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주의는 제국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시온주의는 제국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유대인 디아스포라에겐 시온주의가 아닌 대안이 있었다. 그러나 시온주의는 제국주의의 다른 일뿐이다.

2026년 6월 23일

[읽을거리]국제시온주의, 제국주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역사, 식민주의

시온주의의 태동

유대인 공동체 사이에서 시온주의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다. 당시 서유럽의 부유한 유대인들은 상승된 사회·경제적 지위를 누렸지만, 러시아와 동유럽에 퍼져 살던 훨씬 많은 수의 유대인들은 극심한 차별과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특히 1880년대 러시아 전역을 휩쓴 대규모 유대인 집단 학살(Pogroms)은 유대인 지식인층에게 정신적 충격을 안겼다. 제도상의 차별 해소와 이른바 ‘문명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향한 사회적 폭력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현실을 목격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유대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던 프랑스에서는도 1894년 ‘드레퓌스 사건’이 발생하면서 유대 지식인들을 불안에 빠뜨렸다.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간첩 누명을 쓰는 모습은 유럽 사회에서 동화되어 살 수 있으리라는 상층 유대인들의 믿음을 뒤흔들었다.

Maurycy Minkowski, "포그롬 이후", 1910년작
Maurycy Minkowski, "포그롬 이후", 1910년작
1898년 1월 13일, 에밀 졸라가 반역죄로 기소된 드레퓌스 대위를 변호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로로르' 신문 헤드라인에 실렸다.
1898년 1월 13일, 에밀 졸라가 반역죄로 기소된 드레퓌스 대위를 변호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로로르' 신문 헤드라인에 실렸다.

이런 격변의 배경은 경제적 불안정성과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19세기 후반 유대인들이 신분 상승을 이루며 주류 사회 고위직에 진출하자, 유럽 내에서는 이들의 성공에 대한 깊은 거부감과 위기감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적대감이 부상했다. 더구나 당시 유럽에선 제국주의의 발흥과 함께 ‘인종 과학’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주류 학계와 정치가들은 유대인을 정신질환이나 질병에 취약해 동화 자체가 불가능한 ‘열등한 인종’으로 의학적·생물학적 낙인을 찍었다. 그러나 동화하려 한 유대인들조차 차별받은 현실을 볼 때, 유럽의 ‘유대인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주류 질서가 가하는 인종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레오 핀스커(Leo Pinsker)는 저서 『자동 해방』에서 시혜에 기대지 말고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며, 유대인만의 안전한 물리적 공간을 찾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시온주의에 중요한 힌트가 됐다. 시온주의 운동의 창시자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은 본래 히브리어도 모를 정도로 오스트리아-유럽 문화에 동화된 세속주의자였다. 그는 유대인 문제의 해법이 유럽 사회로의 완전한 개종이나 동화라고 진지하게 믿었었다. 한데 파리에서 일어난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유럽 백인 군중들의 “유대인을 죽이라”고 외치는 증오를 목격한 헤르츨은 깊은 환멸을 느꼈다. 그는 유대인들이 기독교적 신념을 받아들여 동화되려 한들, 유럽 사회는 유대인을 결코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는 그가 세속적 유대인들을 규합해 『유대 국가』(1896년)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가 건설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시온주의는 유럽 제국주의의 모방

시온주의 운동은 등장과 함께 다른 유대인 공동체들의 비판을 맞닥뜨렸고, 192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유대인 지도자들은 시온주의자가 아니었다. 많은 유대인들은 종교적 정통성을 근거로, 혹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근거로 시온주의자들에 반대했다. 평생 유대인 역사와 유대 철학을 연구해온 샤울 마지드(Shaul Magid)에 따르면, 19세기 말 유대계 지식인들은 유럽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거나(부유한 주류 유대인), 평등과 노동권을 위한 더 큰 글로벌 운동의 일부가 되거나(사회주의 분트), 메시아가 오기 전에 인간의 힘으로 망명을 끝내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거나(초정통파), 유대인 국가를 설립하는 쪽(시온주의)으로 분화했다. 유대계 내에서 시온주의가 주류가 된 것은 1920~3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유럽 민족주의의 부흥에 대한 모방과 폭력의 결과, 이 경쟁은 시온주의의 부분적인 성공으로 귀결됐다. 실제 초기 시온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유대인 정체성의 근거로 삼지 않았다. 그 이름과 달리 시온주의야말로 당대의 타락한 제국주의 질서를 잘 반영이었으며, 유럽으로의 동화나 문화적 변용에 맞선 반응이기도 했다. 베냐민 발타자르(Benjamin Balthaser)에 따르면, 시온주의는 “노동자계급 국제주의에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우익 민족주의이자 제국주의의 한 형태”였다.

20세기 초중반 유대인 분트(The Bund)는 동유럽에서 강력한 조직력을 발휘한 운동이었다. 분트주의자들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 바로 우리의 조국”(Doikayt, 여기 있음)이라는 슬로건 하에 팔레스타인 땅으로 도피하는 시온주의를 “부르주아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유토피아”라고 비판했다. 분트는 반유대주의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은 유대인 민중이 전 세계 노동자계급과 연대해 현지의 반동적인 지배 체제를 무너뜨리는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이들은 이디시어(Yiddish)를 유대 민중의 진정한 언어로 내세우며, 시온주의자들이 고대 히브리어를 인위적으로 부활시켜 아랍계 팔레스타인 민중을 축출하려는 식민주의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비판은 오늘날의 이스라엘 점령당국에게도 유효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붕괴하고,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가 시작되면서 시온주의자들의 조직적인 식민화가 본격화됐다. 처음에는 인구적이고 지리적인 잠식이 이뤄졌고, 점차 군사적 축출과 영토 정복의 역사로 점철됐다. 먼저 시온주의 조직들은 유대 자본가들의 모금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땅을 대거 매입했다. 그리곤 매입한 토지에서 토착 아랍인 소작농들을 내쫓고, 유대인 노동자들만 고용함으로써 다수 팔레스타인 민중을 경제적으로 고립시켰다. 이 시기 제에브 자보틴스키 같은 수정주의 시온주의자들은 ‘오직 압도적인 군사적 '철의 장벽'을 통해서만 유대 주권을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오늘날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100년 전에 구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억압 때문에 팔레스타인 땅 곳곳에서 저항들이 일어나자, 시온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강탈한 땅을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무장조직 '하가나(Haganah)'를 창설했다. 이는 나중에 이스라엘군 IDF의 모태가 된다.

‘하가나’는 영국 제국주의 당국과 협력해 민중들의 봉기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저항과 진압은 이후로도 수십년 간 끊이지 않고 지속됐다. 마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 조선반도 곳곳에서 농민항쟁과 의병들의 저항이 지속됐듯이 말이다. 시온주의자들이 서구 제국주의 세력과의 협력 하에 전개한 이 집요한 폭력과 학살의 결과, 1947년 UN(국제연합)은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내놓았다. UN은 당시 팔레스타인 땅의 6% 남짓을 소유했던 시온주의자들에게 팔레스타인 영토의 56%를 할당하는 불평등한 분할안을 통과시켰는데, 당연히도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를 명백한 식민지적 침탈로 보고 거부했다. 그리고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수립과 함께 이뤄진 ‘나크바(대재앙)’는 이런 식민주의 점령이 전면화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시온주의라는 사상과 프로젝트 자체를 팔레스타인 땅에서 복제된 제국주의 침략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시온주의 운동은 유대인만의 힘이 아니라 당대 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주의 패권 국가들의 군사적 비호를 받아 팔레스타인에 진입했으며, 외지인이 이주하여 원주민을 대체하는 정착식민주의의 경로를 정교하게 밟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뤄진 원주민 대량학살과 축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가 유사한 사례다. 20세기 초 시온주의 조직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수백 년간 농사를 짓던 토착 농민들을 강제로 내쫓았으며,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철저하게 격리했다. 나아가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땅을 “문명화되지 않은 땅”, “주인 없는 땅”이라 묘사하면서,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했다. 이는 유럽인들이 아시아와 아메리카 곳곳에서 펼친 제국주의 침략과 쏙 빼닮은 것이었다. 실제로 헤르츨은 『유대 국가』에서 유대인 국가가 아시아에 세워진다면 “유럽을 위해 아시아에 대항하는 요새가 될 것”이라며, “야만에 대항하는 문명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고 서술한 바 있다. 아시아 토착민을 ‘야만’으로, 자신들을 서구 문명의 대리인으로 상정했던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시온화 프로젝트

이스라엘 점령당국은 자신들을 ‘생존 위기에 처한 피해자’로 묘사하는 서사 전략을 택해왔다. 1970년대 이래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지지하지 않는 유대인은 일종의 비유대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온화’ 프로젝트를 심화시켰다. 오늘날 시온화 프로젝트는 엄청난 돈과 제도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으며, 시온주의 국가의 팽창과 침략을 정당화한다. 미국의 전임 대통령 조 바이든은 2023년 알아크사 홍수 작전이 있기 보름여 전, 네타냐후를 만났을 때 “이스라엘이 없었다면 안전할 유대인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그를 비롯한 미국의 통치 엘리트들이 시온주의에 동기화돼 있음을 방증한다.

  • 시온화(Zionization): 이스라엘과 홀로코스트를 미국 유대인 세대를 위한 유대인 교육의 중심으로 만드는 교육 프로젝트 https://ayinpress.org/the-necessity-of-exile/

1997년 리쿠르당의 집권 이래 이스라엘 여론은 점차 우경화 경로를 밟아왔다. 2020-21년 네타냐후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에서조차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목소리를 청취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설상가상 가자지구에서 대량 학살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이스라엘 내 여론은 더 심하게 우경화됐다. 이스라엘 자유주의 중도정당 예쉬 아티드(Yesh Atid) 소속의 메이레브 벤-아리(Meirev Ben-Ari)조차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한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과 관련해 “가자지구의 어린이들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망언을 내뱉을 정도다.

“함께 하면 승리하리라(Together We Will Win)!”라는 슬로건은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있다. 2023년 11월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Israel Democracy Institute)와 텔아비브대학 평화지수(Peace Index) 조사팀이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유대인 중 44.3%는 전쟁을 중단하지 않은 채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답했고, 26.6%는 협상조차 시도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단 10%만이 인질 교환을 위해 전투를 중단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2월 중순 같은 기관이 실시한 또 다른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어린이들이 가자지구에서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내 유대인 중 68%는 “인도적 지원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전 세계가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하며, 심지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마구 사들이고 있기도 하다. 일란 파페가 “진정 이 집단학살이 멈추길 바란다면 이스라엘 사회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해선 안 된다”며, “이스라엘을 멈출 방법은 외부로부터의 압력 뿐이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테러 국가 내부로부터 변화에 기댈 수 없음을 봐왔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내 상황이 매우 나빠졌고, 좌파 정치의 입지는 크게 소멸했다. 따라서 변화 역시 외부의 행동으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미국 유대계의 반시온주의-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유대인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비(非)이스라엘 거주 디아스포라이고, 모든 유대인이 시온주의자는 아니다. 국제적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서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유대인들 자신이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대량학살과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시온주의자들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유대인 내부 및 전 세계의 비판을 ‘반유대주의’와 같은 것이라고 폄훼해왔다. 하지만 이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서 중요하고 세간의 이목을 끌어온 미국 내의 안티-시온주의 유대인들을 비가시화하거나, 영향력을 통제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미국의 진보적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점령당국에 의한 팔레스타인 대량학량에 반대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운동을 강경하게 전개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북부에 지상군 투입 초읽기에 돌입한 2023년 10월 13일, 랍비나 홀로코스트 생존자, 대학생과 평범한 시민 등으로 이뤄진 ‘평화를 위한 유대인들’(Jewish Voice for Peace, 이하 JVP)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시애틀 등 미국 5개 도시에서 2천여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정치인들의 사무실 앞에서 "팔레스타인 대량 학살"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경찰과 대치 끝에 81명이 체포됐다. 10월 18일, 워싱턴D.C의 의사당 앞에 5천여 명의 JVC 회원 및 ‘IfNotNow(지금이 아니라면)’의 회원들이 집결해 이 중 500명은 의사당 안으로 진입해 원형홀에서 연좌 농성을 벌였다. 시위자들은 3시간 동안 의사당 앞 도로를 봉쇄했고, 농성을 벌이던 이들 중 300여 명이 체포될 때까지 완강하게 투쟁했다. 이 뉴스는 전 세계 외신에 전해졌고,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연대하는 모든 이들을 고무시켰다. 스포츠 기자 데이브 지린(Dave Zirin)는 <네이션>지 칼럼에서 운동이 커지고 있음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우리는 유대인의 위대한 전통 속에서 정의로운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노동운동에 연대하고, 반인종주의 투쟁에 평생을 바친 우리 조상들이 떠올랐다. (…) 그 역사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투쟁은 10월 27일 뉴욕 그랜드센트럴역 투쟁이었을 것이다. 이날 수천 명의 유대인 활동가들은 이 상징적 공간을 점거하고 “죽은 자를 애도하고 산 자를 위해 싸우자(Mourn the dead and fight for the living)”, “지금 당장 휴전하라(Ceasefire Now)”고 외쳤다. 전례 없는 이 시위는 뉴욕타임스 헤드라인을 비롯해 세계 주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트위터에서는 #CeasefireNow가 인기 트렌드 토픽 1위를 차지했다.

JVC와 IfNotNow를 위시한 진보적인 유대인 조직들, 그리고 이들에 연대하는 사람들은 이후로도 수개월 동안 쉬지 않고 투쟁해왔다. 이들은 자유의여신상 등 상징들을 점거하거나 뉴욕타임즈와 의사당, 정부청사, 바이든 유세 현장 등 구체적 대상을 타격함으로서, 때로는 ‘하누카(חנוכה)’홀로코스트 추모의날과 같은 날 계기성 행동을 통해 자신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대중적으로 전달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또, 각 대학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의 집단학살에 반대하는 활동하는 학생들이 시온주의자들의 협박을 맞닥뜨렸을 때 연대 행동을 조직하거나, 사람들에게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물리적인 행동까지 다양한 실천 지침을 제시했다. 가령 2월 22일, JVP는 AIPAC(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의 뉴욕본부 입구를 차단하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AIPAC는 미 의회에 가자지구 휴전에 반대하도록 수백만 달러의 로비를 행사하는 유대인 로비단체로, 10월 이래 9천만 달러를 모금해 가자지구 휴전에 반대하는 의원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가자지구에서 3만여 명 의 주민들에 대한 무차별 폭격 규탄 발언을 한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캠페인을 펼쳐왔다. AIPAC 앞 시위 참가자들은 이스라엘에 141억 달러의 군사 자금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투표한 슈머 상원의원과 길리브랜드 상원의원 사무실로 행진해 “대량학살 자금 지원 중단”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농성을 전개하다가 체포됐다. AIPAC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는 두 상원의원은 이스라엘에 대한 141억 달러의 군사 자금 지원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런 꾸준한 투쟁들 속에서 JVP와 IfNotNow의 멤버십과 영향력은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한 유대인 비평가는 “오래된 시온주의 단체들은 미국 내에서 유대인의 목소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그들은 “자녀들이 두 좌파 단체들에 합류하고 있는 걸 보며 겁에 질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치열한 투쟁은 지방의회들의 휴전 결의안 상정과 직접행동을 통한 이슈파이팅 등 적지 않은 성취를 이루고 있다.

폴란드의 홀로코스트에서 백여 명의 가족이 살해당하고 부모만이 살아남아 생존자의 후손이 된 하버드대학 중동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사라 로이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썼다.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죽음은 언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될까요? (…) 어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자발리야 난민캠프에 폭격을 가했습니다. 캠프의 일부가 파괴되고 최소 100명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제 친구인 시인 모사브 아부 토하와 그의 아내, 아이들은 이스라엘이 캠프 북쪽에 있는 베이트 라히야가 포격당할 것이니 집을 떠나라고 경고한 후 최근 자발리야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모삽의 집은 파괴됐죠. (…) 1.4제곱킬로미터 면적에 116,000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시나요? (…) 저는 이번이 첫 번째 잔학 행위가 아니며 당신들이 야만 행위를 계속 정당화한다면 마지막도 아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이든 당신은 ‘인도주의적 일시 중지’를 요구하는데,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학살의 한가운데서 잠시 멈추는 게 뭘 의미하나요? 다음 날 죽임을 당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먹이는 것을 의미하나요? 그게 어떻게 인도주의적인가요?”

물론 미국 내 팔레스타인 연대 물결이 유대인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종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고, 특히 대학가와 광장에서 또렷하게 확인되고 있다. 예컨대 2023년 10월 31일 반전운동단체 CODEPINK 소속의 수십여 명의 활동가들은 손바닥을 붉게 칠하고 상원 청문회에서 안토니 블링큰 국무장관이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원조를 주장하던 중 블링큰 장관의 발언을 방해하는 시위를 벌였고, 다양한 사회운동 그룹들은 수십여 차례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도시 한복판에서 거리 시위를 벌였다. 미국에서 젊은 세대의 팔레스타인 연대가 도드라지는 것에 대해 저널리스트 리저우는 “2020년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인종 정의에 대한 논의를 재편하고 젊은 활동가들이 조직되도록 했으며, 인권 침해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제고시켰다”고 분석했다. 또, 최근 들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정보의 확산으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점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멈추지 않는 연대 행동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 내 여론지형을 변화시키고 있다. 2023년 10월 <이코노미스트>지와 YouGov가 성인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때만 해도 이스라엘에 대한 동정 여론은 42%로 팔레스타인에 더 공감한다는 9%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었다. 이 당시 또 다른 조사에서는 18~34세 응답자 중 51%가 미국 정부의 이스라엘 무기 지원에 반대한다고 답했는데, 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반년만에 여론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2024년 3월 27일 갤럽이 발표한 새로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행동을 반대한다고 답했고, 36%만이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는 4개월 전인 11월 23일 50%에서 크게 떨어진 수치이며, 특히민주당 지지자와 지지정당이 없는 시민들 사이에서 낙폭이 크게 나타났다. 바이든이 자신의 선거 캠페인을 따라다니며 일어나고 있는 “학살자 조(Genocide Joe)”라는 구호를 불편하고 위태롭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선을 원한다면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제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은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에 대한 아무런 환상도, 막연한 동정심도 없으며, 결정적으로 젊은 유대인들의 의식은 시온주의의 영향으로부터 크게 이탈했다. 반시온주의이 반유대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들의 행동을 통해 실천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민주당 정부가 마지막의 아슬아슬한 기회까지 무시하며 무기 팔아치우기와 학살 지원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에서의 강력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전쟁광 네타냐후-바이든의 공고한 끈을 매우 취약하게 만들었다. 전쟁 상황은 애국주의를 고취하기 쉽지만, 미국의 아래로부터의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이 만든 정치적 에너지는 이를 제어할 힘이 조직하고 있다.

반전 여론이 외교 정책을 바꾼다

통상 관료정치모델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관료집단들 간 정치적 게임의 산물로서의 정책 산출을 전제로 삼는다. 이때 이해관계를 가진 관료집단 간 갈등에서 관료조직은 국가주의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자로 간주된다. 국가든 개별 조직이든 개인이든, 갈등과 타협의 원인은 언제나 ‘이익’을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해석한다.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이익론적인 접근법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실제로 과거에는 평범한 국민들이 가진 여러 한계로 인해 외교정책 논의 과정에서 여론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대중에게는 ‘국제문제를 이해할 지식이 없고 지속적 의견을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 여론이 외교정책의 지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험적·당위적 논리가 강하게 존재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이는 당위의 문제에서든 현실의 맥락에서든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돼버렸다. 여러 국가에서 이 이익이란 언제나 ‘대중의 공포’ 혹은 대중으로부터의 두려움이라는 요인의 강력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고, 관료정치는 그것의 영향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국가권력의 외교정책 결정과정에서 때로는 이익보다 여론이 보다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가령 최근 10년 사이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왔고, 이는 정부의 대중 정책만이 아니라 정권 그 자체의 교체에 까지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이 때문에 국제정세나 외교 이슈는 이제 국내 정치의 주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게 됐다.

실제 이번 총선에서 대만해협 위기 문제는 거대 양당의 첨예한 이슈 중 하나였다. 팔레스타인 문제 역시 마찬가지의 쟁점이 될 수 있다. 다른 여러 나라들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것은 관료정치의 방향 선회를 압박한다. 그것은 국내 정치의 판도를 바꾸고, 국제 정세를 변동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전쟁(위기)이나 대량 학살 인종청소 등에 맞선 대중운동만이 팔레스타인 및 기타 지역에서의 학살을 저지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시온주의는 무너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무장한 요새처럼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내부 권력 체계가 얼마나 견고하느냐의 문제나 영속적이냐 되물었을 땐 많은 질문이 떠오른다.

우선 이스라엘은 점차 고립되고 있으며, 이는 가자지구 대량 학살로 국제적 여론이 악화되고 있고, 총파업과 대중 시위, 캠페인 등 BDS운동이 이룬 성취 때문이다. 끊임없는 폭로와 저항의 가시화, 조직화가 이룬 이 흐름은 지속되어야 한다.

수십 년간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매년 38억~800억 달러에 달하는 군사적·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최근 가자지구 집단학살 과정에서는 추가로 160억~220억 달러의 학살무기 원조를 받기도 했다. 바로 이 지원 덕분에 이스라엘은 국제법을 무시할 수 있는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우리가 ‘미국도 학살의 주범’이라고 외치는 이유가 여기 있으며, 이는 이스라엘에 좀 더 우호적인 미국 내 백인 중산층 인구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데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집단학살 참상이 전 세계 수천 개 도시에서의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감 없이 전달되면서, 미국 내 여론은 크게 변화했다. 상기했듯,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민의 과반수가 이스라엘보다 팔레스타인에 더 동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정치권과 언론의 상당수도 돌아서면서 학살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얼마 전 트럼프가 이란을 향해 엄청난 미사일 폭격을 가하자, 트럼프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MAGA’ 세력이 양분되고 정보기관의 핵심 인사들이 사표를 던진 것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 내 리버럴 유대인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몇 년 미국 내 진보적 유대계 사회운동단체들은 집단학살에 맞서 강력한 반대 시위를 조직했으며, 이를 통해 반유대주의와 반시온주의를 명백하게 구별하는 목소리가 넓어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래 이스라엘 점령당국을 무조건적으로 지원해온 미국의 지배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내 상황은 어떨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는 세속적 유대인(40~50%), 중도보수(20~25%), 초정통파 하레디(약 18%), 극우 시온주의자들(12~14%), 현대 정통파(5~10%) 등으로 나뉜다. 어디에서도 좌파를 찾기는 어렵다. 이들은 모두 시온주의 국가 프로젝트의 우산 아래서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도 분열은 격화되고 있다. 이 갈등은 2023년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부 무력화’ 시도로 폭발했으며, 수개월간 수십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공동체적 응집력이 파탄 났음을 보여준다. 어느 쪽으로 귀결되건 이스라엘은 ‘정상화’될 수 없으며, 혼란의 지속을 가리킬 뿐이다.

이런 영향으로 ‘일리야(귀환)’를 통해 해외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하던 흐름도 끊겼다. 식민주의 지배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정착민 유입이 필수적인데, 가자지구 민중의 처절한 생존과 저항, 레바논 헤즈볼라의 비대칭전력에 의한 무력 저항, 그리고 이란의 직접 반격은 "이스라엘이 전 세계 유대인에게 유일하게 안전한 피난처"라는 시온주의의 신화를 깨뜨렸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점, 나아가 정치적 불만과 경기 침체로 ‘역-일리야’(이민 유출) 흐름도 커지고 있다.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을 영구적으로 떠난 인구 규모는 그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이스라엘 인구 조사 및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유대인 정착민의 25% 이상이 현재 이스라엘을 떠나 해외로 이주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특히 이스라엘의 사법부 무력화 사태 및 극우화 현상과 맞물려, 상대적으로 세속적 성향을 지닌 유대인들의 이탈 의사가 높아졌다. 이런 추세로 볼 때 이스라엘은 보다 광신적인 종교·우익 세력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온건파가 설 자리를 소멸시킨다.

시온주의 서사는 늘 나치 독일 등 '외부의 위협과 절멸의 공포'를 명분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가장 나치에 가까운 형태로 평범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으며, 세계를 파괴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국가가 파시즘의 경로를 밟을 수밖에 없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탄생시키고 유지해 온 시온주의 사상과 그것이 팔레스타인이라는 현실 공간과 충돌하며 고착화된 정착민 식민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의 부패, 사회 분열,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대량학살은 국가의 정당성을 뿌리째 흔들었으며, 이스라엘 지배계급은 국가 붕괴의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시온주의 점령당국이 발버둥 치면 칠수록 이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세운 식민지는 와해될 것이며, 시온주의의 종식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

확인했다시피 역사상 모든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시온주의자였던 것은 아니다. 국제주의적이고 좌파적인 전망을 품었던 또 다른 꿈이 있었고, 역사는 그들이 훨씬 정당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모든 비극을 해결할 수 있는 첫 단계는 팔레스타인 땅,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 유대교가 국교가 아닌, 민주적이고 평등한 단 하나의 세속 국가를 만드는 데 있다.

191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대인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 집회
191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대인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 집회

참고 자료

글 : 홍명교

커버 이미지 : 이사하르 베르 리바크(Issachar Ber Ryback), "음악가들", 1917년작.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