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동덕 ─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 대학 ①

민주동덕 ─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 대학 ①

대학의 기업화와 사학비리에 맞선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은 성별 갈라치기로 납작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정당한 학내민주화 투쟁이다.

2026년 3월 12일

[읽을거리]대학교육, 동덕여대, 민주주의, 대학, 페미니즘, 학생운동

이 글은 《2026년 체제전환운동포럼 - 되돌아가지 않고, 새롭게》의 6개의 자유세션 중 대학운동을 다룬 <그럼에도 나의 현장, 대학에서 운동하기!>세션에서의 발제문을 옮긴 글이다. 사회는 대학을 줄세우고, 기업은 스펙에 따라 학생을 줄세우며, 정부는 취업률에 딸 대학을 줄세워 지원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입시지옥과 취업지옥 사이의 공간에서 민주적 대학 운영을 외치고, 학내 노동자와 연대하며, 페미니즘과 소주자 인권의 문제를 일상에서 실천하며 대학의 공공성을 설득해나가는 학생사회의 운동이 있다. 기업화된 대학과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한 학생사회를 바꾸기 위한 움직임들을 소개한다.

학교당국의 탄압과 학생사회 위축, 그럼에도 꺾일 수 없었던 의지

2024년 11월, 동덕여자대학교에 남학생이 입학해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재학생 몰래 동덕여대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려 했던 대학본부는 학생들의 면담 요청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이에 학생들은 본관을 비롯한 모든 건물을 점거했으며 대학본부를 상대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동덕여대 투쟁 역사 소개에 앞서, 주요 투쟁단위는 다음과 같다.

  • 제57대(2024) 총학생회 ‘나란’ | 무단 공학전환 사태 발생 전후로 학교측과 수차례 면담을 진행하며 학생들의 의사 전달에 힘썼다. 2025년에는 비상대책위원회 형태로 학교와 소통했으며, 2026년인 현재는 제59대 총학생회 ‘위드’가 취임했다.
  • 중앙동아리의 자체적 연합체 ‘민주없는 민주동덕’ | 동덕여대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SIREN(사이렌)’을 필두로 몇 개의 중앙동아리가 뭉쳐 교외 대규모 시위를 주최했다. (동덕여대 1,2,5차 외부집회 개최.)
  • 재학생들의 결의 ‘동덕여대 재학생연합’ | 2024년 11월 말, 학교측의 고소로 인해 총학생회의 움직임에 크나큰 제약이 걸렸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학생 여럿이 학교측에 저항하기 위해 엽합을 결성했다. 교내 시위를 주도했고, 교내 상황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힘썼다. 교외 대규모 시위 역시 주최했다. (동덕여대 3,4차 외부집회 개최. 안국역 동덕빌딩 앞 ‘민주동덕에 봄은오는가’ 집회.)
동덕여대 재학생 연합의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2차 집회
동덕여대 재학생 연합의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2차 집회

‘여학생들의 생떼’가 아닌 ‘학생들의 정당한 목소리’

동덕여대 재단 설립자는 친일파 조동식이며 현 이사장은 조동식의 후손 조원영이다. 이사진 중에는 조원영의 아내가 있고 그 아들은 총무처장 직위에, 딸은 수익사업체 ‘동덕아트갤러리’와 ‘카페 꽃이피움’의 요직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비리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2003년 총장이었던 조원영은 78억을 횡령했다. 학생들은 100여일 동안의 총장실 점거와 50여일의 수업거부를 했고 총학생회장은 단식 및 삭발 투쟁까지 했다. 그렇게 쫓아낸 조원영은 2015년 재단 이사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듬해 18억 원짜리 주택을 ‘교육용 시설’이라는 명목으로 매입했으나, 조씨 일가의 ‘사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매입된 건물이었기에 정작 학생들에겐 존재가 알려지지도 않은 ‘교육용 시설’이었다.

2016년부터는 꾸준히 학과 통폐합의 시도가 있어왔다. 당시 학생들은 교수를 통해 학교측 움직임을 알게 되었고 이에 반대하며 시위와 본관점거를 진행했다. 그 결과 통폐합은 중단되었으나, 2021년에 다시 통폐합이 강행되었다. 이어 2022년에도 통폐합이 시도되었다. 총학생회는 비상집회 개최, 연대서명 모집 등으로 대응했고 학교측은 통폐합 될 일 없다며 학생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해당 학과들은 2024년 3월 통폐합되었다. 위 같은 졸속행정, 학생의견 무시의 문제는 학교 운영에 있어 전반적으로 이어져왔다.

2018년 10월에는 한 남성이 교내에 들어와 전라로 자위하고 체액을 시설물에 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교측은 이 사안에 있어 미온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그 결과 범인은 사건 발생일로부터 약 열흘 뒤에 검거됐다. 2023년에는 안전 시설 미확보로 인해 교내에서 학생이 등교 중에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학생들은 꾸준히 위험요소를 학측에 알렸지만 학측은 이를 무시해왔다.

이러한 대학본부의 과거 행동들이 쌓여 학생들에게 큰 불신을 심어줬고, 남학생이 입학해있다는 사실이 교수를 통해 발각되면서 학생들의 분노가 터져버린 것이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무단 공학전환 반대 투쟁은 학교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자가 싫은 여자애들의 생떼’가 아닌, ‘학교측의 반민주적 횡포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었다. 대학본부의 문제적인 대처방식은 2024년에도 일관되게 관측할 수 있었다.

2023년 동덕여대 학생 추모 집회
2023년 동덕여대 학생 추모 집회

동덕여대 2024-2025년 투쟁 흐름 정리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무단 공학전환 반대 투쟁은 2024년 11월 7일부터 시작됐다. 본교에 남학생이 입학해있다는 사실이 학생들 사이에 알려졌고, 총학생회가 학교측에 면담을 요구했다. ‘공학전환 반대 및 철회 요구 연대서명’을 진행하고, 각종 학내 단위가 릴레이로 대자보를 부착하기 시작했으며 과잠시위, 화환시위, 졸업장 반납시위까지 진행했다. 11월 11일, 예정되어있던 면담에 학교측 인원이 무단으로 불참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분노한 재학생 개개인이 교내 건물 점거에 돌입했다. 자연스럽게 수업거부의 움직임 역시 퍼져나갔다. 11월 15일에는 학교 홈페이지에 ‘동덕여자대학교 학내사태로 인한 피해금액 현황(추정액)’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학교측은 피해복구액을 24억에서 54억으로 추산했다고 밝혔는데 이것이 반박된 지는 오래됐다. 그러나 해당 금액은 학생들에게 여전히 ‘폭도’라는 말과 함께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었다.

11월 20일에는 1,973명이 모여 학생총회를 개회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공학전환 반대’, ‘총장직선제 시행’이라는 안건을 통과시켰으나 학교측은 이 결과를 무시하고 어떠한 응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이후로 몇 차례의 면담이 진행됐으나 학교측은 한결같이 학생 대표자를 무시했다. 11월 28일에는 학교측이 신원을 파악한 학생을 대상으로 본관 출입, 현수막 게시 및 구호·노래 제창 등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고 11월 30일에 공동재물손괴, 공동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21명의 학생을 서울경찰청에 고소했다.

12월 3일, 비상계엄령이 선포됨에 따라 안전상의 문제로 학생들은 11월 11일부터 지켜온 본관을 비웠다. 대학본부는 이를 놓치지 않고 본관을 탈환해 서류를 빼돌리고, 인력을 고용해 학생들의 본관 출입을 통제했다. 이튿날 ‘2024년 12월 31일까지 본관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총장령’이 내려왔다. 이후 12월 19일, 2024총학‘나란’과 학교측의 마지막 면담(5차)이 진행되었고 이 면담에서 학교측은 ‘공학전환공론화위원회’ 추진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형식상으로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학교측의 음흉한 속내에 지나지 않았다. 해당 면담에서 학교측은 고소 취하 의사는 없다고 못 박고, 본관에 놓인 학생 짐 수거에 관해서도 인권침해적인 조건을 내걸며 수거를 방해했다.

12월 23일에는 교내 집회를 하려면 사전에 허가를 받고, 대자보 역시 승인을 받고 붙이라는 내용의 공지가 올라왔다. 이로 그치지 않고 대학본부는 1월 6일부터 9일까지를 ‘환경미화 주간’으로 설정했다고 공표했다. 사실상 대자보를 강제 철거하겠다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재학생연합은 그 기간 내내 시위를 열었다. 영하의 기온이고 방중이었음에도 수십 명의 학생이 모여 교내를 행진하고 소리 높여 구호를 외쳤다. 마지막 날에는 본관 앞에서 약 4시간동안 연대발언문을 낭독했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15일부터 본격적으로 대자보를 철거해나갔다. 수십 명의 교직원과 외부 용역을 동원해 교내 대자보를 제거하고 학생에게 폭력과 폭언을 가했다. 그러한 행위들은 이후로도 며칠 동안 지속됐고 이사장은 대자보가 불법이라는 발언까지 내뱉었다. 학생들은 항의행동으로써 각지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고, 12월부터 5월까지, 4월을 제외하고 각 달마다 1회씩 외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 기간 동안 학교측은 꾸준하게 학생들에게 부당하게 징계위원회 출석 통지서를 발송하고 학생들의 활동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는 협박까지 했다.

사태가 터진 이후 수업거부 및 F학점 인증의 물결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면, 새학기가 시작되기 이전에는 동맹휴학의 물결이 일어났다. 에타에서 2025년 1월 31일까지 수요조사한 결과, 2025년 휴학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만 최소 155명이었다. 2월 13일에는 ‘국제대학 신설 관련 설명회’라는 명칭으로 공학전환과 관련하여 신기현 처장과 학생들 간 온라인 소통회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소통회는 부실한 내용으로 이뤄졌고 학생들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줬다. 한편 학교측이 202년 11월에 학생에게 걸었던 가처분 신청은 법원에 기각되었다. 그럼에도 학생대상 고소를 취하하지 않았기에 2월 20일, 비대위에서 ‘학생 향한 보복성 법적대응 중단을 촉구하는 학내 연서명’을 모집했다.

3월 19일에는 해당 투쟁사안과 관련하여 두 번째 학생총회를 개최했다. 정족수를 윗도는 913명이 모였고, 참관하러 온 휴학생까지 합하면 당일 모인 동덕여대생은 1,000명이 넘었을 것이다. 전년 11월에 성사시켰던 학생총회의 안건 2개와 더불어 학생에 대한 괴롭히기식 법적 대응을 중단하라는 안건이 추가되었고 세 안건 모두 가결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학교측의 응답은 없었다. 재학생연합은 학측의 서면 입장문 게시 촉구, 비민주적인 학교측-학생 의견협의체 구조 규탄을 하며 교문 앞에서 수차례의 시위를 열었다. 5월 14일에는 학교측의 형사고소 입장이 발표되었으나, 경찰은 수사를 계속해 학생 22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비대위는 위 사안과 관련해 탄원서를 모집했고, 20,058명의 연서명과 수 십장의 자필탄원서가 모였다. 6월 20일부터는 재학생연합이 제안한 ‘사립대학 민주주의 회복과 학생 탄압 근절을 위한 총장직선제 도입에 관한 청원’이 공개되어 한 달간 17,903명의 동의를 얻으며 마무리되었다.

6월 24일에는 ‘공학전환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위’)가 첫 회의를 진행하며 발족되었다. 7월 14일부터는 약 2주간 ‘공학전환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설문조사)가 실시되었다. 7~8월 동안은 숙의과정 참여단(숙의기구)의 토론이 이어졌고, 9월 22, 24일 이틀에 걸쳐 총 4회의 타운 홀 미팅이 실시되었다. 해당 미팅은 선발된 소수의 숙의기구 참여단 외 인원까지도 참여할 수 있는 공개적인 자리였으나, 형식적으로만 민주주의를 표방한 행사였다. 10월 14일부터는 2차 설문조사가 실시되었다. 이후 공론위는 학교에 제출할 최종권고안을 논의했고, 11월 27일 제58대중앙운영위원회에서 학생총투표 진행 예정임을 공표했다. 권고안의 최종 이행 여부는 총장이 결정하는 구조이기에 학생 의견을 한 번 더 전달해 최종 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해당 투표가 실시된 첫 날 12월 3일 오전, 권고안에 따라 2029년부터 공학으로 전환하겠다는 총장 입장문이 게시됐다. 권고안이 도출된 과정은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학생총투표의 결과도 나오지 않았으며 권고안이 제출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수용하겠다는 입장문이 올라온 것은 해당 사안에 관한 숙고가 없었음의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학생총투표 결과, 2,975명의 공학전환 반대 표를 확인할 수 있었다. 12월 9일, 해당 결과를 전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총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12월 15일에는 동덕여대 발전계획 설명회가 열렸는데, 해당 자리는 공학전환만을 염두에 둔 발전계획들이 발표되었고 그 내용들은 비약이 크거나 현실성이 적은 것들이 태반을 이루었다. 12월 4일에는 총장 김명애가 교비 횡령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대위는 동덕여대 학생을 대상으로 12월 21일까지 ‘김명애 총장 엄격수사 촉구 탄원운동’(최종 1150명 서명)을 진행하는 동시에 ‘공학전환 반대의견 전달행동’(최종 전달의견 153개)을 진행했다. 또한 학교측으로 총장직선제 실시에 관련한 법인과의 면담 자리 마련을 요청했으나 학교측은 법인과 해결하라며 거절했다.

12월 23일 대학본부는 학칙 개정안을 공고했는데 ‘남녀공학 전환을 위한 준비’라는 사유로 학칙 내 교육목적 항목에서 ‘창학정신과 교육이념’에서 ‘창학정신’을 삭제하고, ‘지성과 덕성을 갖춘 여성 전문인’에서 ‘여성’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2026년 1월 9일 총학은 ‘학칙 개정 관련 설문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 의견 수렴없이 학칙을 개정하고 발전계획을 추진하는 것은 민주성과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며, 설문조사에 응한 학생 615명 중 87.5%가 학칙 개정에 반대의사를 밝혔다고 알렸다.

많은 부분의 생략이 있지만 상기한 내용만으로도 동덕여대 대학본부의 일반적 태도와 끈질긴 학생자치 탄압이 충분히 전달이 됐을 것이다. 사태 초기에 언론에 의해 씌워진 성별 갈라치기 프레임 때문에, 학교측의 적극적인 탄압에 더불어 여성혐오 폭력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렇듯 동덕여대의 투쟁은 다사다난했다.


우리의 투쟁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

동덕여대 재학생연합은 집회신고를 하는 법도 몰랐던 학생들이 다수였다. 그러나 이제는 집회와 연대가 일상이 되었다. 탄핵광장에 나서며 수많은 투쟁 동지들을 만나고 그들의 투쟁 속에서 동덕여대 대학본부의 모습을 보았다. 세종호텔 해고자들의 투쟁에서는 사학재단에 의한 횡포를, 지혜복 교사의 투쟁에서는 관료화된 교육기관의 부정들을, 그 외의 수많은 투쟁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싸우는 자들을 알아버린 이상,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 이상 외면할 수 없어졌고, 동시에 사학재단의 뿌리가 얼마나 썩어있는지도 알게 됐다.

동덕여대 대학본부는 기업에서 자행하는 노동자 탄압 방법과 다를 바 없는 행위들 역시 심심찮게 자행했다. 대학으로써 짊어져야 할 책임은 회피하고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동덕학원법인은, 대학이라는 공간을 반민주적인 공간으로 전락시켰고 대학이 어디까지 기업화 및 사유화 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건 비단 동덕학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학재단의 근본적 문제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논리를 내면화하거나 허무주의에 빠져 저항하지 못하는 학생, 학교 역시 다수 있다. 여기서 우리의 투쟁 과제가 제시된다.

첫째는 '기업화된 대학을 ‘대학’답게 돌려놓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이고 둘째는 '어떻게 더 많은 학생들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가'이다. 사학재단을 하루아침에 뜯어고치기는 쉽지 않다. 사학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정계와 연관되어 있고 그들만의 카르텔이 공고하게 구축돼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학교측에 의해 좌절을 겪어온 결과, 대학에 대한 학생들의 의식도 생애 주기 중 ‘거쳐가는’ 곳 정도로 전락했기 때문에 더더욱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대항할 수 있는 패를 하나씩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사립대학 내 총장직선제 의무화이다. 동덕여대 투쟁 사례들을 살펴보면 총장이 학생 의사와 반하게 일방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현재 총장이 이사장 임명제이기에 나타난 결과다. 총장직선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총장의 권력에 제동을 걸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는 패이며, 좌절에 빠진 학생들의 의식변화의 계기로는 충분할 패이기도 할 것이다.

학생들도 모르게 공학으로 전환될 뻔했던 것이, 2024-2025년 투쟁 덕에 2029년까지 시간이 벌어졌다. 이 시간 동안 학교측은 분명 교묘하게 공학전환 절차를 밟아갈 것이며 그 시작이 학칙 개정이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학교측을 막기 위해 3년의 시간 동안 더 열심히 투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는 수많은, 특히나 같은 대학단위에서의 연대가 필요하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은 대학본부와 이준석이 몰고 간 것처럼 성별갈라치기로 납작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학내민주화 투쟁이라는 것을 명시하며 마치고자 한다.

글 : 동덕여대 무단 공학전환에 저항하는 재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