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14개월 남짓 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는 세계 곳곳에 개입하는 열전으로 점철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2022~)에서 ‘협상’의 주체로 나서왔을 뿐만 아니라, 가자 지구를 폭격하는 이스라엘의 우방국이며, 지난 1월에는 베네수엘라에 침공해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했고, 현 3월에는 중동 주둔 기지에 엄청난 수의 미군을 집결시킨 후 이란을 선제공격해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사살했다.
우리는 무역 전쟁뿐만 아니라 군사 전쟁을 기꺼이 협박의 카드로 사용하거나 외교 전술로 실행하는 미국의 노골성을 보고 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의 내정에 개입한 직후 “그린란드가 필요하다”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전세계가 미국이 지닌 군사력과 그 군사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미국 정부의 실행력을 현실적으로 우려하고 가늠하게 했다. 이 섬찟한 현실성, 뭔가 ‘진짜로’ 일어날 것 같은 공포스러운 긴장감은 그 자체로 거대한 진실을 시사하고 있다. 지금, 미국은 그야말로 군사 국가라는 사실을.
아니, “기지 국가”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른다. 미국은 지구의 어디에서 어떤 ‘분쟁’이 일어나건 그곳에서 가장 크게 발언하고, 가장 강력하게 개입하려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다’. 대체 그 실행력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미국이 그 어떤 국가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 군대를 전 세계에 상주시키고 있다. 미국의 그 현실화 가능한 군사력,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오만함, 오래된 패권주의는 해외 미군기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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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바인의 『기지국가』(유강은 역, 갈마바람, 2017)는 10여 년 전에 전 지구를 미국이라는 중심으로 끈끈하게 연결하는 미군기지의 역사와 현황을 조사해 다각적이고 비판적으로 논한다. 그가 2021년에 내린 최신 추정에 따르면, 미국은 최소 70여 개국에 750여 개의 미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자료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저자가 각종 문헌을 교차해 살펴보며 가장 최소로 추정한 결과이고, 2026년 현재 미국이 보유한 해외 군사기지는 어떤 쪽으로 변화하거나 첨단화되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래 우리가 목격하는 대부분의 전쟁에서 해외 미군기지는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드는 엄청난 인프라가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오늘의 전쟁들에서도.
미국 국방부와 펜타곤은 미군기지 관련 결정 사안과 문서, 회계 자료 대부분을 비밀에 부친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거나 한 국가의 민주주의를 박살 내고, 무기와 독극물 실험으로 섬 하나를 통째로 오염시키는 해외 주둔 미군 사안들이 민중의 논쟁은커녕 의회도 거치지 않고 소수의 고위직에 의해 결정된다. 저자는 각종 통계자료와 문헌 조사, 현장 취재, 지역민 및 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차마 다 파악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미군기지의 초상을 그려냈다. 이 초상은 선명한 고화질 사진은 아니다. 다만, 채색하기 전의 스케치처럼 덧선으로 가득하지만, 범인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한 화가의 몽타주와 같다. 미국이 무력과 군사주의로 세계의 ‘질서’를 부르짖는 지금, 데이비드 바인이 남한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군사 기지를 방문하고 취재해 그러모은montage 이 몽타주를 다 함께 읽고 싶다.
그러나, 『기지국가』는 현재 절판되어 도서관이나 중고 서점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읽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저자의 논지를 웬만하면 빠뜨리지 않고 요약하고, 중요한 부분은 길더라도 다량 인용하는 식으로 책을 충실히 소개하고자 한다. 논평은 그 뒤에 짧게 덧붙였다. 그 결과 일반적인 형식의 서평은 아니고 분량도 과하게 되었지만, 책에 접근하기 어려운 독자들에게 독서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나누기 위함이니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본문을 인용 및 참조한 부분은 괄호 안에 쪽수를 넣어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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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국가 Base Nation: How U.S. Military Bases Abroad Harm America and the World』를 쓴 미국 태생의 백인 남성 데이비드 바인(David Vine)은 정치인류학자 겸 작가로, 미국 군대의 기지, 군사주의, 평화 등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왔다. 그는 군사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으로 미국 사회와 역사를 탐구한 저작을 꾸준히 생산했다.
최근작인 『전쟁하는 미국: 콜럼버스부터 IS까지, 아메리카의 끝없는 분쟁의 국제사 The United States of War: A Global History of America's Endless Conflicts, from Columbus to the Islamic State』(2018)는 근대사에서 거의 끊기지 않고 지속 되어온, ‘상시화된 미국의 전쟁’을 역사화하여 미군기지의 폭력성을 제국주의가 태동하던 15세기로까지 연결해 냈다.
『쓰라린 섬: 디에고 가르시아 미군 기지의 숨겨진 역사Island of Shame: The Secret History of the U.S. Military Base on Diego Garcia』(2011)에선 미국이 영국과 합작해 인도양의 섬 디에고 가르시아에 해외 미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아무런 보상 없이 무력으로 선주민을 쫓아내고 빈곤과 망명 속에 가둬둔 역사를 문화인류학적으로 탐구했다. 그는 이를 통해 20세기의 냉전에서부터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21세기까지 언제나 ‘세계 안보’와 ‘자유민주주의’라는 명분을 위해 타국의 민주주의와 자결권을 파괴하고 기지로 착취해 온 미국의 제국성을 비판했다. 이처럼 미군기지의 역사와 권력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데이비드 바인은 『기지국가』의 부제를 “미국의 해외 군사 기지는 어떻게 미국과 세계에 해악을 끼치는가”로 지었다. 미국의 제국성, 군사주의, 가부장제가 체현된 미군기지의 “해악”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기지국가』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토대]에선 불투명한 해외 미군기지의 현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그 역사를 짚어본다. 다양한 자료를 비교 대조하고 직접 취재하며 전 세계 몇 개국에 몇 개의 미군기지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몇 명의 파견 미군이 있는지,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인지 통계적으로 추측한다. 바인이 책을 집필한 2015년 기준, 최소한의 최소한으로 가늠한 숫자는 70여 개국에 설립된 기지 800개(2021년에 750개로 수정)와 그곳에서 일하는 병력 수십만 명이 다. 마찬가지로 2015년 기준, 전 세계에서 해외 미군기지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는 1위 독일(174개), 2위 일본(113개), 3위 대한민국(83개)이었다.

1부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해외 주둔 기지'의 역사를 파고들어 가는 점이다. 과거 유럽의 열강들은 제국주의를 행사하며 확보한 식민지뿐만 아니라 앞으로 식민화하고 싶은 곳에도 작은 규모의 기지(camp or base)를 만들어두고서 점점 기지의 규모를 키우며 땅따먹기했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인도에, 프랑스는 아프리카에 기지를 두었다. 그리고, 미국 초기의 해외 군사기지는 주로 아메리카 대륙에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 북동부 지역의 최초 13개 주로 출발한 미국은 1785년부터 1875년까지의 100년간 서쪽 선주민들의 영토에 '해외 군사기지'를 차례차례 건설하면서 팽창했다.
"미국은 수백 개에 달하는 국경 요새 덕분에 서부로 팽창할 수 있었는데, 이 요새들은 당시에 명백히 해외인 땅에 세워진 것이었다. (…) 대륙을 가로지르는 정복을 완료한 뒤 미국이 건설한 기지들은 유럽계 미국인들의 계속되는 서부 이주를 보호하고, 아직 정복되지 않은 채 남아있던 소수의 인디언 부족들과 싸웠다."(45~48)
그렇게 제노사이드와 강제 이주를 통한 '서부 개척'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아메리카 대륙 본토의 미국의 땅이 구획되었다. '해외' 미군기지는 그렇게 '국내' 미군기지가 되는 방식으로 그 수가 줄어드는 듯했지만, 엄연한 타국의 땅에 군사기지를 먼저 진출시키는 전진 전략은 효과적이고 강력한 침략 방법으로 일반화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19세기부터 점차 류큐 등의 아시아 지역들도 전진 전략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한다. 가령, 페리 제독은 흑선으로 에도 막부(일본)와 류큐를 무력 개방하고 항구의 거류지를 차지했다.
나아가, 20세기 전반의 세계 양차 대전은 미국의 정계가 "방위"와 "국가 안보"라는 개념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에게 지구와 우주는 언제나 즉각 발동할 수 있는 군사력permanently mobilized force이 필수적인, "항구적인 위험에 처한 세계"가 됐다. "불안정하거나 위험한 요소는 아무리 작거나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것일지 몰라도 결정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었다."(59) 바인은 이를 두고 냉전이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이 미 미국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냉전의 정신 구조"라고 설명한다.(60)
두 차례의 전쟁은 이러한 미국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력을 허용했다. 세계 양차 대전에서 미국은 본토에서는 거의 싸우지 않고 연합군으로만 미군을 해외로 '파견'했기에 자연히 다양한 유럽 국가와 그들의 전쟁에 동원된 식민지에 엄청난 수의 기지를 만들 수 있었다. 즉, 미군이 타국에 주둔하는 것이 허용됐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요구되었다. "2차 대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미국은 해외에서 기지 2,000여 개와 군사시설 3만여 개를 관리했다. 세계 역사상 한 강대국이 가장 많은 기지를 보유한 것이다."(66) 미국의 군사기지 팽창은 거의 제약 받지 않았고, 미군은 종횡무진했다. 특히, 일본으로부터 직접 공격을 받아 국가 안보에 비상이 걸린 태평양전쟁 전후로 미국은 각종 섬을 기지화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했다. 미국은 폴리네시아의 섬들을 병참화하기 위해 주민들을 내쫓고 공군기지를 건설했고, 평화와 휴양의 섬으로 유명한 괌과 하와이도 비슷한 절차를 거쳐 오늘날까지 미국의 (그러나 미국 본토 ‘바깥’에 두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해외 미군기지와 같은 ‘장점’을 지닌) 기지 섬으로 복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군대뿐만 아니라 상업 항공사들을 끌어들여 상업-군사 계획을 실행했다. 이 미국 항공사들은 전쟁에 힘입어 오늘날까지 항공 시장에서 큰 지분을 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국제적으로 보장하고 강화해 준 2차 세계대전은 1945년에 종전되었다. 이제 미국은 수많은 해외 군사기지를 유지할 대외적인 명분을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 유엔이 창설되면서 탈식민화 과정,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자결권과 자치권이 중시되었다. 루스벨트를 비롯한 이들은 미국이 점차 미묘하고 신중한 수단을 통해 힘을 행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세계의 최대한 많은 지역을 미국에 유리한 경제·정치 체제의 규칙 안에 묶어두기 위해 정기적으로 군사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기지를 설치할 필요가 있었다."(61) 전후, 미군은 이제 열전이 아닌 다른 핑계로 세계에 행사할 군사력을 유지해야 했다. 미국은 세계 2차대전이 끝난 후 무장 해제된 '전범국'들에 특히 더 많은 미군기지를 세웠다. 그리하여 지금도 독일, 일본, 이탈리아엔 미군기지가 많다. 설치 이유는 물론 전범국의 군사력을 억제한다는 '세계평화'였다. 영국 등의 연합국에 일부를 남겨두는 명분은 '재건 지원'이었고 말이다.
전범국이 아니라고 해서 미군기지 설치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소련에 이어 중국이 공산주의를 채택하자 미국은 냉전의 논리를 획득했던 것이다. 전후 몇십 년간 유럽에서는 절반 정도의 미군기지가 철수했지만, 소련과 중국을 둘러싼 아시아 대륙과 태평양 섬나라들에는 미군기지가 새로이 설치됐다. 한반도의 6.25 전쟁(1950~1953)과 베트남전쟁(1955~1975)이 각 시기의 거대한 촉발제였다. 6.25 전쟁 중에 미국의 해외기지는 40% 늘었고, 베트남전쟁 중에는 20% 늘었다. 특히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이나 미군정의 신탁 통치를 받은 오키나와 조선 같은 다양한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가장 신경 써서 관리한 반공 라인이었다. 미국은 아시아를 넘어 중동에도 손을 뻗는다. 냉전이 지속되고, 이란혁명이 일어났으며,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1970년대 후반부터는 중동에도 더 많은 기지를 건설하며 자본주의 진영의 영향력을 모든 곳에서 점하고자 했다.
전후 30년간 기존 기지의 철수와 새로운 기지의 설치가 뒤섞였지만, 확실한 것은 이 시기에 철수하지 않은 미군기지들은 규모가 점점 커지고 영속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미군기지는 ‘전쟁이 일어날 때’와 같은 조건부 속에서 나타나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미군기지가 설치된 지역의 시민들에게도, 미국의 시민들에게도 말이다. 작은 막사에서 시작한 미군기지는 점점 커져 하나의 도시가 됐고, 한 지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빗장 공동체gated community가 됐다. 미국은 전후에 이르러 처음으로 미군을 파견할 때 미군의 가족을 같이 보내는 제도를 만들어낸다. 미군과 가족이 함께 오며, 즉 타국이 미국인들의 삶의 공간이 되면서, 미군기지는 작은 미국으로서 그 안에 “주택, 학교, 볼링장”, 버거킹과 PX, 미국식 클럽을 갖춘 곳이 된다. "이런 변화는 군과 국가 전체에 대해 심대한 함의를 갖는다. 리틀 아메리카 덕분에 평시에도 병력을 해외에 [장기] 주둔시키는 한편, ... 원래는 영구 점령으로 간주되었던 기지 주둔을 정당화하고 정상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84) 그렇게 점점 더 많이, 심지어 가족까지 데리고서 날아오는 미군이 쓰는 달러가 지역 경제의 모든 경제 관계를 재편하게 되자 지역민들의 반발은 의존성으로 바뀌었다. "요컨대 서유럽과 일본, 필리핀과 한국 곳곳에 리틀아메리카를 구축한 것은 기지 국가를 냉전 시기 삶의 항구적인 특징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나서도 곳곳에 남은 리틀아메리카와 그것이 의미하는 영구적인 전쟁은 사라지지 않았다."(85)
1부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전의 제국들은 직접 지배를 통해 식민화했다면, 미국은 기지 설치를 통해 신식민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미군기지를 원조나 세계 평화,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라는 기만으로 떡칠한 자본주의를 위한 과업으로 포장하면서 말이다. "미국의 해외기지들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힘을 움직이는 주요한 기제가 되었다. 미군이 [해외에서] 획득한 영토의 총면적은 작았을지 몰라도, 지구 거의 모든 곳에 신속하게 군대를 배치하는 능력을 얻었다는 점에서 볼 때, 기지 체계는 미국의 힘이 놀라울 정도로 확대되었다는 것을 나타냈다."(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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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발자국]은 미군기지를 설치하고 확대하고 영속화하는 모든 과정이 지역 공동체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 사례들을 깊이 있게 취재해 소개하고 있다. 2부에서 바인은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만난 사람과 장면을 묘사하며 현장을 문헌과 연구하는데, 마치 저널리스트처럼 섬세하고 깊이 있는 취재력을 보여준다. 특히 미국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빠르게 군사 개입하기 위해 집착했던 다양한 섬들의 사례가 충격적이다. 바인은 괌, 디에고가르시아, 오키나와,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파나마, 그린란드 등을 고루 다루는데, 특히 인도양의 차고스제도에서 영국의 식민지였던 섬이 미국에 넘어간 후 선주민들이 기지를 위해 어떠한 보상도 없이 폭력 속에서 강제 이주되었던 역사를 자세히 살핀다. 한국사에서도 여러 차례 목격했듯, 대부분의 미군기지는 들어서며 그전까지 살고 있던 사람들을 내쫓아 강제 이주시킨다. 미군기지 때문에 쫓겨난 이들이 자신들의 땅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사례는 거의 없다. "이런 태도를 보면, 아무리 새로운 가면을 쓰고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더라도 20세기와 21세기에 기지 국가 미국이 어떻게 식민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의존해왔는지가 드러난다. 어쨌든 2차 대전 이후... 많은 식민지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 미국 정부와 몇몇 유럽 동맹국은 대부분 섬인 소수의 작은 식민지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냈다."(139) 아메리카 선주민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해외 주둔 미군기지라는 장치는 그 안에 내재한 식민성을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이 식민성은 반민주주의, 민중을 향한 폭력, 그리고 가부장제와 깊이 결부되어 있다.
5장의 제목은 "독재자의 편을 들다"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미국은 기지 시설을 두는 나라에서 독재자(와 비민주적 정권)를 지지하는 일관된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각국의 "권위주의 통치자들이 자국 내에서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보장하고 연장하기 위해 종종 미군 기지의 존재를 활용해왔음을 보여준다.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나 한국의 독재자 이승만 ... 같은 몇몇 통치자들은 미군 기지를 이용해 미국 관리들에게서 경제원조를 끌어냈다. 그리고 국내의 지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 원조를 정치적 동맹자들과 함께 나눴다. 다른 통치자들은 미군 기지에 의존해 국제적 위신과 정당성을 강화하거나 국내의 정적에게 행사하는 폭력을 정당화했다. 한국 정부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 약 240명을 살해한 1980년의 광주 학살 이후, 독재자 전두환 장군은 공공연하게 미군 기지와 병력의 존재를 거론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암시했다."(157) 미군 기지라는 파이프를 통해, 미국은 자신의 자본주의 진영에 부역하는 국가의 고위 정치인과 군대 인사, 그리고 기업가들에게 통제와 보상을 흘려보낸다. "미국 정부 관리들은 세계 곳곳에 기지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잔혹한 반민주 정권들과 번번이 협력 관계를 맺었으며 광범위한 인권 학대의 증거를 무시했다."(141) 이러한 결탁은 지역민들을 향한 정치적인 탄압과 온갖 비리 계약, 노동자 착취로 점철되어 있다. 미군기지로 환유된 미국의 '패권'은 각국의 독재 정권과 결탁할 때 가장 강력하게 보장된다. 민주적인 사회, 지역 정치가 발달한 사회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설 틈이 별로 없고, 설령 들어선다 해도 강렬한 저항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재 정권은 국가 자본주의 형태를 채택해 자국의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미국의 부르주아지에 유리한 시장적 관계를 맺을 가능성도 높다.
데이비드 바인은 미군기지라는 렌즈를 통해 각국의 근대 정치사를 살펴보면서, 온두라스부터 키르기스스탄, 스페인, 필리핀, 이집트 등의 독재자 집권과 군사 쿠데타 사례들, 한국의 이승만의 독재 정권과 전두환의 광주 학살, 일본 우익의 매우 길었던 일당 체제, 심지어 이탈리아 남부의 마피아 범죄 조직을 연결한다. 특히 저자가 미군이 1980년대 이래로 "임시적이지만 무기한으로" 공군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온두라스의 소토카노에 취재하러 갔던 부분은 미군에게 수호받고 미군을 보호하는 권위주의 정부가 얼마나 반인권적일 수 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바인이 기지 앞의 미군기지 반대 평화 시위대를 관찰하던 중, 온두라스 군인과 경찰이 갑자기 시위대를 마구 구타하고 소총을 겨누었으며 최루탄을 터뜨렸다. 바인은 시위대와 함께 눈물을 쏟으며 하얀 연기로 뒤덮인 길거리를 내달려 도망쳤다.
이윽고 저자와 인권 활동가, 언론인들은 미군기지 바로 옆의 온두라스 공군사관학교 지휘관에게 기지에 들어가 미군 지휘관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물었지만, 그는 이곳에는 미군기지가 없다고 답했다. ""미군 기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온두라스 언론인 한 명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미군 시설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휘관은 잠시 눈을 감더니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나는 모릅니다.""(145) 지역민들에게, 미군기지는 결코 민주주의적인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예외의 존재로 남는다. 그러니 미군기지 감사나 통제도 어렵다. 지역민의 주거권 및 건강권과 결부되는 필수 적인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
국가 간 권력 위계뿐만 아니라 자본의 팽창으로 눈감아지는 군사 개입은 인종주의와 경제적 수탈이 모두 결부되어 일어난다. 전후 자체적인 코뮤니즘을 각성시키고 차례차례 민주 정권을 세우던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발걸음은 미국 펜타곤과 CIA의 개입으로 인해 전복되곤 했다. "1850년대 이래로 미국은 주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툭하면 군사개입을 해왔다. 온두라스에서는 여덟 차례(1903~1925년 사이)나 개입 또는 점령했다. 또한 미군은 가까이에 있는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아이티, 멕시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파나마 등지에서도 군사개입을 해왔으며, 어떤 경우에는 수십 년 동안 점령하기도 했다."(145~146)
데이비드 바인에 따르면,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의 자주성을 분열시켜 자본주의를 강제하며 어마어마한 자본을 축적했다. 농산물 사기업은 라틴아메리카의 공유지나 재분배되었던 농민의 사유지를 수탈해 바나나 같은 작물을 플랜테이션했다. 독재 정권은 농민들의 땅을 빼앗아 헐값에 미국 기업에 팔았고, 농민들은 숲을 없애고 만들어진 드넓은 농장에서 헐값에 일하는 프레카리아트가 됐다. 이러한 과정은 영국이 인도에 강제했던 경제적 식민화와 거의 비슷하다.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Dole, 치키타Chiquita 같은 대기업은 모두 라틴아메리카에서 자행된 군산복합체의 권력에 연루되어 있다. 그렇게 영속화된 라틴아메리카의 빈곤과 정치적 불안정함은 범죄와 마약을 암흑 시장으로서 끌어들였고, 이제 미국은 다시 라틴아메리카를 범죄의 온상이라며 징벌하 고 혐오한다.
7장의 제목 "독성 환경"이 보여주듯, 미군기지는 또한 환경과 신체에 유독하다. 7장은 미군이 해외기지에서, 그리고 전쟁을 치르고 난 지역에서 언제나 유독 물질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땅, 바다, 강에 버린 사례를 정리해 비판한다. 각종 오염을 초래하는 무기/전투기 연료, 고엽제, 포탄 잔해가 발견된 다양한 지역명이 지면을 채우는데, 이중 용산을 비롯한 한반도 곳곳의 지역들도 있다. 바인은 발굴된 증거물뿐만 아니라 의학적 통계 자료도 꼼꼼히 동원하는데, 공통적으로 미군기지가 설치되어있거나 과거 설치되었던 지역의 주민들은 암 발병률이 평균보다 훨씬 높다. "암에 걸린 친척 이름을 줄줄 읊을 수 있는 차모르인들이 얼마나 많은지"만 알게 되어도 미군기지의 해악은 경악스러운데, 통계에 반영되지 않은 동식물의 멸종과 변형까지 포함해 알 수 있다면 현실은 더욱더 끔찍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치료와 정화에 드는 비용은 모두 기지가 설치되었던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데, 정부가 이를 제대로 해결하려 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현재 또는 과거의 식민지에 미군 기지가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은 기지가 야기하는 환경 피해를 우리가 공평하게 나눠갖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 - 가령 북마리아나제도와 괌의 차모로인들 - 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불우하고 주변화된 집단과 원주민, 빈민, 비서구 유색인이다. 물론 이탈리아, 독일, 영국, 기타 유럽권의 기지도 환경 피해를 야기한다. 하지만 군은 일부 기지를 서유럽에서 동유럽과 아프리카, 기 타 지역의 가난한 나라들로 이전하는 데 점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나라들의 환경 법규가 미비하기 때문이다."(208)
2010년 이래 소규모 미군기지(일명 연잎, lily pad)가 많이 건설되는 곳은 중앙아시아, 그리고 특히 아프리카 대륙이다. 본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함께 묶어 관리하던 펜타곤에 '아프리카사령부'가 신설되었고, 이 부서에서 아프리카 "현지에서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기지를 확장하고 있다".(418) 이 "릴리패드는 군사적 지배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이 기지들은 수용국에 광범위한 군사적 수단과 활동을 도입하는 일종의 뒷문이다. (…) 릴리패드는 대체로 접촉과 교섭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국과 외국의 군대 사이에 유대를 증진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 군사훈련과 더 나아가 무기 판매와 그 이상의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 이 관계의 위계적 성격은 분명하다. 설령 외국 군대가 대리 군대는 아닐지라도 결국에는 최소한 미군의 기능적 부속물이나 확장체로 전락한다. 실제로 목표는 점차 "외국 군대"가 대부분의 전투를 담당하게 만드는 것이며, 릴리패드는 다른 나라 군대를 그런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몇 가지 도구 중 하나가 되고 있다."(427)
미군이 괜히 소규모 미군기지에 릴리패드라는 이름을 지은 게 아니다. 릴리패드, 그러니까 연잎은 개구리가 호수를 건널 때 밟아 뛰고 더 멀리 도약할 수 있는 판이다. 미군은 지역민들의 거센 항의를 피해가면서도 앞일을 도모하기 위한 편리한 방편(미군기지는 언제나 한번 들어서면 끝없이 더 커질 수 있다)으로 릴리패드를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최대한 많은 나라에 소규모 기지를 건설하는 전략은 부패하고 잔인한 수많은 독재 정권과의 협력을 보장하기 때문에 특히 위험하다. (…) 릴리패드의 확산은 지구 곳곳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군사화를 가속화시킬 뿐이다. 수생 잡초인 연꽃과 마찬가지로, 대개 기지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만들어진다. 기지는 기지를 낳고 다른 나라들과 "기지 구축 경쟁"을 야기하기 십상이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분쟁의 외교적 해결을 가로막는다."(430~431) 이런 상황 속에서,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분쟁은 릴리패드가 대규모 미군기지로 성장할 기회로만 파악된다. 미군기지가 커진다는 뜻은 미국이 해당 지역에 무력으로나 정치, 경제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보장된다는 뜻이다. 전쟁은 포식자 미국을 위해 차려진 하나의 시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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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는 [노동]이다. 미군기지 안에서 미군과 함께 파견된 가족이 어떤 군사적 노동을 함께 수행하는지부터 시작해, 미군기지에서 조리/청소/운송 등을 맡기려고 계약한 위주 업체에 고용되어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현황(여기서 교차하는 계급과 인종, 국적), 그리고 미군기지가 설치된 '기지촌'을 통째로 부양하는 거대한 성산업에 종사하는 성노동자 여성들의 이야 기까지 담고 있다. "섹스를 팝니다"가 제목인 9장의 많은 분량은 남한 취재기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독재 정부가 어떻게 미군이 소비하는 달러를 벌어들이려고 성매매를 사실상 합법화하며 자국 여성들의 신체를 착취했는지 설명되어 있다. 정부가 포주인 나라에서, 여성들은 빈곤으로, 혹은 납치나 인신매매로 유해한 가부장 자본주의 속에 붙들리게 되었다. 지금도 군사기지 앞에는 성매매 업소가 계속 운영되고 있고, 아무런 규제가 없다. 그 속에서는 한국인 여성의 일부가 필리핀이나 러시아 출신 여성들로 충원된 채 고리대금과 결부된 착취가 반복된다.
이러한 여성혐오의 구조를 좀 더 확장해 살펴보는 10장 "군사화된 남성성"은 군사주의의 뿌리에 있는 가부장주의를 잘 분석해 낸다. 유해한 ‘군인 남성성’은 군사기지가 설치된 타국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미군기지 안에서 함께 일하는 여성 미군이나 미군 가족 구성원 중 여성들에게 엄청난 강도와 빈도의 성폭력과 혐오를 가한다. 물론 여성혐오는 퀴어혐오 및 남성 간 성폭력과 함께 간다. 이러한 혐오는 기지촌의 성산업과 함께 악순환하는데, 바인의 취재는 "제도화된 기지촌 섹스의 세계가 어떻게 남성 군인들이 남자로서의 정체성과 행동을 체득하는 데 이바지하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군대가 작동하도록 돕는지"를 잘 보여준다.(253) 페미니즘과 퀴어운동이 평화운동, 반전주의, 반군사주의와 함께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1장 "계산서"는 미군기지가 지역 경제를 성장시킨다거나 미국이 미군의 군사력을 통해 타국을 '지원'하고 '원조'한다는 신화를 조목 조목 반박한다. 해외 미군기지는 미국에게나 기지가 설치된 타국에게나 돈을 먹는 하마다. 미국은 해외기지에 돈을 많이 쓴다. 먼 데에 비싼 군사 시설을 짓고, 새 장비를 사들이고, 짐을 지속적으로 운송하고, 군인의 월급뿐만 아니라 군인 가족들의 복지를 챙겨야 한다. 그러나, 그러는 데 쓰이는 비용은 지역 경제나 노동자의 소득에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바인은 자국(미국) 독자들에게 해외기지를 축소할 것을 역설하기 위해 해외기지에 얼마나 많은 혈세가 낭비되는지를 계산하는 데에 분량을 좀 더 할애하지만, 기지가 설치된 수용국도 돈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는 않는다. 미군기지가 설치된 나라는 미국의 시설 건립비를 지원하고, 땅을 거의 무상으로 바치고, 지역민들을 이주시키는 비용을 대고, 기지 주변 주택의 방음 비용을 지출하고, 미군이 저지른 범죄 피해 보상금을 지급하고, 환경오염의 대가를 지역민의 목숨과 대지와 공기와 물로 먼저 치른 후, 뒤늦게 정화하는 데에 돈을 또 쏟아붓는다.
"미국인들은 수백, 수천억 달러의 비용에서부터 계량화할 수 없는 인적 비용에 이르기까지 전부 부담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런 질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이 모든 지출에서 이득을 얻는 것은 누구인가?"(293) 바인은 12장 "우리는 전쟁 모리배입니다"에서 미군기지를 군산복합체로 파악해 낸다. 그는 펜타곤이 "해외 계약"으로 어물쩡 표현한 기업을 목록화했다. 전부 초국적기업인 상위 25개사 중 익명화된 '기타'라고 적힌 각종 해외 계약업체를 제외하면 1위는 건물 공사부터 청소까지 각종 기지의 주문을 받는 켈로그브라운앤드루트KBR이라는 기 업이고, 8위가 브리티시석유BP, 11위가 SK주식회사, 19위가 쌍용의 S오일, 23위가 GS/LG 칼텍스다. 이들이 세계 곳곳의 미군기지가 주는 일을 수행하면서 몇십에서 몇백억 달러에 이르는 금액을 벌어들인다. 주요 계약 체결업체에는 석유회사가 많고, 대한민국 기업은 무려 3자리나 차지하고 있다. 이들 기업에 미군기지와 전쟁은 거액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다.
펜타곤은 예산을 전부 공개하지도 않으면서 매해 작년보다 더 많은 돈을 대기업에 뿌려대며 '일'을 준다.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흐름 속에 놓인 다른 부서들과 달리, 미국 국방비의 예산은 거의 줄어들지 않고 매년 늘어나기만 한다. (국방비 예산만 증액이 되는 경향은 대한민국도 비슷하다) 이러한 군산복합체 덕분에 미군기지는 더 많은 곳에 세워지고 유지될 수 있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계약을 맺는 주요 업체들은 심각한 부정부패 지수를 보인다. 거대한 자본이 오가는 비리와 로비가 다시금 민주적인 정치 의사 결정을 방해한다. "계약업체들은 기지 도급 계약에 영향을 미치려고 불법을 동원할 뿐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선거 운동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한다. (…) 이 기부금은 대부분 상원과 하원의 에산위원회와 군사위원회 위원들에게 돌아갔다. (…) 10대 군사 계약업체가 2001년 한 해에만 로비에 지출한 비용은 모두 합해 3,200백만 달러를 넘었다. 한편 많은 계약업체들은 국민 세금으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면서도 수익에 맺겨지는 세금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갖 합법적, 불법적 수단을 동원한다."(312~313)
뿐만 아니라, 앞선 3장에서 이미 온갖 시설이 갖춰진 기지를 두고 뭐든 '더 필요하다'며 비합리적인 이유를 대어 고집을 부려서 더 많은 타국의 땅을 받아내고 또 기지를 만들어 돈을 두 번씩 쓰는 사례들을 보고 있자면 미군기지를 통해 오가는 자본의 거대함과 그 강력함을 알 수 있다. 바인은 수많은 해외 미군기지를 "자기충족적인 기구"라고 정리한다. 바인이 한 회의에서 직접 목격한 대화는 다음과 같다. "(…) 이렇게 물었다. 미국과 나토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뒤에 "평화가 정착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엘리어트 소령이 대답했다. "그런 일이 없어야죠!""(317)
바인은 11장과 12장, 그리고 13장까지 걸쳐 얼마나 많은 세금이 제대로 된 곳에 쓰이지 않고 낭비되고 있는지 추정 계산하고, 그런 낭비액이 부정부패와 범죄로 흘러가 민주주의를 침해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돈의 흐름은 바인이 비판한 "낭비"일 뿐만 아니라 펜타곤이 전 세계의 대기업을 대상으로 자신을 씀씀이 큰 고용주 혹은 놓쳐서는 안 되는 소비자로 위치시키려는 의도적인 지출인 것 같다. 자본주의 속에서 권력을 차지하려면 언제나 돈을 주는 쪽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어마어마한 펜타곤과 미 국방부의 지출 덕분에, 전세계의 대기업은 미국의 군사적 결정에 협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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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5부 [선택]은 해외 미군기지의 운영 자들이 인종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시각으로 타국의 지역민들을 깔보는 것을 직접 목격한 바인의 경험담으로 시작한다. 미군기지의 운영자들은 곧잘 지역민이 미국으로부터 '수혜를 받는' 의존적인 바보들로, 자신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등 시민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14장의 제목 "갈취의 대가들"은 미군 간부가 지역민을 이르는 발언에서 따왔다. 하지만, 바인은 이 표현을 거꾸로 돌려준다. "갈취의 대가들"은 미군/미국이다. "독일, 미국, 기타 나라에서 기지가 미치는 경제적 영향에 관한 연구를 보면, 기지의 경제적 이익은 예상과 달리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그 이익의 대부분을 독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소수의 개인과 산업이며, 사람들은 기지의 순수한 경제적 효과를 상당히 감소시키는 다양한 기지 관련 비용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기지는 비효율적인 경제 투자다. 실제로 기지는 종종 좀 더 생산적이고 수익성 좋은 경제활동을 방해한다."(386) 실제로, 그 '미군기지의 수혜'를 몰아받은 오키나와는 지금까지 일본의 모든 현 중에서 실업률은 가장 높고 경제력은 가장 낮은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현지 지역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해외기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당연히 외국인이다 - 따라서 기지는 여기저기 차지하고 있는 규모에 비해 훨씬 적은 일자리를 제공한다. (…) [각종 인프라가 갖춰진] 기지에서는 병역과 군인 가족들이 거의 기지를 떠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그들이 쓰는 돈은 전혀 지역 경제로 돌아가지 않는다."(387) 기지를 건설하며 미군의 돈을 받는 회사도 그 지역의 중소기업이 아니라 대부분 미국이나 다른 대도시에 본사 를 두는 대기업들이다.
게다가 미군들은 지역 부동산의 평균가를 올리며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지역민의 주거권을 앗아간다. 부동산 소유자들은 미군들의 유입으로 더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있으며, 매달 군대에서 월급과 함께 주거 수당을 꼬박꼬박 받아 안정적으로 월세를 낼 수 있는 미군을 노골적으로 선호한다. "(…) 미국인들이 임차료를 더 많이 내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인을 겨냥한 주택과 주거를 계획하고 건설하기 시작했다" (…) "어떤 지역에서는 거리 전체나 신축 공사 단지 전체가 미국인들에게 임대된다." 그 결과 현지 임차인들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 때문에 자기 동네에서 밀려나기 일쑤다."(388~389) 미군기지에 강하게 찬성하는 '지역 사업가'들은 포주거나, 택시 운전사다.
그러나, 이러한 진실은 은폐되기 일쑤다. 각종 언론은 미군기지가 축소되면 '기지촌'의 서민들이 굶어 죽는 것처럼 보도한다. 미군기지는 자신이 지역 경제를 살린다고 선전하고, 그래서 슬프게도 가장 착취당하고 있는 지역민과 지역 정치에 의해 지지받기도 한다.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부지를 거의 무상으로 점령하고 있는 기지가 사라지면, 공유지를 비롯한 공간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기지 안팎에서 얻을 수 있는 일자리보다 좋은 일자리, 특히 여성에게 좋은 일자리들이 등장"한다. "2003~2007년에 독일의 298개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진 독일군의 기지 폐쇄에 관한 최근의 연구를 보면, "기지 폐쇄의 부정적인 영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 보고서를 쓴 연구자들은 지역사회가 예전 기지를 병원, 관광명소 같은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 기지 폐쇄의 부정적인 영향이 상쇄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 의회조사국의 한 연구에서는 실제로 기지가 폐쇄된 지역사회의 실업률이 전국 평균에 비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이 연구에 따르면, 기지 폐쇄는 불과 2년 만에 고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39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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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 17장의 제목은 "진정한 안보"다. 바인은 미군기지가 평화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다는 선전 속에 "진정한 안보"는 없다고 비판한다. 오히려, 미국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곳에 미군기지를 설치함으로써 실질적인 군사적인 위협과 긴장도를 올리면 실제 전쟁이 벌어질 확률이 폭증한다. 미군기지는 자신의 필요와 존재 이유를 결정된 미래를 불러옴으로써 확인하는 자기예언적인 군사시설이다. 냉전기에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열전이 벌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소련 주변에 미군기지가 설치되어서가 아니었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기지를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카에다가 신병을 모집하는 주요한 수단이자 오사마 빈라덴이 공언한 9.11 공격의 동기 중 하나였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이 중동에 보유한 기지와 병력은 "반미주의와 급진화를 낳은 주된 촉매"였으며, 미군 기지의 존재와 알카에다의 신병 모집 사이에는 강력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441~443) 그리고 9·11 이후에는 미국이 선언한 "전 세계적인 "대테러 전쟁" 덕분에 미군은 훨씬 더 먼 곳까지 진출했고, 그 결과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병력과 시설을 두게 되었다."(443) 특히 이 시기에 펜타곤이나 정치인뿐만 아니라 미국 대중들 사이에서도 군사주의의 일반화가 확산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북한과 남한의 대결은 또다른 유용한 사례다. 미군의 대규모 해외 주둔에 찬성하는 이들은 종종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있는 미군이 북한의 남한 공격을 억지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군의 한국 주둔 때문에 엄밀하게 말해 끝난 적이 없는 전쟁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이 주장 역시 설득력을 갖는다.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세계 최강의 군대를 코앞에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국의 군사력-과 핵 역량-을 증강하는 게 타당하다. 중국으로서도 북한이 붕괴해 한반도가 통일되면-이미 아시아 대륙 본토에 있는-수만 명의 미군이 중국 국경에 가까이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므로, 북한을 지원할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미군기지는 평화를 유지하고 한반도를 안전하게 만들기보다는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기여할지 모른다. ... 실제로 전쟁 상태를 유지하는 것, 즉 한국과 더 나아가 아시아 대륙에 병력과 기지를 유지하는 정당한 근거를 만들어내는 것이 일부 미국 관리들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이익에 부합한다는 합리적인 주장이 있다."(440~441)
미국이라는 "한 강대국을 안심시키는 기지가 다른 강대국에게는 위협으로 여겨질 수 있다. 아무리 평화 보장과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수사를 앞세운다 해도 해외기지는 위협하기 위한 것이다. 이 기지들은 힘과 우위를 과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힘과 우위를 과시한다고 해서 미국이나 세계가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지거나 안정을 얻지는 못한다."(448) "해외기지는 오히려 여러 면에서 국가 안보에 해를 끼쳤다. 해외기지 덕분에 해외에서 전쟁을 벌이는 게 더 쉬워지면서 미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대외 정책 수단 가운데 군사행동이 훨씬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고, 따라서 전쟁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대외 정책 도구함 속에 오직 망치만 들어있다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449~450)
바인은 책의 끝에서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해외 주둔 군사시설을 금지하자는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은 현재의 상대적 힘의 우위를 활용해, 해외기지 신설 조건을 엄격히 규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국제적으로 해외기지를 금지하자고 제안하고 협상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455) 미국의 해외기지는 "예산 감축의 시대 속에서" 더 빠르게 동의받아 축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인다. 또, 민주주의가 있다는 나라들에서도 늘 미군 기지에 대한 협정은 거의 언제나 기밀이 되어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회는 투명성과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주둔군 지위 협정과 기지 협정을 전문 공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다수의 기지 주둔 협정이 애초에 의회의 감독을 받지 않는 행정협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지 협정은 사실상 조약이며,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455)
길고 꼼꼼한 전 세계 미군기지의 현황과 분석, 비판을 거쳐 나온 바인의 제언은 약간 아쉽다. 우선, 바인은 '예산 감축의 시대' 즉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타국의 정치와 지역이 미군기지를 '긍정적인 것'으로 위치시키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가 해외 미군기지를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기류라고 보는 것은 오류다. 오히려, 신자유주의는 군사주의와 매우 친화적이다. 신자유주의는 블랙워터 같은 용병 회사에 '전쟁'을 민간화하는 경향을 엄청나게 확대했다. 게다가 지금 미국은 드론이나 로봇, AI 첨단기술을 판매하는 민간 기업에 외주를 맡겨 '더 싸게', '민영화라는 최고 효율로', '(미군만) 아무도 죽지 않게' 전쟁하고 있지 않나. 한마디로, 정부의 지출이 긴축돼 해외 미군 기지가 줄어든다고 해서 전쟁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정부의 긴축 정책을 종용하는 신자유주의는 미국이 패권을 독점하기 위해 '더 쉽게', '더 싸게', '더 효율적으로' ‘가성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돕는다. 해외 주둔 기지의 개수만 줄이는 데에 집중하면 이러한 오류가 생긴다. 예산 감축이라는 자유주의의 틀이 아니라 반전주의의 틀로 바라보고 제언해야 이런 오류가 생기지 않는다.
또, 미국이 현재 지닌 상대적 우위를 활용하자는 의견은 현실적일 수는 있으나, 온당하진 않다. 물론 해외 미군기지에 대한 결정권을 결코 지역민과 나누지 않고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미국이 먼저 해외기지 철폐와 금지를 주장한다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될지 모른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에 반대했던 반전운동과 같은 각성이 미국 내부에서 터져 나오려면 미국의 정치인과 민중이 당연한 듯 전제해 온 미국의 상대적 우위, 즉 미국의 ‘패권’을 내재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힘의 우위를 활용하는 대신 폐기해야 한다.
바인이 지적했듯, 9·11 테러의 핵심 배경 중에는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마구잡이로 확대해온 미군기지와 그것이 환유하는 군사적 위협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설치해온 미군기지와 군사적 공작에 대한 미 정부의 은폐, 그리고 미국의 패권을 당연한 듯 상정하는 대중적 무지가 맞물려 미국은 스스로를 순진무구한 피해자로 위치시켰다. 그렇게 많은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9·11 테러는 회복이 아닌 파괴의 맥락 속에 트라우마로 자리잡았다. 반전주의의 각성은 저 멀리로 물러나고, “악의 축”(Axis of evil, 조지 W. 부시가 지목한 세 국가 - 이란, 이라크, 북한)을 향한 경제적, 무력 보복과 미국의 전세계적인 군사 패권 강화가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지금 미국에게 군사적인 권력이 있다면, 문제는 그 권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권력을 어떻게 폐기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러한 내재적 각성은 많은 전쟁과 폭력의 배후에 있는 미군기지에 대한 앎을 통해 가능하다.
게다가 바인이 책의 중간중간 계속 등장시켰고 강조했듯, 미군기지가 건설되는 곳에서는 대부분 풀뿌리 저항 운동이 일어나고, 기지가 사라질 때까지 지속된다. 그러한 시민사회의 정치는 그 나라의 정부가 미국과 맺은 위계적인 관계 속에서 일방적인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좌절된다. 미국의 '상대적 우위', 그러니까 '위계'는 결코 미군기지가 주둔한 해외 정부를 '해방'해 주거나 그곳의 시민사회를 '도와줄'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논의는 작금의 미국이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침공한 전범의 논리에 가까워질 위험이 있다. 미국의 의회가 군사적 결정을 제대로 논의하고 공개하는 민주주의의 장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미군기지가 설치되어있는 타국의 민주주의도 지켜져야 한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해외에 주둔한 미군기지들은 온전히, 또한 온당히 철수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상대적 우위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한다.
결국, 바인이 조금 더 평화주의 및 반전주의의 이상과 자본주의 비판을 공부해 함께 제시했다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철저하고 광범위한 자료조사와 목숨을 건 취재는 이 책의 강점이다. 하지만, 바닥까지 기꺼이 고개를 처박고 현실의 중력을 꼼꼼히 살펴보는 만큼, 그것을 비판하고 타개하고 위로 뛰어오르려는 근력도 필요하다. 바인은 분명 해외 미군기지를 노동, 젠더, 환경, 민주주의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성실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마지막의 제언은 반전주의와 반자본주의라는 근육이 부족해 현실의 중력에 약간 '굴복한 듯한' 내용들로 짧게 채워졌다. 해외 미군기지가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 '식민지화'로 시작해, 양차 대전 이후 냉전을 거치며 '가부장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꽃피웠다는 사실, 그게 바로 미군기지 반대 운동이 포스트콜로니얼 운동이자 반자본주의 운동, 그리고 페미니즘 운동이기도 해야 하는 이유다. 이 모든 운동을 통해서야만 미군기지가 철수되고, 나아가 모든 전쟁이 종식될 수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남성이 의무적으로 군에 복무해 살상 기술을 습득하고, 전국 곳곳에 미군기지가 있고, 북한 대 남한 사이 ‘국가 안보’의 의제가 매일 보도되는 국가에 살고 있는 나에게, 『기지국가』를 읽은 일은 만족스럽고도 감사한 일이다. 『기지국가』는 ‘주적인 북한’과의 대치, 그리고 미군기지 유치를 통해서만 ‘한반도 평화’를 논하는 남한의 빈곤하고도 오래된 상상력에 균열을 내기 때문이다. 미국만큼이나, 남한은 실제로 종전된 적 없는 6.25라는 ‘항시적인 전쟁’을 상상하며 살고 있다. 남한에서만큼 미군기지를 평화와 국가 안보를 위한 필수적인 인프라로 긍정하는 국가는 흔치 않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성 속에서 한반도가 지금껏 80여 군데의 미군기지를 위해 지역민의 땅을, 자연환경을, 여성을, 민주주의를 대가로 치르고 돌아온 결과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작년 6월,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습하며 시작된 ‘12일 전쟁’을 위해서 주한미군에 격납 되어있던 패트리엇(patriot, ‘애국자’라는 이름이 붙은 미국의 지대공 미사일) 포대 두 대가 중동으로 반출되었다. 그리고 지난 12월 중순, 오산 미군기지에 보관되어 있던 유도폭탄 키트 1,000여 개가 미국 본토의 공 군 기지로 반출되었다. 얼마 전 3월 3일에는 경북 성주의 미군기지에 보유되어 있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발사대 6대가 전부 반출되었다. 이란 폭격을 위해 남한의 대기업과 미군기지가 협력하고 있다. 이 사태 앞에서 어떤 이들은 국산 방위 산업의 수익성을 따지고, 어떤 이들은 미군기지의 격납고가 텅텅 비니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가 흔들린다고 불평을 터뜨린다. 미군기지는 ‘평화’라는 말의 뜻을 정반대로 바꾸어버렸다. 미군기지를 통해 성취할 수 있다는 ‘평화’, 그것은 얼마나 많은 인간을 빠르게 죽일 수 있는가의 ‘살상력’이다. 세계 곳곳의 미군기지에 보관된 무기와 병력은 전쟁을 위한 재고 창고가 된다. 어디에서 전쟁이 일어나건, 그 근처에는 인력과 무기를 곧바로 공급해 주는 인프라가 있다. 미군기지라는 전쟁의 인프라가.
팔레스타인부터 베네수엘라를 거쳐 이란까지, ‘먼’ 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학살은 폐허가 된 거주지,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참혹한 시체, 떨어진 미사일의 파편, 묘비석도 아직 못 세운 공동묘지의 이미지만 지니고 있지 않다. 이란의 전쟁은 남한 곳곳의 미군기지에서 출입문을 바쁘게 드나드는 차들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란의 전쟁은 오산에서 공군으로 복무했던 내 오빠들이 찍힌 단체 사진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란의 전쟁은 스마트폰 지도 앱을 켜보면 가끔 눈에 들어오는, 글씨 없이 단색으로 매워진 불투명한 색면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스펙타클할 것도 충격적일 것도 없는, 그 이미 너무나도 흔해진 이미지. 『기지국가』는 우리 도처에 널린 전쟁의 이미지를 응시하게 한 다. 한반도에 미군 기지 개수만큼의 전쟁이 있다. 그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선전과 달리, 미군기지는 평화를 지키지 않고, 평화를 깬다.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베네수엘라, 그린란드,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의 교전 지역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하지만 미국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몇 년씩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이면에는 미국이 이처럼 광대한 기지 국가라는 사실이 존재한다."(76)

글 : 김선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