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세계 여성의날 | 거리에서 다시 확인한 것들

2026 세계 여성의날 | 거리에서 다시 확인한 것들

성평등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의 조건이 바뀌고, 돌봄의 구조가 바뀌고, 정치의 방식이 바뀌는 실제의 변화 속에서만 만들어진다.

2026년 3월 8일

[읽을거리]페미니즘여성노동자, 페미니즘, 민주노총, 노동운동

올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둔 서울의 거리에는 두 개의 집회가 이어졌다. 하나는 3월 6일 민주노총이 개최한 세계 여성의 날 전국노동자대회, 또 하나는 여성단체들이 이어온 제41회 한국여성대회였다. 서로 다른 주체가 준비한 집회였지만, 그 현장에서 반복해서 확인된 질문은 비슷했다. 여성의 날이 여전히 거리에서 기념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날’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해마다 3월이 되면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그러나 거리에서 열리는 집회는 단순한 기념행사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다. 그것은 과거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두 집회가 보여준 장면들 속에 있었다.

여성의 날은 여전히 ‘노동의 문제’

3월 6일 오후, 매서운 바람이 부는 서울역 앞에 노동자들이 모였다. 민주노총이 주최한 3·8 세계 여성의 날 전국노동자대회였다. 약 3천 명의 노동자들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차별금지법 제정”, “성평등 임금공시제 도입”을 외치며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행진은 서울역에서 시작해 광화문 동십자각까지 이어졌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행진 대열에는 다양한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공공서비스 노동자, 유통 노동자, 상담 노동자, 제조업 노동자 등 서로 다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같은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각자의 일터는 다르지만, 여성 노동이 겪는 구조적 불평등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날 집회에서 반복해서 강조된 것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성별 임금격차였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같은 일을 해도 성별에 따라 임금이 다르고, 여성들이 다수인 돌봄·보건의료 노동이 구조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다”며, 여성노동의 현실을 지적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노동시장의 일부 불평등이 아니다.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성별 임금격차라는 사실이 말해주듯, 한국 사회에서 여성 노동은 오랫동안 저임금과 불안정한 구조 속에 배치되어 왔다.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직종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묶여 있다는 사실은 개인의 선택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현장 발언에서도 그 현실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여성긴급전화 1366 상담노동자는 “365일 반복되는 3교대 노동 속에서도 연속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담노동자들은 젠더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노동권과 건강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발언에서는 홈플러스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이 언급됐다. 노동자의 80%가 여성인 유통 현장에서 돌아온 것은 감사가 아니라 임금 삭감과 고용불안이었다.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 역시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경력단절 여성들이 다수인 이 일터에서 여성 노동은 ‘저숙련’ 노동으로 취급되며 쉽게 대체 가능한 노동으로 취급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이상의 발언들은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을 드러낸다. 여성의 날이 단순히 ‘여성의 권리’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여성 노동의 조건을 바꾸기 위한 투쟁의 날이라는 사실이다. 여성의 날이 노동 현장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여성운동의 역사 속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여성의날 맞이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플랫폼c 회원들
여성의날 맞이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플랫폼c 회원들

“빵과 장미”라는 오래된 구호

3·8 세계 여성의 날의 역사는 노동운동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장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시위가 그 상징적 출발로 알려져 있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존엄과 삶의 질을 의미했다. 이 구호는 여성 노동자들이 단지 생존을 위한 임금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던 역사를 상징한다.

올해 민주노총 노동자대회에서도 이 구호는 다시 등장했다. 투쟁 선언문은 “여성의 날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지키는 투쟁의 날”이라고 강조하며 성별임금격차 해소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성평등 임금공시제와 ILO 190호 협약 비준이 중요한 요구로 제기됐다. 성평등 임금공시제는 기업과 공공기관이 성별 임금격차를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다. 임금 구조가 공개되어야 차별을 드러내고 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ILO 190호 협약은 일터에서의 폭력과 괴롭힘을 금지하는 국제 협약으로, 특히 젠더 기반 폭력을 노동권 문제로 규정한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기술 변화와 차별 문제를 언급하는 발언도 있었다. 금융 대출이나 채용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여성에게 더 불리한 판단을 내리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해도 사회의 차별 구조가 그대로라면 새로운 기술 역시 그 차별을 학습하게 된다는 경고였다. 이 문제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구조적 차별이 새로운 기술 속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성평등의 문제는 기술 변화의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남아 있다.

이상의 요구들은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노동은 누구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는지 묻게 된다.

1917년 3월 8일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린 여성 노동자 행진
1917년 3월 8일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린 여성 노동자 행진

또 하나의 여성의 날 집회

3월 7일 광화문 서십자각 앞에서는 또 하나의 여성의 날 집회가 열렸다. 올해로 41회를 맞은 한국여성대회였다. 이 집회는 한국 여성운동이 오랫동안 이어온 가장 상징적인 3·8 기념 행사다. 올해 여성대회 역시 수천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광장에는 “차별금지법 제정”, “여성폭력 근절”,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지킨다”와 같은 구호들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장미꽃과 손피켓을 들고 광장을 채웠고, 공연과 발언, 퍼포먼스가 이어지며 여성의 날의 의미를 다시 확인했다.

광장의 분위기는 단순한 축제라기보다 서로의 경험을 확인하고 연대를 나누는 자리였다. 오랜 시간 여성운동을 이어 온 활동가들뿐 아니라, 청년 세대와 시민들도 함께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여성의 날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었다.

무대 발언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강화된 여성혐오와 온라인 폭력, 정치 영역에서의 여성 배제 문제 등이 언급됐다. 여성에 대한 공격이 단순한 문화 갈등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후퇴와 맞물려 있다는 문제의식도 여러 차례 강조됐다.

평등과 연대를 강조하는 발언과 서로를 격려하는 메시지도 이어졌다. 특히 성폭력 가해자에게 저항하다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오히려 처벌받았던 사건의 당사자인 최말자 씨의 발언이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그는 지난해 9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기까지 60여 년의 시간을 버텨 온 당사자다. 최 씨는 여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 온 활동가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그런 싸움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 말은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여성운동이 걸어온 시간과 앞으로의 길을 함께 떠올리게 했다.

광화문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41회 한국여성대회 (사진: 한겨레)
광화문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41회 한국여성대회 (사진: 한겨레)

이번 대회에서의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 장면 역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수상자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지난해 민주주의 위기 속에서 거리와 광장을 지켜 온 ‘광장의 여성들’이었다. 윤석열 탄핵 정국 속에서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을 때, 그 공간을 지탱하고 서로를 돌보며 연대를 만들어 온 여성들의 실천을 여성운동의 중요한 장면으로 평가한 것이다. 시상식에서는 시민들이 서로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도 이어졌다. 누군가를 대표로 세우기보다 함께 광장을 지켜 온 경험 자체를 기념하는 순간이었다.

여성 인권과 여성노동, 여성폭력, 정치 대표성, 돌봄과 사회 재생산, 차별금지법 등 다양한 의제들도 다뤄졌다. 노동의 문제에서 보든, 사회구조의 문제에서 보든, 지금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성평등이라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서 있다.

그런 점에서 이날 집회가 던진 메시지는 단순히 과거의 문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조건 속에서 성평등의 과제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컨대 여성노동자대회에서는 AI가 성차별을 학습하고 있다는 문제도 언급됐다. 금융 대출이나 채용 과정에서 여성에게 불리한 판단이 이루어지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해도 사회의 차별 구조가 그대로라면, 새로운 기술 역시 그 차별을 재생산하게 된다는 경고다.

여전히 문제는 정치다. 여성의 정치 대표성은 여전히 제한적이며, 주요 정당의 공천 구조 역시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모든 문제는 하나의 공통된 요구로 이어진다. 성평등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1970년 3월 8일 보스턴 시내에서 '빵과 장미' 단체가 주도한 여성의 날 행진이 열렸다. 이 행진은 낙태권과 직장 내 기회 평등을 요구했다. (사진: 돈 프레스턴)
1970년 3월 8일 보스턴 시내에서 '빵과 장미' 단체가 주도한 여성의 날 행진이 열렸다. 이 행진은 낙태권과 직장 내 기회 평등을 요구했다. (사진: 돈 프레스턴)

여성의 날이 남긴 것

여성노동에 대한 저평가, 돌봄의 사회적 책임, 차별금지법 제정, 젠더폭력 문제, 정치 대표성 확대까지. 여성의 날이 제기하는 의제는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노동,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평등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국제 정세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과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구호가 이어졌고, 전쟁과 군사적 폭력이 여성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삶의 부담을 전가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특히 전쟁과 점령의 상황에서 여성들이 단지 피해자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저항과 생존의 주체로 싸워 왔다는 점이 강조됐다.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과 중동 지역 여성들의 목소리에 연대를 보내며, 여성의 날이 국경을 넘어 연결되는 투쟁의 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단지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확인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모여 서로를 확인하며 힘을 얻었다.

성평등은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노동의 조건이 바뀌고, 돌봄의 구조가 바뀌고, 정치의 방식이 바뀌는 실제의 변화 속에서만 보다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매년 3월, 거리로 나서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 거리는 1년 동안 지속되어온, 그리고 지속될 성평등을 향한 투쟁이 만나 서로를 격려하고 성장하는 자리다. 그리고 그 거리는 지금도 세상을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바꾸고 있다.

여성대회에 참가한 플랫폼c 회원들
여성대회에 참가한 플랫폼c 회원들

글: 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