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 전체회의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3월 26일 열린 전체회의 안건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목표와 방향, 사업계획이 담겨 있었고, 사업 예산의 상당 부분은 오픈소사이어티재단(OSF) 기금을 신청해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출되었고, 참가자들은 연대체 차제연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였다. 아쉽게도 시간상의 한계로 다양한 의견들을 듣는 것에서 회의를 종료해야 했고, 향후 더 많은 단체들의 의견을 청취한 후 4월 9일 다시 전체회의를 열기로 했다. 플랫폼C 역시 이날 회의에 참여해 집행위가 제출된 사업목표와 계획에 지지를 표명하고, 이 계획을 실현 하기 위한 재원 마련은 OSF 기금보다는 후원행사 기획 등의 다른 방안을 모색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OSF 기금에 대한 플랫폼C의 비판적 견해는 "금융투기 자본의 사회운동 후원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차제연 전체회의가 떠안게 된 무게와 관심은 차별금지법제정운동에 함께 하고 싶은 기대와 의지를 반영하기도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지금껏 만들어온 길이 구조적 차별에 저항하며 아래로부터 평등의 힘을 조직해온 길이었음을 기억하고 또한 앞으로도 그 길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들일 것이다. 우리 역시 그러한 무게를 인식하며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치열하게, 신중하게 모색할 것이다. 기금 신청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금신청논의뿐 아니라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전망을 더 확장시키길 원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이하 ‘전진’)이 두 차례에 걸쳐 조직한 연서명은 차제연 전체회의에 제출된 사업계획이 OSF 기금 신청과 결부되었다는 점만 부각시키며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방향과 전략에 대한 논의를 오히려 어렵게 만들었다. 이는 기금 신청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입장과 별개로 차별금지법제정운동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고 있다.
‘전진’은 ‘국제 투기금융자본의 후원’과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대비시키며 차제연이 기금 신청을 검토한 것이 그 자체로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져버린 것처럼 비난하고 있다. 1차 연서명에서도 차제연이 “조지 소로스의 손에 묻힌 피를 닦아낼 도구”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사용”하려는 것처럼 규정하였고, 2차 연서명에서도 마치 차제연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차별에 맞선 노동자 민중 투쟁의 확대”라는 점을 무시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OSF기금 수령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비판을 갖고 있는 것과 운동 내 논의 과정 자체를 도매금으로 매도하며 연대 운동의 기풍을 망가뜨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는 차별금지법제정운동으로 ‘노동자민중 투쟁’의 지평을 넓혀온 차제연에 대한 무지이거나 의도적 왜곡이며, 운동을 넓게 하는 것에도, 급진화하는 것에도 무용하다.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은 바로 그 ‘노동자 민중’의 얼굴에 성소수자와 청소년을, 여성과 장애인을, 이주민과 불안정노동자를 새기며 구조적 차별에 맞서 왔다. 가부장제와 인종주의, 이성애주의에 맞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분투한 수많은 운동들의 역사가 차별금지법제정운동으로 모여왔다. 그 역사는 이번 기금 추진 논의만으로 격하되거나 지워질 수 없다. 공동의 토론을 통해 결정되어야 할 기금 논의를 정치적으로 단순화하여 ‘노동자 민중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 ‘전진’이 만드는 효과임을 직시해야 한다.
차제연에 속한 173개의 단체는 저마다의 경험과 맥락에서 논의에 참여한다. 누군가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기금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오픈소사이어티기금 신청이 고려된 것만으로도 문제라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은 의견과 입장의 차이를 삭제하지 않고, 더 나은 결정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모두의 과제이다.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만들어온 길에 더욱 많은 이들이 합류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열기 위해서라도 차제연의 논의를 OSF 기금 논의로 단순화시키는 일을 멈춰야 한다.
최근 들어 운동 내부에서 차이를 좁혀야 할 쟁점들에 대해서 우호적인 토론과 공동의 실천을 통해 풀어나가기보다, 위와 같은 방식의 전술이 반복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충분한 토론을 거치기보다 자극적인 언어와 공개적 압박을 통해 입장을 선점하고 흐름을 밀어붙이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목소리를 크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운동 내부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다양한 조건과 경험을 가진 단체들이 함께 구성하는 연대체에서는, 의견의 차이를 ‘설득’과 ‘토론’이 아니라 ‘압박’과 ‘동원’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이 반복될수록, 서로를 동료가 아닌 잠재적 반대자로 인식하게 만드는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 이는 결국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 연대의 기반 자체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차이를 드러내고 토론하는 과정은 때로 시간이 걸리고 번거롭지만, 그 과정을 생략한 채 갈등을 단순화하거나 서둘러 결론을 압박하는 방식은 결코 더 나은 결정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논쟁을 왜곡하고, 남겨진 불신을 더 크게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과 같은 방식은 분명히 재고되어야 하며, 운동 내부의 민주적 토론 구조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방식이라고 하기 어렵다.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도 평등을 향한 공동 투쟁과 연대의 길을 만들어왔다. 윤석열을 파면시키기 위해 모인 광장에서 모두가 차별금지법을 간절히 외치게 된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누구도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약속이 정치의 실패를 뚫고 열어낸 길이다. 차별금지법을 평등과 연대의 신호로 삼아 자신의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이들이 열었던 광장을 함께 이어가자. 차별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서로를 지키고 기대며 만들어온 길을 이어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로 함께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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