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보다 양질의 공공서비스가 더 중요한 이유

기본소득보다 양질의 공공서비스가 더 중요한 이유

공공서비스가 없는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적인 '천국'이다. 불평등과의 싸움에 필요한 상당한 재원 마련을 요구하고 투쟁할 때,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요구는 보건의료․교통․주거․교육 등과 관련한 재원마련이다. 국제공공서비스노동조합연맹(Public Services International, PSI) 로사 파바넬리 사무총장은 기본소득의 한계를 지적한다.

2019년 12월 5일

[읽을거리]빈곤철폐불평등, 기본소득, 공공운수노조, 반빈곤운동

보편적 기본소득은 기술 억만장자부터 사회주의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스펙트럼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소득이나 종사상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생활에 충분한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고 적절한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정책으로 점점 더 장려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많은 사람들은 이 주제를 다루는 데에 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 국제공공서비스노동조합연맹(Public Services International, PSI)이 신경제재단(New Economic Foundation)과 함께 기본소득에 대한 상세한 노동 분석을 진행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도에서 알래스카까지 14가지의 기본소득 실험을 조사한 결과, 기본소득 실험이 일과 복지의 본질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했지만 불평등, 부의 재분배, 불안정 노동, 디지털화 같은 우리 시대의 핵심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 기본소득이 최선의 도구라는 것을 시사하는 증거는 거의 없었다.

이 연구는 매우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금 급여를 주는 것이 삶의 향상에 도움이 되고, 다수 우파 정치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낭비적인 지출이나 게으름을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철저히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에 큰 힘을 실어준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징벌적 [구직]활동 조사와 악마화를 반드시 철폐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 지출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선택을 해야 한다. 기본소득보다 보편적인 양질의 공공서비스에 재정을 지출하는 것이 훨씬 낫다. 주택 가격이 폭등한 상황에서 싱글맘에게 자립을 위한 현금을 주는 것보다, 양질의 공공 주택을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람들에게 주유비를 주는 것보다 무상 공공교통을 마련하는 것이 더 진보적이다.

기본소득의 모델들은 보편적이고 충분할 경우에는 감당가능하지 않고, 감당가능할 경우에는 보편적이지 않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위해서는 세계 평균 GDP의 32.7%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세계 평균 정부 지출은 GDP의 33.5%이다.

모든 기본소득 프로그램은 우리가 공공 지출―최상류층이 필사적으로 맞서온 것―을 크게 늘리기 전에는 교육, 보건의료 및 인프라를 포함한 주요 공공서비스의 거대한 삭감을 야기할 것이 분명하다. 기본소득 운동은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행정비용 절감 및 예방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공공 보건의료, 교육 및 인프라에 여전히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보편적 기본소득에 충분한 재원이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주목할 사실은, 보건의료 및 교육 같은 무상 공공서비스가 불평등에 맞선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라는 점이다. 공공서비스는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준다. OECD에 따르면, 공공적으로 제공되는 보편적 서비스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후 소득의 76%를 더 주는 것과 같고, 매우 누진적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정치적 맥락 속에 놓여있다. 어떤 사람들은 기본소득이 일단 자리를 잡으면 국가의 의무가 크게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시민들이 소비자로서 열린 시장에서 “서비스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기본소득의 가장 유명한 지지자들 중 다수가 마크 저크버그나 일론 머스크와 같은 실리콘 밸리의 기술 억만장자들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동화가 곧 기본소득을 필수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술 진보와 불평등은 인간의 통제 밖에 있지 않다. 우버화(uberization)라고 불리는 불안정한 일자리의 증가는 새로운 기술 개발보다는, 우버처럼 노동법을 무시하는 기업들이 만든 일이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규제 완화와 착취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투항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일자리가 자동화되겠지만 그렇다고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35년에 전 세계 보건의료 노동자의 부족량이 1,290만 명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2030년까지 각국은 6,900만 명의 교사를 모집해야 한다. 빈곤을 끝내고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SDGs)를 달성하려면, 사회적으로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엄청난 양의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이 있더라도 이를 시장에서만 조달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기본소득론자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사항들을 제기했다. 우리는 징벌적인 복지 제공 시스템을 폐지해야 한다. 우리는 기술 억만장자들과 거대 부자들이 조세피난처로 돈을 빼돌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우리는 권력, 부, 자원을 재분배해야 한다.

그러나 공공서비스가 없는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적인 천국이다. 우리가 불평등과의 싸움에 필요한 상당한 재원 마련을 요구하고 투쟁할 때, 당연히 보건의료․교통․주거․교육 재원이 최우선이지 않을까?

무상이고 보편적인 양질의 공공 서비스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급진적인 요구다. 기본소득 운동 내의 진보 진영에게, 이 투쟁에서 먼저 승리하자고 제안한다.


글 : 로사 파바넬리(국제공공서비스노동조합연맹 사무총장)
번역 : 김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