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에 대한 지리적 정의는 언제나 지정학적이고도 역사적인 맥락을 갖는다. 우리는 동아시아라는 범주로 미얀마와 태국과 연결되지만, 동시에 동남아시아의 가장 서쪽에 자리잡은 나라 미얀마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관계 때문에 서쪽의 인도나 방글라데시와 강한 연결성을 갖기도 한다. 독립 저널리스트 카말 아메드(Kamal Ahmed)가 방글라데시 일간지 『더 데일리 스타(The Daily Star)』에 기고한 이 글은 최근 인도와 태국,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중시위에서 두드러진 몇 가지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는 이곳의 대중시위에서 소통 방식의 창의성이나 투쟁의 지속성을 위한 전술 등에 있어서 참조할 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형태의 아시아 대중시위
현재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반정부 시위는 엄청난 힘과 탄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세 개의 대규모 시위 중 가장 크고 강력한 것은 인도의 농부들의 시위다. 이미 10주를 넘어서고 있다. 인도 농민들은 자유시장 정책을 촉진하려는 정부의 새 농장법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편 태국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중단되었던 반정부 시위가 재개됐다. 그리고 미얀마에서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대중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월 1일,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거대한 대중 저항에 직면에 있다.
이 시위들에는 몇 가지 독특한 요소가 있다. 네티즌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해시 태그와 밈을 사용하고, 거리에서는 트랙터 행진, 세 손가락 경례, 냄비와 프라이팬 두드리기, 상징 색 사용 등 다양한 행동을 펼치고 있다.
인도에 찾아온 혹독한 겨울도, 수도·전기 같은 필수품 공급 중단을 포함한 정부의 강압적인 전술도 농민들의 결의를 약화시키지 못했다. 이 시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직면한 취임 이래 가장 큰 정치적 도전 이다. 인도 농민 시위는 약 1년 전 델리에서 소수 무슬림들을 표적으로 삼는 시민권개정법(CAA)에 반대하는 대규모 연좌 농성을 계승하고 있다. 시민권개정법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운동 속에서 벌어진 샤힌 바그 연좌농성은 101일 동안 계속됐다. 아마도 인도 현대사에서 가장 장기간에 걸쳐 벌어진 투쟁일 것이다.
이 시위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전국적인 봉쇄가 시행되면서야 중단됐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농민 시위는 그 시위와 많은 유사점을 공유한다.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농민들은 (정부가 밀어붙이는) 새 농업법이 가격 보장 등 지난 수십 년간 유지되어온 권리를 위협하고 농민들의 협상력을 약화시켜, 농민들이 민간 기업의 착취에 취약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샤힌 바그 농성과 최근 농민 시위 등 두 운동은 모디 총리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직후 일어났다. 샤힌 바그 시위가 한창 벌어질 때 대부분의 야당들은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농민 시위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몇몇 주에서 인도국민당(BJP)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파트너들조차 농민들을 지지한다.
또한 농민 시위는 정치 지도자들과 학자들, 유명 인사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물과 전기 등의 공급을 끊고, 시위대를 여론과 분리시키려는 온갖 시도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에 대한 물질적·정신적 지지는 그칠줄 모른다.
18개월 동안 법 시행을 중단하겠다는 정부의 약속과 중재위원회를 구성한 대법원의 개입도 지금까지 농민들이 물러나도록 설득하지 못했다. 이 대립이 어떻게 끝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시위는 이미 전 세계 활동가들에게 흥미로운 선례를 만들었다. 첫째, 대체로 평화적이다. 델리시 중심부에서 열린 공화국의 날 트랙터 행진에서의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당시 시위조직자들은 신속하게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분리시키고 폭력을 비난했다. 온라인 및 오프라인의 온갖 악선동에 대한 인내와 잠재적 골칫거리들과 그들의 목표를 정치화하려는 사람들의 침입 시도에 대한 성공적인 저항이 그들에게 도덕적 우위를 안겨주었다. 그들을 “공산주의자”라거나 칼리스탄 분리주의자(인도의 시크교도 분리주의자)라고 낙인찍으려는 시도도 실패했다.
이웃 미얀마에서의 민주화 운동은 더 넓은 호소력을 가지고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계엄령의 시행을 거부하는 자발성은 미얀마에서는 새로운 흐름이다. 미얀마 민중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온 군부의 정부 운영과 지배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군사 통치에 대한 반대를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전술을 사용한다. 발코니와 창문에 빨간 셔츠를 걸고,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는 것은 주민들의 저녁 의식이 됐고, 거리 시위는 다양한 형태를 펼쳐지고 있다. 심지어 웨딩드레스를 입은 커플조차 독재 통치를 거부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들이 캣워크로 행진한다. 청년 시위자들은 “You f**ked with the wrong generaion(‘상대를 잘못골랐다’는 의미)”라는 랩의 가사가 적힌 적힌 포스터를 들고 저항 정신을 드러낸다.
군부 쿠데타에 의해 총선이 무효화되고 계엄령이 선포된 지 아 직 많은 시간이 지나진 않았다. 하지만 민주 항쟁은 더 광범위한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형성되고 있다. 계속되고 있는 시위의 또 다른 중요한 발전은 대량 학살 피해자인 로힝야족(Rohingyas)을 포함한 다양한 소수민족과 소수의 종교집단들로부터 끌어낸 지원이다. 방글라데시 캠프와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로힝야족 청소년들은 이 운동과의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이용하고 있다. 분별있는 목소리들이 인종 차별과 로힝야족 탄압에 유감을 표하고 있다. 해외 활동가들은 이미 NLD(전국민주동맹)가 권력을 회복하는 과정에 로힝야족의 시민권과 송환에 대한 확고한 약속과 계획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밤마다 하는 활동가들을 체포하려는 습격, 주기적인 인터넷 중단, SNS 금지, 장갑차와 탱크의 배치 등 위협적인 방식들을 통해 시위를 중단시키려 했던 군부의 시도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전국 각지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시위자들의 결의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군사 통치자에 대한 강력한 국제적 압력이 그들을 고무시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1988년과 2007년의 잔인한 단속에 대한 기억은 이 시위를 지켜보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미얀마 시위대는 태국에서 시작된 세 손가락 경례를 사용하고 있다. 그것(세 손가락 경례)은 현재 진행중인 저항과 연대의 상징이 됐다. 이 제스쳐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4년 5월 태국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고 며칠이 지나서다. 이 시기 태국의 반쿠데타 시위도 열기를 잃지 않고 지속됐다. 지난 2월 13일, 방콕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흘린 피를 상징하는 붉은 색 천으로 방콕 민주주의 기념비를 휘두른 후, 경찰과 다시 충돌했다. 그들은 왕에 대한 비판을 막는 왕실모독죄의 개정을 요구했다. 방콕의 시위는 군부 출신의 프라윳 찬오차 총리가 FFP(미래전진당)을 해산한 후인 2020년 초 다시 시작됐다. 태국 시민들은 헌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할 것과 군부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지배되는 의회를 해산할 것도 요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운동이 중단됐지만, 활동가들은 (미얀마 대중시위의 영향 속에서) 다시 거리로 돌아왔다.
대중시위는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든 대다수 민중을 위한 특별한 이익을 위한 것이든 언제나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이 논쟁들은 단일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경우들도 있다. 그러므로 이 시위들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이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 특히 창의적인 의사소통 방법과 장기투쟁의 열기를 유지하는 전술들이 그렇다.
번역 : 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