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 새로운 세대의 노동조합을 만든다 — SERBUK의 조직화 전략
2025년 11월 16일
얼마 전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아시아 지역 청년 노조 활동가들을 위한 교육 및 교류 프로그램(Leadership Education & Exchange in Asia Programme for Young Unionists)이 진행됐다. LEAP에 참여하기 위해 동아시아 곳곳의 노동운동가들이 서울을 찾았다. 인도네시아 인민노동조합연맹 후사인 사무총장도 그 중 하나다. 지난 11월 12일(수), 바쁜 일정 속에서 짬을 낸 그와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루 전인 11일 LEAP의 마지막 일정으로 열린 공개 토론회 2부에서 그의 발표 내용을 추가 보완했다.
플c |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후사인 |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마울라나 후사인 루미(Maulana Husain Rumi) 입니다. 후사인(Husain)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저는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Yogyakarta) 출신입니다.
현재 SERBUK 연맹(Federasi Serikat Buruh Kerakyatan Indonesia, 인도네시아 인민노동조합연맹)의 사무총장(General Secretary)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6개월 전부터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 전에는 미디어·선전 코디네이터로 일했습니다.

플c | 올해 인도네시아에서 아주 큰 투쟁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세 가지 인상적인 이미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미지들인가요?
후사인 | 올해 인도네시아에서는 1990년대 개혁(Reformasi) 이후 최대 규모의 대중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 가지 상징적 이미지가 널리 공유되며 대중의 분노와 저항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첫째는 경찰 차량에 치여 사망한 청년의 사진인데요. 지난 8월 시위 당시, 한 오토바이 택시 기사가 경찰차에 치여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판 쿠르니아완(Afan Kurniawan) 이며, 많은 시민들은 그를 ‘순교자(martyr)’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다음 날 전국적인 시위 확산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고, 약 20개 주요 도시에서 밤새 시위가 벌어진 뒤 아침까지 이어졌습니다. 전국적인 대중 봉기의 도화선이 된 거죠.
두번째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One Piece)’의 해적 깃발(Jolly Roger)이 전국에 등장한 사진입니다. 역시 올해 7월, 평화로운 시위가 전국에서 이어졌는데요. 이 과정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One Piece) 의 해적 깃발과 이미지가 덤프트럭, 가정집, 길거리 곳곳에 걸렸습니다. 이 상징들은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프랑스, 네팔 등 다른 나라 시위에서도 나타나 Z세대 저항의 글로벌 상징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세번째는 핑크색 히잡을 쓴 한 여성의 사진입니다. 핑크색 히잡을 쓰고 시위대의 최전선에 선 한 여성의 사진이 인도네시아 SNS 전역에서 빠르게 퍼지면서 이 운동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상징이 됐죠. 특히 청년·여성들이 이번 투쟁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 용기와 저항을 보여주는 대표적 이미지입니다.
경찰 폭력에 맞선 청년들의 분노, 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저항의 문화, 여성들의 적극적 참여 등이 이런 이미지를 통해 소셜미디어에 급속히 확산되면서 이런 요소들이 결합됐고요. 그러면서 이번 시위는 단순한 경제적 불만을 넘어 정치·사회 구조에 대한 새로운 세 대의 거대한 문제제기가 됐습니다.

플c | 이 투쟁은 어떤 맥락에 의해 일어났나요?
후사인 | 이번 투쟁은 하루이틀 만에 갑자기 폭발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된 경제적·사회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결과였습니다.
첫째로, 경제 위기와 대량 해고가 주요한데요. 올해 들어 인도네시아에서는 일자리 감소, 증세, 물가 상승 등 경제 위기가 심각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약 6만~8만 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었고, 많은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제가 젊은 조합원들에게 “왜 시위에 나왔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불안해서요. 너무 답답하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이 불안과 공포가 Z세대의 집단적 행동을 이끌어낸 겁니다.
두번째로는 극단적인 정치·경제적 불평등의 모순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데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들은 주택 수당을 5천만 루피아로 인상하고, 자신들의 월수입을 자카르타 최저임금의 10배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그것을 SNS계정에 자랑하듯 과시했죠. 이는 국민의 분노를 극단적으로 자극했습니다.
세번째 는 강화되는 군사주의와 경찰 폭력입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군사적 억압이 다시 강화되고 있습니다. 파업 현장에 군인들이 출동하고, 시위 현장에서 과도한 경찰 폭력이 빈번합니다. 정부는 비판적 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인도네시아에서 다시 부활하는 “군사주의적 통치”라고 생각합니다.
플c | SERBUK은 이번 시위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후사인 | SERBUK은 이번 시위의 핵심 조직자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8월 초 꾸닝안에서의 사망 사건 이후, SERBUK은 다른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자바(Java)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즉각 조직했습니다. FSBMI(Federasi Serikat Buruh Militan Indonesia), 여성노동단체, 대학생 단체들,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연합 행동을 구성하며 시위를 확산했습니다.
저희는 지역별 즉각 행동을 조직했습니다. SERBUK 산하 여러 지역조직에서 시위 지침을 공유하고, 각 지역의 상황을 조합원과 소통했습니다. SERBUK 중앙본부는 조합원들에게 공문을 보내 시위 참여 시 안전 지침, 연대 행동의 규율, 공동 귀가, 지속적인 연락 유지 등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SERBUK연맹이 청년 세대 조직화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는 점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 조합원 중 62%가 35세 이하 청년입니다. 이번 시위에서도 Z세대 조합원들이 현장 곳곳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였고, SERBUK은 이들을 보호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일부 인도네시아 노동조합들이 “이번 시위는 아나키스트 운동이며 참여하면 안 된다”고 조합원들에게 공문을 보내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SERBUK은 명확히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번 시위를 지지한다. 노동자와 민중의 투쟁은 정당하다.”
노동조합 내부 분열 속에서도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던 것은 매우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플c | 엄청난 대중 투쟁이 있었군요. 이번 시위의 성과는 어떤 것이라고 볼 수 있나요?
후사인 | 이번 시위는 단순한 분노의 폭발이 아니었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첫째로 국회의원 주택 수당 인상안 철회를 이뤘죠. 국회의원들이 5천만 루피아로 올리려던 주택 수당이 취소되었습니다. 두번째로 여러 지역에서의 재산세 인상안도 중단시켰고요. 시위의 압력으로 인해 정부는 여러 장관을 교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위 기간 발생한 경찰 폭력 사건을 조사할 독립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그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성과’도 있는데요. ① 이 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자, 학생, 시민사회가 정치 공간을 되찾는 순간을 획득했고요. 시민들이 스스로 힘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되찾았습니다. ② 또, 시위 직후 현장에서의 노동자 협상력이 상승했죠. 시위 직후 며칠 동안 SERBUK은 각 사업장에서 임금 협상이나 해고 철회 등을 추진했는데, 그 대부분이 성공했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죠. 사측이 시위 이후 노동자들의 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③ 하나 더 말씀드리면, 청년 세대의 대규모 정치화가 이뤄졌다는 겁니다. Z세대는 이번 시위를 통해 조직 행동, 즉흥적 동원, 상징화, 국제정세에 대한 감각을 갖춘 새로운 정치적 세대로 등장했습니다.
플c | 오늘날 인도네시아 노동조합과 노동자운동의 현황은 어떻고, 과제는 무엇인가요?
후사인 | 현재 인도네시아의 노동운동의 상황은, 한마디로 말하면 가능성과 위기,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적인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노조의 숫자가 정말 많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심각한 분열과 단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분열은 수하르토 이후 민주화 시기에 만들어진 제도적 조건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합니다.
먼저 인도네시아에는 지금 총 12,346개의 노동조합(local unions) 이 공식적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22개의 총연맹(confederations), 200개 이상의 연맹(federations) 이 존재합니다. 숫자로 보면 매우 ‘활발해 보이는’ 노동운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숫자가 곧 문제입니다. 너무 많기 때문에 단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노조 세 개, 네 개, 여섯 개가 한 회사 안에 존재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회사가 스스로 옐로 유니언(yellow union) 을 하나 만들어서 진짜 노조를 약화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2001년 노동조합법(새로운 민주화된 법)의 영향입니다. 이 법은 노조를 만드는 조건을 아주 쉽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업장 노동자의 10%만 모여도 노조를 만들 수 있고, 연맹을 만들려면 노조가 5개만 있으면, 총연맹을 만들려면 연맹 3개만 있으면 됩니다. 그래서 민주화 초기에는 노조 설립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쉬운 설립 조건이 오히려 분열을 구조화하는 요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노동조합 조직률입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12%라고 발표하고 있지만, 저는 그 수치를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도네시아에는 엄청나게 많은 비공식 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 조직률은 4~5% 정도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인도네시아 시민들이 노동조합을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제가 집 근처 이웃에게 “노조 알아요?”라고 물으면 “그게 회사인가요? 사회단체인가요?”라고 되묻습니다. 많은 노동자들도 자신의 권리를 몰라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해도 그냥 조용히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핵심 문제는 옴니버스법(Omnibus Law)입니다. 2021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노동자를 극도로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계약직 노동자를 사실상 평생 ‘계약직’으로 두는 것이 가능해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고, 단체교섭 구 조가 약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법을 반대하며 싸웠고, 헌법재판소가 일부 조항에 대해 노동자 측 승소 판결을 냈습니다. 지금은 정부·노동자·사용자가 함께 새로운 노동법을 논의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저는 이런 혼란 속에서도 가능성을 봅니다. 특히 Z세대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최근 시위에서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새로운 상징과 행동 방식을 만들어냈습니다. “경찰서 앞에서 시위가 있다더라”라는 글 하나만 보고 바로 뛰어나오는 세대입니다. 이들은 기존의 관료적이고 형식적인 노동조합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 새로운 방식의 조직화가 필요합니다.
플c | SERBUK의 조직 현황은 어떻습니까?
후사인 | 우리 SERBUK은 2013년 12월 11일에 만들어진 비교적 젊은 노조입니다. 처음에는 8개의 사업장 노조로 시작했고, 이제는 전국적으로 확장된 연맹입니다. 현재 조직 규모는 14,500명이고, 그 중 9,000명(약 62%)이 35세 이하의 청년입니다. 이 점이 SERBUK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SERBUK은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젊은 조합원을 가진 연맹 중 하나입니다.
건설, 자재, 목재 및 임업, 전기 및 관련 공급망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활동해왔고요. 서자바(West Java), 중부자바(Central Java), 욕야카르타, 잠비(Jambi), 남칼리만탄(South Kalimantan), 동자바(East Java), 발리(Bali), 서칼리만탄(West Kalimantan) 등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비공식 부문이 매우 큰데, 그 영역에서 조합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법적 구조를 최대한 활용해서, 건설·목재·전기 등 기존의 사업장 밖에서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623명의 비정규·비공식 건설노동자가 가입하기도 했죠.
2016년에 우리는 BWI(Building and Wood Workers’ International, 국제건설목재노련)에 가입했는데요. 이를 통해 우리는 국제노동운동과 연결되어 있으며, 국제연대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어떤 회사가 노동자들을 탄압할 때 해외에서 연대 메시지나 비판 영상이 하나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큰 압박을 받습니다. 가령 우리는 2023년 한국 민주노총 조합원이 체포되었을 때 자카르타 시내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연대 시위를 조직했고, 필리핀 룰루레몬(Lululemon) 공급망 노동자, 베트남 의류노동자들을 위한 캠페인도 했습니다. 이처럼 SERBUK은 조직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국제연대를 매우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연맹입니다.
플c | 현재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후사인 | SERBUK은 현재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이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청년 조직화’와 ‘교육 혁신’, ‘비공식 부문 조직화’ 에 힘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조합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노동운동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