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중국의 사회적 불만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오늘날 중국의 사회적 불만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오늘날 중국의 정치 생태계는 표면적인 감정 분출은 허용하면서도, 이러한 분출이 제도 차원의 논의로 이어지는 것은 차단한다. 기득권 이데올로기가 대중 정서의 지향점을 재정의하려 시도하고 있으나, 그것은 보다 공정한 분배나 더 많은 기회라는 요구를 대신할 수는 없다.

2026년 3월 15일

[동아시아]중국대륙중국, 중국공산당, 시진핑, 대만해협, 사회운동

이 글의 원문은 中國當代的社會不滿:抽象表達,重新編碼「統治合法性」으로, 단전매에 실렸다.

백지시위가 시작된 지 3년이 흘렀지만, 중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전국적·거리 중심의 정치적 시위 물결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는 중국 민중의 정치적 불만이 사라졌음을 시사하지 않는다. 반대로 2025년 중국을 관찰해 보면, 오프라인의 단발성 사건이든 온라인 여론의 변화 궤적이든, 경기 침체와 민생의 피폐, 정치적 경직성이 초래한 불만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다만 더 파편화되고 추상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잠복해 있을 뿐이다.

2025년에는 다수의 항의 사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산시(陝西)성 위난(渭南)시와 쓰촨(四川)성 장유(江油)시의 학교 폭력 사건은 각 지역에서 대규모 대중 집회를 촉발했으며, 기록된 시위 사건 수는 2025년에도 계속해서 최고치를 갱신했다. 베이징(北京), 청두(成都), 충칭(重慶) 등 도시에서는 공산당에 반대하는 영상, 현수막, 구호가 잠깐 등장했다가 재빨리 사라지기도 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서로 간에 명시적인 연계가 없었음에도 하나의 사실을 함께 가리키고 있다: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단지 재구성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만약 10년 전, 혹은 3년 전에 제기된 분노의 목소리가 여전히 '구체적 문제—구체적 책임자'를 요구하며 해결책을 제시하고 “공산당 타도”, “자유민주주의 쟁취”를 외쳤다면, 그에 반해 오늘날의 불만은 정체성 서사, 정체성 표출, 집단적 소외감으로 더 많이 나타나는 듯하다. 사람들은 “자본에 속았다”, “유럽인들이 우리 문화재를 도둑질했다”, “우리는 인신매매 게임에 휘말렸다”고 말하지만, “자본가를 타도하라”, “유럽 강도들을 타도하라”, “인신매매범들을 타도하라”고 명확히 외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변화는 우연이 아니라 시진핑 시대의 정치적 정당성 전환과 정치적 재편성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맞물려 있다. 많은 문제들은 경제적으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사상과 문화를 통제하는 수단이 전례 없이 강화되면서 경제 문제에 대한 논의조차 '경제 낙관론'에 의해 숨통이 조여지는 실정이다. 그 결과, 사회적 불만은 직접적이고 순수한 경제적 담론으로 표출되지 못한 채, 정체성을 매개로 한 '정체성 정치'의 양상을 띠게 된다. 오프라인에서 포착되는 것이 금기시되어 주변부로 밀려난 기존 담론이라면, 온라인에서 새롭게 형성된 것은 허용된 서사를 차용해 표현되는 새로운 담론이다.

2025년 7월 말, 쓰촨성 장유시에서 미성년자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여중생 3명이 14세 여학생을 집단 폭행하는 영상이 유출됐으나, 피해자의 부상은 '경미한 상해'로 규정되는 데 그쳤다. 같은 해 1월에는 중국 산시성 푸청의 한 직업학교 중학생이 추락사했는데, 학교 내 괴롭힘을 당한 뒤 학교 측이 이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두 사건 모두 현지에서 대규모 시위와 항의를 촉발시켰다. (출처: 소셜미디어)
2025년 7월 말, 쓰촨성 장유시에서 미성년자 괴롭힘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여중생 3명이 14세 여학생을 집단 폭행하는 영상이 유출됐으나, 피해자의 부상은 '경미한 상해'로 규정되는 데 그쳤다. 같은 해 1월에는 중국 산시성 푸청의 한 직업학교 중학생이 추락사했는데, 학교 내 괴롭힘을 당한 뒤 학교 측이 이를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두 사건 모두 현지에서 대규모 시위와 항의를 촉발시켰다. (출처: 소셜미디어)

재고 존량으로서의 항쟁

지난 한 해 동안 중국의 거리 시위는 더 많아졌지만, 주로 특정 사건에 대한 요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영향 범위도 제한적이었다. 예를 들어, 2025년 1월 2일 산시성 위난시 푸청(蒲城)현의 한 직업학교에서 학생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유가족은 자녀가 학교 폭력을 당했으며 학교 측이 진실을 은폐했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1월 4일부터 학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이 숏폼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자 시위 사태는 계속해서 격화되었고, 이웃 주민들이 모여 지지를 표하며 학교를 점거했다. 7월 말, 쓰촨성 장유시에서도 미성년자 집단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여중생 3명이 14세 여학생을 집단 폭행하는 영상이 유출되자 지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8월 4일 경찰이 사건 경위를 발표했을 때 피해자의 부상 정도는 '경미한 상해'로만 분류됐다. 네티즌들은 당국이 피해자 가족(장애인)을 괴롭히고 가해자를 가볍게 처벌한다고 지적했다. 당일 장유시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으나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해산됐다.

이외에도 이언망(异言网) 등 민간 시위 사건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25년 3분기까지 발생한 시위 사건은 1392건에 이르러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다. 다만 이러한 오프라인 시위는 대부분 토지 수용, 임금 체불, 건설 중단된 건축물 등 경제적 이익 문제를 중심으로 발생했으며, 대부분 구체적인 경제·민생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사실 과거와 일맥상통한다. 이언망의 장기 데이터에 따르면, 이러한 저항의 주체는 대부분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취약 계층—노동자, 분양권자, 농민 운동가, 소액 투자자 등—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기층의 모순이 공정성과 정의, 경제적 이익과 같은 '마지노선'을 건드릴 경우, 지엽적인 사안조차 언제든 대규모 집단 행동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말하자면, 현재의 오프라인 저항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침해당한 이들의 불만을 대변할 뿐, 아직은 파편화된 저항들이 결집하여 구조적 도전을 형성하기에는 동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이러한 시위는 요구가 명확하고 지역적 성격이 강하며 쉽게 억압되는 특징을 지닌다. 대중은 자신들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요구를 제기하지만, 지역을 초월한 조직화나 공통된 의제가 부족한 탓에 결국 국가 기구의 신속한 간섭 아래 개별 처리된다. 장유 사건은 한때 중국 SNS 웨이보(微博)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으나, 관련 키워드가 당국에 의해 차단된 후 급속히 사그라들었다. 이러한 시위들은 주로 거버넌스와 공권력 행사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지만, 목표의 한계와 강력한 통제로 인해 더 넓은 사회적 공감을 얻거나 제도적 영향력을 형성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저항들 중 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천안문 사건(六四事件) 이후 중국 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저항은 지방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파생된 모순에서 기인했다. 비록 대중 정서가 격렬해 때로 지방정부나 무장경찰(武警)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하지만, 결국 주동자에 대한 분열과 포섭, 기층 관료 문책 등의 수단에 경제적 보상을 병행하는 전략을 통해 지방 차원의 기층 거버넌스 문제로 국한되어 해소된다.

이러한 안정 유지 수단은 ‘경제 건설’을 중심에 두었던 시기에 번번이 효과를 거두었던 전형적인 대응 방식이다. 최종적으로 경제 성장이라는 결과물만 가져올 수 있다면, 대다수의 불만은 그 안에서 흡수될 수 있었고 정치적 반대로까지 번지지도 않았다. 즉, 이들의 요구는 사회 제도나 공권력이 “규칙을 바꾸라”는 게 아니라, “규칙을 준수”하고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종류의 불만은 어느 정도 ‘누적된 불만(存量不满)’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는 과거의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기대치에서 비롯된 것인데, 성장이 정체되자 그 기대가 분노로 변해버린 것이다. 불균형하고 불충분한 경제 발전이지속되는 한, 이러한 불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 성장이 동력을 잃고 멈춰버릴 미래에는 더욱 격렬하게 타오를 수 있다.

[왼쪽] 2025년 10월, 베이징 산리툰의 번화가에서 시위대가 쇼핑몰 고층부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며 항의 내용이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오른쪽] 한편 지난 8월, 충칭대학 인근에서는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건물 외벽에 여러 개의 슬로건을 투사하는 방식의 항의 퍼포먼스가 있기도 했다. (출처: 소셜미디어)
[왼쪽] 2025년 10월, 베이징 산리툰의 번화가에서 시위대가 쇼핑몰 고층부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며 항의 내용이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오른쪽] 한편 지난 8월, 충칭대학 인근에서는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건물 외벽에 여러 개의 슬로건을 투사하는 방식의 항의 퍼포먼스가 있기도 했다. (출처: 소셜미디어)

프로젝션과 현수막: 옛 담론의 주변화

2025년에는 대중 시위 외에도 다수의 지역에서 이른바 '쓰통챠오(四通桥) 사건'과 유사한 단독 행동주의자들의 항의 시위가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4월 15일, 청두(成都)의 한 고가도로에 “체제 개혁 없이는 민족 부흥도 없다”, “중국에는 통제받지 않는 정당이 필요 없다”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 세 개가 갑작스럽게 등장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8월 29일 충칭 대학 캠퍼스에서는 누군가 건물 외벽에 프로젝터로 “공산당이 사라져야 진정한 신중국이 온다”, “붉은 파시즘을 타도하고 공산당 폭정을 뒤엎자” 등의 구호를 영사했다. 이 프로젝션은 약 50분간 지속된 후 경찰에 의해 중지되었다. 현장에 있던 프로젝터 사용자는 사라진 상태였으며, 대신 한 통의 항의 편지가 남겨져 있었다.

가장 대담한 방식의 저항은 2025년 10월, 베이징에서 가장 큰 번화가 산리툰(三里屯)에서 일어났다. 쇼핑몰 고층부에 나타난 시위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항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내건 것이다. 그리고 이 현수막에는 “공산당은 본질적으로 반인륜적인 사교(邪敎)”, “정당 결성 금지를 해제하고, 정당 결성의 자유와 자유 경쟁을 보장하라”, “자유·인권·법치가 실현된 신중국을 건설하자”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이러한 행동은 마침 제20기 4중전회(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 개최 시점과 맞물려 강력한 상징적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과거의 여러 유사한 행동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 역시 신속하게 진압됐다. 보안 요원들이 즉시 두 개의 현수막을 철거했고, 관련자들은 현장에서 연행됐다. 또한 당국은 인터넷 상에서 관련 키워드를 즉각 차단했다. 그 결과, 이 사건은 해외 플랫폼을 통해서만 유포되었을 뿐, 중국 내의 공론장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종합해 볼 때, 일련의 사건들은 매우 뚜렷한 상징성을 지닌다. 이들은 중국 공산당의 집권 정당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직설적인 구호를 통해 대중의 극한에 달한 불만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들의 언어가 너무도 직설적이고 목표가 명확하다는 점, 즉 “XX 타도”나 민주·자유 추구와 같은 ‘구시대적 정치 문법’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 한계로 작용했다. 이러한 방식은 당국이 설정한 명확한 ‘레드라인’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행위이기에 즉각적인 탄압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들의 저항은 대중의 시야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한 채 당국에 의해 신속히 소멸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행동이 의거하는 것은 이미 고도로 주변화된 정치 언어다. "공산당 타도"나 "민주 신중국 건설"과 같은 구호는 사실상 지난 시대의 유산에 가깝다. 이들은 과거 특정 역사적 조건하에서는 강력한 동원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언어는 주류 공론장에 흡수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민중의 일상적 경험과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처럼 소수의 용기 있는 이들이 벌이는 급진적 행위는 익명성과 휘발성, 그리고 행위 예술적 양태를 띠고 있어 실질적 영향력보다는 상징적 의미에 치중되어 있다. 이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의제로 안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더 넓은 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탈(脫)경계적' 파급력을 확보하기에도 한계가 뚜렷하다.

결코 이들의 존재 의의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들이 대변하는 것은 소위 '기성세대의 불만 표출 방식'에 머물러 있다. 현재의 사회 구조 안에서 이러한 방식은 복제나 전파가 거의 불가능하며, 대개 '우발적 사건'으로 치부되거나 공론장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모험적 행동'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비록 그 세력이 쇠퇴하고 있을지라도, 가장 직접적인 반체제 담론은 여전히 새로운 거점을 확보하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려는 시도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은 이러한 '외로운 늑대'식 정치적 의사표시가 광범위한 사회적 동원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임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체계적인 탄압의 그물망을 일시적으로 벗어난 소수의 생존자로서, 자신들이 아직 절멸하지 않았음을 세상에 고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불만을 대변하기보다 과거의 불만이 남긴 메아리에 가깝다. 불만이 여전히 사회 기저에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동시에, '직접적인 정치적 부정'이 더 이상 주류의 표현 양식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승리주의(贏學)가 은폐하는 요구

새로운 검열 환경에서 변화가 더욱 뚜렷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온라인 불만 표현 방식이다.

때로는 이러한 새로운 불만 표현이 비판이나 불평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승리주의'와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샤오홍슈(小红书)에서 벌어지는 미중 사이버 대결 분석과 미국의 '절단선’ 논의가 그 대표적 사례다.

1월 중순, 미국 정부가 틱톡 금지령을 발표하기 전후로 일부 미국 네티즌들이 중국 소셜미디어 플랫폼 샤오홍슈로 이동했다. 양측의 교류 과정에서 양국의 생활이 많은 이들의 상상과 다르게 보였으며, 특히 생활비 측면에서 그 차이가 뚜렷했다. 이때 베이징대 교수 천핑(陈平)이 2019년에 한 발언이 다시 회자됐다. 그는 중국에서 월 2000위안(약 33만 원)으로 사는 삶의 질이 미국에서 월 3000달러(약 43만 원)로 사는 것보다 높다고 주장했는데, 미국은 높은 일상 소비, 대학 학자금 대출, 의료비 등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천핑 부등식'이라 불리며 조롱받았던 이 주장은 사이버 공간에서 재차 주목받으며 많은 이들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연말이 되자 게임에서 유래한 ‘절단선’ 개념이 다시 화제가 됐다. ‘절단선’ 이론은 미국 중산층 가정의 소득이 해고나 막대한 의료비 같은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일정한 기준선을 밑돌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부채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후 도미노처럼 연쇄 붕괴가 일어나 길거리로 내몰리거나 심지어 하수구에 시신이 버려지는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를 계기로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천상의 도시(山巅之城)”로 칭송받던 미국의 사회 안전망이 실은 이토록 허술하다며 “아메리칸 드림이 산산조각났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의는 두 번째 '대차대조'라 할 수 있다. 논의는 미국의 평균 이하 사회복리 수준, 국민건강보험의 부재, 계속 치솟는 물가 등이 미국 민생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중산층의 계급 하락 불안감을 드러냈다는 데 집중됐다. 반면 중국은 빈곤 퇴치, 전 국민을 아우르는 사회보장제도 등을 통해 사회 안전망이 미국보다 더 탄탄해 보인다.

물론 객관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은 식품과 의료 등 필수 소비 분야의 지출이 미국보다 저렴하며, 상대적으로 높은 저축률 덕분에 위기 대응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직관적인 비교에는 실질적인 통계 편차가 존재한다. 구매력 분포를 단순히 시장 환율로 환산해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주거 비용을 살펴보면, 중국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28.5배에 달해 미국의 3.3배를 크게 웃돈다. 또한 미국의 절대 빈곤선 기준 소득은 중국의 빈곤선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어 있다. 더욱이 중국 중산층 역시 중병으로 인한 가계 파산이나 투자 자산의 붕괴 등 '빈곤으로의 회귀'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특히 농민공이나 배달 기사 등 계층의 경우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시나리오는 결코 허황된 가설이 아니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보자. 두 차례에 걸친 이른바 ‘대차대조’는 중국 중산층이 미시적 차원에서 체제의 정당성을 고찰하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사회 제도를 평가절하하며 자국의 체제 우위와 물가 경쟁력을 신뢰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동양은 뜨고 서양은 진다(東升西落)’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새로운 위상 정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중국이 복지와 사회보장 측면에서 ‘초강대국’ 미국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로 이어진다. 이는 결국 저성장 국면에서 점차 동력을 잃어가는 성과 정당성의 재정의로 귀결된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경제 성장 둔화 시대에 중국 체제의 우월성은 더 이상 가파른 GDP 성장이나 소득 증대와 같은 ‘상한선 확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신,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국민의 최소한의 삶을 지탱해 주는 ‘마지노선 사수’ 능력이 체제의 새로운 핵심 가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앞서 언급한 ‘하한선 사수’가 정작 중국 경제 기적의 역사에서 가장 부진했던 부문이라는 사실이다. 교육, 의료, 사회보장 등 공공 서비스 분야에 투입되는 중국 정부의 사회적 지출 비중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중국의 GDP 대비 사회적 지출 비중은 약 14.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20%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또한, 현재의 저렴한 기초 소비 물가는 오히려 내수 진작 부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정부가 최근 제시한 ‘안티 네이쥐안(反內卷·무한경쟁 방지)’ 정책 역시, 각 산업군이 출혈적인 가격 경쟁에 매몰되어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끊어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중국 블로거 '츠과멍주(吃瓜蒙主)'가 『홍루몽(红楼梦)』의 은유를 해석하며 '반청복명(反清复明)'을 암시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정치적 금기를 위반해 계정이 정지됐다.
중국 블로거 '츠과멍주(吃瓜蒙主)'가 『홍루몽(红楼梦)』의 은유를 해석하며 '반청복명(反清复明)'을 암시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정치적 금기를 위반해 계정이 정지됐다.

그러나 어쨌든 대조와 절단선은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 사회 스스로의 두려움, 계급 추락과 도태, 제거에 대한 불안이 숨어 있다. 따라서 타자의 제도를 빌려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사회주의 우월성 담론을 긍정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갈망하는 요구를 사실상 드러내고, 결국 성과주의의 정당성을 재정의하게 된다. 단순한 경제 총량 발전이 아니라 빈부 격차와 기초 민생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 숨겨진 감정은 여전히 사람들이 성과 정당성을 점검하며 자신이 누린 경제적 혜택이 발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안전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한다는 점이다. 이제 비교 대상은 상한선이 아닌 하한선이다. 문제는 경기 침체 속에서 '경제 낙관론'만을 외쳐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엄격한 아버지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국가의 보호라는 '거대한 손'이 실재하는지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진정으로 중요한 지점은, 대중이 국가의 보호를 당연히 존재해야 할 국가의 의무로 상정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믿음은 역설적으로 국가가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없도록 만드는, 은밀하면서도 온건한 압박으로 작용하며 당국을 향하고 있다.

인터넷 유행어 뒤에 숨은 정체성 요구

대조와 절단선을 통해 자신의 삶을 옹호하는 것보다 훨씬 더 뚜렷한 사회적 불만이 있다. 이는 일종의 음모론화된 정체성 인식 이론을 통해 드러난다. 그중 일부는 민족주의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명나라를 애도하는 풍조(悼明), 서방위사론(西方伪史论)과 1644사관(1644史观)의 유행이다. 빌리빌리(B站), 즈후(知乎) 등의 플랫폼에서 쏟아지는 일련의 콘텐츠들은 명나라를 이민족에 의해 끊긴 근대성의 출발점으로, 청나라를 중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억압한 이민족 정권으로 묘사한다.

소위 “명나라 애도”의 풍조가 인터넷에서 처음 유행한 것은 『홍루몽(红楼梦)』의 은유를 해석하는 풍자 행위에서 시작했다. 이 해석은 『홍루몽』이 실제로 “반청복명(反清复明)”을 주창하는 “명나라를 애도하는 작품”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이 책의 실제 저자는 명나라 순정제(崇祯帝)의 후손인 “주삼태자(朱三太子) ”라고 하거나, 임다옥(林黛玉)은 순정제를 가리키며, 다옥이 꽃을 묻는 장면은 대명(大明)을 애도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한편, 서양이 고대 역사를 위조했다는 '위사론(偽史論)'을 펼치는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대 그리스·로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피라미드를 위조했다” 등의 주장 외에도 『영락대전(永乐大典)』 계몽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는 서양이 『영락대전』을 표절함으로써 과학 혁명과 산업 혁명을 열었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영락대전』에 증기기관 설계도가 숨겨져 있었다거나, 뉴턴이 《영락대전》을 표절했다는 등의 주장이 그것이다.

연말에 개봉한 영화 <펑후 해전(澎湖海戰)>은 청나라가 정씨 정권을 격퇴하고 대만을 수복한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예상치 못한 여론의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앞서 언급한 '위사론' 그룹과 '황한(皇漢·한족 우월주의)' 그룹이 완전히 결합하면서, 이른바 '1644 사관'이라는 용어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이들은 1644년 청나라의 산해관 입성(清朝入关)을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닌 '중화 문명의 단절'로 규정한다. 즉, 근대 중국이 겪은 국력 쇠퇴와 빈곤의 원인을 전제 군주제나 낙후된 사회 제도라는 구조적 결함에서 찾지 않고, 오로지 '만주족의 이민족 통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은 청나라를 외래 식민 정권으로 선언하며, 중국 당국이 강조해 온 '중화민족 다원일체(多元一體)'라는 역사적 연속성마저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본래 이러한 궤변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으나, 온라인상의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됨에 따라 결국 당국이 직접 검열과 계정 폐쇄라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번 조치로 '경계없는 민초(生民无疆)', '몸소 실천하는 선비(文行先生)'를 포함한 50여 개의 대형 '위사론' 전문 계정들이 폐쇄됐으며, 장기간 위사론을 유포해 온 저장대학 황허칭(黃河淸) 교수 역시 당국의 제재 대상이 됐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는 블로거 '강 건너 계몽'이다. 계정 폐쇄 전 틱톡 팔로워 수만 500만 명에 달했던 그녀는 “강희제는 투항한 한족 군인 홍승주(洪承畴)의 아들”, “만한전석(滿漢全席)은 사실 한족의 인육을 먹는 잔치”, “9·18 만주사변은 만주족이 일본을 끌어들인 음모” 등 자극적이고 허황된 위사론을 전파하며 여론을 선동하는 데 중추 역할을 했다.

  • 만한전석 : 청나라 시대에 완성된 중국 요리 역사상 가장 사치스럽고 규모가 큰 최고의 성찬. 이름 그대로 만주족(滿)과 한족(漢)의 진귀한 요리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잔치라는 뜻.

블로거 '강 건너 계몽'은 과거 한 위사론 관련 포럼에서 "서구 역사에 대한 진위 규명은 단순한 학술적 논쟁이 아니라 내러티브 권력을 둘러싼 전쟁"이라고 노골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그녀는 "대중을 아군으로 포섭해야 하며, 단순한 유물론적 서사나 '농촌이 도시를 포위한다' 전술을 통해 바탕이 되는 논리를 전략적으로 운용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녀가 주창해온 여러 이론들은 당국의 공식 이데올로기적 금기(레드라인)를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 특히 "원나라(몽골족)와 청나라(만주족)는 중국의 정통 왕조가 아니라, 단지 이민족에 의해 정복된 왕조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중화민족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국가적 서사를 근저에서부터 부정한다.

이러한 담론들은 과거 청나라에 대한 역사적 불만을 '한족 부흥'과 '한족 역사 회복(恢复汉族历史)'이라는 프레임에 투영함으로써, 대한족주의(大漢族主義) 정서를 한층 더 자극하고 동원한다. 사학계가 이들의 주장에 수차례 학술적 반박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네티즌은 기존 역사를 해체하고 새로운 '민족 신화'를 구축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불만을 지속적으로 표출하는 양상을 보인다. 주목할 점은 당국의 대응이 상당히 늦다는 사실이다. 연초에 시작된 '명나라 애도' 풍조가 연말까지 이어지는 동안 관망세를 유지하던 당국은, '중화민족 공동체'라는 국가 근간의 서사를 정면으로 뒤흔드는 '1644 사관'이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제재에 나섰다.

중국 영화 《펑후 해전》은 청나라가 정씨 정권을 격파하고 대만을 차지한 것을 찬양한다.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영화 《펑후 해전》은 청나라가 정씨 정권을 격파하고 대만을 차지한 것을 찬양한다.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담론에는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현실 세계의 구체적 책임 소재를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적 모순의 원인을 아득히 먼 과거의 '역사적 단절'에서 찾기 때문에, 현 체제에 대해 실행 가능한 구체적 요구를 제기할 필요가 없다. 즉, 이는 어떠한 후폭풍도 감내할 필요가 없는 '가장 안전한 불만 표출 방식'인 셈이다. 소위 '명나라 애도' 담론은 사회적 불만을 품은 이들에게 '배신당한 주체 민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과 해석의 틀을 제공했다. 이러한 내러티브 구조는 당국이 주입해온 '중화민족 공동체' 관념에 균열을 내고 있지만, 현재의 민족 제도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하거나 도전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역사는 더 이상 학술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대중에 의해 '분노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전락한다. 여기에는 사료에 대한 진지한 관심 대신, “본래 우리의 것이어야 할 고귀한 삶을 누군가에게 빼앗겼다”는 가공된 분노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어떤 사회적 불만은 젠더 영역에서도 선명하게 분출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된 '역공 올인(力工梭哈)'과 '이공 충동(理工脉冲)' 이론이 대표 사례다. 온라인상의 정의에 따르면, '역공'은 극도로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닌 이른바 '분투형 남성'을 일컫는다. 이들은 가부장제 교육을 충실히 따르며, 절제되고 단조로운 삶을 영위한다. 또, 오로지 신혼집 마련을 위해 대부분의 소득을 저축한다. 이른바 ‘역공 올인 법칙’은 이러한 남성들이 평생에 걸쳐 절약한 전 재산을 결혼이라는 단 한 번의 판에 ‘올인(All-in)’하는 행태를 뜻한다. 이들은 “돈으로 좋은 아내를 살 수 있다”는 전근대적인 믿음을 고수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전부 아니면 전무(梭哈)’ 식의 접근법은 이들을 오히려 사기 범죄의 손쉬운 표적으로 만들거나, 변화한 결혼 시장에서 가장 먼저 도태되게 만드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이에 분노한 남성층은 ‘성실한 노동, 결혼과 출산, 가장으로서의 가족 부양’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삶의 궤적을 남성을 옭아매는 속박이자 기만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공고하게 유지되어 온 구세대 가족 제도와 혼인 모델에 대한 부정이다. 이들은 비난의 화살을 소위 '돈만 밝히는(撈金)' 여성들에게 돌리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계층 고착화로 인해 더 이상 노력만으로는 신분 상승이 불가능해진 사회 구조에 대한 남성들의 불안감이 투영되어 있다.

이 밖에도 많은 키워드들이 사실상 이데올로기화된 불만을 투사하고 갈무리하는 매개체가 됐다.

예를 들어, 최근 중일우호병원(中日醫院)에서 불거진 스캔들은 시에허의과대학(北京协和医学院)의 ‘4+4 의학 교육 모델’에 대한 거센 논란으로 이어졌다. 비의학 전공 학부생이 4년의 의학박사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한 이 제도는, 결국 교육의 형평성과 계층 이동성에 대한 의구심을 촉발하는 매개체가 됐다. 또 다른 사례로, 외국인 청년 과학기술 인재의 유입 조건을 완화한 ‘K 비자(K签证)’ 제도가 도입될 당시 국내 여론도 거세게 요동쳤다. 상당수의 네티즌은 '왜 굳이 외국인 인재를 영입해야 하는가', 'K 비자가 인도인들의 대규모 유입 통로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내며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냈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법제공작위원회(法制工作委员会)가 추진 중인 ‘치안관리처벌법’ 개정안 역시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마약 복용 기록을 포함한 경범죄 기록을 비공개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자, 대중 사이에서는 “도련님이 약이라도 하신 것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비판이 쏟아졌다. 이는 해당 법안이 결국 특권 계층 자제들의 앞날을 닦아주기 위한 ‘방탄용’ 보호 장치가 아니냐는 대중의 깊은 불신을 반영한다. 이러한 정서는 문화적 영역에서도 포착된다. 최근 비리비리에서 화제가 된 영화 <방화(芳華)>의 해석 영상은 “문화대혁명 종결 이후 상층부의 자제들은 모든 자원을 독식한 반면, 기층 인민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희생되고 시대에 외면당했다”는 파격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문혁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해석’은 의외의 사회적 공명을 일으켰고, 최근 세를 불리고 있는 이른바 ‘인터넷 좌파’들은 이를 빌미로 보다 철저했던 과거의 사회주의 시절을 찬양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겉보기에는 정치와 무관해 보이는 복잡다단한 현안들은 민중의 억눌린 감정을 분출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탐색하는 우회적 창구로 기능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의 이면에는 결국 경기 침체와 계층 고착화, 그리고 만연한 특권층의 전횡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은 역사와 기억, 감정의 영역으로 전이되어 안착했다. 역사와 정체성에 관한 담론은 이제 현실에 대한 책임 추궁을 대체하는 수단이다. 비록 이러한 흐름이 기존의 권력 구조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지는 않으나, 이 과정에서 파생된 새로운 명명법과 논의들은 민족 정책, 성 평등, 개혁개방 등 공식 체제가 고수해 온 핵심 주법들을 안팎에서 해체한다. 나아가 대중은 한족, 노동자, 중국인, 남성 등을 중심으로 '피해자 정체성'을 재구축해냄으로써, 역설적으로 기존 체제를 자신들의 대척점에 서게 만들었다. 직접적인 비판 없이도 체제의 정당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새로운 형태의 대항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방화(芳华)>의 스틸사진
영화 <방화(芳华)>의 스틸사진

윤허된 불만: 이데올로기의 감정적 배출구

다각도의 불만 표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담론들은 과거의 전형적인 반체제 발언들처럼 전면적인 차단에 직면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이들의 주장은 꽤나 추상적이고 완곡한 표현을 빌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국가 공식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세대의 불만은 가해자를 직접 지목하는 대신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는 과정을 강화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통해 문제를 재인식하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불만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방식으로 코드화되고 있을 뿐이다. 분노는 체제를 향하는 대신, 자본과 여성, 이주민, 타국 등을 조준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정서적으로 정당성을 얻기 쉽고, 공격의 방향 또한 안전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온라인상에서 더 긴 전파 시간과 더 높은 주목도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인 점은, 상충하는 목표들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른바 ‘A도 해야 하고 B도 해야 하는(既要又要)’ 시대에는 공식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불만조차 기득권 체제의 방향성과 충돌하는 요소를 품게 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자세히 살펴보면, 최근 당국이 중점을 두고 추진 중인 ‘중화민족 공동체의식 공고화’ 정책은 사실 대한족주의적 경로와 겹치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민족 정체성과 종교의 분리를 추동하고, 공통 표준어 교육을 강화하며, 소수민족 언어 교육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대표적이다. 다른 한편, 이 새로운 민족주의 담론은 여전히 ‘다원일체’를 강조하며 한족 중심주의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당신은 공식 이데올로기와 위사론 세력이 서로를 향해 ‘민족주의가 부족하다’고 공격하며, 상대방이 서구문화 전쟁의 일환이라고 비난하는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위사론자들은 공식 이데올로기가 이민족을 보호하는 서구 식민주의의 잔재라고 주장하는 반면, 당국은 위사론을 역사 허무주의이자 일종의 인지전으로 규정해 경계한다. 일례로, 저장성 선전부 공식 문건에서는 ‘1644사관’이 중국 역사의 연속성을 해체하려는 내러티브와 호응하고 있으며, 통일된 다민족 국가로서 중국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정하려는 논설들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립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가령 자본에 대한 분노는 국유경제 강화나 공동부유라는 관영 이데올로기에는 부합하지만, 민영경제의 성장을 촉진하려는 정책과는 충돌한다. 여성에 대한 분노는 가정의 가치를 강화하려는 당국의 이념에는 부응하나, 성평등을 추진하는 공식 정책과는 상치된다. 외국인에 대한 분노 또한 국가 안보관이라는 이념 틀 안에는 존재하나,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을 확대하려는 정책과는 어긋난다.

비리비리에서 화제를 모았던 영화 <방화> 해석 영상이 공개 직후 강제 삭제된 것은 이 때문이다. 웨이보와 즈후 등 플랫폼에서도 '명나라 애도', '반청복명', '위사론' 등 화제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가 이루어졌으며, '역공 올인'을 비롯한 키워드들도 각 플랫폼에서 차단됐다. 다시 말해, 대중의 불만은 국가가 인정한 가치 체계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분출될 수 있을 뿐, 권력 구조의 핵심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이는 당국이 추진하는 새로운 정당성 구축의 구도가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집권 이래 정당성을 구축해온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혁명 서사와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강조했으며, 개혁개방 시기에는 경제 성장과 성과 정당성을 내세우며 사회 전반의 탈정치화를 추진했다. 한편, 시진핑 집권 이후에는 이 두 가지 정당성을 통합하는 동시에, 민족주의와 강국 서사를 결합함으로써 내부 모순을 조율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A도 해야 하고 B도 해야 한다’는 강령 아래 시진핑 사상 덧붙이기가 지나치게 비대해진 결과, 각각의 정책 경로는 단호함과 철저함, 명확함을 잃어버렸다. 도리어 이는 각양각색의 새로운 불만들이 파고들 공간을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경기 침체에서 비롯된 온갖 모순들은 정작 경제 담론의 형식을 띠지 않으며, 진정한 정치적 제약을 건드리지도 않는다. 대신 정체성 정치라는 추상적 껍데기를 사이에 둔 채, 암암리에 ‘사회주의의 근간을 갉아먹고(挖社會主義墻角)’ 있을 뿐이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쇠락감과 정체성 불안의 서사 모델은 과거의 영광을 상상하는 서방 극우파와 유사하다. 즉, 현재의 곤경을 ‘타자’의 탓으로 돌릴 뿐, 정작 ‘방 안 코끼리(모두가 알지만 언급하지 않는 핵심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불만이 정체성이 될 뿐, 응답받지 못하는 시대

총체적으로 볼 때, 경제 성장과 분배라는 약속이 실현되기 어려워지자 직접적인 불만 표출은 억압됐고, 성과 기반의 통치 정당성은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서사가 불만을 달래기 위해 동원되고 있지만, 이는 도리어 새로운 형태의 불만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말았다.

새로운 불만은 질서 유지의 언어로 포장된 채, 체제에 반하는 정치적 행동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이러한 새로운 담론들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정서적 돌파구를 마련해 주고 있는데, 부정적 감정들이 ‘애국’이나 ‘강국’이라는 틀 안에서 분출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그 불만들이 제도 개혁이나 심도 있는 공적 토론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불만은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완충되지만, 정작 실제 제도 결함과 이익 분배 문제는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 결과 민중의 불만은 점점 더 ‘추상화’되고 내면화되며, 개혁의 가능성은 오히려 더욱 멀어지고 있다.

그 결과, 현재의 정치 생태계는 표면적인 감정 분출은 허용하면서도, 이러한 분출이 제도 차원의 논의로 이어지는 것은 차단한다. 비록 기득권 이데올로기가 대중 정서의 지향점을 재정의하려 시도하고 있으나, 그것이 더 공정한 분배와 더 많은 기회라는 본질적인 요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장기적이고도 침묵에 잠긴 불만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쌓이며 리스크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러한 불만을 실질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간 추상화되고 엉뚱한 곳으로 전이되었던 분노들은 결국 어떤 형체로 현실에 되돌아오겠는가? 아마 이는 '뺄셈'을 할 줄 모르는 이가 상상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닐 것이다.

글 : 양치윈

번역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