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 새로운 세대의 노동조합을 만든다 — SERBUK의 조직화 전략

인도네시아 | 새로운 세대의 노동조합을 만든다 — SERBUK의 조직화 전략

인도네시아 SERBUK연맹 사무총장 마울라나 후사인 루미 인터뷰

2025년 11월 16일

[동아시아]인도네시아인도네시아, 대중시위, 노동조합, 자카르타, 청년, 조직화, 인터뷰

얼마 전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아시아 지역 청년 노조 활동가들을 위한 교육 및 교류 프로그램(Leadership Education & Exchange in Asia Programme for Young Unionists)이 진행됐다. LEAP에 참여하기 위해 동아시아 곳곳의 노동운동가들이 서울을 찾았다. 인도네시아 인민노동조합연맹 후사인 사무총장도 그 중 하나다. 지난 11월 12일(수), 바쁜 일정 속에서 짬을 낸 그와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루 전인 11일 LEAP의 마지막 일정으로 열린 공개 토론회 2부에서 그의 발표 내용을 추가 보완했다.

플c |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후사인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마울라나 후사인 루미(Maulana Husain Rumi) 입니다. 후사인(Husain)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저는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Yogyakarta) 출신입니다.

현재 SERBUK 연맹(Federasi Serikat Buruh Kerakyatan Indonesia, 인도네시아 인민노동조합연맹)의 사무총장(General Secretary)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6개월 전부터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 전에는 미디어·선전 코디네이터로 일했습니다.

플c | 올해 인도네시아에서 아주 큰 투쟁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세 가지 인상적인 이미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미지들인가요?

후사인 | 올해 인도네시아에서는 1990년대 개혁(Reformasi) 이후 최대 규모의 대중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 가지 상징적 이미지가 널리 공유되며 대중의 분노와 저항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첫째는 경찰 차량에 치여 사망한 청년의 사진인데요. 지난 8월 시위 당시, 한 오토바이 택시 기사가 경찰차에 치여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판 쿠르니아완(Afan Kurniawan) 이며, 많은 시민들은 그를 ‘순교자(martyr)’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다음 날 전국적인 시위 확산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고, 약 20개 주요 도시에서 밤새 시위가 벌어진 뒤 아침까지 이어졌습니다. 전국적인 대중 봉기의 도화선이 된 거죠.

두번째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One Piece)’의 해적 깃발(Jolly Roger)이 전국에 등장한 사진입니다. 역시 올해 7월, 평화로운 시위가 전국에서 이어졌는데요. 이 과정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One Piece) 의 해적 깃발과 이미지가 덤프트럭, 가정집, 길거리 곳곳에 걸렸습니다. 이 상징들은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프랑스, 네팔 등 다른 나라 시위에서도 나타나 Z세대 저항의 글로벌 상징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세번째는 핑크색 히잡을 쓴 한 여성의 사진입니다. 핑크색 히잡을 쓰고 시위대의 최전선에 선 한 여성의 사진이 인도네시아 SNS 전역에서 빠르게 퍼지면서 이 운동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상징이 됐죠. 특히 청년·여성들이 이번 투쟁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 용기와 저항을 보여주는 대표적 이미지입니다.

경찰 폭력에 맞선 청년들의 분노, 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저항의 문화, 여성들의 적극적 참여 등이 이런 이미지를 통해 소셜미디어에 급속히 확산되면서 이런 요소들이 결합됐고요. 그러면서 이번 시위는 단순한 경제적 불만을 넘어 정치·사회 구조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거대한 문제제기가 됐습니다.

플c | 이 투쟁은 어떤 맥락에 의해 일어났나요?

후사인 | 이번 투쟁은 하루이틀 만에 갑자기 폭발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경제적·사회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결과였습니다.

첫째로, 경제 위기와 대량 해고가 주요한데요. 올해 들어 인도네시아에서는 일자리 감소, 증세, 물가 상승 등 경제 위기가 심각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약 6만~8만 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었고, 많은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제가 젊은 조합원들에게 “왜 시위에 나왔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불안해서요. 너무 답답하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이 불안과 공포가 Z세대의 집단적 행동을 이끌어낸 겁니다.

두번째로는 극단적인 정치·경제적 불평등의 모순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데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들은 주택 수당을 5천만 루피아로 인상하고, 자신들의 월수입을 자카르타 최저임금의 10배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그것을 SNS계정에 자랑하듯 과시했죠. 이는 국민의 분노를 극단적으로 자극했습니다.

세번째는 강화되는 군사주의와 경찰 폭력입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군사적 억압이 다시 강화되고 있습니다. 파업 현장에 군인들이 출동하고, 시위 현장에서 과도한 경찰 폭력이 빈번합니다. 정부는 비판적 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인도네시아에서 다시 부활하는 “군사주의적 통치”라고 생각합니다.

플c | SERBUK은 이번 시위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후사인 | SERBUK은 이번 시위의 핵심 조직자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8월 초 꾸닝안에서의 사망 사건 이후, SERBUK은 다른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자바(Java)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즉각 조직했습니다. FSBMI(Federasi Serikat Buruh Militan Indonesia), 여성노동단체, 대학생 단체들,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연합 행동을 구성하며 시위를 확산했습니다.

저희는 지역별 즉각 행동을 조직했습니다. SERBUK 산하 여러 지역조직에서 시위 지침을 공유하고, 각 지역의 상황을 조합원과 소통했습니다. SERBUK 중앙본부는 조합원들에게 공문을 보내 시위 참여 시 안전 지침, 연대 행동의 규율, 공동 귀가, 지속적인 연락 유지 등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SERBUK연맹이 청년 세대 조직화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는 점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 조합원 중 62%가 35세 이하 청년입니다. 이번 시위에서도 Z세대 조합원들이 현장 곳곳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였고, SERBUK은 이들을 보호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일부 인도네시아 노동조합들이 “이번 시위는 아나키스트 운동이며 참여하면 안 된다”고 조합원들에게 공문을 보내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SERBUK은 명확히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번 시위를 지지한다. 노동자와 민중의 투쟁은 정당하다.”

노동조합 내부 분열 속에서도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던 것은 매우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SERBUK 웹사이트
출처: SERBUK 웹사이트

플c | 엄청난 대중 투쟁이 있었군요. 이번 시위의 성과는 어떤 것이라고 볼 수 있나요?

후사인 | 이번 시위는 단순한 분노의 폭발이 아니었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첫째로 국회의원 주택 수당 인상안 철회를 이뤘죠. 국회의원들이 5천만 루피아로 올리려던 주택 수당이 취소되었습니다. 두번째로 여러 지역에서의 재산세 인상안도 중단시켰고요. 시위의 압력으로 인해 정부는 여러 장관을 교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위 기간 발생한 경찰 폭력 사건을 조사할 독립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그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성과’도 있는데요. ① 이 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자, 학생, 시민사회가 정치 공간을 되찾는 순간을 획득했고요. 시민들이 스스로 힘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되찾았습니다. ② 또, 시위 직후 현장에서의 노동자 협상력이 상승했죠. 시위 직후 며칠 동안 SERBUK은 각 사업장에서 임금 협상이나 해고 철회 등을 추진했는데, 그 대부분이 성공했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죠. 사측이 시위 이후 노동자들의 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③ 하나 더 말씀드리면, 청년 세대의 대규모 정치화가 이뤄졌다는 겁니다. Z세대는 이번 시위를 통해 조직 행동, 즉흥적 동원, 상징화, 국제정세에 대한 감각을 갖춘 새로운 정치적 세대로 등장했습니다.

플c | 오늘날 인도네시아 노동조합과 노동자운동의 현황은 어떻고, 과제는 무엇인가요?

후사인 | 현재 인도네시아의 노동운동의 상황은, 한마디로 말하면 가능성과 위기,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적인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노조의 숫자가 정말 많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심각한 분열과 단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분열은 수하르토 이후 민주화 시기에 만들어진 제도적 조건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합니다.

먼저 인도네시아에는 지금 총 12,346개의 노동조합(local unions) 이 공식적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22개의 총연맹(confederations), 200개 이상의 연맹(federations) 이 존재합니다. 숫자로 보면 매우 ‘활발해 보이는’ 노동운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숫자가 곧 문제입니다. 너무 많기 때문에 단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노조 세 개, 네 개, 여섯 개가 한 회사 안에 존재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회사가 스스로 옐로 유니언(yellow union) 을 하나 만들어서 진짜 노조를 약화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2001년 노동조합법(새로운 민주화된 법)의 영향입니다. 이 법은 노조를 만드는 조건을 아주 쉽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업장 노동자의 10%만 모여도 노조를 만들 수 있고, 연맹을 만들려면 노조가 5개만 있으면, 총연맹을 만들려면 연맹 3개만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민주화 초기에는 노조 설립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쉬운 설립 조건이 오히려 분열을 구조화하는 요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노동조합 조직률입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12%라고 발표하고 있지만, 저는 그 수치를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도네시아에는 엄청나게 많은 비공식 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 조직률은 4~5% 정도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인도네시아 시민들이 노동조합을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제가 집 근처 이웃에게 “노조 알아요?”라고 물으면 “그게 회사인가요? 사회단체인가요?”라고 되묻습니다. 많은 노동자들도 자신의 권리를 몰라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해도 그냥 조용히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핵심 문제는 옴니버스법(Omnibus Law)입니다. 2021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노동자를 극도로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계약직 노동자를 사실상 평생 ‘계약직’으로 두는 것이 가능해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고, 단체교섭 구조가 약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법을 반대하며 싸웠고, 헌법재판소가 일부 조항에 대해 노동자 측 승소 판결을 냈습니다. 지금은 정부·노동자·사용자가 함께 새로운 노동법을 논의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저는 이런 혼란 속에서도 가능성을 봅니다. 특히 Z세대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최근 시위에서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새로운 상징과 행동 방식을 만들어냈습니다. “경찰서 앞에서 시위가 있다더라”라는 글 하나만 보고 바로 뛰어나오는 세대입니다. 이들은 기존의 관료적이고 형식적인 노동조합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 새로운 방식의 조직화가 필요합니다.

플c | SERBUK의 조직 현황은 어떻습니까?

후사인 | 우리 SERBUK은 2013년 12월 11일에 만들어진 비교적 젊은 노조입니다. 처음에는 8개의 사업장 노조로 시작했고, 이제는 전국적으로 확장된 연맹입니다. 현재 조직 규모는 14,500명이고, 그 중 9,000명(약 62%)이 35세 이하의 청년입니다. 이 점이 SERBUK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SERBUK은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젊은 조합원을 가진 연맹 중 하나입니다.

건설, 자재, 목재 및 임업, 전기 및 관련 공급망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활동해왔고요. 서자바(West Java), 중부자바(Central Java), 욕야카르타, 잠비(Jambi), 남칼리만탄(South Kalimantan), 동자바(East Java), 발리(Bali), 서칼리만탄(West Kalimantan) 등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비공식 부문이 매우 큰데, 그 영역에서 조합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법적 구조를 최대한 활용해서, 건설·목재·전기 등 기존의 사업장 밖에서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623명의 비정규·비공식 건설노동자가 가입하기도 했죠.

2016년에 우리는 BWI(Building and Wood Workers’ International, 국제건설목재노련)에 가입했는데요. 이를 통해 우리는 국제노동운동과 연결되어 있으며, 국제연대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어떤 회사가 노동자들을 탄압할 때 해외에서 연대 메시지나 비판 영상이 하나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큰 압박을 받습니다. 가령 우리는 2023년 한국 민주노총 조합원이 체포되었을 때 자카르타 시내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연대 시위를 조직했고, 필리핀 룰루레몬(Lululemon) 공급망 노동자, 베트남 의류노동자들을 위한 캠페인도 했습니다. 이처럼 SERBUK은 조직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국제연대를 매우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연맹입니다.

플c | 현재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후사인 | SERBUK은 현재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이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청년 조직화’와 ‘교육 혁신’, ‘비공식 부문 조직화’ 에 힘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조합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노동운동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일단 일터 바깥으로 나아가서 공동체를 만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요. ‘Goes To 플랫폼’이 그것입니다. 이는 Goes To School, Goes To University, Goes To Community로 나뉘는데요.우리가 청년·학생·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조직 활동입니다.

Goes To School(직업학교 조직화)에서 우리는 올해 한 직업학교에서 540명의 학생과 2일 동안 15개 반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나요?”, “직장에서 어떤 조건을 원하나요?”, “노동자는 누구일까요?”, “지금 노동자의 현실은 어떤가요?” 이렇게 질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학생들은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현실, 낮은 임금, 사회보장 부재 등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노조에 가입하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이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했습니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는 정말 중요하네요. 그래서 저는 내일 노동조합에 가입하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변화입니다.

Goes To University(대학교 조직화)를 통해서는 학생들이 SERBUK의 캠페인, 여러 투쟁들, 현장 조직화 과정에 직접 참여합니다. 올해만 7명의 대학생 인턴이 SERBUK에서 활동했고, 새로운 사업장을 조직해 새 조합원을 실제로 가입시키는 성과를 만들었습니다. Goes To Community(지역사회 조직화)에서도 SERBUK은 직접 농촌·마을 지역사회에 들어가 사회보장, 최저임금,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위와 같은 노력의 결과, 500명 이상의 비공식 건설노동자가 새로 가입했고, 100명의 학생 예비조합원이 가입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SERBUK은 기존의 강의식 교육을 버리고, 게임이나 이미지 기반 학습, 워크숍, 그룹 토론, 역할극, 질문 중심 학습으로 방식을 바꿨는데요. 청년들은 이런 방식에서 매우 활발하게 참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 노동투쟁 방식도 변화시키는 중인데요. 소셜미디어를 통한 조직화도 이뤄지고 있고, 국제연대 네트워크도 확장하고 있습니다. 또, 파업과 시위에 청년들의 참여 전략을 새롭게 구축함으로써 SERBUK을 새로운 세대의 노동조합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SERBUK에 대해 소개할 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지구를 보호하며, 다음 세대를 위한 변화를 만드는 새로운 세대의 노동조합이다.”

플c | 지난해 선거에서 18개 정당이 참여했다고 들었는데요. 이 중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정당은 어떤 정당이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어떤 시도들이 있나요?

후사인 | 지금 인도네시아의 정치를 보면, 겉으로는 굉장히 대중적인 언어를 쓰고, 서민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비즈니스 친화적, 자본가 중심적인 체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표현하곤 합니다. “인도네시아 정치권의 많은 정당들이 그냥 포퓰리즘적인 말을 할 뿐이고, 실제로는 아주, 아주 비즈니스맨의 정치를 하고 있다.” 말은 서민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정책과 실천은 기업가와 부자들을 위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 속에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당 중 노동자를 조금이라도 대표한다고 할 만한 정당은 하나, 노동당(Partai Buruh)입니다. 이 당은 아주 새로운 정당입니다. 2021년에 창당되었고, 아직은 정말 작은 규모입니다. 저는 가끔 언제 정확히 창당되었는지 연도를 헷갈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최근 몇 년 사이에 만들어진 아주 신생 정당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아마 지금으로서는 이 정당이 일종의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 세력이 매우 작고, 정치적으로도 그렇게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정당들은, 제가 보기에는 진심으로 노동자를 위해서, 노동계급을 위해서 활동하는 정당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인도네시아의 정당들 중 어느 정당도 “노동자를 문자 그대로, 진정으로 대변하는 정당”이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노동자를 진짜로 지지하는,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우선하는 정당은 현재 인도네시아에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저는, 정당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노동조합이 스스로 싸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노동자를 진심으로 대표해주는 강력한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조합원을 늘리고, 조직을 확장하고, 각 사업장에서 노조를 더 크게 만들고, 더 많이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우리를 대신해주지 않기 때문에, 노조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직접 힘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지역에서는, 지역 정치인들 중에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거나, 노동조합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방 단위에서는 노동운동과 연계된 개인이나 작은 그룹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인 사례이고, 전체 정치 지형에서 보면 아직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합니다. 전국적인 스케일에서 봤을 때,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강력한 노동자 정당이나 정치 블록은 아직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정당은 형식적으로는 노동당이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대다수의 정당은 실제로는 기업, 부자, 엘리트에게 가까운 정당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조건이 노동조합에게는 하나의 과제가 됩니다. “정당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못 한다”가 아니라, “정당이 우리를 대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더 강한 노동조합을 만들고, 우리의 정치적 힘을 직접 키워야 한다”는 과제 말입니다.

플c | 한국인들에게 인도네시아는 과거에는 꽤 멀게 느껴졌지만, 최근에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노동운동 차원에서의 연대는 아직 많이 부족한데요. 앞으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후사인 | 먼저, 저는 국제연대가 우리 운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국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여러 번 들었고, 또 직접 행동으로 연대해 왔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앞에서 연대 시위를 조직했습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인도네시아 노동자들도 한국 노동자들과 함께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습니다. 그 시위는 한국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일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안에서 “국제주의 노동운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또 다른 경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회사와 갈등을 겪을 때, 해외에서 연대 영상이 하나 올라오는 것만으로도 회사는 굉장히 긴장합니다. 어떤 기업은 해외에서 자신들에 대한 비판적 영상이 올라가면, 그걸 정말 무서워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바에 따르면, “외국에서 올라온 짧은 영상 하나가 협상력을 완전히 바꿔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국제연대는 단지 상징적 제스처가 아니라, 기업을 압박하고 노동자가 유리한 위치로 나아가게 만드는 아주 실질적인 힘이다.”

그리고 저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사이의 연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다음 단계에서는 한국의 노동운동 활동가나 노조 지도자들이 인도네시아로 직접 올 수도 있고, 반대로 인도네시아 노동운동 지도자들도 한국에 갈 수 있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배움과 지지를 주고받는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이건 그냥 추상적인 희망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만들고 싶어 하는 다음 단계의 연대입니다. 서로를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나고, 사업장을 방문하고, 조합원들을 만나고, 워크숍을 함께 하고, 서로의 투쟁 현장을 직접 보는 연대 말입니다.

저는 또한, Z세대가 국제연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최근 시위에서 보았듯이,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새로운 상징을 만들고,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옵니다. 한국의 젊은 활동가들과 인도네시아의 젊은 활동가들이 서로 연결된다면, 그들은 더 창의적인 연대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통해 서로의 투쟁을 소개하고, 공동 캠페인을 벌이고,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밈(meme)과 문화적 코드까지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미래 세대의 국제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룰루레몬 공급망의 필리핀 하청공장 노동자들, 베트남 의류노동자들과 연대 캠페인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2023년에는 말씀드린 것처럼, 민주노총 조합원 체포에 맞서 자카르타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연대 행동을 했죠. 이런 경험들은 하나의 메시지를 줍니다.

“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운동을 움직이게 만드는 심장이다.”

그래서 앞으로 필요한 노력은 분명합니다. 첫째,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인도네시아를, 인도네시아의 노동자들이 한국을 “멀리 있는 나라”가 아니라,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는 동지들”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구체적인 공동 행동을 만들어야 합니다. 같은 날에 각자의 나라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행동, 같은 기업을 상대로 한 국제적 캠페인, 서로의 파업과 시위에 대한 온라인·오프라인 연대 메시지, 이런 것들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셋째, 직접 만나는 연대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활동가들이 인도네시아에 와서 우리 조합원들을 만나고, 인도네시아의 활동가들이 한국에 가서 한국의 현장을 보고, 함께 세미나를 하고, 워크숍을 하고,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이 함께 행동할수록, 자본과 권력은 우리를 더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국경은 자본에게는 아무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노동자에게도 국경은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이 앞으로 훨씬 더 자주, 훨씬 더 깊게, 훨씬 더 용감하게 서로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국제주의이고, 우리의 운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후사인과 함께
후사인과 함께


인터뷰이 : 마울라나 후사인 루미

인터뷰어 : 홍명교 · 최세윤 (플랫폼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