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학살에서 살아남기 | 로힝야족의 저항과 연대의 역사

집단학살에서 살아남기 | 로힝야족의 저항과 연대의 역사

우리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희망과 꿈을 갖고 태어난 인간이다. 우리의 투쟁은 과거 우리가 겪은 집단학살에만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려는 미래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2026년 5월 2일

[동아시아]미얀마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 인종주의, 국가폭력, 제국주의, 국제연대

우크라이나 독립언론 <커먼즈 Commons>의 편집자 데니스 필라시(Denys Pilash)는 2017년 로힝야 집단학살 이후 방글라데시 난민캠프로 피신한 로힝야학생네트워크(Rohingya Student Network) 활동가 누르 사데크(Noor Sadeque)를 만나 로힝야 집단학살의 참상과 그 역사적 배경, 로힝야 집단학살을 둘러싼 복잡한 역학관계, 로힝야인이 요구하는 ‘존엄한 귀환’의 조건,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글은 <Commons>에 실린 인터뷰 <집단학살에서 살아남기: 로힝야족의 저항과 연대의 역사>를 번역한 것이다.

미얀마는 1989년까지 버마(Burma)로 알려졌으며, 1948년 독립 이후 권위주의 정권과 내전으로 고통받아 왔다. 내전은 두 개의 공산주의 분파부터 샨, 카렌, 몬, 카친 등 차별받아 온 수많은 소수민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정부 무장세력을 상대로 벌어졌다. 양곤 공과대학 학생들이 시작한 ‘8888 항쟁’을 탄압한 이후 들어선 군사독재 정권은 극도로 부패한 경제체제를 만들었으며, 극도로 부유한 장군 중심의 과두 엘리트와 권리를 박탈당한 대중으로 양극화된 사회를 만들어냈다.

정권은 2007년 시위—승려들의 법의 색에서 이름이 유래한 ‘사프란 혁명’—이후 일부 양보를 강요받았고, 2015년과 2020년에는 보다 자유로운 선거를 실시하게 되었다. 이 선거에서는 노벨상 수상자 아웅산 수치—독립 직전 우익 음모자들에게 암살된 버마 독립의 아버지의 딸—가 이끄는 민주 진영이 승리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군부와 권력을 공유하며 불명예스러운 타협을 했다.

이러한 타협 가운데 가장 참혹한 것이 라카인주에 거주하는 무슬림 집단인 로힝야 주민들에 대한 집단학살이었다. 한때 민주주의 투쟁의 상징이었던 수치의 묵인 아래, 보안군과 초민족주의적 불교 광신도들은 ‘이교도’에게 그곳에서 살 권리를 부정하고 그들을 ‘외부인’으로 낙인찍으며 2016년 말부터 인종청소를 감행했다. 이러한 인종청소는 각종 잔혹행위를 동반했으며, 2017년 8월 25일 군사작전이 시작된 이후 잔혹행위가 더욱 격화되었다. 수만 명의 무슬림 민간인이 학살되었고, 또 다른 150만 명이 인접한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강요당했다. 이곳에는 이미 1970년대부터 버마 당국의 박해를 피해 온 로힝야 난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결과, 양국 국경에 위치한 콕스바자르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 캠프가 형성되었다.

2021년 2월 1일, 군부는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민간 지도부를 구금하고, 처음에는 시민불복종과 파업으로 군정에 저항하려 했던 수천 명의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거리를 피로 물들이면서, 독재 정권은 다시 격화된 내전의 불길을 더욱 부채질했다. 러시아 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사적·정치적·정보적 지원에 의존한 군정은—초기에는 국가행정평의회(State Administration Council)로 불렸다—대지진 이후의 휴전 기간에도 합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했으며, 최근에는 기만적인 가짜 선거를 강행했다.

그러나 ‘모두가 모두에 맞서는’ 혼란 속에서, 미얀마 영토의 절반 이상은 군정에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여기에는 야권 성향인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산하 인민방위군(People’s Defense Forces), 다양한 소수민족의 수십 개 민병대, 기타 소규모 무장세력—국제 아나키스트 자원병으로 구성된 반파시스트 국제주의 전선(Anti-Fascist Internationalist Front)도 여기 해당한다—이 모두 포함된다.

이 인터뷰에서 집단학살을 겪고 지금도 전쟁과 망명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로힝야 난민들—이 이러한 조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직접 들을 수 있다. 난민캠프에 있는 우리의 동지는 그들의 일상과 전망, 그리고 상호 경험에 대한 이해와 국제적 연대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준다.

데니스 필라시(이하 데니스) |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당신의 여정을 간단히 들려줄 수 있나? 어떻게 난민캠프에 오게 됐나?

누르 사데크(이하 누르) | 내 이름은 누르 사데크(Noor Sadeque)로 미얀마 마웅도 타운십(MaungDaw Township) 끼 칸 표인 마을(Kyi Khan Pyin Village, Hawar bill) 출신으로 누르 알롬(Nur Alom)의 아들이다. 나는 25세의 로힝야인이다. 2016년에 마웅도 제1고등학교(Maung Daw No.1 High School)를 졸업했다. 그러나 2017년 8월 25일 라카인주의 폭력 사태로 따른 참혹한 상황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피신해야 했다.

방글라데시 난민캠프로 피신한 뒤, 나는 캠프 8W, 17, 20에서 Premiere Urgence Internationale(PUI)의 현장조정팀 팀장(Site Coordination Team leader)으로 1년 3개월 동안 일했다. 이후에는 캠프 20 및 캠프 20 확장 구역에서 약 5년 동안 국제이주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 IOM)의 로힝야 캠프운영팀 팀장(Camp Operation Rohingya Team leader)으로 근무했다.

현재 나는 청년들의 역량 강화와 성장, 격려, 사회주의 및 사회 활동에 집중하고 있으며, 로힝야청년협회(Rohingya Youth Association), 로힝야청년권리옹호네트워크(Rohingya Youth Advocacy Network)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지금은 지역사회 권리 옹호를 위한 풀뿌리 조직인 로힝야학생네트워크의 설립자이자 자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교육 및 역량 강화 훈련을 제공함으로써 우리 공동체의 청년과 여성들을 지원하고, 우리의 권리와 정의, 기본적 권리를 위해 싸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1년 발루칼리 난민촌에서 화재 피해를 입은 아이에게 옷을 나눠주는 누르 사데크
2021년 발루칼리 난민촌에서 화재 피해를 입은 아이에게 옷을 나눠주는 누르 사데크

우리는 미얀마와 가장 가까운 나라 방글라데시로 쫓겨나고 강제 이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미얀마 군사 정권은 우리가 시민권, 평화, 안녕과 같은 빼앗긴 동등한 권리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우리를 이른바 ‘무국적자이자 집을 잃은(so-called homeless and stateless) 사람들’로 규정했다. 미얀마의 잔혹한 군부는 지역 경찰과 극단주의 집단을 포함해 조직적이고 점진적인 집단학살을 계획했으며, 우리를 이 지구상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으로 만들었다.

그 이면에서 수많은 학살, 집단 강간, 가옥을 불태우는 행위, 영아를 산 채로 훼손하거나 불길 속으로 던지는 행위, 노인을 산 채로 불태우는 일들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이 총에 맞아 살해됐고, 아무런 조사도 없이 중앙 교도소로 보내졌다.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탈출할 때, 여성들이 길에서 출산하는 걸 여러 차례 목격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시신을 내 눈으로 직접 봤고, 부모와 떨어져 울부짖으며 물에 빠져 죽어가는 아이들도 보았다. 몇몇 노인들은 긴 여정을 감당할 사람이 없어 집에 홀로 남겨지기도 했다.

나는 두 주 동안 걷고, 때로는 비를 맞으며 달리고, 때로는 산을 넘어야 했다. 식량도 약도 전혀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극심한 고열로 이동 중에 목숨을 잃었다. 이 모든 고난 끝에 우리는 마침내 방글라데시에 도착했다. 우리를 형제자매처럼 돌봐 준 방글라데시 정부와 국민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또한 방글라데시 군이 보여준 인도적 행동에 대해, 전능하신 신이 이 나라에 영원한 평화를 내려주기를 바란다.

보트와 수영, 도보를 통해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뒤, 나는 가족과 함께 난민캠프에 몸을 의탁했다. 부모님은 나를 포함한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큰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다행히도 나는 로힝야학생네트워크에서 운영 코디네이터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자원활동가로는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나와 형제자매들은 공부나 자유로운 이동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방글라데시 무장경찰대대(Armed Police Battalion, APBn)에 의한 자의적 체포와 갈취, 그리고 캠프 내 무장단체들이 자행하는 고문 때문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일, 친구나 가까운 사람들과 캠프 안의 찻집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조차 두렵다. 뉴스를 보거나 목소리를 내는 일조차 때로는 위험을 초래한다.

더 나아가 나의 미래와 운명, 그리고 꿈은 끔찍한 악몽으로 변해 버렸으며, 나는 비좁고 열악한 난민캠프와 난민 생활에서 벗어날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이동의 자유와 교육에 대한 접근권조차 없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목표인 대학 진학과 졸업, 그리고 전문 학위 취득에 대해 밤낮으로 계속 생각하게 되면서 마음속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는 상태다.

해외에서 자유롭게 공부하며 일상에서 성취를 쌓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스스로 아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내가 실제로 그런 기회를 충분히 추구할 능력이 있음을 알면서도, 캠프 생활 때문에 그것이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상황은 미래에 대한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데니스 | 전 세계 사람들이 로힝야 집단학살에 대해 무엇을 알아야 할까? 버마/미얀마에서 로힝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박해와 아파르트헤이트식 정책이 어떻게 전개됐나?

누르 | 전 세계 사람들은 먼저 로힝야가 누구인지 이해해야 한다. 로힝야는 수세기 동안 미얀마 라카인(아라칸)주에 살아온 토착 무슬림 소수민족이다. 그런데도 로힝야는 체계적으로 존재를 부정당했고, 1982년 시민권법으로 시민권을 박탈당했으며, 미얀마가 공식 인정하는 135개 민족 목록에서도 배제됐다. 이러한 법적·정치적 말살이 집단학살의 토대를 마련했다.

박해는 종교적 차별과 민족적 차별 양쪽에서 비롯된다. 1948년 미얀마 독립 이후, 로힝야는 독특한 정체성과 신앙, 그리고 역사적 존재를 이유로 표적이 돼 왔다. 우리는 국적 취득권, 정치적 대표성, 교육 및 이동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을, 치밀하게 계산되고 제도화된 과정을 통해 박탈당해 왔다. 로힝야는 미얀마 군부와 정부 전반에 의해 체계적으로 탄압을 받아 왔으며, 특히 아라칸주(라카인주)에서 시행된 정책들에서 그러한 탄압이 두드러졌다.

더 최근인 2024년 8월 말에는 라카인 지역 세력과 아라칸군(Arakan Army)이 각각 고문을 자행하고, 로힝야를 아라칸 땅에서 지워버리려는 유사한 정책을 시행했다. 이는 아라칸군이 수세기 동안 로힝야 공동체가 거주해온 주요 지역들을 장악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로힝야에 대한 아파르트헤이트식 정책은 식민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에 맞서 자신들을 지원한 대가로 로힝야에 미얀마 사회의 구성원 자리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이 독립 이후 깨졌고, 미얀마의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1942년 일본의 침공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돼 광범위한 공동체 간 폭력을 촉발했고, 로힝야 사회를 심각하게 붕괴시켰다. 이 시기는 대규모 강제이주와 인명 손실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로힝야의 삶을 규정하는 장기적인 분리, 불신, 그리고 구조적 주변화의 토대를 형성했다.

수십 년에 걸쳐 반복된 군사작전은 로힝야를 강제이주로 내몰았다. 1978년에는 나가민 작전으로 20만 명이 넘는 로힝야가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 1991~92년에는 또 다른 군사적 탄압으로 25만 명 이상이 강제로 이주했다. 상황이 2012년과 2016년에 더욱 악화됐고, 2017년에 정점에 이르렀다. 이때 70만 명이 넘는 로힝야가 대규모 학살, 마을 방화, 그리고 조직적 폭력 이후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 이러한 범죄는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를 포함한 국제 기구들에 의해 집단학살로 인정돼 왔다.

세계는 이것이 단순한 인도주의적 위기가 아니라, 국가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잔혹성과 차별을 통해 실행되어 온 의도적이고 장기적인 말살 캠페인임을 이해해야 한다.

2017년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로 탈출하는 로힝야 사람들.
2017년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로 탈출하는 로힝야 사람들.

데니스 | 미얀마의 주류 민주진영은 한때 군부와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이 로힝야 집단학살을 벌이도록 사실상 용인하는 ‘악마와의 거래’를 했고, 이후 따마도(Tatmadaw, 미얀마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미얀마 인구 전체에 전면적인 탄압을 가하면서 그 대가를 치렀다. 광범위한 반군정 운동이 이러한 교훈을 배우고 소수자들의 권리를 포용하게 되었다고 보나?

누르 | 미얀마의 광범위한 반군부 운동은 로힝야 집단학살 당시 자신들의 침묵과 공모에서 일정 부분 교훈을 얻은 징후를 보여왔다. 특히 젊은 활동가들과 저항 세력 내 일부 소수민족 연합은 포용적 민주주의 이상을 수용하고, 로힝야를 포함한 주변화된 집단의 권리를 인정하려는 더 큰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뿌리 깊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전략적으로 계산된 정치적 접근은 여전히 소수자 권리에 대한 통일된 입장 형성에 중대한 장애물로 남아 있다.

연대의 표명과 미래의 연방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존재해왔지만, 이러한 움직임들이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인정하기 위한 구체적 약속으로 일관되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많은 경우 이러한 지지는 원칙적이라기보다 전술적인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에서 진정한 민주적 전환이 뿌리내리려면 저항 세력이 단순히 군부에 대한 반대를 넘어 정의, 평등, 그리고 모든 공동체에 대한 책임성을 약속해야 하며, 여기에는 로힝야와 같이 역사적으로 억압받아 온 집단도 포함되어야 한다.

데니스 | 오늘날 로힝야 정치 내부에 (예를 들어 세속적 좌파, 이슬람주의자, 혹은 생존 중심의 실용주의자들 사이의) 세대적·이념적 분열이 존재하나? 또 여성과 청년들은 정치적 담론에 어느 정도로 참여하나?

누르 | 오늘날 로힝야 정치 내부에는 분명한 세대적·이념적 분열이 존재한다. 이러한 분열은 해외 로힝야 공동체의 원로 지도자, 젊은 활동가, 그리고 종교적 영향을 받은 집단 사이에서 나타난다. 디아스포라의 많은 원로는 수십 년에 걸친 경험과 로힝야의 정치적 역사 및 위기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다. 반면 젊은 세대, 특히 망명지에서 태어나거나 성장한 이들은 직접적인 박해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으며, 미얀마 군부 통치에서 겪은 자기 경험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 이슬람 성향의 세력, 특히 무장단체와 연계돼 있거나 이에 동조하는 이들은 종교적 지식을 활용해 영향력을 확대하며 지도자 역할을 주장하기도 한다.

현재 이른바 ‘지하드’를 통해 로힝야 저항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주요 무장 단체는 로힝야연대기구(Rohingya Solidarity Organization), 아라칸로힝야군(Arakan Rohingya Army),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akan Rohingya Salvation Army) 세 곳이다. 이들 단체는 항상 신학생들과 성직자들에게 지지를 끌어모은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로힝야 청년들은 교육과 인도주의 활동, 특히 NGO와의 협력을 더 중시하며, 평화적 해결과 교육 기회의 확대를 촉구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경향은 때때로 이념적 성향의 집단들과의 마찰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특히 난민 캠프 내에서 정치적 지도력에서 여전히 크게 과소대표돼 있다. 이동의 자유, 공적 옹호 활동,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그들의 참여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그럼에도 해외에 거주하는 일부 로힝야 여성들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권리 보장과 차별 없는 사회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정치적 지형이 여전히 분열되어 있으며, 로힝야 공동체에 대한 지속적인 주변화, 정치 참여 공간의 제한, 그리고 계속되는 구조적 억압으로 인해 통합된 지도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뜻한 외투와 담요 없이는 추위를 견디기 힘들기에 노인들은 ��모닥불 옆에서 몸을 녹인다.
따뜻한 외투와 담요 없이는 추위를 견디기 힘들기에 노인들은 모닥불 옆에서 몸을 녹인다.

데니스 | 현재 로힝야 무장단체들이 내전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또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방글라데시의 군 정보총국(Directorate General of Forces Intelligence)와 같은 외국 세력의 개입을 어떻게 평가하나?

누르 | 아라칸로힝야구원군, 로힝야연대기구 같은 로힝야 무장단체들이 지금 벌어지는 미얀마 내전에 관여해왔지만, 그들의 역할은 여전히 논쟁적이며 정의를 위한 보다 광범위한 로힝야의 투쟁과 대체로 동떨어져 있다. 그들은 로힝야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일관된 정치 전략보다 내부 권력 투쟁과 개인적 이해관계를 반영할 때가 많다. 공동체를 단결시키고 보호하기보다는 때때로 난민캠프와 로힝야 주민들 사이에서 공포와 분열을 조성했다. 정치적 비전, 조율 능력, 그리고 투명성의 부족은 이들을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비효과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아라칸로힝야구원군은 스스로 무장세력의 위협에서 로힝야를 보호하는 수호자라고 내세워왔지만, 그들의 이념과 방식이 정의, 화해, 혹은 장기적 평화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지도력에 미치지 못한다. 난민캠프 내의 폭력 활동에 연루됐다는 의혹, 다른 로힝야 세력과의 충돌이 그들의 정당성을 더욱 약화시켜 왔다.

외부 영향과 관련해서는, 중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외국 정부가 로힝야 무장단체를 공식적으로 지원한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중국은 군사적·정치적으로 크게 성장한 아라칸군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지원이 로힝야 단체로까지 확장되지는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말레이시아의 경우 일부 개인이 로힝야 전투원들에게 비공식적이거나 이념적인 지지를 보낼 수는 있지만, 이는 제한적이고 비조직적이며 제도적 뒷받침이 결여돼 있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특히 군 정보총국은 일부 제한적인 사례에서 소규모 접촉이나 묵인에 대한 보고가 존재하지만, 이는 대체로 진정한 지원이라기보다 현지 정보기관의 정보 전략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방글라데시 당국, 즉 정부와 보안 기관은 로힝야 무장단체를 지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평화적 옹호자들까지 포함하여 난민캠프 내의 정치적·사회적 활동을 감시하거나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로힝야 무장세력은 지역 내 경쟁세력인 아라칸군을 포함한 상대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역사적 억압자인 미얀마 군부와 비공식적으로 합의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는 이들의 정치적 성숙 부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로힝야 민중의 장기적 목표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요컨대, 로힝야 무장단체들은 내전에 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역할은 분열되어 있고, 이념적으로도 명확하지 않으며, 평화·정의·공존을 바라는 더 광범위한 로힝야 공동체의 열망과는 동떨어져 있다. 현재 미얀마 내전에 이들이 개입하는 방식은 로힝야 민간인들의 실제 희망이나 진정한 해방운동의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

데니스 | 현재 아라칸군과 그 통제를 받는 로힝야 인구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협상을 통한 공존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누르 | 로힝야는 수세기 동안 아라칸 지역에 거주해왔으며, 이후 아라칸군의 기반이 된 라카인족은 역사적으로 미얀마 정부와 보조를 맞춰왔다. 로힝야가 미얀마 정부로부터 겪은 학대는, 정부의 권한 아래 지역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라카인족에 의해 그대로 반복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욱 악화되기도 했다.

2017년 8월 말, 미얀마 군부가 라카인 협력 세력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광범위한 학살과 고문을 자행하면서 로힝야 공동체는 거의 전면적인 파괴를 겪었다. 그 결과 약 100만 명에 달하는 로힝야가 집을 떠나 방글라데시의 난민캠프로 피신해야 했다.

2021년에 이르러 미얀마가 완전히 독재 체제로 전락했고, 이에 맞서 군부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인민방위군이 부상했다. 이와 동시에 아라칸군은 로힝야에 유사한 정책을 추진했다. 아라칸 지역의 일부를 실질적으로 장악한 이후, 아라칸군은 아라칸을 미얀마에서 독립한 별도의 자치 지역으로 만들려는 독자적인 무장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아라칸군과 지역 라카인 공동체는 라카인주에서 상당한 수준의 자치를 행사하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아라칸 독립 구상은 로힝야를 명백히 배제하는데, 이는 아라칸군이 로힝야를 아라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기를 일관되게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로힝야를 표적으로 삼는 문제에서는 아라칸군과 미얀마 군부가 항상 보조를 맞추지만, 아라칸의 독립을 둘러싼 보다 광범위한 정치적 투쟁에서는 아라칸군이 미얀마 정부에 맞서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라칸군과 미얀마 군부는 각자의 정책을 통해 로힝야를 아라칸의 시민으로서든, 미얀마의 시민으로서든 체계적으로 인정하지 않아 왔다.

현재 아라칸군과 그 통제를 받는 로힝야 주민들 사이의 관계는 진정한 이념적 일치라기보다 전략적 고려에 따라 형성된 ‘신중한 실용주의’로 설명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아라칸군과 라카인 불교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은 로힝야를 주변화하거나 심지어 반대해왔다. 오늘날 아라칸군이 라카인(아라칸)주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는 가운데, 남은 로힝야 공동체는 지속적인 제약과 폭력 속에서 침묵의 억압 아래 살아가고 있다.

아라칸군은 때때로 로힝야의 종교 활동이나 문화 행사를 허용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진정성 있는 행위라기보다 국제사회의 시선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인도적 지원을 얻기 위한 수행적 행위로 보일 때가 있다. 이러한 행동은 아라칸군이 저질러온 과거와 현재의 인권 침해를 가리는 동시에, 스스로를 무장 행위자가 아니라 정당한 통치 세력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통한 공존의 길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려면 아라칸군과 그 정치조직인 아라칸통합연맹(United League of Arakan)이 로힝야를 진정으로 아라칸의 동등한 시민으로 포용하는 포괄적 통치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로힝야 지도자들과의 정치적 대화, 모든 민족집단의 인권 보호, 그리고 아라칸 및 미얀마가 미래에 수립할 정치 구조에서 로힝야의 완전한 대표성을 보장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할 때만 지속 가능한 공존과 화해가 가능해질 수 있다.

데니스 | 로힝야 운동은 미얀마의 다른 억압받는 소수민족을 포함한 보다 광범위한 민주주의 또는 혁명 세력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나?

누르 | 로힝야 운동은 모든 민족 집단에 동등한 권리, 존엄, 그리고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포괄적 연방국가라는 공동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미얀마의 더 광범위한 민주주의‧혁명 세력과 연대할 수 있다. 다른 억압받는 민족 집단들과 신뢰와 연대를 구축하는 것은 중요하며, 이는 미얀마 군사독재 하에서 각 집단이 겪어 온 고통과 저항의 역사를 상호 인정함으로써 가능하다.

단결을 진전시키기 위해 로힝야 운동은 연방주의, 민족 권리, 인권 보호, 민주적 개혁을 옹호하는 민족 간 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다양성 속의 단결”이라는 원칙에 기반한 민족 간 협력은 군사 통치에 맞서는 공동의 운동을 강화하고, 모든 미얀마인을 위한 정의롭고 대표성 있는 미래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2026년 1월 20일 발생한 난민캠프 화재로 500가구의 로힝야족 가구가 모든 것을 잃었다. 사진: 누르 사데크
2026년 1월 20일 발생한 난민캠프 화재로 500가구의 로힝야족 가구가 모든 것을 잃었다. 사진: 누르 사데크

데니스 | 캠프에서의 삶은 어떤가? 특히 식량 안보와 보건의료 측면에서 현재 난민캠프의 인도적 상황이 어떤가? 국제 원조 삭감이 이에 영향을 미쳤나? 또 캠프 내에서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로힝야 사람들이 직면한 내부적 어려움은 무엇인가?

누르 | 난민 캠프에서의 삶은 거의 모든 일상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끝없는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극도로 어렵다. 로힝야 난민들에게 매일은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연속이다.

현재 난민 캠프의 인도주의적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식량 사정이 극도로 취약하여, 가족들은 전적으로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이 제공하는 배급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배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때때로 세계식량계획의 재정 부족 때문에 식량 지원이 크게 축소되기도 했는데, 한때는 1인당 월 7달러 수준까지 떨어졌고 현재도 겨우 10달러에 불과하다. 이 금액은 기본적인 영양 요구를 충족하기에도 부족하다. 다른 식량 공급원이 거의 없고, 캠프 내에서 생계 수단도 제한되어 있어 대부분의 가정은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이 일을 구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보건의료 서비스 또한 매우 열악하다. 캠프 전역에 여러 의료 시설이 존재하긴 하지만, 장비가 부족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취약한 로힝야 난민들은 대개 캠프 밖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쿠투팔롱의 알리프 병원과 팔롱 병원, 콕스바자르의 차토르 병원과 같은 민간 병원을 이용해야 하며, 이는 비용과 접근성 측면에서 큰 부담이 된다. 캠프 내에서 치료를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 낮은 파라세타몰 같은 기본적인 약만 처방받는 경우가 많고, 적절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 데 대해 많은 이가 불만을 표하고 있다.

튀르키예협력조정청(Turkish Cooperation and Coordination Agency), 국경없는의사회(Médecins Sans Frontières) 같은 기관이 운영하는 병원들은 비교적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수용 능력이 제한적이다. 광범위한 의료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의료와 식량 문제를 감당하는 부담은 항상 난민들 자신에게 전가되며,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돌보기 위해 낮은 임금의 일용 노동을 하는 등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 원조 삭감은 식량 안보와 보건의료 모두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다. NGO와 국제 NGO들은 더 이상 난민 인구의 필수적인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깊은 슬픔과 절망, 그리고 한때 자신들이 알았던 삶을 상실했다는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어려움에 더해,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로힝야들은 심각한 내부 위협에 직면해 있다. 캠프 내에서 활동하는 무장 단체들은 정치적 권리 옹호와 공동체 조직 활동을 종종 위협으로 간주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 결과, 많은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청년들이 표적이 되거나 침묵을 강요받고, 위협 속에서 활동을 포기하도록 내몰리고 있다. 공포는 널리 퍼져 있으며, 정치적 표현의 공간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캠프 내부에서는 여전히 많은 무장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체로 로힝야를 위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교육받고 정치적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의 활동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인다. 방글라데시 당국은 주로 로힝야 인구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집단들과 사실상 협력하고 있으며, 충분한 지식과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무장 단체들은 대체로 당국의 지침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구성원들이 필요한 보호나 인정을 받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오히려 캠프 내 지도자 자리는 지식이나 성숙함이 부족한, 때로는 매우 어린 소년들에게까지 주어지며, 이들은 교육받은 인물들이나 종교적·공동체적 지도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경향은 더 깊은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캠프 내에서 권력을 쥔 이들은 평화적 정치 참여를 통해 공동체를 대표하고 봉사하려는 이들보다, 재정적·물질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나 집단과 항상 결탁하는 경향이 있다. 무장경찰대대(Armed Police Battalion), 경찰정보과(Directorate of Special Branch), 국가안보정보국(National Security Intelligence), 군 정보총국 같은 기관들은 이런 무장행위자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는 정치적 옹호자들을 더욱 주변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요컨대,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로힝야들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공동체를 위해 평화적이고 건설적으로 봉사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전도 지원도 인정도 받지 못한 채 활동하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억압되고 있으며, 그들의 노력은 폭력과 공포에 의해 가려지고 있다.

발루칼리 난민 캠프의 해질녘 풍경. 사진: 누르 사데크
발루칼리 난민 캠프의 해질녘 풍경. 사진: 누르 사데크

데니스 | 당신에게 ‘존엄한 귀환’(return with dignity)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어떠한 구체적인 보장들이 갖춰져야만 귀환이 고려될 수 있다고 보나?

누르 | 어느 로힝야 난민의 말에 따르면 “존엄한 귀환”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마지막 희망이자 궁극적 지향을 의미하며, 고향에서 삶과 정체성, 그리고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꿈이다. 이러한 귀환은 성급하거나 상징적인 것이어서는 안 되며, 우리의 권리와 안전이 완전히 회복되도록 하는 구체적이고 집행 가능한 장치에 기반해야 한다.

어떠한 귀환도 존엄한 것으로 인정받으려면,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의 기본적 권리를 완전히 인정하고 보장해야 한다. 여기에는 완전한 시민권의 무조건적 회복, 전국에 걸친 이동의 자유, 그리고 차별이나 제한 없이 교육, 경제 활동, 사회생활, 정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귀환은 매우 중요하다. 콕스바자르의 난민캠프에서 보내는 삶이 이제 8년에 가까워지면서 극도로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매일이 불안정, 결핍, 무국적 상태로 얼룩진 생존의 투쟁이다. 장기화된 강제 이주는 우리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잠식해 왔다.

진정으로 존엄하고 지속 가능한 귀환이 이뤄지려면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 인도주의 단체, 그리고 관련 정부 등 국제적 이해당사자들이 그 과정을 지원하고 감시해야 한다.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책임성, 투명성, 그리고 인권 존중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그 과정이 진행되도록 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런 핵심적 조건을 확고하게 갖춰지고, 안전과 정의, 평등이 보장될 때에만 로힝야 사람들은 신뢰와 존엄을 지닌 상태로 미얀마로 돌아가 평화와 자유 속에서 삶을 재건할 수 있다.

데니스 | 압도적인 역경 속에서도 당신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로힝야뿐만 아니라 미얀마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누르 | 압도적인 역경 속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보여주는 놀라운 회복력과 강인함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겪고 있는 고통과 강제 이주, 그리고 불의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추구하려는 우리의 집단적 용기와 연대, 결의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의 옹호 활동이든, 풀뿌리 조직화이든, 혹은 공동체의 저항이든, 이러한 연대의 행위들은 우리의 희망을 새롭게 하고, 로힝야뿐만 아니라 미얀마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계속 싸워 나가도록 우리를 고무한다.

나에게 정의란 다층적인 것이며, 포괄적이고 변혁적이어야 하고, 책임성·인간의 존엄·평등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로힝야를 비롯한 미얀마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의는 다음을 포함해야 한다.

  • 1. 잔혹 행위에 대한 책임 추궁: 로힝야를 포함한 모든 민족 및 종교 집단을 상대로 자행된 인권 침해에 책임이 있는 모든 가해자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법적 절차를 통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 2. 권리의 인정: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를 포함한 모든 공동체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는 완전한 시민권의 회복, 교육과 의료에 대한 접근 보장, 이동의 자유 보장, 그리고 차별로부터의 보호가 포함된다.
  • 3. 민족 및 종교 간 조화: 정부는 미얀마의 다양한 민족 및 종교 공동체들 사이에서 대화와 상호 이해를 적극적으로 촉진하고, 화해와 장기적인 사회적 결속을 증진해야 한다.
  • 4. 포용적 민주적 거버넌스: 미얀마의 모든 사람을 대표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며, 정의·자유·평등의 원칙을 수호하는 진정으로 민주적이고 포용적인 정치 체제가 확립되어야 한다.
  • 5.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지원: 정의는 폭력, 차별, 강제 이주로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배상을 포함해야 한다.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편향 없는 지원을 제공하고, 그들이 존엄과 안전 속에서 삶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미얀마에서의 정의는 선택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고통을 겪어 온 모든 공동체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누구도 자신의 정체성, 종교, 또는 민족을 이유로 억압받지 않는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한 정의의 비전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제적 지지가 바로 변화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지탱하는 힘이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에서 발생한 화재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에서 발생한 화재

데니스 | 로힝야 난민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 미얀마 군정 지원과 우크라이나 침공 모두에서 드러난 러시아의 역할이 국제 권력 역학에 대한 당신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나?

누르 | 교육과 소셜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는 로힝야 사람 다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폐허가 된 도시와 여러 지역의 모습, 피난을 강요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점령에 맞서 용감하게 저항하는 한 나라의 모습을 보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국제적 대응에서의 이중 기준이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데는 신속하고 단호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미얀마 군정에는 대응이 느리고 미약했으며, 때로는 완전히 침묵했다.

우리를 억압하고 박해해 온 군부에 대한 러시아의 노골적인 지원은 국제 정치의 어두운 현실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의 고통이 덜 중요한 것처럼 여기게 하고, 우리를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느끼게 한다. 또한 이는 국제 권력이 때로는 정의의 원칙이 아니라 이해관계와 동맹을 통해 작동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렇다, 국제 권력 역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단지 분쟁뿐만 아니라, 세계가 누구의 고통을 인정하고 누구를 외면할지를 선택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데니스 | 독자들이 현재 벌어지는 로힝야 투쟁의 어떤 점을 가장 이해해 주길 바라나?

누르 | 우리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희망과 꿈을 갖고 태어난 인간이다. 우리의 투쟁은 과거 우리가 겪은 집단학살에만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려는 미래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교육을 받을 권리, 이동의 자유, 시민권, 그리고 존엄하게 살아갈 기회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무국적 상태로 태어나 자랐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미래가 불확실하고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 자체가 투쟁인 난민캠프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 배우고,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목소리를 낸다.

그러니 우리를 단지 숫자나 뉴스의 헤드라인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 우리를 학생, 교사, 부모, 예술가, 그리고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로 바라봐 달라. 우리는 동정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굳건한 연대다.

데니스 | 로힝야가 겪는 민족적 박해에 맞선 투쟁과 우크라이나의 외세 점령에 대한 저항 사이에 의미 있는 유사성이 있다고 보나? 또 두 집단 사이에 상호 연대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누르 | 그렇다, 분명하다. 로힝야와 우크라이나 사람들 모두 자신들을 지워버리려는 세력에 맞서 생존과 정체성, 그리고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탱크와 미사일에 맞서 저항하고 있고, 무국적 상태, 체계적인 아파르트헤이트, 그리고 강제적 망명을 통해 이루어지는 존재 말살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맥락은 서로 다르지만, 우리의 고향과 권리, 그리고 사람들을 잃는 고통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모두가 깊이 공유하는 고통이다. 고통은 고통을 알아보기 때문에, 그 속에는 깊은 연대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두 공동체는 서로의 용기와 회복력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잇는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면, 어쩌면 세계는 어떤 생명이 더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선별하기를 멈추고, 모든 인권을 동등하게 수호하기 시작할 것이다.

데니스 | 국제적 연대 운동이 로힝야 문제에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나?

누르 | 그렇다, 전적으로 그렇다. 국제적 연대 운동은 중요하며, 로힝야 문제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오늘날 로힝야 집단학살 생존자들이 조금이나마 생존과 정의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비록 제한적이지만 국제사회의 일부가 나서 주었기 때문이다. 로힝야 사람들은 국내 및 지역 행위자들보다도 국제적 관심과 지원에 훨씬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

지속적인 국제적 연대가 없다면 로힝야 위기는 잊혀질 위험에 처해 있다. 세계가 등을 돌린다면 우리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고, 정의는 여전히 요원한 상태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인도적 지원, 공개적인 규탄, 일부 외교적 압박과 같은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진전은 여전히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 또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중국과 같은 영향력 있는 국가들의 의미 있는 개입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중국은 미얀마의 국내 정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핵심 지역을 통제하고 있는 미얀마 군부와 아라칸군 모두에 대한 지원을 통해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얀마의 무장 세력과 정치 세력 모두가 중국의 이해관계에 깊이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로힝야 위기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려면 중국의 참여나 승인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국제적 연대 운동이 진정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중국, 태국, 일본과 같은 영향력 있는 지역 국가들의 전략적 관여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들 국가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얀마 내부의 관련 행위자들에게 해결을 향한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국제적 연대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 효과는 보다 포괄적인 접근에 달려 있다. 즉,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과 인권 기구들뿐만 아니라 실제 영향력을 가진 지역 강대국들도 함께 참여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로힝야 사람들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이 오랜 위기에 대한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인터뷰이: 누르 사데크(Noor Sadeque)

인터뷰어: 데니스 필라쉬(Denys Pilash)

번역: 김경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