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노동 저널리즘의 한 시대가 막을 내리다
2026년 8월 23일
51년간 발행되어 온 신문 <응어이라오동>(Người Lao Động, '노동자')이 베트남 정부의 국영 언론 재중앙화(recentralisation) 및 통폐합 조치의 일환으로 폐간됐다. 한때 호찌민시 노동연맹이 이끌었던 이 신문은 1980년대 이후 베트남의 경제 호황기 내내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주요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제 이 신문은 민간 부문 주도 개발의 새로운 국면을 추진하며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당-국가 체제의 희생양이 되어, 수많은 다른 친(親)노동의 매체들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이에 대한 베트남 노동정치 연구자 조 버클리(Joe Buckley)의 해설을 번역해 소개한다.
영혼의 동반자
2026년 6월 30일, 신문 <응어이라오동>은 51년간의 발행을 끝으로 마지막 호를 냈다. 이는 베트남의 광범위한 국영 언론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발행을 중단한 8개 신문사 중 하나다.
그러나 <응어이라오동>은 단순히 일당독재 국가의 견해를 읊조리는 특징 없는 관변 신문이 아니었다. 이 신문은 하노이에 본사를 두고 중앙 총연맹인 베트남노동총연맹(VGCL)에 속해 있는 <라오동>(Lao Động, '노동')과 더불어 베트남의 양대 노동 신문 중 하나로서 노사관계와 노동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라오동>은 현재도 발행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폐간된 <응어이라오동>은 1975년 <꽁년자이퐁>(Công nhân Giải phóng, '해방 노동자')이라는 제호로 창간된 후, 1990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했다. 발간 기간 내내 이 신문은 베트남 최대 도시의 노동조합 연맹인 호찌민시 노동연맹의 기관지였으며, 특히 수출 제조업이 밀집한 베트남 남부의 산업 수출 허브에 초점을 맞춰왔다.

<응어이라오동>은 파업 현장과 노동자들의 노동·생활 조건을 보도했고, 악덕 고용주를 폭로하여 노동조건 개선과 태도 변화를 압박했다. 또한 노동자들의 고충을 전달하고 노조 간부들과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했으며, 정책 논쟁에서 친노동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했다.
신문의 폐간은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편집장의 고별 칼럼에 달린 댓글에서 한 독자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해 준 <응어이라오동>에 감사드립니다. […] 신문은 가까운 벗이었습니다. […] 영혼의 동반자와 작별하는데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라는 댓글을 남겼다. 마지막 날 신문의 페이스북 게시물에 또 다른 독자는 “생계의 모든 측면에서 노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온 신문”의 폐간을 애도했다. 온라인 매체 <베트남인>(The Vietnamese)에 인용된 이 신문의 한 기자는 이렇게 한탄했다.
“이 작별이 눈물을 흘리게 하지는 않습니다. […] 차라리 울 수 있다면 잊기가 더 쉬울 텐데 말입니다. 대신 이 감정은 너무나 많은 층위의 정동을 머금은 채 오래도록 남아, 나를 비통함과 말문이 막히는 침묵 속에 빠뜨립니다.”
<응어이라오동>의 저널리즘은 독립 언론도, 독립 노동조합도 존재하지 않는 일당독재 국가라는 조건 속에서 전개됐다. 베트남은 세계 언론자유지수(World Press Freedom Index)에서 동남아시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독립 언론인과 블로거들은 수시로 체포되고 모든 언론은 국가와 당 기관에 귀속되어 있다. 베트남노총은 베트남 내 유일한 노동조합 조직이며, 집권 공산당 산하의 당-국가 주도 노조다. 베트남에서 모든 노조는 베트남노총 체계에 편입되어야 하며, 독립 노조 설립은 금지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응어이라오동>이 어떻게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친노동 보도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종말을 고하게 됐는지를 이해하려면 지난 30년간의 베트남 노동정치라는 궤적을 짚어보아야 한다.
1990년대~2000년대: 정치적 힘의 부상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베트남은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에 주력하며 수출 지향 제조업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조건을 토대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당연하게도 이 시기에는 노동 분규가 급증했고, 공식 집계된 파업 건수도 점차 늘어났다. 파업은 1994년 제정된 노동법에 따라 합법화됐으나, 실제로는 법적 절차를 거친 파업도, 공식 노조가 주도한 파업도 전무했다. 모든 파업은 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조직한 ‘살쾡이 파업(wildcat strike, 비공식 파업)’이었다.
국가 기구 내부에서도 외국인직접투자에 친화적인 정책(즉, 파업 억제 정책)을 우선시하는 진영과,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서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더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보는 진영 사이에 긴장이 흘렀다. <응어이라오동>의 보도는 고용주의 착취적 관행, 노동자의 노동 및 생활 조건, 그리고 파업 현장을 조명함으로써 이러한 논쟁에 개입했다. 신문은 독자 투고란을 통해 노동자들의 고충을 표출하는 공론장을 제공했고, 노동자들이 노조 간부에게 질문하고 소통하는 통로가 됐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이 신문의 보도는 노동연구자 엔지 응옥 쩐(Angie Ngọc Trần)이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고 노동자·고용주·노조·국가 간 매개 역할을 수행하는 베트남 노동 언론의 부상하는 역할에 주목할 만큼 중대한 영향력을 갖게 됐다.
단적인 예로 2005년 12월부터 2006년 1월 사이, 10년 동안 동결됐던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대규모 파업 파동이 발생했다. 베트남 남부의 외국계 수출 의류·신발 공장 노동자 수만 명이 대폭적인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고, 결국 40% 인상이라는 승리를 쟁취했다.
<응어이라오동>과 하노이의 <라오동>의 보도는 이 투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문들은 파업을 신속하게 타전했고,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노동보훈사회부(Bộ Lao động – Thương binh và Xã hội)의 늑장 대처와 우유부단함을 공공연히 비판하며 정부가 대폭 인상을 결정하도록 압박했다. 또한 <응어이라오동>은 파업 중인 공장 노동자들에게 신문을 무료로 배포하며 노동자들 간의 소통 창구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2010년대: 진보적 개혁의 추동
파업 건수는 2011년에 정점을 찍었다. 그해에만 1,000건에 가까운 파업이 발생했는데, 이 파업들 역시 모두 비공인 야생파업이자 불법 파업이었다. 막대한 파업 건수는 국가·당·정부 기구에 파업을 억제하고 ‘조화로운 노사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이후 몇 년간 파업 건수는 연간 약 300건 수준으로 떨어졌으나, 여전히 기층으로부터 가해지는 강력한 압력 요인이었다.
동시에 베트남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및 EU-베트남 자유무역협정(EVFTA) 등 다자간 통상협정을 협상 중이었다. TPP는 1기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의 탈퇴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로 전환됐다. 이들 협정은 '노동 및 사회' 장을 통해 노동 개혁을 의무 조항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살쾡이 파업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압력’과 무역협정을 통한 ‘위로부터의 압력’은 보다 실질적인 노조 대표성을 포함해 대표성 있는 노사관계 제도와 구조를 구축하려는 개혁 노력을 추동했다.
노동 언론은 친노동 개혁을 견인하는 주요 통로로 부상 했다. 특히 파업들이 공식 지도부 없이 주로(전부는 아니지만) 베트남 남부 제조업 지대에서 일어나는 야생파업이었던 만큼, <응어이라오동>은 파업을 알리고 노동자의 고충을 대변하며 주요 노동 의제를 공론화하는 핵심 채널이 됐다. 베트남노총 중앙위원회 기관지였던 하노이의 <라오동>이 국가 정책 차원에 집중했던 반면, <응어이라오동> 역시 이에 힘을 보탰다.
2013년 연례 최저임금 인상을 협의하기 위한 전국임금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응어이라오동>은 생활비를 밑도는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삶을 심층 보도하며 지속적으로 대폭 인상을 촉구했다. 또한 2019년 노동법 개정 논쟁 당시에도 주당 표준 노동시간 단축 지지, 연장근로 시간 확대 반대, 정년 연장 반대 등 진보적인 의제를 옹호하는 기사를 잇달아 게재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 역시 독립 언론이 부재한 일당독재 체제라는 구조적 한계 안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노동 문제에 대한 비판적 보도는 체제의 요구와 지침을 전달해야 하는 역할과 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야 했다.
일례로 최저임금 파업 파동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15년, 노동자 9만 명이 사회보험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대규모 파업을 전개했다. 해당 법안은 노동자들이 정년퇴직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사회보험 일시금 수령을 유예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대부분 타지역 출신 이주노동자인 제조업 공장 노동자들은 극심한 노동 강도로 인해 정년보다 수십 년 일찍 현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퇴직 후 농기구를 사거나 영세 자영업을 차리는 등 다음 생애 경로를 마련하기 위해 사회보험 일시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파업은 승리했고, 해당 법 조항은 개정됐다. <응어이라오동>은 파업 과정을 기록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달하는 한편, 초기에는 노동자들에게 법을 올바르게 이해시키고 질서 유지를 위해 일터로 복귀하도록 종용한 베트남노총의 지침을 보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파업이 수그러들지 않자, <응어이라오동>은 국가적 차원에서 협상이 진행 중임을 알리며 파업 대오에 조업 복귀를 거듭 요청하는 베 트남노총 위원장의 성명을 전했다.
2020년대: 쇠퇴와 강제 폐간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국면은 급변했다. 2010년대 중반 연간 300여 건을 웃돌던 파업 건수는 급감하여 2019년 121건, 2020년 126건으로 줄었다. 이러한 감소세는 계속 이어져 2025년에는 55건에 그쳤다. 이는 보다 효과적인 노사관계 제도를 안착시키려던 시도 일부가 효과를 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동시에 무역협정의 노동 조항이 촉발했던 정책 개혁 압력도 사그라들었다. 협정은 이미 체결됐고, 베트남이 서약한 개혁 약속을 이행하도록 강제할 실질적인 수단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두 요인이 맞물리며 노동 개혁을 향한 추동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이와 맞물려 베트남 사회 전반은 한층 더 완고한 권위주의로 선회했다. '지령 24호'에 집약된 외세 영향력 차단과 체제 안정성에 대한 집착은, '결의 68호'에 따른 민간 부문 주도 성장의 새로운 시대를 추진하려는 기조와 결합했다. 당-국가 체제는 민간 주도 개발 국면을 원활히 관철하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억제·통제하기 위해 훨씬 더 강력한 정치적 통제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노동 영역에서는 대표적인 개혁 성향 인사들이 잇달아 구속됐다. 노동보훈사회부의 응우옌반빈(Nguyễn Văn Bình)과 베트남노동총연맹의 부민띠엔(Vũ Minh Tiến)이 그 대상이었다. 베트남노총의 자율성 또한 노조 총연맹에 대한 당의 감독과 장악력을 대폭 강화한 2021년 공산당 ‘결의 2호’를 통해 박탈됐다. 이후 노동조합법과 헌법 개정을 통해 이러한 당적 통제가 제도화됐다.
<응어이라오동>의 운명은 이러한 퇴행적 환경을 고스란히 체현한다. 2021년, 언론 구조조정 및 통폐합 계획의 일환으로 신문의 소유권은 호찌민시 노동연맹에서 호찌민시 당위원회로 강제 이관됐다. 이는 신문의 존립 기반이 노동연맹이 아닌 당위원회에 종속됐음을 가리킨다. 이로써 당위원회는 신문의 기본 방침과 지향을 규정하고, 취재와 보도의 한계를 설정하며, 편집위원회를 직접 임명하는 법적 권한을 장악했다.
<응어이라오동>의 폐간은 이러한 숙청과 통제의 궤적이 낳은 결과다. 겉으로는 국가 차원의 언론 통폐합 정책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본질은 엄연한 ‘노동의 역사’에 가해진 탄압이다. 지난 30년간 <응어이라오동>은 권위주의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노동자들의 목 소리를 확산시키고 노동권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을 밀어붙이는 자율적 공간을 끈질기게 일구어냈다. 이 신문의 폐간은 이미 극도의 탄압에 직면한 노동 개혁가들에게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중요한 확성기를 앗아간 것이다.
소셜미디어, 노동 현장을 지원하는 NGO, 비판적 노동연구 등 노동 착취를 고발하고 개혁을 견인하던 다른 경로들 역시 전례 없는 수축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노동자들의 저항을 매개하던 제도적 통로들이 봉쇄됐을 뿐, 지난 30년간 노동권의 불안정성과 투쟁을 낳았던 구조적 착취의 조건들은 여전히 공장 바닥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조 버클리(Joe Buckley)는 동남아시아를 전문으로 하는 노동·개발 실천가이자 연구자, 분석가다.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국제개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