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조운동의 사회적 힘 회복하고 새로운 사회 향한 길을 열자! | 전국노동자대회 맞이
2025년 11월 7일
이 글은 2025년 11월 8일 동대문에서 열릴 전태열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의 사전집회와 본 대회에서 배포될 플랫폼c 유인물(다운로드)에 수록되었다.
민주노총이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1995년 11월, 민주노조를 꿈꾸는 노동자들은 독재 잔재와 기업 권력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향한 약속으로 모였다. 그 것은 단지 임금 인상이나 복지 개선에 그치는 요구가 아니라, 노동자가 주인되는 새로운 사회를 쟁취하겠다는 포부였다.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민주노총은 무엇을 해냈고, 무엇을 해내지 못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30년의 빛과 그림자
지난 30년 우리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와 거리에서 투쟁하며 노동권과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96~97년 총파업을 통해 노동법 개악을 막아내고, 연이은 IMF 위기 속 구조조정의 광풍에 맞서 싸웠으며, 비정규직 투쟁의 불씨를 이어왔고, 촛불과 응원봉의 광장에서 정권을 바꾸었다.
민주노총은 또한 전세계적인 노동조합 운동의 쇠퇴 속에서도 조직을 성장시키며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왔다. 물론 한국도 2010년대 중반까지는 조직률이 계속 하락하는 추세였다. 그러던 것이 촛불 이후인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조합원 수는 71만 6천 명에서 113만 명, 조직률은 10.3%에서 14.2%로 증가한 반등기를 맞았다. 이런 증가는 저절로 이뤄진 것도, 민주당 정권의 지원 때문도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이 20여년 간 주체적으로 일궈온 ‘투쟁’과 ‘전략조직화 사업’ 덕분이다. 2010년대 들어 OECD 36개국 중 노조 조직률이 상승한 나라는 한국을 비롯한 4개국 뿐이다.
최근 개정된 노조법 2,3조는 또 어떠한가. 전세계적인 아웃소싱의 흐름 속에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한 데 큰 의의가 있다. 이 역시 국회의 도움이 아니라, 20여년 간 간접고용,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헌신적이고 절실한 투쟁 속에서 쟁취한 것 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노동조합의 조직률 상승은 불평등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노조할 권리를 확대해 온 민주노총의 투쟁 역사는 우리가 ‘귀족노조’라는 보수언론의 선동에 흔들릴 이유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조합원수는 늘었지만, 활발한 교육과 토론, 연대투쟁의 모습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간 격차를 비판하면서,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게 아니라, 우리 조합원보다 더 임금을 많이 받는 정규직 노동조합을 욕하는 것으로 실천을 대신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민주노총이 길을 열어야 한다’면서도 착취와 억압으로 이뤄진 체제를 넘어설 이념을 벼리고 실천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파를 욕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어느샌가 민주노조운동이 스스로를 ‘사회변혁의 주체’로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정치를 기득권 정당에 위탁하지 않겠다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는 빛바랜 구호가 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은 ‘민주당 정권’과의 공조 속에서 점점 제도권에 포섭되어 왔다. 민주당은 말로는 ‘노동존중’을 약속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그 약속은 항상 잊혔다. 그럼에도 국민의힘보다는 낫다는 이유,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손을 잡아 왔다. 그 과정에서 잃은 것은 단지 진보정당의 의석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전망이다.
‘진보 정부’라는 환상에 노동운동을 종속시켜선 안 된다. 노동자의 정치적 독립 없이는, 자본과 권력에 맞서는 실질적·사회적 힘을 회복할 수 없다.
멈추는 자들이 세상을 움직인다
노동조합의 임무는 단지 임금협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민주노조가 다시 사회변혁의 중심세력이 되기 위해 다음의 길을 세워야 한다.
- 학습하고 토론하자. 노동조합 활동이 어느새 일방적으로 지침을 내리고 조합원들을 동원하는 방식이 되진 않았는지 돌아보자.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책, 자료, 영상은 많지만 공부하는 사람은 적다. 학습하고 토론해야 노동자 자신의 대안을 만들 수 있고, 노동조합 민주주의도 강화된다.
-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계획을 다시 세우자. 현실과 타협한다는 이유로 민주당과 공조해 온 역사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자. 노동자정당을 다시 세움과 동시에, 노동자의 정치는 투표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자.
- 우리 시대 노동의 새로운 주체들과 함께 노동조합의 토대를 확장하자. 모든 불안정 노동자들의 대변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연대의 전통을 회복하고, 옆 사업장의 문제, 우리 사회 전반의 억압에 귀 기울여 함께 하자.
- 기후위기·전쟁위기·불평등과 같은 모순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회피하지 말자. 오늘날 세계는 자본주의 헤어나올 수 없는 위기의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맞선 총파업에 나서자 이스라엘이 휴전 협약에 서명했던 것처럼, 노동자가 멈출 때 세상은 비로소 변화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저항하는 전 세계 민중과 손잡고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구호와 실천을 복원하자.
새로운 사회 향한 길을 열자
숨 고르기는 끝났다. 모든 노동자의 존엄을 위해 싸우는 주체로 거듭나야 비로소 ‘민주노조’라 할 수 있다. 30년 전 민주노총의 창립선언에서 우리는 “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통해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국경을 넘어서서 전세계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강화하고 침략전쟁과 핵무기 종식을 통한 세계평화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다시 열릴 광장에서 부끄럽지 않게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기 위해, 민주노조운동의 비전과 역량을 바로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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