동자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이로 인해 비공식적인 리더 가 되었다.
추아퀑멍이 노동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일련의 업무 분쟁으로 인해 자신의 급여지출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고, 2019년 중반 무렵 뭔가 잘못됐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결국 그는 자신이 받은 급여가 자신이 일한 시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운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부터는, 그들 모두가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싱가포르에는 독립적인 노동조합이 없다. 대신 인력자원부, 전국노동조합회의(National Trades Union Congress), 싱가포르경영자연맹 등 정부 산하의 3개 기관들의 노사정 파트너쉽이 존재한다. 직장 내 분쟁이 발생할 경우, 노동자들은 이 노사정 3자회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장려된다. NTUC을 일종의 노동조합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노동조합’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하고 있지 않다. 정부 산하 기관이나 다름 없으며, ‘저항’을 ‘조직’하기보다는, 근로복지제도를 보조하는 수준의 역할을 할 뿐이다.
추아퀑멍은 위의 3자회의 내 관련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매번 만족스러운 설명이나 판단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 기관에서 다른 기관으로 질질 끌려다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거의 1년 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자, 그는 이 분쟁을 법정으로 끌고 가기로 결심했다.
“원래는 세간의 이목을 끌지 않는 방식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싶었어요. 저희는 운전기사잖아요. 법정으로 가면 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는 걸 알고 있죠. 싱가포르는 변호사 수임료가 엄청 비싸기 때문에 변호사 수임료를 지불할 여유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죠.”
추아퀑멍을 비롯한 13명의 운전기사들은 싱가포르의 저명한 인권변호사 M Ravi를 선임했다. 운전기사 13명 중 10명은 고용주가 싱가포르 근로허가증을 갱신하지 못해 모국으로 돌아가게 된 말레이시아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소송을 추진하면서 추아퀑멍은 코비드19 바이러스 검사 파트타임 보조원으로 일하였고,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출신의 동료들과 자주 연락을 취하며 그들의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 소송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 또한 그는 임금 분쟁이나 직장 내 재해, 휴일 근무에 초점을 맞춘 비슷한 문제들에 직면한 다른 저임금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자원활동에 나섰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추아퀑멍의 친구든, 친구의 친구든, 추아퀑멍을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최근 추아퀑멍은 노동자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인력자원부에 불만을 제기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진정서를 작성하는 걸 돕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싱가포르 내 일터의 권리들에 대해 더 배우기 위해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제 생각에 주요한 문제는 많은 노동자들이 고용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혼란스러워한다는 점이고요. 게다가 그들은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추아퀑멍은 이주노동자들이 불만을 제기할 경우, 해고되어 모국으로 돌려보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힘의 역관계 자체가 불평등하다고 설명했다.
한 노동자에 따르면, 일터에서 심각한 수준의 산재를 입었음에도 사측이 산재 보상과 치료비 보상을 거부하고, 심지어 그의 발설에 대해 위협을 가한다. 그 역시 추아퀑멍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는데, 추아 씨가 이 사건을 인력자원부에 제소하자고 제안했을 때, 그 노동자는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며 거부했다. “저는 싱가포르 사람이 아니니까요”라고 상기하면서 추아퀑멍의 도움을 정중하게 거절한 것이다. 결국 그 노동자는 퇴사하여 말레이시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나 일본, 대만 등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은 사례는 하나만 있지 않다. 싱가포르에서 이주노동자 권리에 대해 20년 간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사회복지사 조로반 왐은 Southeast Asia Globe와의 인터뷰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건에 대해 논하는 것에 대해 특히 난관들을 맞닥뜨린다”고 강조했다. 모국으로의 송환에 대한 두려움말고도, 사측이 지원하는 기숙사에 사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고용주들을 제소하는 것을 불편해 할 수 있다.
“대부분은 매우 무서워합니다.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무수한 우려들이 있죠.” 조로반은 말했다.
물론 싱가포르 시민권자 추아퀑멍은 추방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여전히 많은 용기와 자기 주장을 필요로 한다.
노동권에 적대적이면서도, 구조적·제도적으로 매우 난해한 유니온 네트워크와 협상하는 것은 거대한 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 12시간 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 일부 노동자들이나 그밖의 많은 노동자들은 직장 내 분쟁에 대한 중재 회의에 참석할 시간적 여유나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다.
졸로반에 따르면, 활동가로서 살아온 20년 동안, 싱가포르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와 조건이 크게 개선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2012년, 졸로반은 싱가포르에서 25년여 만에 처음 일어난 파업에 참여했다. 이 파업은 100명 이상의 버스 운전기사들이 불공정한 급여와 그밖의 작업장 이슈들에 맞서 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그는 버스 운전기사들의 관점을 제시하는 법적인 대리 업무나 온라인 캠페인을 도왔다. 한데 졸로반에 따르면 당시 주류 언론은 이 사건에서 노동자들의 입장을 전혀 대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허가되지 않은 공공 집회가 불법인 싱가포르에서는 파업 자체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9년이 지난 후, 졸로반이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말한 SBS 소송과 함께 역사는 다른 형태로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몇몇 운전기사들이나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정말 많은 억압과 불행한 일들, 착취가 벌 어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하지만 동시에 공포도 많죠.” 졸로반은 말했다. “두려움과 착취가 너무 일반화된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게 바로 이 소송이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 왔고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문제들을 조명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입니다.”
SBS 소송에 대한 고등법원의 심리는 2021년 11월에 시작될 예정이다. 한편, 13명의 운전기사들 중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해 여러 파트타임 노동을 하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여전히 SBS에 고용되어 있고, 다른 한 명은 질병 치료 문제로 몇 달째 실직 상태에 있다.
추아퀑멍은 싱가포르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면서 동료 노동자들을 돕는 데 자신의 시간을 계속해서 바치고 있다.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거든요.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이 어디에서 왔든 간에 공정하고 평등한 시스템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을 뿐입니다. 당신이 싱가포르에 올 때, 우리는 모두 공정한 대우와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글: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