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기 자본의 사회운동 후원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금융투기 자본의 사회운동 후원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리에겐 더 많은 인내와 숙고가 필요하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우애로운 논쟁의 장을 열어야 한다. 그런 태도 속에서만 운동을 급진화하는 동시에 단결과 확장을 도모할 수 있다.

2026년 3월 29일

[읽을거리]사회운동금융, 자본주의, 미국, 사회운동, 조직화

자립 우선, 조직화 우선

사회운동은 자본주의 체제가 야기하는 모순들을 끊임없이 지양하는 이념과 실천이지만,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반’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참여자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에나, 도시 공간에서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때, 나아가 이런 일들을 수월하게 집행하기 위한 상근자를 둘 때, 접착력이 좋은 청테이프를 살 때, 더 많은 조직화를 위한 캠페인을 벌일 때, 그것을 집행할 자금이 필요하다.

물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바가 하나 있다면, 언제나 ‘돈’보다 ‘사람’, ‘조직화(확장)’와 ‘주체역량의 강화(단결)’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 개의 기준이 부딪힐 때 우리는 언제나 그것이 운동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나아가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단단해지게 할 수 있는 선택인지를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조직화와 동떨어진 단기적인 효과를 위한 자금 운용이나 재정 계획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기 마련이고, 운동 자체를 난관에 빠뜨리며, 종종 주객을 전도시키기도 한다. 불평등과 차별, 착취에 맞선 운동에 기여하고 있는 대다수는 일정한 헌신을 전제로 활동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의심하기 어렵다. 그러나 주객 전도는 어떤 사람들의 특정하고도 고유한 ‘도덕적 타락’ 때문이 아니라, 불철저한 운용과 원칙 때문에 발생한다. 운동의 어긋남과 타락은 그 자체로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이 글은 어떤 전술적 선택에 대한 도덕주의적 힐난을 목표로 삼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운동의 후퇴는 불철저한 도덕 관념 때문이 아니라, 원칙의 부재에서 발생하며, 운동의 비전이 무엇이었는지 망각하고 자금 자체의 확충을 조직화보다 우선시하기 시작할 때 ‘의도치 않게’ 발생한다. 더구나 운동은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아무리 훈련된 활동가들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정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운동의 정치를 확립하는 과정에서는 ‘도덕주의’보다 더 많은 인내와 경청이 필요하다. 더구나 우리 중 누구든 과오를 범할 수 있고, 아무리 경험이 많은 활동가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사회운동 역사에 내재되어 있었고, 또 여전히 만연해 있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회운동과 기금

통상 사회운동은 자발적인 모금과 후원으로 작동하지만, 사회운동 안팎에는 다양한 기금들이 존재한다. 구성원들의 헌신과 모금에 의한 운영 기금부터 노동조합이나 크고 작은 공동체가 조성한 자생적인 기금, 나아가 국가기관이나 자본이 특정한 의도와 목적에 의해 유입한 대규모 기금에 이르기까지. 어디까지나 구성원들이나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돈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의 투명한 운영과 집행이라는 원칙만 잘 지킨다면, 그 기금은 운동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엥겔스와 같은 선의의 인물이 운동 노선에 개입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순전히 운동의 성장을 위해 기여하고자 한다면, 사회운동적 실천을 지지하는 부자들마저 운동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돈이 아무리 선의에 의해 모금된 것이라고 해도, 그 돈이 어떻게 해서 조성됐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화두다. 이를 간과하고 단순히 지출의 문제만 사고할 때, 사회운동 자신의 도덕적 딜레마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운다는 성격이 명백할 때에는 이런 기금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아무도 그런 것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적극 수용한 국가권력은 기업들의 세금을 깎고, 공공의료나 교육, 주거 등 필수적인 사회안전망을 대폭 축소했다. 이제 이 빈자리는 비영리조직들의 몫이 됐다.

실로 빈곤이나 대규모 실업, 불평등과 양극화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낳은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정치적 문제다. 한데 1990년대 이후 ‘비영리 구호조직들’은 구호물자 배분이나 취업 교육 같은 '개별적 서비스 제공'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탈정치화하는데 일조했다. 물론 하나같이 ‘좋은 일’이지만, 그 모순을 야기한 체제를 향해야 할 민중의 분노는 ‘자선 사업’을 통해 희석되고 무마됐다. 대형 NGO들이 ‘체제의 안전판’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이래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전미민주주의진흥재단(NED), 오픈소사이어티재단(OSF) 같은 조직들은 주로 남반구 국가의 풀뿌리 공동체 등 서구 중심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되지 않은 지역사회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다. 문제는 이들이 후원하는 ‘민주화운동’이나 ‘개혁운동’ 등이 때때로 해당 국가의 국영 기업을 민영화하고, 외국 자본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며, 노동 유연화를 도입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체제 전환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집행되는 돈이 초국적 자본이 진출하기 좋은 '시장친화적 국가'를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사용된 사례는 꽤 많다.

출처: Thred.
출처: Thred.

소로스의 투자처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SFM)'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와 금융 시장 동향을 통해 살펴보면, 소로스가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곳은 오늘날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2020년대 내내 포트폴리오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기업은 아마존(Amazon)이다. 2025년 말 기준 소로스는 약 5억 4천만 달러(전체의 6.3%)에 달하는 아마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 마이크로소프트(MS) 등도 핵심 투자처들이다.

미국 사회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아마존은 무자비한 노조 파괴 공작과 물류센터 노동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노동 통제,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 박탈 등이 이뤄지는 가장 ‘세련된’(?) 착취의 현장이다.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은 노동인권단체들에 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정작 그 돈은 현장 노동자를 쥐어짜 주가를 올리는 아마존의 이윤에서 뽑아낸다. 소로스의 또 다른 투자처 구글과 MS 역시 데이터 독점과 노동 유연화로 디지털 권리 및 반독점 사회운동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2024년 하반기 소로스는 매그놀리아 오일 앤 가스(Magnolia Oil & Gas), 헤스 미드스트림(Hess Midstream) 등 셰일가스나 화석연료 기업에 3천만 달러 이상을 공격적으로 베팅한 바 있다. 이는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같은해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이 남반구의 '녹색 산업 정책'에 4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며 기후위기 대응의 후원자를 자처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런 투자는 매우 기괴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전 세계의 기후정의운동은 지구 생태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와 화석 자본의 해체를 투쟁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펀드 본진에선 기후 파괴 주범인 화석연료 산업에서 발생하는 단기적 시세 차익을 놓치지 않고 챙기고 있다.

2023년 소로스는 청년들과 사회운동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대안 언론 '바이스 미디어'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악명 높은 사모펀드 포트리스(Fortress)와 채권단 컨소시엄을 구성해 회사를 3억 5천만 달러 상당의 부실채권(Distressed Debt)을 인수했다. 인수 직후 이들은 바이스 미디어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Vice News Tonight’을 폐지하고 수백 명의 기자와 언론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전 세계의 '독립 언론 지원'과 '표현의 자유'를 핵심 의제로 삼고 펀딩하면서도 정작 자본의 논리 앞에서 언론사를 부도 처리하고 기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기업 사냥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2024~2025년에 걸쳐 조지 소로스는 엔비디아와 TSMC, CoreWeave, 코디악 AI 등 인공지능 반도체 및 AI 인프라 기업들의 주식을 대량 매집해 포트폴리오를 인공지능 중심으로 재편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거대 자본이 통제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무분별한 확장은 대규모 실업과 노동권 후퇴, 알고리즘에 의한 소수자 차별을 심화시킬 위험이 높다. 사회운동은 AI 기술에 대한 강력한 민주적 통제와 규제를 촉구하고 있지만, 소로스 자본은 이 기술이 제약 없이 팽창할 때 얻을 수 있는 천문학적인 독점 이윤에 가장 적극적으로 베팅하고 있다.

2025년 9월 30일 기준 조지 소로스의 바구니
2025년 9월 30일 기준 조지 소로스의 바구니

비영리산업복합체의 논리

『The Revolution Will Not Be Funded(혁명은 펀딩되지 않을 것이다)』에 수록된 글들 중 ‘The Political Logic of the Non-Profit Industrial Complex(비영리산업복합체의 정치적 논리)’의 필자 딜런 로드리게스(Dylan Rodríguez)에 따르면, 조지 소로스는 자신이 막대한 부를 축적한 후, 닫힌 사회를 개방하고 비판적 사고를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오픈소사이어티 펀드'를 설립했다고 자부한다. 문제는 소로스가 지원하는 ‘반대’와 ‘이견’의 목소리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제약 내에서만 작동하는 정치적 이견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소로스가 말하는 '열린 사회'는 체제의 완전한 붕괴나 변혁을 허용하지 않으며, 오직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불완전한 것을 개선"하는 수준의 이견과 반대만을 지원한다. 이는 백인 우월주의, 신자유주의, 인종주의적 국가 폭력 등 억압적인 체제에 화해 불가능한 적대감을 표출하는 급진적 반대자들을 주변화하고 배제할 수밖에 없다.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의 막대한 보조금은, 사회운동가들에게 혁명적 가능성을 포기하고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데 타협하도록 만드는 족쇄 역할을 하며, 거대한 지배 구조를 동반하고 촉진하는 데 기여한다.

로드리게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산업화된 비영리 지원기금들은 캠페인 자금 지원이라는 요소를 넘어, 활동가들이 사회변화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운동 단체들은 재단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기업이나 관료제와 유사한 수직적 구조를 갖추고, 활동가들은 거리에 서서 투쟁하는 것보다 제안서나 보고서를 쓰는 '전문가'의 모습으로 변모해왔다. 지역과 현장에서 대중을 만나고 조직하는 것보다,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시됐다.

로드리게스는 제니퍼 월치(Jennifer Wolch)의 '그림자 국가(Shadow State)' 개념을 인용하며, 미국 사회의 비영리산업복합체(NPIC)가 자본주의 국가 장치와 어떻게 결탁하고 기능하는지 해부한다. 국가는 신자유주의적 기조 아래 공식적인 복지 예산과 공공 서비스를 축소하는 대신, 그 역할을 비영리 자선 단체들에게 외주화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자선사업이나 자원봉사 부문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 정부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도 빈곤층과 소외계층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비영리 단체들이 그림자 국가의 일부로 편입되는 핵심 고리는 바로 '돈'과 '세금 혜택'이다. 미국의 경우 법률상의 면세 조항을 통해 단체들이 합법적인 비영리단체로 승인받고, 거대 재단의 펀딩을 받을 수 있다. 로드리게스는 이 과정이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은밀한 예속”의 과정이라고 본다. 그림자 국가의 일부가 된 단체들은 재정상의 생존을 위해 국가와 자본이 정해놓은 엄격한 회계 규정, 사업평가 기준, 이데올로기적 한계선을 내면화한다. 활동가들을 행정가로 만들고, 대중의 정치적 분노를 합법적인 서비스 수혜의 영역으로 가둬버림으로써,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림자 국가는 단순히 시민사회단체들의 물리적 집합이 아니라, 체제 저항적 사회운동의 ‘정치적 상상력을 옭아매는 인식론적 틀’이다. 활동가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식을 오직 '재단의 지원금을 받아 합법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것'으로만 상상하게 될 것이다. 체제 자체를 타격하거나 붕괴시키는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사유는 ‘비현실적’이거나 ‘위험한 것’으로 치부되어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이제 운동은 체제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부족한 기능을 대신 채워주며 체제의 수명을 연장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하게 된다.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의 뉴욕 사무소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의 뉴욕 사무소

공공성의 대가

오늘날 도시 빈곤의 근본적 원인은 자원의 부족이 아닌 불평등에 있다. 한데 보수주의자들은 복지를 축소하는 대신 민간의 자선사업이나 자원봉사가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공공성을 후퇴시키고 이를 자선사업으로 대체시키려 한다. 그러나 ‘Democratizing American Philanthropy(미국 자선 활동의 민주화)’의 저자 크리스틴 E. 안(Christine E. Ahn)에 따르면, 자선사업에 대한 이와 같은 의존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 정부와 달리 사립 재단들은 대중에게 책임을 지지 않으며, 소수의 부유층에 의해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한데 OSF와 같은 재단들의 자금은 단순히 부자들이 기부한 사유 재산이 아니다. 조지 소로스 같은 자본가들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조세 제도 공백을 이용해 재단을 설립하고, 막대한 상속세나 양도소득세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단을 만든다. 재단이 막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지 않았다면 국고로 환수되어 대중의 통제 하에 공공을 위해 쓰였을 돈이 재단으로 흘러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재단 자산의 절반가량은 본래 대중에게 돌아갔어야 할 공공성의 대가다.

크리스틴 E. 안에 따르면, OSF의 이사회는 은행가, 기업 고위임원, 대학교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대중의 현실을 전혀 대변하지 못한다. OSF의 경우 매년 전체 자산의 5%를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지만, 이 5%에는 재단의 임대료, 직원 급여, 이사회 보수 등 과도한 행정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OSF의 경우 자기 자산을 주식시장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내며 불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산 보존을 핑계로 ‘지출 비율을 늘리라’는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그 결과, 소외계층이나 시민권, 사회운동을 위해 쓰이는 지원금은 전체의 2%도 채 되지 않으며, 대부분은 명문대학이나 병원, 고급 예술기관으로 들어간다.

오픈소사이어티재단(OSF) 내에서 벌어졌던 한 소란은 소로스식의 자금 운용이 보이는 위선을 드러낸다. 어느 날, OSI의 핵심 관계자 회의에서 지루한 논쟁이 계속됐다고 한다. 그러자 참다못한 소로스가 주먹을 내리치며 “이건 내 돈이야. 내 방식대로 할 거야(This is my money. We will do it my way)”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한 용기 있는 젊은 직원이 소로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니요. 그 돈의 절반은 우리(대중)의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 돈을 오픈소사이어티연구소나 다른 25개 재단에 넣지 않았다면, 그 중 절반은 국고에 들어갔겠죠!(No it isn't. Half of it is ours. If you hadn't placed that money in OSI or another of your 25 foundations, sir, about half of it would be in the Treasury.)”

이 일화는 진보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소로스가 막대한 세금 혜택(즉, 공공의 희생)을 통해 형성된 재단의 자산을 철저히 자신의 사유재산처럼 여기며 의사결정을 독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경향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대한 재단들의 영향에서도 발휘된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연구자 하템 바지안(Hatem Bazian)에 따르면, 거대 재단과 NGO들은 자금력을 무기로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방향성을 서구와 이스라엘의 입맛에 맞게 변질시켜왔다. 가령 주류 NGO들은 진보적 시오니스트 공동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미국이나 기관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실질적인 타격을 입지 않는 선에서 '이스라엘의 마음을 바꾸려' 시도하며, 이러한 태도는 운동의 전략(BDS)을 무력화시킨다. 가령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은 팔레스타인 지식인들을 미국으로 데려와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 사업의 진짜 목적은 팔레스타인 지식인들이 미국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해, 이스라엘과 서구의 식민화를 저항 없이 수용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이 바지안의 견해다.

  • 참고: Andrea Smith, 「The NGOization of the Palestine Liberation Movement」 | Hatem Bazian, Noura Erekat, Atef Said, Zeina Zaatari와의 인터뷰 중 | https://doi.org/10.1215/9780822373001-013

이 기금의 성격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동시에, 우리는 이 기금을 운용하는 이들과 이 기금을 받는 이들을 등치시켜 논의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는 사실 역시 명심해야 한다. 운동 과정에서 많은 논쟁은 이런 과격한 단일화와 등치가 곧 바로 ‘급진정치’인 것처럼 오도해왔다. 그러나 그런 방식의 레토릭은 오히려 운동을 분열시키고 후퇴시킬 뿐, 단결과 성장을 가져오진 않았다. 우리는 급진정치의 방향성은 유지하되, 언제나 운동의 확대와 단결을 해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토론해야 한다. 급진정치는 나 자신의 ‘급진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그 자체의 발전을 통해 비로소 조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운동을 확장하고 조직하는가

몇 년 사이 한국의 시민사회에서는 OSF의 기금 지원을 받는 조직 또는 프로젝트들이 적지 않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회에서 이 기금의 수용을 둘러싼 계획이 제출된 것은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쟁점에 대해 칼로 무자르듯 ‘운동의 도덕적 타락’을 논란 삼는 것으로 비판하는 것은 어떤 활동가들에게는 갑작스럽고 느닷없는 논란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겐 더 많은 인내와 숙고가 필요하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우애로운 논쟁의 장을 열어야 한다. 그런 태도 속에서만 운동을 급진화하는 동시에 단결과 확장을 도모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OSF의 자금을 지원받느냐 아니냐 자체로 모든 문제를 가르는 함정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문제는 OSF의 기금이 어떤 성격을 띠는지에 대한 논의 없이 실용주의적 판단에 의해 이 기금을 수용하는 것의 속도성과 편의성에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활동가들은 OSF를 비롯한 자본으로부터 지원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식하고, 심사숙고하며, 다양한 이견들을 화두에 놓고, 그런 인식 하에 사업을 펼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자금은 단기적인 캠페인을 지속시키겠지만, 중장기적인 운동의 자립과 성장은 오직 운동 스스로 대중을 만나고 조직하는 것으로부터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당장 해당 기금을 받느냐 아니냐를 두고 연대 운동을 일도양단으로 나누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오히려 이번 논란은 이 사안에 대해 보다 풍부하고 깊이 있게 토론하고, 운동의 확대와 급진화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전술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오랜 시간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성격에 대한 논의로부터 우리는 그런 사회적 토대 구축으로부터 이 운동의 진정한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배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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