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쿠데타 5년 | 내전의 교착과 한국 사회운동의 연대

미얀마 쿠데타 5년 | 내전의 교착과 한국 사회운동의 연대

현재 미얀마 군부가 가하는 폭력과 시민불복종 운동의 저항은 이미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막막한 상황에서 우리가 지속할 수 있는 실천적 연대는 무엇일까?

2026년 2월 8일

[동아시아]미얀마미얀마, 쿠데타, 대중시위, 국제연대, 포스코

최근 미얀마 상황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지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21년 2월 1일 새벽 5시, 미얀마 수도 네피도(နေပြည်တော်, Naypyidaw)에서는 군부 장갑자 수십 대가 정부 청사로 돌진했다. 군부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 정부 및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정부의 고위 인사들을 기습적으로 체포하고 가택 연금했다. 이날은 2020년 11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NLD가 주도하는 새 의회가 개원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이튿날부터 미얀마 시민들은 전면적인 저항을 시작했다. 늦은 밤 냄비를 두드리며 자발적인 항의 행동을 조직했고, 이어서 ‘시민불복종’을 선포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노동자 총파업이 조직됐고, 미얀마에서 가장 큰 도시에선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과 노동자들의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미얀마의 핵심 산업 중 하나인 의류봉제 하청 공장들이 몰려 있는 양곤(မဟာရန်ကုန်, Yangon) 외곽 공단 지대에서 파업 투쟁이 도드라졌다.

그러나 이후 군부는 무자비한 학살로 대응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군부의 총칼에 목숨을 잃거나, 체포됐다. 2026년 1월 23일 기준, 3만323명이 체포됐고, 7,705명이 살해됐다. 라카인(Rakhine), 카친(Kachin), 샨(Shan)주 등 전국 각지에서는 군부와 시민방위군, 각지 소수민족 반군 간 전투가 지속되고 있다. 군부는 미얀마 국토 전역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며,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2023년 10월 ‘삼형제 동맹’(라카인족의 아라칸군, 따앙족의 따앙 민족해방군, 코캉족의 미얀마 민족민주동맹군까지 세 개의 소수민족 반군이 2021년부터 결성한 군사 동맹)의 대반격 이후 군부는 위기에 빠졌었다. 2024년 8월까지 10개월 간 지속된 병력 손실로 인해 군부는 반격 작전을 펼칠 수 없는 상태가 됐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 6~8만 명의 미얀마 시민을 강제 징병했다. 이를 통해 2025년 한 해 군부는 제한적인 반격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고, 몇몇 지역에서는 기존의 병사들에게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하기도 했다.

2025년 7월 군부 소속 군인들이 나웅키오 마을을 점령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5년 7월 군부 소속 군인들이 나웅키오 마을을 점령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미얀마 내 군부-반군 간 무력 충돌은 광범위한 전략적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군부는 일부나마 영토를 탈환하기 시작했고, 대규모 탈영 사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관측되고 있다. 시민방위군, 소수민족 반군, 그밖의 다양한 저항군 부대들로 나뉜 반군부 세력은 북부와 동부, 서부에 걸쳐 넓은 영토를 장악하고 있지만, 군부는 계속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으며, 무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연료, 돈, 산업 자재 공급 역시 유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소위 ‘해방 지역’의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 미얀마는 군부의 권력 유지 시도와 저항군의 공세가 맞물려 극도의 혼란 상태에 있다. 군부 정권은 2025년 12월 28일과 2026년 1월 11일, 두 차례에 걸쳐 총선을 강행했다. 군부는 투표율이 50%를 넘었다고 주장하며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지만, 시민불복종 운동을 기반으로 한 저항 세력은 이를 "민주주의를 참칭한 사기극"으로 규정하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선거 기간 중에도 사가잉(Sagaing)과 마구에(Magway) 지역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군부는 지상전에서 지속적으로 영토를 잃었다. 현재 미얀마 전체 영토의 약 21%만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군부는 사가잉, 라카인, 친(Chin) 주 등에 무차별적인 공습을 가하고 있다. 지난 12월 말, 라카인주 탄드웨(Thandwe) 공습으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민간인 9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물가가 폭등하면서 미얀마의 민생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또한, 군부는 태국 국경 지대의 '범죄 단지(KK Park 등)'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온라인 사기 범죄 집단과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유엔은 현재 미얀마 내 실향민이 36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한국에서의 연대 5년

쿠데타 이후 한국 시민사회는 곧바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적극적인 국제연대 활동을 펼쳤다. 기자회견과 릴레이 1인 시위, 주한 미얀마 대사관과 무관부 앞 집회 등 할 수 있는 모든 행동들을 조직했다. 이 과정에서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및 유학생들과의 연대는 더욱 긴밀해졌다. 한국 내에는 5만여 명의 미얀마 이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다양한 이주민 공동체들이 이 투쟁들을 주도했다.

재한 미얀마 이주민 상황
재한 미얀마 이주민 상황

한국 내에서 미얀마 상황에 대한 연대는 '민주주의의 경험을 공유한 공동체'라는 유사상 찾기에서 시작됐다.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혹은 그 역사적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 시민들에게 미얀마 쿠데타와 학살 소식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닌, 아픈 과거를 비추는 거울처럼 여겨졌다. 광주 민중항쟁 유관 단체들과 시민사회는 "우리가 광주에서 고립되었을 때 세계의 연대를 갈구했던 것처럼, 지금은 우리가 미얀마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부채감을 연대의 동력으로 고양시키고자 시도했고, 미얀마 시민불복종 운동은 한국의 민주화운동과의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나누는 서사로 재구성됐다.

실제 두 나라 민중운동의 역사는 ‘군부에 의한 민주주의 위협’에 맞선다는 점 외에는 그리 닮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종결과 함께 영국과 일본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미얀마는 곧바로 여러 민족들 간 연방제 민주주의 합의를 이뤘지만, 이 약속은 쉽게 무시됐다. 20세기 내내 미얀마 민중을 괴롭힌 모순은 군부 독재만이 아니라, 버마족 엘리트에 의한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도 존재했다. 이는 이른바 ‘민주세력’이라 불리는 NLD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힝야 사태에서 당시 NLD 정부가 취한 미적지근하고 다소 동조하는 듯한 태도가 이를 방증한다. 더구나 지금의 미얀마 상황은 인도양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과 미중 패권 대결, 에너지 채굴권을 둘러싼 쟁투 등 복잡한 문제들이 함께 얽혀 있기 때문에 훨씬 해소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시혜적 시선이 전제된 ‘민주주의 선배’ 흉내는 미얀마인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연대도 때때로 좋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실제 한국-미얀마 연대는 군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실천을 도모하고자 했다. 가령 민주노총은 미얀마의 철도, 의료, 교육 노동자들이 직장을 이탈해 전개한 시민불복종 운동이 군부 통치 체제를 마비시키는 핵심임을 파악하고 노동자계급 간 연대를 도모하고자 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1인 1달러 모금' 등을 통해 파업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미얀마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생활비를 전달하며 투쟁의 동력을 유지시켰다. 또, 미얀마 현지의 저항하는 시민들에게 식량, 의약품, 통신비를 지원하는 대규모 모금이 이어지기도 했다.

동시에, 한국 시민사회는 군부의 주요 자금줄로 지목된 '슈웨(Shwe) 가스전 프로젝트'와 같은 경제적 결탁 구조를 매섭게 비판했다. 이 가스전에서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한국 기업이 거둔 수익이 미얀마 국영석유가스공사(MOGE)를 거쳐 군부의 무기 구입비로 쓰인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주주 행동과 공급망 감시 활동을 전개했다. 이는 한국 내 연대 운동이 단순한 원조를 넘어 글로벌 자본의 책임을 묻는 '기업 감시' 혹은 ‘투자 철회’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확장했음을 보여준다.

2021년 2월 쿠데타 발생 직후부터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미얀마 연대 활동을 펼쳐온 국가 중 하나다.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 시민사회단체 모임’이 결성되었고, 인천 부평과 서울역, 한남동 미얀마 대사관 앞, 옥수동 미얀마 무관부 인근, 부산역, 울산 롯데백화점 앞 등에서 빈번하게 집회를 열었다. 그밖에 전주와 광주, 대구, 안동, 원주, 인천 등에서도 지역 시민사회운동과 미얀마 이주노동자 간 연대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쿠데타 직후 거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앞에서는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수백여 명이 쿠데타 규탄 집회를 가졌는데, 거제 지역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연대가 있었기에 안정적인 집회를 열 수 있었다.

쿠데타 이후 5년이 흐른 2026년 현재, 연대의 양상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최근 군부가 강행한 '가짜 선거'에 대해 한국 시민사회는 즉각적인 불인정 성명을 발표하며 국제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장기화된 내전과 경제 파탄 속에서도 한국 사회가 보여준 끈질긴 연대는, 평등과 민주주의를 위해 저항하는 아시아 민중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만들고 있다. 단순히 군부를 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미얀마에서 새로운 연방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구체적 지원과 연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연대 노력과 그에 따라 형성된 광범위한 국내 여론은 한국 정부가 국내 체류 미얀마 이주민과 유학생들에게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를 통해 본국으로 송환될 공포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제도적 보호막을 제공하게 했다. 정부 차원의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는 미얀마 이주민들이 민족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를 설립하고, 지속적으로 대사관이나 무관부를 상대로 투쟁을 이어갈 기반이 됐다. 물론 이를 근거로 난민 인정에 대한 한국 사회의 수준이 개선됐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2023~25년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0~1.6% 수준으로 G20이나 유럽연합과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

지속적인 연대를 이어가기 위해

일상의 투쟁은 미얀마 현지 저항 세력에게 심리적 지지대를 형성해 주었으며, 양국 시민들 사이의 연대 의식을 형성해주었다. 특히,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됐다는 점도 큰 의의가 있다.

반면 한계 역시 명백하다. 시민사회의 열망에 비해 한국 정부의 대(對)미얀마 외교적 압박이나 경제 제재는 실리적 관계(건설, 에너지 사업 등)로 인해 다소 제한적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미얀마 문제가 '일상화'되자, 초기만큼의 대중적 관심과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현재 미얀마 군부가 가하는 폭력과 시민불복종 운동의 저항은 이미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처럼 사태가 장기화되면 국경 바깥의 관심과 연대는 옅어지기 마련이고,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단기적인 사태의 종결을 목표로 전개되던 운동이 항상 그런 비중으로 지속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 아니면 도’식의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계속해서 예의주시하며, 보다 긴 호흡으로 끈끈하고 단단하게 연대를 이어가야 한다. 막막한 상황에서 우리가 지속할 수 있는 실천적 연대는 무엇일까?

첫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얀마 군부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는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슈웨 가스전 프로젝트를 비롯한 채굴 사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를 통해 역대 최고의 영업이익을 갱신하기도 할 만큼 수익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포스코 자본은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지 않는 B2B 기업이기 때문에 불매 운동 성격의 기업 비판 여론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우리의 연대는 공급망 전반을 아우를 정도로 광범위하고 긴 시야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EU가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 예정인 '공급망 실사법' 등을 근거로 책임을 묻거나, 국민연금 같은 공적 기금이나 대형 자산운용사에 해당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결함을 고발하고 투자를 철회하도록 요구하는 등 여러 전술들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포스코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를 통한 운동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미얀마 군부 간 관계도 (출처: 시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과 미얀마 군부 간 관계도 (출처: 시사인)

둘째, 미얀마 국경 인근에 위치한 태국의 메솟(Mae Sot)같은 도시나 치앙마이(Chiang Mai) 등에는 미얀마 시민방위군을 지원하는 다양한 미얀마 이주민 사업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들을 구매함으로써 지치지 않고 저항을 이어갈수록 협력할 수 있다. 가령 치앙마이나 메솟에서 미얀마 이주민 상점들이 판매하는 커피나 의류, 차 등의 구입은 아래로부터의 교류를 지속할 기반을 만들 수 있다.

셋째, 주지하다시피 국내 체류 미얀마 인구는 5만6천여 명에 달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적지 않은 미얀마 이주노동자, 유학생들이 한국 정주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일상 속에서 미얀마 이주민들과 교류하고 연대하는 관계망을 단단하게 구축하고, 이들이 절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싸워나갈 수 있도록, 또 이들을 통해 미얀마 현지의 저항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얀마 사회와 디아스포라 공동체 내의 갈등 구조, 이주민으로서 노동권과 인권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넷째, 아무리 민주주의가 파괴된 조건에서도 노동 현장은 존속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최대한 노동자 국제연대망을 구축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우회적이거나 때로는 과감한 방식으로 연대를 이어가야 한다. 특히, 국제 의류봉제산업 공급망을 통한 감시 운동이나 양곤으로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노동 착취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현지 노동자들과의 공동 행동을 도모할 수 있다.

지난 5년 한국 사회운동의 미얀마 연대는 망각에 맞선 투쟁과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미얀마가 현재 군부의 가짜 선거와 무력 진압이라는 혼돈의 정세를 통과하고 있는 만큼, 단순한 원조를 넘어, 미얀마의 새로운 연방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투쟁에 계속 연대하자!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