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전선 너머의 일상을 마주하다 | 영화 『북녘의 내 형제 자매들』이 던지는 질문들
2026년 7월 31일
이 글은 조성형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비평이자, 이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는 오늘날 북한(북조선) 사회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아래 유튜브 영상을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다.
분단이 70년 이상 고착화된 한반도에서 '북한/북조선'이라는 공간은 늘 과도하게 정치화되거나 단선적으로 타자화되어 왔다. 거대한 군사 퍼레이드, 무서운 통제 사회, 혹은 극심한 기아라는 지배적 프레임 속에서 그곳에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은 쉽게 거세된다. 조성형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북녘의 내 형제 자매들(My Brothers and Sisters in the North)>은 바로 이런 프레임과 장벽을 넘어, 북한 혹은 북조선 주민들의 미시적 일상의 풍경을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조명한다.
지난 해 11월 시작된 플랫폼c ‘북한·이북·북조선 세미나’에서는 지난 7월 2일 열린 9차 세미나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후기를 가볍게 나누었다. 세미나 성원들은 이 다큐멘터리가 단순히 '북한 실상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고, 남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편견과 자율성, 그리고 대북 제재와 한반도 평화 체제라는 구조적 문제까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음을 공유했다.
타자화된 타자
영화 초반, 백두산 정상에서 군복을 입은 북조선 군인이 모자를 공중에 던지며 아이처럼 신나하는 뒷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우리는 종종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여전히 ‘무시무시한 적대적 집단’이나 ‘세뇌된 로봇’으로 각인해 두고 있기도 하다. 감독과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주민들의 해맑은 표정 역시 내면에 은밀히 자리 잡고 있던 냉전적 편견에 균열을 낸다.
황금빛 논이 펼쳐진 황해도 사리원의 광활한 평야는 교과서를 통해 ‘황해도 = 쌀, 평야’란 정도의 기초적 지식만 갖고 있던 우리에게 이곳의 압도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이 풍경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며, 분단이 가로막은 지리적·감각적 유대감을 재확인시킨다.
이처럼 풍경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경험은 우리가 그간 북한을 바라볼 때 얼마나 쉽게 '색안경'을 끼고 있었는지를 일깨운다. 국가적 차원의 군사적 대립과 언론의 자극적 보도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오랫동안 주체적 개인이 아닌 '체제의 부속품' 혹은 '연민의 대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웃음, 일터에서의 땀, 자연과 어우러진 삶의 조각들은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상을 견디며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보통의 존재'임을 증명한다. 결국 타자화된 타자를 마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상대를 다르게 보는 걸 넘어, 상대를 규정하던 우리 안의 냉전적 선입견을 극복하는 과정일 것이다.

대북 제재의 역설과 글로벌 공급망
반면, 영화 곳곳에 걸린 "조선의 속도로 세계를 앞서나가자"라는 구호는 최빈국 수준의 경제적 조건 속에서 '세계를 앞선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 구호는 1980년대 이래 지금까지 중국 개혁개방 고속성장기 선전 문구인 '중국속도(中国速度)'를 모방한 것으로 읽힌다. 북한 체제의 위기 속에서 동원력을 극대화하려는 국가주의적이고 강압적인 프로파간다의 단면을 드러낸다.
영화 후반부 원산 애국 의류공장의 모습은 상징적 구호 너머의 엄혹한 국제정치적 현실을 폭로하기도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경제 봉쇄 속에서도 북한산 공산품(특히 의류)은 중국을 경유하여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라벨을 단 채 미국과 캐나다 등 서방 세계로 우회 수출되고 있었다. 북한산 제품이 외부로 나가는 과정을 담담하고 당당하게 설명하는 공장 책임자의 인터뷰는 퍽 인상적이다. 제재라는 억압적 조건 속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생산과 수출을 이어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외부의 압박이 통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이자, 역설적으로 "외세의 봉쇄에 맞서 똘똘 뭉쳐야 한다"는 체제 내부의 적대적 결속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Made in China' 라벨 뒤에 숨겨진 북한 노동자들의 노동력은 글로벌 공급망의 기묘한 왜곡을 증명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대북 경제 제재의 무용함과 폭력성을 인식할 수 있다. 서구 선진국 지배계급의 주장과 달리 이른바 ‘불량국가’에 대한 경제 제재는 해당 국가 지배 엘리트층의 권력을 타격하기보다 평범한 민중들의 생존권을 파괴하며, 오히려 "외세에 맞서 똘똘 뭉쳐야 한다"는 정권의 내부 결속 명분(김씨 일가의 통치 정당성)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그것은 오히려 공장 책임자의 인터뷰처럼 외부의 적대적 제재는 "원수들의 봉쇄를 뚫고 우리식으로 살아남는다"는 서사를 완성시키며, ‘적을 향한 대동단결’과 김씨 일가의 통치 매커니즘을 공고하게 만드는 내부 결속의 명분으로 작용한다. 실제 이란에서도 미국과 서구의 봉쇄는 그 나라의 독재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를 파괴했고, 전반적 상황을 악화시켰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란 내 비판 세력은 위축돼 있고, 이란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은 이란의 권위주의적 신정을 오히려 강화했다.
우리 사회의 대북 담론은 여전히 동아시아 내 군비 경쟁이나 북한 지배권력과의 군사적 기싸움에 머물러 있다. 경제 봉쇄 해제나 국가보안법 폐지 같은 실질적 평화 조치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난 후 우리는 사회운동은 한반도 평화 체제를 위한 목소리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경제 봉쇄 해제'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점을 공유했다.
통제와 돌봄, 프로파간다
영화 후반부 오전 7시반부터 오후 7시반까지 약 12시간 동안 이어지는 송도원무역회사 산하 원산 애국의류공장의 하루는 북한 근로조직의 규율과 집단주의적 노동 문화를 보여준다. 출근 후 ‘로동신문’ 강독과 생산 목표 공유, 오전·오후 근무와 사실상 강제 된 잔업,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총화(總話)'로 이어지는 일과는 억압적 통제 구조를 담고 있다. 잘한 사람과 못한 사람을 호명하고 지적하는 총화 문화는 신자유주의적 실적 평가와는 또 다른 형태의 규율 기제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천리마 막대그래프'로 대표되는 생산 경쟁 지표에 단순 물량 달성뿐만 아니라 '아픈 동료에게 따뜻한 물을 챙겨주는 돌봄 행위'까지 평가 항목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공동체적 돌봄을 공식적 가치로 삼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으나, 카메라 앞에 선 대다수 노동자들의 지쳐 있는 표정은 12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과 엄격한 통제가 가져다주는 피로감을 숨기지 못한다.
반면, 막대그래프 1위를 놓치지 않는 '리금향'이라는 인물은 동료 노동자들에 비해 압도적인 에너지를 내뿜으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터에서도 적극적이고 내고향FC라는 여자 축구팀의 센터백으로도 뛰고 있는 이 여성은 인물로서는 매우 매력적이고 솔직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국가 프로파간다를 자발적으로 재생산하는 '노동 영웅'의 전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공장은 재일교포(자이니치)의 기부로 세워졌다. 공장 내부에 붙은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슬로건은, 현실의 혹독함을 인지하면서도 낙관을 강요하는 체제의 서글픈 역설을 응축하고 있다.

세습되는 이데올로기
한편, 사리원 집단농장의 풍경은 젠더적인 측면에서나 생태적 측면에서 상반된 시사점을 준다. 여성 농업 노동자들이 남성과 동일하게 벼 가마니를 지고 일하는 모습은 '남녀평등'의 결과인지 '기본적 노동 착취'의 확장인지 생각하게 하면서도, 한 트랙터 기사의 가정집에서 가사 노동과 식사 준비가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는 모습은 공적 영역의 동원과 사적 영역의 성별 분업이 병존함을 보여준다.
반면, 농가의 친환경 자원순환 에너지 시스템은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태양열 충전, 인분과 돼지 분뇨를 활용한 메탄가스 연료화, 토끼·닭·돼지 분뇨를 이용한 거름 제조, 짚불 아궁이 등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인분을 폐기물로 처리하는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에 나름의 통찰을 제공한다. 에너지가 극히 부족한 북쪽에서 살아남기 위해 채택한 생태적 우회가 낳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사회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 리제순 후손인 한 할머니가 어린 손주를 앞에 두고 "손주가 전사(戰士)였으면 좋겠다"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대목에선 당황스럽기도 하다. 국가로부터 아파트를 비롯한 특혜를 받는 가문의 내력 속에서, 가족에 대한 애정조차 국가주의적·군사주의적 이념으로 완전하게 침윤되어 있는 모습은 미시적 일상까지 파고든 체제 세뇌의 무서움을 실감케 한다.
평양 국제 축구 학교 장면에서는 아이들에게 매일 고기와 계란, 생선을 먹인다고 강조하는 대목이 과도하게 연출된 느낌을 준다. 카메라를 의도적으로 의식하며 "위대하신 영도자"를 외치는 모습은 적응하기 어려운 수준의 프로파간다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3~4세 어린이들에게조차 집단적 규율을 요구하는 교육 방식은 80년대 이전 남한 사회를 보는 듯한 낯섦과 이질감, 혹은 역사적 기시감을 유발한다.
반면, 다큐멘터리 속 북한 사람들의 뛰어난 영어 발음과 활동형 영어 수업 방식은 눈길을 끌었다. 문법이나 뜻을 먼저 암기하기보다 학생들이 교실을 돌아다니며 서로 대화하고 반복해서 입으로 뱉어보게 하는 교수법은 꽤 체계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자율성의 조건
영화를 보고 난 후 남는 감정은 단순한 우월감도 연민도 아니다. 4·19 혁명 이후 지난 60여 년간 남한 민중의 땀과 피를 바탕으로 쌓인 대중운동의 역사가 우리에게 '국가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는 자율성의 공간'을 가져다주었다는 자각, 그리고 그것은 체제를 막론하고 어느 사회체제에서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다. 북조선(북한) 사회의 근본적인 한계는 정치·사회주의 여부를 떠나 '국가 권력 바깥에 존재하는 민간 자율 영역의 부재'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 주민들이 누리지 못하는 자율성과 삶의 질 하락은 오롯이 북한 체제 내부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체제 내부의 통제 문제와 더불 어, 약 90%에 달하는 책임은 북한을 고립시키고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외부의 극단적인 대북 경제 봉쇄에 있다. 경제 봉쇄와 군사적 위협이 지속되는 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의 통제와 군사주의는 더욱 가하급수적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다.
조성형 감독의 <북녘의 내 형제 자매들>은 우리에게 휴전선 너머 사람들을 타자화하거나 시혜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그들이 직면한 생존의 조건과 구조적 폭력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 묻고 있다. 한반도 평화의 첫걸음은 남한 내부의 냉전적 편견을 깨뜨리는 자기 성찰, 그리고 북조선(북한) 민중의 삶을 옥죄는 대북 경제 봉쇄를 해제하라는 아래로부터의 요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 영화는 그런 이해와 실천에 비판적 성찰은 제공한다.

글 : 플랫폼c 북한·이북·북조선 세미나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