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에 대한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평론
2019년 5월 27일
[번역주] 많은 매체들의 보도는 중국을 ‘인권침해국가’로 지목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인식도 그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것은 일정 정도의 진실을 반영하고 있기도 할 것이다. 이 번역의 목표가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침해 사안을 부정하고 반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을 포함해 인권침해가 없는 사회는 없다. 문제는 구체적인 해석에 있다. 무엇을 인권침해로 인식 할 것이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인권을 어떻게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할 것인가. 서구 사회의 기준에만 의거해 ‘인권침해’라고 낙인 찍는 방식은 실제로 인권을 증진시키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떠한 상태가 인권이 증진된 상태인가도 논쟁적이다.) 그래서 여전히 문제는 구체적 인식과 구체적 해석에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중국에서는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여성운동가들이 구금되고 활동이 금지되기도 했다. 소위 ‘인권운동가’들도 비슷한 고난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논쟁적인’ 글들이 삭제되는 것은 다반사다. (무엇이 ‘논쟁적’인지는 ‘그들’만이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작년에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 동성애 관련 내용이 금지 목록에 올랐다가 여론의 항의를 받던 중 <인민일보>의 이 평론 발표 후 정책이 번복되기도 했고, 올해에도 여성 동성애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인터넷 게시판이 당국에 의해 폐쇄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현실에서 2018년 4월 <인민일보>가 동성애를 지지하는 평론을 발표했다는 사실은 한참 모순적으로 보인다. <인민일보>에서 동성애 지지 평론을 발표했다는 것은, 중국공산당 공식 기관지라는 위상을 놓고 봤을 때,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건’이다. 심지어 작년 11월 유엔의 보편적 정례인권보고(UPR)에서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 LGBTQ의 건강권 및 평등한 사회보장 존중 △ 성별재지정수술 권리 보호 등을 밝혔다. 최근 2019년 5월에도 <인민일보>는 트위터를 통해 대만의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트윗을 ‘날렸다’. 비록 이번에 번역한 <인민일보> 평론은 이미 1년 전에 발표된 것이지만 이러한 맥락 속에서 다시 한 번 끄집어내어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새로운 의미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리라 믿는다.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부하는 한국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인권침해국가’로 낙인 찍혀 있는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표면적으로 보기에 성소수자와 여성 이슈를 포함한 인권운동을 억압하는 것처럼 보이는 당-국가가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한 이 모순적인 상황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단지 그들이 표리부동하고 교활한 집단이라서? 이러한 표리부동을 중국인들은 간파할 수 없을 정도로 세뇌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중국 당국의 정치적 억압은 끔찍할 정도여서 중국인들은 극도로 무기력한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에? 타자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타자화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타자’에 대한 이해를 통해 공감 혹은 비판에 이르고자 한다면 위와 같은 상황은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중국에는 이와 같은 ‘모순’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만큼 기존의 프레임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사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함께 고민을 나누기를 청한다. 아래 본문에서 굵은 글씨는 원문을 그대로 따랐다.
“다른 불꽃¹도 똑같이 꽃을 피운다”
역주 : 여기서 “다른 불꽃(不一样的烟火)” – 장국영의 노래 ‘나(我)’ 중에 “나는 나, 색깔이 다른 불꽃일 뿐(我就是我,是颜色不一样 的烟火)”이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평론의 제목은 여기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성’에 대해 이야기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하기 어렵다고 느끼곤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종종 “나는 어떻게 태어난 거야?”라고 물어온다. 이에 많은 부모들이 대략 얼버무리고 마는데, <생명을 소중히 – 초등학생 성교육 가이드> 교재가 나오면서 부모와 교사들은 이러한 곤란함을 덜게 됐다. 이 교재는 유네스코의 ‘국제 성교육 가이드’에 의거해서 쓴 성교육 교재이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교재의 내용이 너무 선정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 교재를 지지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네티즌들은 ‘올바른 관점’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교재의 ‘올바른 관점’은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 알 수 있다. 초등 6학년 교재 상권 중 한 단원의 제목은 “성별과 권리”이다. 그 단원에서는 다양한 성적 지향에 대해 소개하면서, 성적 지향은 한 개만 있는 게 아니고, 동성애든 양성애든 모두 질병이 아니라 정상이라고 가르친다.
동성애가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1990년에 세계보건기구는 동성애를 질병의 목록에서 삭제했다. 그리고 2001년 중화정신과학회 또한 동성애를 정신질환의 목록에서 삭제했다. 동성애를 차별하지 않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바로 이 교재에서 모든 사람은 유일무이한 존재이고, 사람마다 외모, 피부색, 키, 몸무게, 성격, 민족, 국적 등이 모두 다른 것처럼 성적 지향도 역시 다른 것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아이들의 교육 교재에 쓸 수 있다는 인식은 결코 저절로 형성된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성적 지향에 대한 존중과 보호는 그 사회의 문명 수준을 반영한다. 이는 두 가지 방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개인의 권리 측면이다. 성적 지향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권리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만 않는다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활 방식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수집단의 권리 측면이다. 동성애는 성적 지향상 소수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사람마다 감정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수용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이성적으로는 타인의 성적 지향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사회적 합의이다.편견을 버리고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신념이다.
우리는 이 초등학교 교재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다른 불꽃(不一样的烟火)”을 더 많이 이해하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루소는 “차이와 다양성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세계의 근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동성애의 존재는 성의식과 성적 지향상 “차이와 다양성”의 체현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중 영웅 아킬레스와 동반자 사이의 우정과 사랑에서부터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중의 동성에 대한 열렬한 찬미까지 문학작품이 인간의 마음을 탐색하는 중에 동성애를 다루게 되는 것은 인류의 가장 소중한 감정인 사랑이라는 감정이 본질적으로 성별의 경계 위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연히 위법한 범죄가 있다면 동성애든 이성애든 모두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하는 것은 기본 원칙이다.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적지 않은 것들처럼 외설적이고 폭력적이며 불법적인 것이라면 그 내용이 어떤 성적 지향을 다루든 간에 모두 없어져야 할 것이다. 인터넷에 있는 사소한 것들은 그리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처리할 때에는 분류를 잘할 필요가 있다. 급하다고 해서 한꺼번에 모두 삭제하는 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동성애와 관련한 내용을 외설적인 것이나 폭력적인 내용과 함께 다루는 것은 동성애를 성범죄 혹은 성폭력과 같은 비정상적인 관계로 보는 것과 같다. 이는 여론의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성적 지향은 또한 소수의 사람들이 선동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인터넷에서 각종 방식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처럼 성적 지향을 ‘상품’으로 삼는다면, 성적 지향은 저속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은 저속한 것들이 많아지면 많은 사람들 특히 미성년자들이 이를 쉽게 배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를 맹목적으로 따라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동성애자들 역시 정상적인 국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한다.
이 책 <생명을 소중히>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불쾌해했다. 심지어 적지 않은 학교에서 이 교재를 다시 회수해 버렸다.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성교육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기도 한데, 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사랑은 더욱 그렇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버리고 오해를 풀어 타인을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사랑이 상처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진정한 본모습을 드러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원문 : 2018년 4월 15일 <인민일보> 평론
번역 : 박종석(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