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7년, 제도 공백을 처벌로 메우려는 국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7년, 제도 공백을 처벌로 메우려는 국가

4월 11일 탑골공원에서 진행되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7주년 집회에서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보장의 책임을 방기한 보건복지부를 규탄하고, 정부에 국정과제 이행을 촉구하자!

2026년 4월 10일

[읽을거리]페미니즘페미니즘, 임신중지권, 국가폭력, 헌법재판소

지난 3월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 재판부는 후기 임신중지로 인해 살인죄로 기소된 권ㅇㅇ 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과 2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사회적·경제적 조건을 개선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면, 충분히 다른 결과에 이르렀을 것”이라 인정하면서도, 권씨가 사산 조치 여부 등을 자세히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필적 고의가 있는 공동정범’이라 판단했다.

이 사건은 2024년 6월, 권씨가 임신 36주 차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게 된 과정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브이로그 영상으로 여론이 들끓자 보건복지부는 수사 의뢰를 단행했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대체 입법이 마련되지 않아 임신중지 자체는 처벌할 수 없게 되었지만, 경찰과 검찰은 ‘태아가 세상 밖으로 나온 뒤 숨졌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낙태죄’ 효력이 상실된 지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법정은 여성을 처벌하는 정의롭지 못한 풍경을 반복하고 있었다. 임신중지가 절실한 이에게 국가가 제공해야 할 것은 처벌이 아닌 안전망과 의료 지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다. 보건복지부가 직접 수사 의뢰에 나섰다는 사실은 국가가 여성의 안전과 건강의 권리를 지원하는 주체가 아닌 감시와 통제, 처벌의 주체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재판을 방청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판결문 곳곳에서 ‘국가의 책임’을 언급하면서도, 정작 결론은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로 귀결된다는 모순이었다. “엄히 처벌해도 마땅한 범죄”라는 전제와 “위기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구조적, 법적 보호 장치가 아직 부족하다”는 인정이 한 문장 안에 동시에 놓여 있었다. 임신과 출산, 양육을 둘러싼 조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조건을 바꾸기보다 개인의 선택을 문제 삼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임신과 출산, 돌봄 등 재생산을 둘러싼 부담이 얼마나 성별화되어 여성 개인에게만 전가되고 있는지도 다시 체감할 수 있었다. 임신은 여성 혼자 가능하지 않지만, 그 재판 자리에 함께 임신을 도모한 남성은 호명되지도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재판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의 공백이 어떤 위태로운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7년 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임신중지의 권리를 확인했음에도 제도적 논의는 멈췄고, 임상지침이나 유산유도제 도입 같은 행정적 조치 역시 지연되었다. 이 공백 속에서 개인은 여전히 안전한 의료 접근 대신 불확실한 정보와 위험한 경로 사이를 오가야 한다. 병원의 시술 거부, 시술 가능 지역으로의 원정, 인터넷 커뮤니티에 의존한 정보 탐색, 그리고 이러한 불안의 틈을 파고들어 이윤을 착취하는 브로커 문제까지.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그 결과로 발생한 위험과 부담은 오로지 여성 개인에게 전가된다.

그런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선택이 다시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장면은 개인의 비극이 아닌 명백한 구조적 폭력이다. 방청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낯설지 않게 반복되는 구조적 폭력이 참담했다.

지금 세계의 극우 세력들은 가부장적 질서를 복원하려 하며 재생산권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향한 변화를 외치며 윤석열 퇴진 광장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현재 이재명 정부도 제도 마련을 미루며 성차별적 관행을 답습하고 있다. 국가의 여성 처벌은 임신을 함께한 남성의 책임은 지우고, 여성의 취약한 위치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구조를 묵인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모든 돌봄과 책임의 무게를 여성에게 떠넘기고, 이를 거부하면 도덕적 결함이라는 낙인을 찍어 처벌로 해결하려 한다.

임신중지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사회는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사회다. 정부가 임신중지 권리 요구를 외면할수록 삶의 조건은 더욱 취약해질 뿐이다. 여성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만 비로소 출산 또한 선택 가능한 권리가 된다. 임신중지는 안전한 재생산권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권리다. 다가오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7주년, 우리는 재판정에서 확인한 이 질문들을 들고 거리로 나갈 것이다.

4월 11일(토) 오후 4시 탑골공원에서 진행되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7주년 집회에서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보장의 책임을 방기한 보건복지부를 규탄하고, 정부에 국정과제 이행을 촉구하자!

글 : 최세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