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언택트’인지 질문하자 …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서평
2020년 8월 18일
코로나19와 관련해 수많은 진단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가 ‘재난의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담론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한 쪽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언택트’ ‘홈코노미’ ‘K-방역’을 성장 동력으로 삼자고 말하고, 한쪽은 이 위기가 보다 극명하게 보여준 불평등과 새롭게 양산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을 들여다보자고 말 한다. ‘재난자본주의’나 ‘재난불평등’ 같은 말들이 등장하는 이유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우리는 둘 중 어느 쪽에 주목해야 할까? 신간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돌베개)은 위기를 기회로만 인식하지 말고 우리의 삶과 사회를 돌아볼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그 과정에서 ‘뉴노멀’이 누구의 언어인지 질문하자는 것이다.
10편의 글은 비대면, 동선공개, 돌봄, 노동, 민주주의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더 많은 키워드들이 있지만 이 글은 ‘언택트(비대면)’를 중심으로 책의 실린 몇 편의 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언택트 기술이 만들어낸 ‘전자 파놉티콘’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게 던진 과제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이에 맞춘 규준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와 공간에 대한 획일화된 감각을 새롭게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2020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은 화상회의와 재택근무 등 비대면 노동의 대실험장을 열었다. 재택근무 도입을 고민했던 기업들이 생각보다 매끄러운 비대면 노동으로의 전환을 반가워한다는 소식, 이전보다 쉴 새 없이 업무를 하고 있다는 노동자들의 호소가 함께 들려온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전 노동부 장관인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는 ‘코로나 시대의 네 계급’을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The Remotes), ‘필 수적 일을 해내는 노동자’(The Essentials),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The Unpaid), ‘잊혀진 노동자’(The Forgotten)로 분류한다. 그리고 사회가 첫 번째 계급인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들만을 시야에 두고 다른 계급을 보호하지 못하거나 잊는다면, 어느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한국에서도 이 주장은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의 경험에 기반해 담론을 주도하는 상황이 여전히 다수이며, 이를 계속 다수로 만들려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글인 「비대면 – 시공간에 대한 상이한 감각」(추지현)이 이러한 기울어진 담론장의 문제를 제기한다면, ‘노동’을 다룬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공성식)는 노동자들에게 언택트 기술의 발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른바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노동을 뒷받침하는 기술은 콜센터나 택배 배송업 등에 이미 몇 년 전부터 깊숙이 도입되어왔다. 필자에 따르면 “콜센터 관리자는 원격 감시 기술을 활용해 노동자의 콜 응대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실시간으로 직접 들을 수도 있”으며, 쿠팡의 경우 “상시적으로 노동자의 위치와 배송 상황을 확인하고 관제할 수 있”다.
원격 감시를 가능케 하는 기술 발전은 원청이 하청 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한다. 그 때문에 이는 직접 고용의 동인을 약화하고 외주화의 확대에 기여한다. 즉 ‘언택트’로 상징되는 변화는 경영자들에게는 축복일 수 있어도, 노동자들에게는 더 큰 스트레스와 노동 감시로 되돌아온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언택트’는 계급적이다.
언택트가 불가능한 노동, 돌봄
“양육이란, 인간 종을 재생산하는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을 키워내는 것이며,
그렇게 자란 존재들이 사회의 모습을 형성하고,
그 사회는 우리가 공기처럼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 사회의 모습이 자신의 건강과 수명을 책임진다.”
‘언택트’ 기술이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 체제로 돌아온다면, 결코 ‘언택트’로 전환될 수 없는 노동이 있다. 바로 ‘돌봄’이다. 이 점에서 돌봄과 가족을 다룬 글 「인류 살리기로서의 돌봄에 대한 상상」(오하나)과 「코로나19와 영희네 가족」(김미선)은 이 책의 중심적인 문제의식을 담당한다. 돌봄을 담당하는 여성의 경험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두 글의 공통점은 코로나19가 새로운 세계를 연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겪었던 갈등과 두려움을 증폭시켰을 뿐”이며, “좀 더 무겁게 다가온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즉, ‘돌봄’이란 코로나19가 도래하기 전에도 위기였다. 드디어 이 전염병이 종식되어 마스크 없는 나날로 돌아가더라도, 돌봄의 부담을 떠안은 사람들의 일상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일상과 다르다.
이 책은 또한 ‘돌봄’을 양육과 가족 돌봄 등 흔히 생각하기에 돌봄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의 경험에 한정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시민적 덕목으로 꼽는다. 여기서 ‘돌봄’의 의미는 좀 더 확장되어 ‘돌보미 시민’은 ‘공적 공간을 지킨 사람들’ 전반으로 확대된다. 비상사태에서 사회를 돌보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들을 영웅으로 칭송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를 통해 두 논의가 담지한 보편성은 보다 크게 다가온다.
재난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그밖에도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에 실린 글들은 공적 마스크 접근권 문제를 통해 가시화된 공공성의 이면에 있는 배제의 문제, 동선 공개로 인한 낙인효과, 낙인찍힌 이들에 대한 환대의 문제 등을 제기한다. 이처럼 다양한 문제들을 돌아보면서, 이 책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목소리들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킨다. 소리 소문 없이 직장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코로나19로 인한 재정 부담을 이유로 낮아진 중위소득 인상률 때문에 향후 몇 년 동안 영향 받을 취약계층,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아 곤란을 겪고 재난지원금에서조차 배제된 홈리스들의 경험 등도 더 두껍게 기록될 필요가 있다.
재난은 이전과는 단절된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 것이 아니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약’의 역할을 하여 기존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번 재난을 통해 드러난 모순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재난이 탄생시킨 영웅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재난은 사회적 연대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도 동반한다는 것, 그리고 기존의 불평등의 축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 현재까지 재난연구가 대략 합의한 답이다.
이에 대해 나는 재난이 사회적 연대보다는 갈등을 더 양산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재난에서의 사회적 연대, 모순과의 대결과 다른 세계로의 변화가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투쟁을 통해 가능해진다고도 믿는다. 이러한 노력들의 성공이 반드시 보장된 게 아닐지라도, 우리는 이렇게 재난의 시기를 살아남아야 하지 않을까? 현재에 대한 돌아봄 없이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라는 메시지 앞에서, 다른 방식으로 재난을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는 데 이 책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글 : 박상은 (재난연구자·플랫폼C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