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위기와 자본 ① | 군부 쿠데타 직후 미얀마 정세와 여론
2021년 3월 14일
이 글은 지난 2월 20일 스펙터저널(Spectre Journal)에 실린 Keep the Streets: Coup, Crisis, and Capital in Myanmar를 번역한 것이다. 스펙터저널과의 협의를 통해 두 번에 나누어 플랫폼c에 소개하고자 한다.
- [인터뷰어] 지난 2월 1일, 미얀마의 군부(Tatmadaw; 탓마도)가 아웅산수치(Aung San Suu Kyi) 국가고문을 체포하고 정부를 장악하면서, 미얀마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 제동을 걸었다. 스펙터저널 에디터 자카리 르벤슨(Zachary Levenson)은 미얀마의 경제수역과 무역 회랑의 인프라를 둘러싼 정치를 연구해온 조프리 아웅(Geoffrey Aung; 컬럼비아대학교 인류학과 박사수료)을 인터뷰했다. 아웅은 쿠데타가 일어난지 일주일 후 추앙(Chuang)지에 실린 자신의 분석에 기반해 쿠데타의 향방과 저항운동의 계급적인 구성, 그리고 이러한 전개를 미얀마 자본주의의 장기적인 이행 궤적과 관련시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르벤슨 :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2월 1일 쿠데타 이후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웅 : 새 군부 정권은 대중적인 저항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대도시들부터 전국 각지의 작은 마을들까지 대규모 파업과 거리 시위, 도심 바리케이드, 그리고 보편적인 동요를 목도하고 있죠. 의료 노동자들을 비롯한 여타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쿠데타에 맞서 가장 먼저 파업을 조직한 주체들이었습니다. 양곤의 공단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주도하는 노동조합들이 도심 시위를 확산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죠.
농민 시위 역시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요. 군부는 미얀마 최북단 지역의 전력발전소를 장악하기 위해, 이곳에 진입할 때 실탄을 사용해 이 지역을 사수중이던 시위대를 해산시켰습니다. 수도 네피도(Napyidaw)에서는 총상으로 사망자가 발생했고요. 만달레이(Mandalay)의 항구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던 과정에서 군대의 공격을 받아 2명의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군부에 맞선 분위기는 불길한 전조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군대가 언젠가 본격적으로 폭력적인 진압을 시작할까요? 군부는 [사람들의] 정보를 통제하기 위해 인터넷을 여러 차례 차단했습니다. 또, 심야에 반군부 인사들을 급습, 체포하여 공포를 확산시켰죠. 쿠데타 이후 500여명(3월 12일 기준 2천여명)이 체포됐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판 “만리방화벽”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상당한 경찰관들은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에 합류했지만, 군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들은 양곤 등 핵심적인 저항지들에서 방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죠. 현장의 조직가들과 활동가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거리를 사수하는 것입니다. 대중 저항을 지탱하는 동시에 군대가 조장하는 공포와 사이버보안 전술들에 대응하면서 말이죠. 물론 이는 쉽지 않은 과제지만, 쿠데타에 맞선 전국적인 저항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